text


제목MIU404 / 이부시마 /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5-09-08 14:51





-



통, 통, 통, 발을 구른다. 발꿈치로부터 단단한 진동이 자르르 올라온다. 추위란 곧 떨림이고 진동이란 걸 단단히 깨닫는 겨울이었다. 교훈에 비해 대가가 너무 장렬했지만. 그해 겨울이 유난히도 스산했더랬다. 기온 자체는 예년과 다를 바 없었음에도 투명한 안개에 감싸인 마냥 서늘했다. 동장군은 위풍당당하게 몰아치는 대신 땅바닥을 기어 다녔고 사람을 발견하거든 발목부터 달라붙었다. 그리고 틈을 파고들었다. 도시뿐만 아니라 사람마저 안개 같은 겨울에 감겨들었다. 옷을 암만 껴입어도 소용없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서늘한 공기가 옷을 뚫고 속까지 스며들어 뼈가 다 시릴 지경이었다. 추위 안에서 예의범절이라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두가 제 겨드랑이 밑에 손끝을 찔러 넣고선 대화를 했다. 서두는 늘 날씨 얘기였다. 요즘 참 춥죠. 그러게나 말예요. 심지어 범행 현장을 앞에 두고서도 그랬다. 참 춥죠? 근데 손목을 좀 주셔야겠는데. 날도 추운데 왜 그러셨을까. 얼른 갑시다. 피차 추운데 몸 쓰지 말고.

햇빛마저 사라진 새벽이면 더욱 썰렁해졌다. 영하의 공기는 어두운 밤바다처럼 고요히 파도쳤다. 높은 건물 사이사이 쎄한 금속소리를 내며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부키 아이는 등을 움츠리고 핸들에 바싹 달라붙어 차를 몰곤 했다. 그리고 염불을 외웠다. 


“다들 마음이 추워서 그래. 마음이 추워서. 그래서 추운 거라고.”


이부키 아이의 염불로 인해 세상은 한 발짝 더 각박해졌다. 각박해진 세상에서 이부키 아이는 한껏 구부정하게 중얼거리다가 신호를 볼 때나 겨우 목을 빼냈다. 거북이마냥. 다른 차였더라면 히터라도 빵빵 틀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하필 탄 차가 멜론빵호였다. 멜론빵호의 난방은 엉망이었고 장사와는 거리가 먼 위장용 고철 덩어리는 한기를 습자지처럼 빨아들였다. 차는 그대로 커다란 냉장고가 되었다. 고급스런 녹색의 큰 냉장고. 그 냉장고를 데워야 할 히터는 열심히 일했으나 대다수의 에너지를 그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는 데에만 쏟아부었으며 그때마다 석연찮은 트림을 했다. 해묵은 먼지 냄새에 늘 코가 간질간질했다. 이러다 터지는 거 아냐?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더운 바람을 내뿜는 폭탄을 달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럼 4기수의 원래 차는 어디로 갔느냐. 시마 카즈미는 결단코 차를 엎거나, 어딘가에 들이박거나, 교통 법규를 위반하거나, 망가뜨리지 않았다. 이부키 아이도 마찬가지다. 옆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눈치가 보여 60킬로미터 이상을 도통 밟아보질 못했다. 세차도 꾸준히 했다. 아주 반짝반짝 광이 나게. 그럼에도 멀쩡한 세단을 두고 멜론빵호가 다시 주차장에서 기어 나올 수 있던 건 순 웃전들의 즉흥적 발상, 농담 따먹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거 있잖아. 그 멜론빵 차, 캐릭터 좋지 않아?’ 

주차장 한켠에 박힌 채 잊혀가던 멜론빵호를 누군가가 꼬집었고, 툭 던지는 농담을 절대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누군가가(시마 카즈미는 마메지라고 확신한다) 이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당사자인 기수404가 없는 자리에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끔 웃전 아저씨들의 머리는 희한한 쪽으로 비상하게 돌아가서, 경비는 줄이고 줄인 경비만큼의 고생은 아랫사람들에게 부과시키는 데만큼은 천재적으로 죽이 잘 맞았다. 캐릭터가 좋다는 이야기는 풀어 말하자면 경비가 전혀 들지 않는 홍보, 좋잖아? 라는 뜻이다. 기왕 이렇게 ‘통째로’ 잘 만든 것. 한 달만 타고 다니라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도 좀 흔들어주고 말야. 명물이니까. 이제 멜론빵호는 위장용에선 한참 멀어져 버린 것이 분명해졌다. 예예에, 아무렴요. 시마 카즈미는 대답은 했다. 대답이라기엔 실컷 여문 빈정거림이었지만 일단 형식은 갖췄으니 됐다. 홍보 같은 소리하네. 경찰 따위 홍보하지 않아도 세상 어지간한 사람들은 전화번호 110번을 안다. 그는 이 일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시마 카즈미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비록 그가 상식적인 선에서 미친놈이 아닐지라도 그의 파트너는 말이다.


“아하. 재미있겠네!”


대장이 내민 차키를 냉큼 낚아챈 것은 이부키 아이다. 짤랑짤랑. 원래 404의 대부분은 이부키 아이가 차키를 낚아챔으로써 시작하기 때문에 으레 있는 일이다. 새끼손가락에 차키 고리를 걸고 검지 끝으로 시마 카즈미 목덜미를 끈 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대장을 향해 손까지 흔들었다. 막상 태워 보내는 사람들마저 불안하게까지 만드는 산뜻한 출발이었다. 우리 아이 첫 심부름도 이보다는 믿음직스러울 텐데.


입이 댓 발 나와 질질 끌려다니는 시마 카즈미와는 달리 이부키 아이는 이 갑작스러운 조치에 별 이견이 없었다. 어느 면에선 반기기까지 했다. 한껏 들떠서는 차키 둘을 짤랑짤랑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그리하여 복도는 빈정거림과 콧노래가 공존했다. 이부키 아이 머릿속의 계산기는 아주 단순하게 돌아갔다. 그리운 멜론빵호에, 홍보까지 겸한다. 좋은 것 더하기 좋은 것. 가감승제의 원칙에 따른 결괏값은 빤했다. 완전 최고라고 할 수밖에. 윗선의 니즈와 행동파의 니즈가 제대로 맞아떨어졌음이다. 

이부키 아이라는 사람의 실루엣을 그려보자면 관료제란 구멍에 끔찍하게도 안 맞아 들어갈 것 같지만 실제는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오더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창의성은 비뚤어진 오더 아래 가뭄에 콩 나듯 빛을 발하곤 했고 이 환장의 콜라보를 감당하는 건 시마 카즈미다.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불행한 시마 카즈미를 두고선 이부키 아이는 총총총 달려갔다. 발걸음마다 착착, 쌀이 쓸리는 듯한 마찰 소리가 났다.


“어이! 우리가 돌아왔다구! 멜론빵호!”


이부키 아이가 얼마나 극적인 상봉 장면을 꿈꿨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그리던 장면이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상한선이 얼마나 요란할지 예상이 따라가지 못할 뿐이지. 순전히 이부키 아이의 정신세계에 이입한다는 전제하에 시마 카즈미가 예상할 수 있는 선은 환영의 멜론빵 노래가 흘러나오고 오색 깃발이 나부끼며 폭죽이 펑펑 터지는 것까지였다. 가히 상봉 씬이 아니라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책을 너무 봤거나.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EQ에 박수를 보낸다. 여하간에 모든 기대는 운전석 문을 여는 순간 물거품처럼 스러졌다. 어쩐지 차키가 뻑뻑하니 잘 돌아가지를 않더라니. 일종의 전조였음이다. 현실은 상상과는 정반대였다. 노래 대신 차 안에 쓸쓸하게 고여 있던 싸늘한 북풍이 냉큼 이부키 아이를 반겼다. 이부키 아이 몸뚱이가 빳빳하게 굳었다. 저도 모르게 차체를 턱 잡아버렸는데 그것마저 차가웠다. 따끔할 정도로 얼얼해 소름이 비죽비죽 솟아 나왔다.


“오우…. 잠깐잠깐잠깐잠깐. 잠깐만….”  

“뭐가 잠깐이야. 9시야. 얼른 들어가.”


시마 카즈미는 고장난 이부키 아이의 어깨를 냅다 떠밀었다. 새카맣게 툭, 밀려 들어갔다. 무저갱인 양. 꺄-. 지어냈을 리 없을 새된 비명소리가 왕왕 울렸다. 


“너무 차갑다고!”

“그게 멜론빵호의 마음이야.”

“차가워!”


매정함에 마음이 서럽고 엉덩이도 시리다. 시마 카즈미는 차마 엉덩이를 붙이질 못하는 촐싹거리는 이부키 아이를 보며 신나게 비웃었는데 찰나로 스러질 말초적 쾌락으로 눈 돌린 회피에 불과했다. 파트너로 묶인 이상 시마 카즈미 또한 같은 운명을 되풀이했다. 조수석에 앉는 순간 이부키 아이의 비명을 이해하고도 남았으니. 불쌍하게도. 차가워도 너무 차가웠다. 얼어붙은 손발은 기계처럼 뻣뻣하게 움직였고 시동은 헛손질을 반복하며 더디게 걸렸다. 멜론빵 노래는 하얗게 잊어버렸다. 대신 욕지거리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아니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들은 봄으로부터 가을까지밖에 멜론빵호를 몰아보지 못했고 멜론빵호에서의 겨울을 모른다. 끝이야 잔뜩 웅크린 운전이다. 이부키 아이는 더욱 움츠러든다.




그로부터 이주가 지났다. 이래저래, 꾸준히, 끈덕지게 불평했지만 후속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404 비번일에 들여다보긴 했는지 시마 카즈미와 마주치자마자 잿빛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영 상태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달리기야 잘 달리는 거 그냥 버텨 보시죠. 끝은 뭉그러졌지만 시마 카즈미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땅땅땅. 확실한 선고였다. 이미 한 달 중 절반이 지났으니 나머지도 대충 땜빵하라는. 굳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차내 환경까지 쾌적하게 고쳐보기엔 한 달은 많이도 짧았다. 서 측에서 아예 손 놔버린 이상 나머지 최선의 조치는 개인의 노력선에서 이루어졌다. 핫팩을 온몸에 갑옷처럼 두른 다음에 차 시트에 두툼한 방석을 까는 거였다. 그것마저 이부키 아이의 사비가 들어갔다. 시마 카즈미 몫까지.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는 사람이 수시로 뒤바뀌는 만큼 방석은 양쪽에 깔아두는 편이 이부키 아이로서도 속이 편했으리라. 벌건 속내와는 달리 혓바닥은 박애를 향해 제멋대로 지껄여댔다. 파트너잖아. 일심동체니까. 한 몸이지. 한 몸이면 엉덩이가 양쪽이 따듯해야 하지 않겠어! 아무렇게나 주워섬긴 말이었고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을 개소리였다. 시마 카즈미는 헛소리 말라며 손가락질 했지만 막상 조수석에 앉아서는 잠자코 허리를 깊숙이 묻었다. 결국 추위 앞에 장사 없다. 이부키 아이는 히죽히죽 웃었다. 

아무도 틀어주지 않는 개선곡은 이부키 아이 스스로 부름으로써 해결했다. 그는 이전보다도 더 자주, 더 크게 노래 불렀다. 메론 메론. 낭랑하게 홀로 불렀다. 멜론은 끝도 없이 반복되며 굴러갔다. 멜론이 굴러가는지 차가 굴러가는지 모르겠다. 그거 알아? 원래 시마쨩이 더 자주 불렀어. 시마쨩은 멜론빵이 그립지도 않았던 거야? 섭섭하네. 그 시마쨩은 핫팩을 비벼가며 손끝의 감각을 되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멜론빵이잖아.”

“네, 네. 메론 메론. 여러분의 시바우라 서입니다~. 신고는 110으로~. 할 일이 없는 게 더 좋겠지만.”

“이게 뭐 하자는 홍보야?!” 


어쨌든 이부키 아이는 친절했고 소위 스타의 기질마저 가지고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차가운 공기도 아랑곳 않고 창문을 열었다. 손을 뻗고 팔랑팔랑 흔들었다. 몸뚱이도 훌떡 넘어갈 기세였다. 그에 따른 반응 또한 화려했다. 아하하. 진짜 경찰 맞아요? 진짜 웃긴다. 차가운 손가락들이 서로 부딪혔다. 손과 손이 닿을 때에는 고드름마냥 깡깡댔지만 손이 스치고 난 뒤에는 지문으로부터 몽글몽글 열이 솟았다. 핫팩보다도 체온이 따듯했음이다. 그래서 이부키 아이의 손가락 끝은 늘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발간 손을 곧잘 시마 카즈미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주머니 속에 따끈따끈한 핫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체온으로도 모자라 주머니 속 핫팩의 온기까지 긁어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의 저의를 의심하거나 손을 되려 물리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부키 아이 손은 대개 시마 카즈미 외투 주머니, 혹은 근처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저의 외투 주머니 위치보다 낮은 주머니를 파헤치기 위해 어깨는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삐용삐용 소리 대신 울리는 멜론빵 노래는 싸늘한 거리를 훈훈하게 데웠다. 다들 마음이 추워서 그렇다더니. 이부키 아이 스스로 뇌까리던 염불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를 불태웠다. 장하기도 하다. 마침 십이월을 지나가고 있었고 시즌이 시즌이라 이부키 아이가 무작정 틀어대는 멜론빵 노래는 반쯤 동네의 캐럴로 자리 잡았다. 이제 멜론빵은 차를 벗어나 온 거리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상상 속 환영 인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개선곡은 쓸쓸한 독창을 벗어났고 경찰과 시민이 화합하는 그럴듯한 그림이 나옴에 윗선은 그럭저럭 만족했다(경찰 이미지 쇄신인지 멜론빵 홍보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었음에도). 윈윈이었다. 그저 외로운 건 시마 카즈미로서 그는 남은 이주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며 세고 있었다. 이부키 아이가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녹색 산타가 되어 시내에 멜론빵을 뿌려볼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에 이 기간이 끝나주기를. 

멜론빵 배부의 안은 단순히 시마 카즈미의 우려가 아니라 상당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멜론빵호를 알아보며 쏟아내는 인사가 퍽 좋았는지 홍보주간에 힘입어 이부키 아이는 내친김에 아주 착해져 보기로 결심한 듯했다. 본인 왈, 연말연시 친절 캠페인이라고 했다. 도시를 지키고 순찰하는 본래 업무에 덧붙여 쓰레기를 줍고 구세군 벨을 흔들고 인사하고 노래를 부르고 오지랖을 부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말이다. 타는 차만 바꿨을 뿐인데 어쩌다 마음가짐마저 이리 불이 붙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친절 주간이야. 친절 주간. 멜론빵호에 타고나니까 모두가 친절해지잖아. 시마쨩도.”

“그건 동정이야.”

“그렇게 삐딱하게 보면 재미없어. 크리스마스라고! 산타가 오는! 그리고 산타 대신 우리가 있는 거지!”

“아아아아아니? 이부키. 하나만 말해 두는데 경찰과 산타는 완전히 다른 거야. 완전히.”


정말로 이부키 아이가 멜론빵의 산타가 되자고 할까 봐 무섭다. 결심하지 않더라도 본디 가진 정이 많은 사람이 작정까지 하고 나니 더했다. 쌓이다 못해 흘러넘쳤다. 아이들을 위해 란도셀을 세 개나 샀다던 그의 이전 나날들이 손에 잡힐 것도 같았다. 그때도 이랬으리라. 쉽게 들뜨고 쉽게 부들부들해지며 쉽게 그 친절을 쏟아버린다. 왈칵 쏟아져 흘러가는 급류처럼. 그래서 예년에는 안 했을 법한 일들을 많이 하는군. 시마 카즈미는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의 작년을 모른다. 그가 보지 못한 이부키 아이 과거의 구역은 불투명한 백지로 남아있어서 미미한 기록이나 험악한 구전, 자술로만 접할 뿐이다. 어떤 해의 어떤 이부키 아이가 얼마나 다정했을지, 이보다 다정했을지 연말연시가 어떠했을지는 모른다. 

연하장도 그 일환이었다. 이부키 아이가 어느 누구에게 연하장을 써 왔는지 시마 카즈미는 모른다. 아니 애초에 매해 꼬박꼬박 연하장을 써 왔는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상 못 한 이부키 아이의 연례행사는 백지의 영역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슬슬 저녁밥을 먹자고 했는데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뜬금없이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식당도 아니었고 카페나 편의점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식품이라곤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거긴 문구점이었다.


“아, 맞다! 연하장 사야돼!”

“지금? 이 타이밍에? 연하장? 진작 안 사고?”

“그러니까 말야! 생각났을 때 안 사두면 또 까먹는다고!”


그래서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라는 인간도 매해 연하장을 착실하게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부키 아이는 팔랑거리며 뛰어갔다. 바람에 나부끼는 옷을 보면 마치 날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저 덩치가 어딘가 날려갈 리도 없었음에도. 창에 입김이 어려 이부키 아이 등이 뿌옇게 흐려졌다. 몇 번이고 덧 그려지고 덧 그려지고 덧 그려지다가 이부키 아이가 돌아와 운전석을 열고 나서야 맑게 개었다. 여전히 발그레한 손끝으로 엽서 몇 장을 펼쳐 들고 있었다. 그림이 하나같이 깜찍했다. 지나치게 깜찍했다. 부디 서의 사람들에겐 이 엽서를 보내지 않기를 시마 카즈미는 진심으로 바랐다. 부질없게도. 이부키 아이는 몇 사람의 이름을 세었다. 엽서 한 장마다 살포시 위에 올라갔다. 시마 카즈미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대장과, 진바상과, 큐쨩과, 하무쨩, 유타카에게도, 이런저런 사람들, 지나간 사람들, 마메지, 지금의 대장에게, 또 시마 카즈미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마상. 오래 망설이다가 마지막 이름을 얹었다. 손가락이 엽서를 조용히 훑었다. 그의 급류가 완연하게 잦아들어 잔잔한 순간이었다. 다정한 언어와는 달리 옆 얼굴은 추위에 차게 벼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시마 카즈미가 뭐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 라고만 했다. 입김처럼 흩어지고 곧 쓸려갔다. 이부키 아이에게 하는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소리로 남았다. 이부키 아이는 그날 분주소에서 연하장을 썼다. 어찌보면 밀린 숙제를 하는 꼬마 아이처럼 같기도 했다. 핸드폰을 켜고선 한자를 베껴갔다. 가끔 그가 쓰는 문장을 따라 서툴게 웅얼거렸는데 매우 상투적인 문구였음에 시마 카즈미는 아주 조금 안도했다. 저 중에 한 장이 저의 집에도 도착할 거라는 걸 꿈에도 생각안하는 표정으로 혼잣말에 혼잣말로 첨삭했다. 정말 시마는 그럴 때 웃기다니까. 이부키 아이 혼자 키득거렸다. 이 말은 그대로 연하장에도 기록되었다. 시마 카…즈미…. 정말…웃겨…. 꾹꾹 눌러 썼다.




이부키 아이를 날 서게 벼려놓은 냉기는 기어이 손바닥 아래 뼈마디마저 연마하겠다는 듯 파고 들어갔다. 그동안 손을 흔들어대느라 정신없이 열었던 창문이 화가 된 셈이다. 꽝꽝 얼어가던 이부키 아이가 연신 코를 훌쩍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이부키 아이는 멜론빵 호에서의 막바지 시간을 훌쩍임과 함께 했다. 자연스럽게 창문도 닫히고 말았다. 멜론빵 노래는 차 내부와 외부로 단절되었다. 반쯤은 캐럴 취급이었으니 크리스마스가 지나간 시점부터 사람들의 아쉬움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섭섭하군. 이부키 아이의 한탄마저 코맹맹이 소리로 웅웅거려서 마치 앙탈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옆에 앉은 시마 카즈미로선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독감이기라도 했다간 이 작은 차 안은 그야말로 바이오해저드가 일어나고 만다. 그렇다. 불안은 이부키 아이 걱정이 아니라 순 제 걱정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해 멀찍이 떨어졌다. 이부키 아이는 미미해진 시민들의 관심보다도 시마 카즈미의 기피에 더 서운해했다.


“실망이야. 파트너는 한 몸인데 이럴 수 있어?”

“아니, 하나는 살아야지. 이 정도가 적정 거리인 걸 지금 알았어. 저리 가.”


단 오십센치의 거리가 까마득했다. 다 핫팩 탓이다. 주머니 속 핫팩의 온기를 탐하느라 너무 바싹 붙어있었고 또 추위로 인하여 그걸 쉽게 용인한 탓이다. 올바른 거리를 되찾아야 했다. 비록 몸뚱이는 저만치 떨어졌지만 시마 카즈미가 내미는 손길은 살가웠다. 제 걱정으로. 이부키 아이에게 감기약이며 젤리며 비타민 음료를 가리지 않고 바리바리 안겨다 줬다. 증상이라곤 코를 훌쩍거리는 게 다인데도 세상의 모든 감기약들이 전부 이부키 아이 손바닥 위로 올라왔다. 주머니 속에도. 후드티의 모자 속에도. 경찰이란 족속들이 좀 그랬다. 진바 코헤이 병실 앞에 잔뜩 쌓여있던 전국의 우동들이 떠올라서 이부키 아이는 코가 시큰해졌다. 몇 번이고 반복하던 속내가 또다시 탁 털어질 정도로.


“그런데 시마. 몇 번을 말해. 나는 인플루엔자가 아니야….”


개중 코감기 약이 그나마 쓸만했다. 훌쩍임을 막아 주니까. 그런 이유로 시마 카즈미 서슬 아래 딱 하나의 약, 매 끼니마다 코감기 약을 복용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 알약을 두 개 털어넣고 물을 삼켰다. 먹고는 잠이 오는지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눈을 꿈벅거렸다. 눈썹 위로 서리가 내리고 인상이 배는 사나워졌다. 아이고 추워라. 날도 추우니 아저씨 빨리빨리 하자구. 이 험악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선 엄포를 놓으니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잡힌 사람이 멜론빵 노래에 피식피식 웃음 흘리는 일을 제외한다면. 코감기 환자와 멜론빵 노래와 범죄자가 함께 하는 굉장히 기이한 연말이었다. 해의 마지막과 시작의 경계를 건너며 시마 카즈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00:00. 새해의 턱을 밟아 흔들거렸다. 어느 옥상에서 불빛이 깜박거렸다. 해피 뉴 이어. 기껏 꺼낸 코맹맹이 인사는 사위에 들리는 사람들 소란에 묻혔다. 수갑 찬 늙은 남자는 콧방귀꼈고 남자를 포함한 셋은 경건하게 핫팩을 주물럭거렸다. 이 차 안에서 집어 던지면 무슨 사단이 날까 하는 궁리를 하며. 날짜와 날짜 사이, 해와 해의 사이 새벽을 누비는 혼미함이었다. 충동은 충동일 뿐으로 남자는 얌전하게 끌려갔다. 경계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아가면서. 새벽은 길었고 아침은 느긋하게 밝았다. 새해를 지나왔지만 기수의 설은 좀 더 늦게 찾아왔다. 찌푸드드한 몸을 풀면서 설을 쉬기 위해 시바우라서를 빠져나갔다. 멜론빵호의 키는 제자리에 반납되었다. 아마 한동안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키를 뽑은 이부키 아이는 괜히 문손잡이를 당겼다 놓았다. 코감기를 빙자해서 한 번 더 훌쩍거렸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또 만나자. 시트에 깔았던 방석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분명히 쓸 일이 있을 거란 낙관에서였다. 이부키 아이의 사비였으니 시마 카즈미가 반대할 권리도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대도 쿠션이 필요 없을 봄이 좋겠다. 


퇴근하면서 이부키 아이의 등짝에 대고 거듭 다짐을 했다. 철부지 애에게 하나하나 박아넣듯이.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 몸이 안 좋다 싶으면 병원에 가고. 걱정을 한가득 쏟아부으면서도 시마 카즈미는 절대 집에 문병 가겠다던가 힘들면 부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선을 긋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부키 아이는 그걸 좋아했다. 제 앞에 그어지는 선 보다도 신경 써서 노력해 선을 그어야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절박함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발끝으로 선을 건들 듯 말 듯 춤을 춘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 그럼. 하지만 시마쨩. ‘새해 복 많이 받아’가 먼저 아냐? 시마 카즈미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허허 웃다가 마지못해 말했다.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 새벽을 건넌 목소리라 잠겨 있었다. 

잠긴 목소리가 되살아 난 건 시마 카즈미 집 앞에서다. 우편함에 연하장이 와 있었다. 부지런한 연하장 시스템. 아직 풍습은 살아 있고 사람들은 성실하게 연하장에 한 자 한 자 적어 안부를 전한다. 그 속에 불과 30분 전 새해 복 많이 받아 인사하고 헤어진 이부키 아이의 연하장도 들어 있었다. 여전히 기가 막히게 깜찍한 연하장 그림이었다. 하하. 허탈하게 웃었다. 커다란 글씨였고 열이 전혀 맞지 않았지만 꾹꾹 눌러 썼다. 분주소에서의 이부키 아이 심경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시마 정말 웃겨. 그리고 상투적인 인사. 올해도 잘 부탁드린다는 정중한 어휘. 올해도. 올해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