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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MIU404 / 이부시마 / 30030 2025-09-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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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 아이가 수중에 들어온 물건을 좀체 버리지 않는다는 건 비단 파트너인 시마 카즈미가 아니더라도 다들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버릇은 그가 몸을 담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 즉 분주소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청소하지 않는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다. 많이 다르다. 오히려 정리는 꽤, 퍽, 잘 하는 편이라 평소 행동거지에 반해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시마 카즈미가 굳이 꽤, 퍽, 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다). 다만 문제는 따로 있는데 말 그대로 물건을 도통 버리지 않았다. 버리질 않으니 자연소멸하지 않는 이상 증식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 겨우 그 수량을 감당하느냐 마느냐 할 정도로 많다. 이를테면 그는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휴지마저도 흔쾌히 주머니에 넣어 돌아온다. 한쪽 주머니가 불룩하다.


“기왕 주는 걸 왜 거절해?” 

“질이 저질이잖아. 이게 종이인지 휴지인지.”

“길거리 휴지를 무시하지 마. 뭘 모르는군, 시마. 분명 인생에 큰 곤경이 없었던 거야. 언젠가 이것조차 없어서 간절해질 때가 올 거다.” 

“그런 게 곤경이라면 평생 알고 싶지도 않아.”


대개 이런 식이다. 사소한 사연이 쌓이고 쌓인 물건도 한 살림이다. 마냥 모아놓기만 하는 편은 아니라 개중 소모품을 또 알뜰히도 써먹어보지만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하물며 사용하지도 못하는 기념품이란 더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이부키 아이는 호더로 넘어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선상에 멈춰있다. 


이쯤 되면 도리어 양 보다도 그 수납에 놀랄 수밖에 없다. 왜, 이부키 아이가 정리를 꽤, 퍽 잘하는 편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부키 아이의 공간이 분주소에서 강제 철거당하지 않는 것이다. 수납 하나만큼은 없던 공간을 창조하는 수준이다. 감탄마저 나온다. 어떻게 다 들어갔지? 도라에몽이야? 그에 비견할 만한 게 잘만 뒤지면 책상과, 서랍, 트렁크에서 뭐든 나온다. 잘 뒤져야 하지만.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또 저 위로부터 아래까지를 전부 훑어야 하지만. 당장 달라는 펜만 빼고 온갖 것이 다 나오긴 하지만. 


“에에? 너무하잖아?” 


이부키 아이가 입을 뾰족하게 세우고 모서리를 벼려가며 종이학을 접는다. 마치 입으로 접는 듯하다. 날개를 곱게 편 학 한 마리를 책상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는다. 잘은 꽃무늬의 향내 나는 학종이다. 어디서 났는가 하니 정당한 교환으로 얻었다. 멜론빵 하나와 맞교환이었다. 그 멜론빵은 어디서 났냐고? 말하면 지푸라기 장자만큼이나 얘기가 길어진다. 관두자.


“왜 접는 거야?” 

“귀여운걸.” 

“그러니까 자꾸 늘어나는 거야.” 


이부키 아이가 눈을 덩그러니 뜬다. 마치 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것처럼. 그는 이 축적을 전혀 문제로서 인지하지 않고 있다. 제일 큰 문제다.


물건들은 책상이면 책상, 차면 차, 캐비닛이면 캐비닛, 집이면 집, 그의 구역 안에서 나름의 법칙과 질서를 가지고 정렬되고 겹쳐지고 나열되었다가 곧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다. 벽돌처럼 척척 쌓인 하나의 구조물이 된다. 서로 관계없을 만한 물건들이 칡덩굴처럼 얼기설기 얽힌다. 그의 감성을 지탱하는 건 순 무게중심의 과학이다. 구조물은 촘촘하게 잘 짜인 그물 같다. 어망을 빼닮은 성은 한 번 수중에 들어온 이상 무엇이든 허투로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보인다. 이부키 아이의 공간임을 말해주는 분명한 흔적이고 꼴라주며 작은 박물관이도 하다. 


이부키 아이의 성 혹은 박물관, 자세히 보면 구조물에서 벽돌을 한 장만 빼내어 보자. 그건 얇은 서적 모양을 하고 있다. 이부키 아이의 집에는 아직 카탈로그들이 남아 있다. 예의 부동산 카탈로그다. 목적은 뚜렷했다. 각자 제 삶 살아온 세 사람이 어쩌다 마주쳐 살기 좋을 집, 남향이면 더 좋고. 기왕이면 욕실이 크면 좋겠는데, 또 기왕이면… 문턱이 없어야 하겠지. 그럼, 그럼. 또 거기에. 희망사항이 한없이 덕지덕지 덧붙여진 최고의 집을 찾는 여정이 거기 있었다. 희망의 집대성으로 향하는 지도였던 셈이다. 그 끝이 바삭 부스러지다 못해 어그러졌고 어그러진 그대로 굳어버렸기 때문에 버릴 법도 했지만 망가진 폐허를 기리기라도 하듯 카탈로그는 여전히 이부키 아이 집 선반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정작 이부키 아이는 건드리지도 않는 눈치다. 손때조차 닿지 않은 채 책등이 마냥 희게 바래가고 있었다. 가끔 시마 카즈미가 꺼내 팔랑팔랑 넘겨보며 사이사이 바람 쐬어주는 게 다다.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의 집에 가며는 카탈로그를 종종 보고는 한다. 이 행위에 큰 의미는 없다. 일단 글이 있고, 저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될 숫자가 있고, 대체로 네모나지만 주의를 환기시킬만한 큰 그림이 있어 심심풀이로 술술 펼쳐보기에는 아주 좋았을 뿐이다. 이부키 아이에게는 이 집에서 하도 볼 게 없어서라고 둘러댔다. 심심풀이는 완전히 버릇으로 자리잡았다. 시마 카즈미가 처음으로 이부키 아이의 집에 갔을 적, 제일 먼저 건드렸던 것이 그 카탈로그였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얇은 종이는 날렵하다. 시마 카즈미는 서로 달라붙는 페이지를 비벼 펼친다. 마찰열이 인다. 때마다 감각은 늘 손끝이 아닌 혀끝에 고인다. 쌉싸름하게. 그래서 그는 오래고 침을 삼킬 수 없다. 덩어리를 힘겹게 목구멍 너머로 쑤셔넣고 나서야 다음 장을 본다. 다음부터는 쉽다. 휘리릭 넘긴다. 페이지마다 가지각색의 평면도다. 집 구조는 모두 같은 듯 다르다. 모든 집마다 비슷하겠지만 조금씩은 다른 생활이 있겠다. 그리고 이부키 아이가 찰나나마 꾸었던, 지나간 꿈 또한 가득 고여 있다. 그건 굉장히 멋지고 괜찮은 꿈이었을 것이다. 저가 좋아하고 아끼고, 제일 행복해졌으면 하는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산다는 꿈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마 카즈미는 책자 사이사이 도사린 꿈의 흔적을 보는 것이 퍽 즐거웠다. 그 사양이 구체적일 수록 그랬다. 세상에 평면도만큼 구체적인 게 또 있을까. 세모꼴로 접어놓은 귀퉁이를 손톱을 세워 깊게 가른다. 귀퉁이를 접은 건 이부키 아이 식의 책갈피다. 갈해 놓은 페이지엔 거칠게 갈긴 메모가 존재한다. 대개 집 구조에 대한 짤막한 감상이 있고, 감상을 압축하거나 상징하는 단어, 숫자가 있다. 더러는 물음표가 가득하다. 이부키 아이가 많이도 재보고 많이도 고민했음이다. 그답지 않게 신중하기도 했고. 유력한 후보군인지 별표 모양을 여러 개 그려놨는데 크기도 숫자도 다 제각각이다. 메모는 함축적이라 보다 보면 꽤 재미있었다. 흡사 순간의 영감을 갈긴 단어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부키 아이가 차마 버리지 못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다시는 펼쳐보지 못하는 이유 또한. 아마 그 이유때문에서라도 앞으로도 이부키 아이는 버리지 못하고 펼쳐보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영원에 가깝게. 방치된 폐허를 시마 카즈미 홀로 거닌다. 문을 두드리고 현관에 신발을 벗어둔다. 뒷짐을 지고 현관을 딛고 텅 빈 거실을 훑는다. 발걸음이 가볍다.


그 짧고도 긴 시간, 시마 카즈미가 카탈로그를 볼 동안 홀로 버려진 집주인 이부키 아이가 무얼 하고 있었느냐 하면. 매번 질리지도 않고 카탈로그를 보는 시마 카즈미를 매번 신기하게 바라봤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엎어져, 책 구경에 사람 구경이 꼬리를 물었다. 이부키 아이 과자 씹는 소리 따위를 빼면 순 정적이었다. 턱이 비뚜름하게 삐그덕 거렸다. 일부러 소리내어 씹어 정적을 깼다. 덕분에 시마 카즈미의 신경이 잔뜩 곤두섰지만 시마 카즈미는 겨우 참아내고선 글씨를 읽고 숫자를 비교하고 평면도의 너비를 확인한다. 산만함을 견디지 못해 시마 카즈미가 책을 덮거나 정적을 견디지 못해 이부키 아이가 바보 같은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다. 좌삼삼 우삼삼. 말이 떼굴떼굴 구르다 못해 질질 늘어졌다. 시이이이이마. 심심하다고. 왜 맨날 보고 있는 거야? 부동산이 재밌어? 그럼 가져가서 보던가! 아니야. 압수야, 압수! 버리겠다는 말만 빼고 다한다. 다들 이부키 아이더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인이라 하지만, 이부키 아이가 생각하기엔 시마 카즈미 또한 만만치 않은 기인이다. 특히 속을 모르겠다는 점에서.




머릿속을 모를 기인 둘이 한 공간에 모여 있으니 이 일 또한 예측불허의 연장선이다. 어느 날, 갑자기, 별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시마 카즈미가 툭 던진 혼잣말로 인해 이 루틴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무 갈피도 흔적도 없는 매끈한 페이지를 더듬는 단순한 감상이었다. 


“이게 더 나은데?”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자고로 비교급이란 사람의 호승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특히 이부키 아이라면 더하다. 굴러다니던 이부키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정말로 오랜만에 카탈로그를 들여다봤다. 코 밑을 어른거리는 곱슬머리 가마는 모른 척 했다.


“어디어디.”

“여기 이 집이. 훨씬 낫잖아. 조건도, 구조도. 너 이걸 제대로 안 봤군.”

“에엥. 어딜 봐서? 그럴 리가.”


이부키 아이는 반사적으로 부정부터 하고 봤지만 가만 보니 과연 그럴듯하긴 했다. 시마 카즈미의 말대로다. 베스트까진 아니었지만 충분히 후보군에 올릴 만했다. 어쩌다 지나쳤을까. 위치가 문제였나? 인원수를 지나치게 고집했나? 방이 좁은가? 가격이 높은가? 시야가 너무 좁았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의 들떴던 기분 말고는 모든 것이 희미하다. 손가락을 세워 정수리를 살살 긁는다. 깜깜. 오리무중.


“조금 좁지 않은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네가 전력질주라도 할 게 아닌 이상.”

“채광이 별로였을걸.”

“남향이라고 쓰여 있어.”


손가락이 남향, 두 글자를 두들긴다. 고작 7포인트다. 이걸 어떻게 봐?


“왜, 글자가 다가 아니라고. 앞에 건물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럼 가려져서 말야.”

“지도 볼까?”

“비쌌나? 근처에 마트가 없었나?”


시마 카즈미의 지적을 영 납득하기 어려운 이부키 아이가 흠을 잡는다. 하나같이 사사롭다. 전기 배선이 이상했을 거라는 둥, 싱크대 높이가 안 맞았을 거라는 둥. 별 사사로운 트집에도 시마 카즈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부키 아이의 트집 대부분을 카탈로그에도 안 나오는 정보값을 네가 어떻게 알겠어, 로 받아쳤다. 맞는 말이다. 하도 막힘없이 방어해서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가 부동산 업자라도 되는 줄 알았다. 역시 혓바닥에 뭘 발랐나 보다. 참기름, 올리브유, 식용유. 뭘 발랐든 업종에 상관없이 쌩쌩 돌아가는 혓바닥이 아닌가. 참 얄밉기도 하다.


“아! ‘삐빗!’이 오지 않았었나 보지!”


결국 이부키 아이는 트집 잡기를 멈추고 익숙한 감의 영역에 온몸을 던진다. 사람과의 만남이 그렇듯 집과의 만남도 퍼뜩이는 영감에 의지하는 법이다. 제 몸뚱이마저 힘껏 날렸다. 매트리스 위로. 풀썩 이불이 부풀었다가 꺼져든다. 누운 채 사지를 탈탈 흔들었다. 지루하답시고 굴러다니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시마 카즈미도 카탈로그를 덮는다. 제자리에 고이 꽂아놓는다. 어차피 또 보게 될 것이었으므로.


“네가 고른 첫 번째 집보다는 동선이 훨씬 좋았어.”


나도 그런 집이 좋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그의 집에 충분히 만족하고 이사욕심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굳이 누군가와 살아야만 한다면, 카탈로그 중에 골라야 한다면 그 집이 좋겠다. 시마 카즈미는 전제조건을 덕지덕지 달아 피력한다. 그으래? 이부키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매트리스를 넘어선 발끝도 따라 천천히 까닥거렸다. 맨발이었다. 


“아, 그랬지. 지금 시마쨩이 찍은 그거 완전히 시마쨩 느낌이었어.”

“어디가?”

“그…. 지잉-, 하고 오는 게 완전히 시마쨩이야. 어, 어.”


시마 카즈미의 현재 집과도 유사하단다. 대체 어디가 비슷한가 묻는다면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인상이? 어어. 인상이. 구체적인 단어로 좁혀 보려 해도 도무지 이부키 언어의 윤곽을 그리기가 힘들었다. 그의 언어는 늘 형태가 불분명하다. 시마 카즈미는 예시를 들고 불투명한 안개를 걷어낸다. 두 번째 집도 동선은 별로였지. 대체로 네 취향은 알겠어. 그래! 그건 바로 이부키 아이 느낌이라는 거야! 


“그리고 네 짐을 봐서라도 집에 벽장은 꼭 있어야 해. 되도록 큰 걸로.”


시마 카즈미는 빼곡한 사방을 둘러본다. 손가락이 한 바퀴를 뺑 그린다. 많은 안경들을 스치고 널린 옷소매 하나하나를 거치고 잡동사니를 건너 싱크대를 지나 매트리스를 올라탄다. 누워 있는 이부키 아이 포함이다. 혀를 끌끌 차려는 걸 말아 올린다.


“에에-. 지금도 우리 집엔 벽장 없는 걸.”

“이부키 네가 선택한 집도 아니잖아.”

“그래도 괜찮아. 공간은 만드는 자의 것! 내가 다아- 맞춰갈 수 있지.”


이부키 아이는 자랑스레 어깨를 으쓱거린다. 것도 두 번이나 너울을 탄다. 흡사 율동같다.


“벽장이 있어서 시마쨩이 고른 집이 낫다는 건 아니지?”

“그래서만은 아니고.”

“그렇지. 그 점에서 시마쨩-, 느낌이라는 거야. 아까 집이.”


삘링, 하면 E.T.고 E.T.하면 손가락이라 집안을 훑던 시마 카즈미의 손가락과 이부키 아이의 손가락 끝이 맞닿는다. 진정한 삘이지. 진정한 크리스마스고. 통하긴 통했나보다. 다정한 온기에 시마 카즈미가 소스라친다.


“시마쨩은 내가 별표 백 개 친 집, 싫은가 봐?”

“별표 백 개까진 아니었어. 네 점수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아. 제일 많이 친 집도 다섯 개야.”


카탈로그에 있어선 시마 카즈미가 훨씬 정확하다. 방치하고 내버려 둔 이부키 아이와는 달리 시마 카즈미는 줄곧 카탈로그를 정독해왔으니. 이부키 아이의 메모까지도.


“집도 아니고. 같이 사는 사람이 이렇다면 난 골치 아플거야.”

“나는 좋다구.”

“전 됐습니다. 이거야 다 네 물건이니까 그렇겠지.”


이부키 아이의 큰 도량은 시마 카즈미에 의해 칼같이 막혔다. 됐습니다 라니,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된다. 섭섭하다. 섭섭해. 


“됐습니다, 싫다고 했지! 시마쨩 물건이어도 좋았을걸. 음, 음. 시마쨩 물건 정도면 믿음직하지. 우린 같은 멜론빵호도 끼고 살았잖아? 음, 그래. 평화로웠지.”

“지금도 충분히 평화로워. 그리고 난 너처럼 안사니까.”

“그럼 네 자전거는 뭐였는데?”

“짐이라니. 발…, 이지….”


얼버무린다. 시마 카즈미는 예로부터 내로남불에 강했다. 부조리와 치사빵꾸의 극치인 내로남불만이 이부키 아이에게 엿을 먹일 수 있다는 걸 습득한 후로는 더욱 강해졌다. 확률은 늘 반반이지만. 


“그래. 일단 자전거 창고가 있어야겠다.”


오늘은 맞는 쪽의 반이 아니다. 이부키 아이의 정신이 딴 데 팔렸다. 그는 그의 꿈의 집 조건에 냅다 자전거 창고를 추가했다. 꽤 그럴듯했다. 비를 피할 천장도 있어야겠지.


“자동자 주자창도 아니고 자전거로?”

“난 옷방 있는 쪽이 좋아.”

“그건 이견이 없다.”


드물게 시마 카즈미가 동의했다. 옷방이야 있다면 이부키 아이의 잡다한 짐의 태반을 처박아 둘 수 있다. 옷, 악세서리, 안경, 운동화. 현관이 작을 테니 옷방에 운동화 전용 선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신발을 모조리 쑤셔넣고 나니 이부키 아이가 다급해진다. 그럼 내 곰돌이는 어디 두는데? 곰돌이? 이 집에서 곰돌이의 안위는 또 처음 들어봤다. 얼마 전에 인형뽑기 한 거란다. 그딴 털복숭이 네 방에나 두라고. 양지 바른 곳에. 시마쨩! 곰돌이를 묻을 생각이야? 곰돌이의 안위를 챙기고 나니 말이다. 곰돌이 말고도 끝이 없다. 나머지는 모두 상자에 넣고 벽장에 켜켜이 쌓아버린다. 이래서 벽장이 필요하다고 한 거다. 이부키 아이는 다시 정수리를 긁는다. 


“엥, 벽장은 없는데….” 

“무슨 소리야. 벽장이 있어. 있다니까?”

“거 참. 시마쨩. 포기를 모르네….”


벽장으로 한참 실랑이 하려니 지쳐서 그나마 입김이 덜할 부엌부터 처리하기로 둘은 합의한다. 이부키의 부엌살림 견적은 쉽게 난다. 씽크대 열 것도 없다. 훑을 필요도 없고. 그저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다다. 간단한 조리기구, 우동 삶기 좋을 냄비, 그릇 몇 가지. 컵은 유독 많다. 1인 가구의 부엌살림살이란 단출하다. 절로 이부키 아이의 그림이 그려진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를 촐싹이며 불 앞에서 젓가락을 휘저을 테다. 훤히 드러난 발목을 교차해가면서. 시마 카즈미의 형편 또한 다르지 않다. 가끔 빈 캔이 날아갈 뿐이다. 두 사람의 부엌살림을 합쳐 봤자 여느 가정집보다도 못할 것이다. 컵만 배로 불어날 테고. 그렇다면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해야지. 중요한 건 부엌세간보다도 설거지 순서 정도다. 설거지 후에는 자연스럽게 청소에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고. 상상 속의 이부키 아이가 냉큼 청소기를 잡는다. 참 듬직하기 짝이 없다. 시마 카즈미 왈, 꽤, 의외로, 퍽. 후루룩 밀면서 지나간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청소기 소음에 못지않다. 시마 카즈미는 그 꼴을 보느니 방 안으로 도망가는 게 낫다 싶다. 맨발이 터벅터벅. 이부키 아이가 그 꼴을 보고 청소기에 기대 깔깔거리며 웃는다.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의 맨발만 보면 웃곤 한다. 같이 살아도 그 웃음 포인트가 변하는 일은 영영 없을 테다. 곰돌이는 결국 이부키 아이 방을 벗어나 리빙 소파에 자리 잡았다. 러그는 회색이다. 먼지가 좀 내려앉아도 크게 티 나지 않는다. 새벽 밤을 지새고 돌아와 드러누워도 크게 신경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대신 테이블은 없다. 이부키 아이와 시마 카즈미가 둘 다 드러누우려면 걸리적거린다. 둘 다 바로 방에 들어가질 못하고 리빙에 누워 꾸물거린다. 리빙 방향은 7포인트의 남향. 그리고 햇빛이 가장 넓게 들어오기 좋을 시간. 이부키 아이가 옆을 툭툭 걷어찬다. 눈부셔. 커튼 쳐줘. 옆의 시마 카즈미가 냉큼 일어나길래 땡큐, 를 외치려고 했더니 커튼 대신 담요가 시야를 가린다. 너무하네. 담요가 훨씬 가깝거든. 투덜거리지만 이미 수면에 가라앉아 있다. 두 시간만 자자. 점심은? 글쎄…. 잠결이라 기억도 못할 점심메뉴에 퍽 진지하다. 그러다 풀썩 고요해진다. 다리는 차던 그대로 시마 카즈미 발목 위에 올라타 있다.


호접지몽이로다. 나비가 꿈을 깰 때가 왔다. 상상 속에서 단잠에 들어서야 퍼뜩 현실의 정신이 뺨을 때린다. 이부키 아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술부터 찾는다. 맥주를 쭉 들이킨다. 탄산이 속을 쭉 긁고 지나간다. 닭살 돋게 끝내줬던 생활감 또한 쭉 내려간다. 벽장 하나로 지금 어디까지 간 거람.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하다. 그들은 그들이 함께 살지도, 함께 살 계획조차 없는 어지러운 현실에 발을 딛고선 비틀거린다. 기포가 긁고 지나간 자리는 곧 허탈함이 채운다. 허탈함이란 본디 텅텅 비어있어서 속을 꽉 채우고도 왕왕 메아리만 질뿐이다. 더부룩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자꾸만 맥주를 마시고 만다. 그 와중에 이부키 아이는 건배를 잊지 않는다. 왜냐. 그쪽이 더 흥겨우니까. 이부키 아이다운 단순함이다.


“진짜 재밌지. 그치.”

“네 상상의 나래가 무서울 정도다.”

“꿈은 원래 활짝 펼치고 보는 거거든,”

“됐습니다.”

“오늘 두 번이나 했어?!”


시마 카즈미는 은근슬쩍 이부키 아이의 탓으로 몰고 본다. 특기인 내로남불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분명 벽장 얘기는 시마 카즈미가 먼저 시작했었다. 이부키 아이가 시마 카즈미를 노려본다. 지이이잉. 원망을 가득 담아서 노려본다. 지이이잉. 하지만 뻔뻔한 시마 카즈미는 눈 하나 깜짝 하는 일이 없다. 지이이이잉.

이후로는 급격하게 시시껄렁해진다. 원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하려고 왔던 게 맞다. 결국 집 이야기도 시시껄렁한 잡담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다. 7포인트의 남향, 큰 벽장과 지붕 달린 자전거차고가 있는 집은 뇌리에서 잊혀진다. 빈 깡통이 쌓이는 속도에 비례해서다. 원래 술은 망각을 부른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부키 아이의 집에는 여전히 카탈로그가 있고 시마 카즈미가 틈틈이 열어보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또 모르지. 제일 자주 펼쳐보는 시마 카즈미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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