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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봉신 / 천태 /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2025-09-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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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 아마 이 동네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가느다란 숨을 쉬며, 느긋하게 다리를 뻗고, 그를 중심으로 지반이 다져지고 야트막한 집이 하나 둘 들어서다가 나무뿌리처럼 도로가 뻗어 이윽고 하나의 동네를 이루는 것을 지켜봤으리라.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황비호가 식솔을 이끌고 골목 안쪽 큰 집을 사 짐을 별러놓기까지. 황천화가 세상을 인지했을 적부터 그 자리 그대로 존재했다는 영속성은 황천화로 하여금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

집으로부터 대문을 박차고 나가 검은 쇠장식이 달린 붉은색 벽돌 담벼락을 끼고 오십 미터, 모서리 전봇대에서 꺾어 나지막한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내달려 또 오십 미터,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더 깊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회색 시멘트 벽돌담이 이어져 있다. 그 가게는 시멘트 벽돌담을 뚫고선 갑자기 튀어나온다. 시멘트 담에서 이어 지은 듯 밋밋한 사각 콘크리트 건물이다. 마당조차 없다. 옛날엔 흰색 페인트를 덧칠했던 것도 같지만 대부분이 나무껍질처럼 벗겨져 나간 데다 남은 부분마저 먼지를 뒤집어쓰고 콘크리트와 같은 회색으로 바래 가는 중이다. 입구에는 불투명한 유리가 달린 갈색 철문이 미닫이로 열리게끔 달려있었다. 밤을 제외하고는 항상 열려 있어서 여닫을 때 얼마나 낡은 쇳소리가 날지는 잘 모른다. 문 위로는 작은 간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간판이 달렸던 자국만이 남아있다. 5년 전만 해도 슈퍼였다. 말이 슈퍼지 과자나 사탕, 아이스크림, 간단한 부식 정도만 구비하고 파는 구멍가게라고 할 만하다. 골목 유일의 상점이라 장사 잘 하다가 5년 전 주인 부부가 돌연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새 가게가 들어설 것도 없이 공간은 텅 비었고 애들은 졸지에 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 큰 길까지 나가게 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구멍가게는 사라졌지만 다른 가게는 남았다. 남아 있는 곳은 슈퍼와 같은 건물을 같은 층을 공유하고 있는 가게로서 슈퍼의 안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시멘트 벽돌담 쪽으로 큰 미서기창이 나 있는 작은 쪽방이었다. 보통 가게에서 주인이 살림살이 하는 방이 그렇게 생겼다. 바로 그곳이 담배 가게였고 그 사람은 거기에 있었다. 3평이 될까 말까한 공간, 2면을 두른 선반은 각종 담배로 빼곡하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옛날 담배까지 있어 가히 담배 박물관이라고 할 만하다. 담벼락 쪽 창문 옆에 담배라는 정사각형 간판이 달려서 겨우 담배 가게라는 걸 안다. 창을 두드리면, 그 사람이 창문을 열고 돈을 받은 뒤, 선반에서 담배를 꺼내 내어주고는 한다. 그런 가게다. 오며가며 스치듯 담배하나 사갈 수 있는 구조, 구멍가게에 딸린 작은 담배 가게. 이제는 구멍가게마저 사라진, 그냥 담배 가게. 옛날엔 버스 토큰과 회수권도 같이 판적도 있었다는데 그 시절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어릴 땐 담배 심부름으로 종종 담배 가게에 갔다. 정작 아버진 담배 안태우는데 어쩌다 심부름을 했을까. 황천화로선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담배사오라 소리 하나에 신나게 뛰어나갔다. 골목을 세 번 꺾었다. 어린 나이엔 길이 멀어 흘릴 새라 주먹으로 지폐를 꼭 쥐었다. 그 당시엔 코흘리개 애들에게도 담배를 팔아 줬더랬다. 참 느슨한 시절이었다. 황천화가 창문 아래에서 깨금발 선 채 소리치면 그 사람이 창문을 열고 담배를 내어줬었다. 열린 창문 안쪽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황천화는 손을 뻗은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재촉하듯 총총 뛰었다. 꼭 쥐느라 구깃구깃해진 지폐를 낚아채고 빈 손 위로 담뱃갑을 떨어뜨렸다. 담뱃갑 위의 동전 세 개는 거스름돈이다. 황천화 손에 닿도록 하려면 주인은 창문에 허리를 걸치고 바깥쪽으로 상체를 쭉 내민 다음, 머리를 숙여야했다. 무게중심이 기우뚱 했다. 매번 힘들어 보였지만 그 사람은 궂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저를 위한 그 수고가 좋아서 슈퍼 입구 쪽으로 돌아 들어가도 될 것을 황천화는 굳이 창가에서 뜀을 뛰고 손을 뻗었다. 황천화가 뭐라 말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담배는 틀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받고도 잘했다 했으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달콤한 기억이다. 이만 묻어버려야겠다. 한참 입안에 넣고 한참 굴리던 기억들을 퉤 뱉어버린다. 저에게야 달콤하고 훈훈한 기억이지만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다고 생각하면 조금 창피해지고 만다. 굳이 어릴 적 모습을 덧쓰고 상기시켜서 귀여움 받고 싶지는 않다. 황천화 나이 스물을 훌쩍 넘겼으니 한창 위신이 중요할 나이 아닌가. 억지로 위신을 세우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오히려 더 귀여워 보일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허세로 눈앞이 어두운 나이라서 그렇다. 다소 허세를 부릴 만큼 몸은 다 컸다. 손이 창문에 닿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창문턱에 팔꿈치를 대고선 그 안쪽을 들여다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새어나오는 텔레비전 소리로만 듣던 미지의 공간이 사실은 이랬었구나, 감탄한 것 또한 꽤 예전 일이다. 

그 즈음에는 심부름이 아닌 자신을 위한 담배를 샀다. 부러 독하다고 유명한 외국 담배를 골랐다. 조금이나마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서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같잖은 허세가 도리어 마이너스가 된다는 생각에까지는 미처 닿지 못했다. 담배를 말했을 때 다소 놀라워하던 얼굴은 기억에 생생하다. 담배 이름을 들은 주인은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허공에 굴리다 눈썹을 성대하게 찌푸린 다음에 허어…, 벌써? 하고 한숨인지 탄식인지 감탄인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한숨과 탄식과 감탄 중 어디에 걸쳐 있는지 황천화로선 알 수 없었다. 그저 감탄에 좀 더 가까이 위치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인생 첫 담배는 싸구려 라이터와 함께였다. 황천화가 팔꿈치를 넉넉하게 기댈 정도로 컸기에 허공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창턱에 가지런히 올라왔다. 라이터는 담배 필 나이가 된 축하 선물이라고 했다. 표정만 봐서는 전혀 축하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황천화는 일단 고맙게 받았다. 모양 자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사은품 라이터였는데 전사된 문구가 이상했다. 굵고 투박한 글씨체의 화룡표 세 글자가 전부였다. 쌍팔년도에나 썼을 법한, 기괴하게 멋 부린 서체였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업종도 없이 단 세 글자. 그로부터는 아무것도 추측해 낼 수 없었다. 다만 주인장 취미가 이상한 것만은 확실했다. 

창문 옆 벽에 기대 인생 첫 담배를 피웠다. 봄이 되기 직전의 겨울이라 기댄 등은 선득하니 차가웠고 연기는 한겨울 입김처럼 허옇게 퍼져나갔다.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아주 독하고, 매웠다. 목구멍 안쪽과 폐를 왈칵 뒤집어 놓았다. 눈물이 줄줄 날 뻔했다. 연기를 못 이겨 기침이라도 하면 창문 안쪽에서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릴까봐 애써 참았다.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었지만 각별하다 할 만 했다. 멋 부리려고 시작한 흡연은 결국 뗄 수 없을 습관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그때 받았던 라이터는 아직 잘 쓰고 있다. 기름이 닳을 기색이 전혀 안 보인다. 이거 희한하다 투덜거렸더니 주인이 콧소리 내며 웃기만 했다. 어디 바닥낼 수 있으면 바닥내 보던가. 자신 있는 듯한 말투였다. 그래서 황천화는 아직까지도 라이터를 하나만 쓴다.

라이터는 하나를 쓴다. 하나를 쓰는 동안 담배는 다섯 번 정도 바꿔왔다. 얻어 피운 담배나 호기심로 피워본 담배는 셈에서 빼기로 한다. 멘솔이다 뭐다 이런 저런 담배 갈아타다가 결국엔 국민담배라고 불릴만한 싸고 무난한 걸 피우게 됐다. 국민담배는 국민담배라고 할 만한 이유가 있다. 막상 한 번 입에 물어보니 아주 맘에 차지도 않지만 썩 바꿀 이유도 못 찾아서 장기 기록 갱신 중이다. 이제는 황천화 얼굴만 봐도 창턱엔 예의 담뱃갑부터 올라온다. 그래서 다섯 번째 이래 황천화는 담배를 못 바꿨다. 기분전환 삼아 한 번 더 바꿀까도 싶었는데 말하기도 전에 창턱에 담배부터 튀어나와서 타이밍을 놓쳤다. 담배 바꿀 타이밍도 영영 놓쳤고. 지금 담배가 싫지는 않았으니 뭐 됐다, 황천화는 빨리 체념했다. 




그러니까 황천화의 기억을 반추해 보자면, 담배 가게 주인은 그의 유년기 적부터 골목길 한복판의 담배 가게를 지켜왔던 셈이다. 그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구멍가게의 노부부처럼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짐을 싸서 사라지더라도 그 사람만은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터다. 황천화의 상상 속 동네의 기원이 그러하듯이. 황천화는 이 담배 가게로 영속성을 체감하고, 믿는다. 기묘한 기분이다. 유년기에도 청소년기에도 늘 같은 자리를 함께 하는 늘 같은 얼굴. 심드렁하게 창틀에 턱을 괴고 오가는 동네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 세상에 대한 관심을 얇게 포 떠 거두어 가는 동시에 꿰뚫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영속성이 그러하듯 십여 년의 세월동안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다. 청년이라기엔 너무 노활하고 중년이라기엔 너무 앳되다. 표현할 수 없는 시간대로 고정되어 있는 느낌인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으므로. 이쯤 되면 관성이다.


반쯤은 동네 장승같은 존재이지만 그런 그도 입소문에서는 아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의 나이도, 시간을 겉도는 외형에 대해서도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지만 그걸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솔찬히 궁금해 했다. 순수한 호기심이라기 보단 스몰토크를 위해 억지로 관심을 만들어냈다 할 수 있었다. 입방아에 올리기 딱 적당한 미스터리라. 반상회 때, 주차문제로 시끄러울 때, 장을 보다 마주쳤을 때, 자녀 유치원 하원버스를 기다리며. 이웃 간에 정이 박해 어색한 적막 속 꺼낼 수 있는 공통화제로 그만한 것이 또 없었다. 당사자가 나서서 해명을 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입소문에 박차를 가했다. 모르지만 아마 그가 이 동네에 머문 시간만큼은 소문이 쌓이지 않았을까. 대부분 그냥 담배 가게, 라고만 불렀다. 그들도 딱히 부를만한 호칭을 찾지 못했음이다. 슈퍼 하던 부부의 자식이라지 않았나.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버리고 갔다지 않아. 저기 명문대 법대를 나왔다던데.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그러니까 버리고 갔지. 아닌데. 의대 나왔는데 실수로 사람이 죽었다면서. 그래서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더라. 뭐가 이상해. 싹싹하기만 하구만. 이런 식이었다. 소문은 돌고 돌아 황천화의 귀까지 들어왔다. 황천상 학원 버스 기다리는 길목에서였다. 듣자마자 황천화는 코웃음을 쳤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쇼, 그 양반이? 황천화는 그를 담배 가게 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호칭이 자유분방했다. 그 사람, 주인장, 형씨, 그 양반, 이보쇼, 아저씨, 기타 등등.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불렀다. 모두 그 사람과 썩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아귀가 어긋난 채 덜커덕거렸다. 그 사람도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어떻게 불러도 불린 지 미처 몰랐다는 투로 생경하게 황천화를 쳐다보곤 했으니까. 그럴 때면 가뜩이나 나이 모를 얼굴이 더 어려 보였다. 멀뚱한 얼굴은 법대와도 의대와도 거리가 멀었다. 떠올리며 큰소리쳤다. 


“그 양반이 법대를 나왔으면 나는 대통령 아들이다.” 


상투적인 허풍이지만 황천화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첫째, 실제 그의 아버지는 대통령까진 아니었어도 나랏일서 어지간한 한 자리는 해먹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황천화가 이제 담배 가게 창문 안쪽을 마음껏 넘겨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배 사러 창문 두드리고 쪽방 구경을 하는데 그 양반 낮잠 자고 일어날 때 베고 자던 베개가 글쎄 법전이더라. 그것도 마르고 닳도록 읽은 티가 나는 법전. 명문대 법대를 나왔다더라. 귓속에서 동네 사람들 입소문이 불티처럼 살아나 속살거렸다. 식은땀이 났다. 에이, 거짓말이지?

그래서 황천화는 조금은 개기지 않기로 했다. 아주 조금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색한 다짐이란 담배 가게 앞에서 하는 다짐이다. 제일 흔한 종류로 오늘만 피고 끊어야지, 가 있다. 황천화의 다짐도 같은 맥락이다. 조금은 개기지 않겠다, 라고 했지만 이 다짐 또한 담배 가게 창 앞에서였기 때문에 쥔 주먹이 무색하게 시들해졌다. 암만 법전 끼고 살아봤자 담배 가게 주인 꼬라지 보면 존경심을 갖기가 힘들다. 황천화가 창문 안을 눈에 담는 게 가능해지고 3평 안 되는 골방 속의 실태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적극적으로 한심하게 흘겨봐왔다. 담배 가게라는 간판이 붙었다지만 엄밀히 용도는 셋방이다. 몸뚱이 하나 쭉 뻗으면 이쪽에서부터 저쪽까지 한 바퀴 굴러갈 정도의 넓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담배와 텔레비전, 예의 법전과 간식바구니가 다라서 쪽방은 더욱 넉넉해진다. 이 말인즉슨 담배 가게 주인이 앉아 있는 모습 보기가 매우 희박하다는 소리다. 그는 마음껏 눕고 마음껏 굴러다닌다. 담배 가게 주인장의 하루를 열로 쪼갠다면 그중 둘은 담배 꺼내주는 데 쓰고 나머지 팔은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데 쓴다. 아주 알차게 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일 없다고 소문에는 다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손님 오거든 머리 빼꼼 내밀고 담배만 꺼내다 준다. 도로 눕는다. 머리 아래 법전을 끼고 사는 사람이지만 큰일은 못하게 생겨먹었다. 그동안 황천화는 어찌나 부지런하게 살아왔던지 중학교도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교에도 갔다. 담배 가게 앞 골목을 오간지 어언 몇 년, 쑥쑥 커서 제 담배도 척척 산다. 주인장이 아주 장하다 했다. 비꼬는 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견해하는 말투였다. 입이 헤벌어져서 웃고 있었다. 괜히 낯간지러워 황천화는 툴툴거렸다. 그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삼아 진심으로 칭찬하는 게 황천화에게 더 타격 가는 일임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황천화가 담배 가게 앞 골목을 누빈 세월만큼 주인장도 황천화를 파악해왔다 할 수 있다. 이런 관계에 대해 뭐라 정의해야 할지는 애매하다. 동네 친구라고 해야 할지, 아는 동네 형이라고 해야 할지, 단지 친절한 이웃이라 해야 할지. 


경계를 구별하기 힘들어 황천화는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다. 말단의 사소한 행동거지부터를 생각한다. 가장 사소할수록 확실해서다. 확실히 손에 잡힐 어떤 것들. 얼마나 게으르게 누워있는지, 간식으로 뭘 먹는지, 어떤 채널을 보는지, 법전에 꽂힌 책갈피의 페이지가 얼마나 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영업시간 외의 여가시간은 언제인지. 그렇게 파악한 몇 가지가 있다.

그 사람은 너구리 소굴 근원지에 사는 주제에 정작 흡연자는 아니다. 오히려 담배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하필 담배를, 그것도 담배만 팔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을까? 깊게 파고 들어가려다 멈춘다. 사소한 것부터다. 사소한 것부터. 그러지 않고서야 동네사람들 입방정과 다를 게 없다.

편식이라고 해야 할지, 입맛은 상당히 치우쳐 있으나 적어도 주전부리에 있어서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 듯하다. 황천화가 본 바론 식사의 비중보다 간식의 비중이 훨씬 컸다. 불량한 식생활의 정점이다. 혀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단맛을 특히나 좋아한다. 극단적으로 설탕에 절여버린 혓바닥이었다. 저에게까지 그 단맛이 넘어오는 것 같아 황천화는 곧바로 혀를 내밀고 눈을 찡그렸다.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얼굴과 매치해 보자면 담배보다도 막대사탕 꼬다리가 훨씬 더 어울리긴 했다. 창틀에 턱을 받치고 무료하게 사탕을 물고 막대를 위아래로 까닥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래 풍경처럼 박혀 있는 작은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바로 옆이 슈퍼였으니 간식 주워 먹기가 오죽 손쉬웠을까. 손만 뻗으면 되었으니 말이다. 구멍가게의 큰손은 동네의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었다. 작은 가게에 순 과자만 종류별로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멍가게가 문을 닫은 건 동네 애들뿐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매우 애석한 일이었단다. 그치들이 더 오래 있어줬으면 했는데. 아쉬운 듯 자주 중얼거린다. 으레 눈은 슈퍼였던 빈 공간을 향한다. 떠나버린 슈퍼 부부를 떠올리는 것이리라. 퍽 쓸쓸해 보였다. 

그 눈빛에 마음이라도 동한 건지, 슈퍼만은 못하겠지만 황천화가 종종 간식거리를 공수해주고는 했다. 소위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라고 그는 얼버무린다. 처음으로 사다 주었을 땐 주인장이 양 눈을 촉촉하게 적셔가며 대견해 죽겠다는 듯 감동하기에 소름이 돋아 그만 집어 던질 뻔 했다. 이 사람은 다 나쁜데 가끔 저를 기특해하는 게 제일 나쁘다. 그럼에도 칭찬받는 기분이 좋아서 꾸준히 사다 주는 저가 제일 병신이나 호구는 아닐까. 검은 봉지 흔드는 손이 축 늘어진다. 접힌 주름마다 물방울이 맺혔다. 황천화의 작은 배려심으로 인해 대부분은 빙과류 일색이다. 아이스크림은 슈퍼가 사라진 후 담배 가게 주인이 제일 사 먹기 힘들어진 간식이다. 하도 사다 주다 보니 편의점의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보거든 절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어서 이젠 쉬이 지나치기도 힘들어졌다. 이 모든 간식비는 황천화가 사는 담뱃값에서 차감되니 약간의 수고만 제한다면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화폐경제에서 물물교환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웃 간의 정이 있어 다 가능한 경제다.


“어이, 영감탱. 사식드쇼.”


농을 치면서 창문을 두들기면 굽실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허연 손이 허겁지겁 낚아채간다. 가게주인은 저가 아쉬우면 유달리 공손해진다. 검은 봉지에 든 건 물 맺힌 쭈쭈바 두 개가 다다. 하나는 가게 주인의 몫, 하나는 황천화의 몫. 주로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쭈쭈바를 많이 사는 편이다. 그냥 그게 좋았다. 가장 오랫동안 먹을 수 있어서지만 진심은 애써 묻어버리고 모른척한다. 

나란히 쭈쭈바를 빤다. 한명은 담배 가게 외벽에 기대, 한명은 창문 안에서 창틀에 턱을 얹고선. 소다맛이 연하다. 멀어진 소다맛만큼의 단맛이 진하게 올라온다. 입에 물고선 황천화는 자주 창문 안쪽의 기색을 흘끔거렸다. 그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깨물거나 하지 않고 천천히 오래오래 녹여먹는 타입이었다. 비단 쭈쭈바가 아니더라도 초콜릿, 사탕, 콘 아이스크림 가리지 않고 이를 대는 법이 없었다. 말끔하게 녹아 사라졌다. 황천화가 이걸 알고 있는 건 쭈쭈바 하나를 끝까지 먹을 때까지 옆에 있어봐서다. 그는 나름 이 시간을 좋아했다. 일부러 먹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쭈쭈바를 고를 정도로는 좋아했다. 담배를 사고파는 사무적 관계 외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 소박한 시간이 각별했다. 이건 오래 기억해야지. 사소함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먼지를 잘 털어내어 간직하고는 한다. 이미 한 가득이다. 그럼에도 더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또. 천연덕스럽게 쓰는 늙은이 말투와, 세상 쓸데없는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보는 뒤통수와, 그리고. 그게 있었다. 




대학도 가고 성인도 되고 담배도 피고 이젠 제법 머리가 굵어진 황천화가 물은 적이 있다. 하늘로부터 똑 떨어지는 질문이었다.


“저기, 누굴 기다리슈?”

“아니.”


대답 또한 그러했다. 황천화가 질문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똑 부러졌다.

“그래 보이나?”

조금 의아해 보이는 얼굴로 되물었다. 똑 부러진 대답이 달리 온 게 아니다. 반사적으로 대답해 놓고선 한 박자 늦게 질문을 파악했음이다. 그마저도 황천화에게 묻기보단 혼잣말이었다. 중얼거렸다. 이미 주의는 황천화를 떠나 공중을 떠돌며 그간의 행적을 더듬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니 황천화도 혼잣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냥.”


황천화로서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 담배 가게 앞으로 돌멩이 차고 지나가면서. 이 골방 누운 저 사람은 대체 누굴 저리 기다리는 걸까 하고선. 그 생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여지없이 주머니 속 손바닥 안에선 라이터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래서 라이터는 많이 낡았다. 오래 들고 다니기도 했지만. 라이터에 새카맣게 전사된 화룡표 세 글자는 많이도 벗겨졌다. 돌릴 때마다 손금에는 검정 글씨의 잔해가 묻는다. 기름은 영 줄지 않는데 글자만 사라져간다. 황천화가 손에서 굴리고 문질러댄 만큼은 벗겨졌다. 초조하거나 답답하거든 으레 그렇게 했다. 검은 찌꺼기들이 마음처럼 엄지손가락 배에 들러붙었다. 털어내도 잘 털어지지도 않는 것이.


이 모든 지표가 가리키는 것은 단 한가지다. 황천화는 조금은 담배 가게 주인장, 그 사람, 그 양반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굳이 ‘조금은’을 덧붙여 본다. 그의 오기다. 꼴에 첫사랑이라고. 

다소 복잡하고 씁쓸한 마음 가지고 담배 가게 쪽창을 넘겨다보면 안에서 주인장이 모로 누워 세상모르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의 일정한 일과 중 하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그의 빈둥거림에도 일정한 루틴이 생겨버렸다. 그래봤자 보는 프로그램은 생생 ○○○ 뭐 그런 거다. 그리고 이 시간대는 딱 황천화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골목에 접어들거든 담배 가게를 슬쩍 들여다보고 가는데 매일 저녁마다 이 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 진짜…. 황천화 마음만 산통깨진다. 저걸… 지금 첫사랑이라고…. 산통 깨지는 것을 넘어서 자괴감까지 들려고 한다. 황천화가 성질이 나서 창문 유리를 두들긴다. 어느 순간부터 이마저 담배 가게 주인장의 하루 루틴에 들어가 버렸다는 걸 모른다.


“보쇼!!! 주인장 장사 안 하나!!!” 


주인장이 머리통만 슬그머니 들고선 황천화를 올려다본다. 아주 머리통이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이 힘겨워한다. 매일같이 이러고 있으니 주인장은 황천화가 꼬박꼬박 하루 한 갑 담배를 피우는 줄 안다. 황천화가 주인장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만큼은 그도 황천화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젊은이가 벌써부터 골초가 되어서…. 말은 그리 해도 여지없이 같은 모양의 같은 담뱃갑을 건네준다. 장사란 그런 것이다. 전면의 사진과 문구만이 바뀐다. 오늘은 폐암이다. 담배를 받으면 꼭 창문 옆에 기대서 한 대 태운다. 이것도 정해진 루틴 안에 들어간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꼭 주인장이 말벗이 되어주므로. 황천화는 이 시간도 가급적이면 보존하려고 한다.


“오늘 폐암이 맛이 참 별루다.”


일부러 칭얼거리는 말투로 말해본다. 썩어빠진 어른의 기호품 담배가지고 귀염 떨어 보려니 영 면이 안 산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씩은 시도해 보는데 의외성이라든가 반전 매력이라든가 남들 연애 필승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일을 시도해 보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 보자, 보자…. 후두암도 있는데 그건 어떤가?”

“….”


별로 먹히진 않는다. 이상한 시도는 전부 허투로 돌아간다. 순 이상한 시도와 이상한 대화뿐이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화기애애한 순간이라 보존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깔린 배경음악이 생생 ○○○ 내레이션만 아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황천화에게는 이를 좌지우지할 힘이 없다. 벌써 아구찜 맛집이 어느 동네에 있는지를 다 알아버렸다. 같은 방송을 봤는지 황비호가 거기 진짜 맛있다 해서 더 슬퍼졌다. 생각보다 믿을 만한 프로그램이라는 게 참 기분을 찜찜하게 했다. 




이래봬도 황천화는 감이 꽤 좋은 편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찾아오는 감만큼은 그를 배신한 적이 없다. 그도 그걸 모르진 않아서 노련하게 이용하곤 하지만 그는 그의 감 하나를 오래도록 외면해왔다. 그가 담배 가게 창문에 대고선 시답잖게 물은 것보다도 더 오래전이다. 누굴 기다리느냐 물었을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허공을 맴도는 말은 감에 확신을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감은 그를 배신하지 않아도 그는 쉬이 감을 배신한다. 그러니까, 담배 가게 주인이 기다릴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자신인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달리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의 풋내 나는 첫사랑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레일을 타고 삐꺽거렸다. 

손 안 라이터 백 번은 돌릴 만큼 마음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을 외면하는 이유는 그 기다림이 지나치게 무거워 보여서다. 황천화의 상상 속에선 이 동네가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을 그 사람의 기다림이, 그 영속성이 순전히 저를 향해 있다면. 황천화는 그의 오기를 보태 아주 ‘조금만’ 그 양반을 좋아하는데. 그에 비하면 기다림이란 너무나도 까마득해서. 맞지 않는 균형이 무섭다. 그는 절대로 진지하고 질척질척한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든 산뜻한 게 제일이었다. 황천화는 아직 청춘이라서.

그럼에도 시답잖은 다짐을 하는 것은 이 또한 청춘이라서다. 이 갑 다 비우면 진짜 고백한다. 하지만 말했잖은가, 세상 제일 쓸데없는 다짐이 담배 가게 앞에서 하는 다짐이라고. 하도 시답잖아서 그는 이미 열 보루를 넘게 비워냈다. 다짐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저 매일 담배 한 갑이 추가될 뿐이다. 황천화는 되도록 담배를 천천히 피우거나 내키면 연달아 두 세 대도 태우든가 한다.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고.

가끔 주인장이 담배 하나 창턱에 올려놓고선 황천화를 빤히 올려다본다. 무언의 웅변이다. 다 안다는 듯이. 고백하겠다는 다짐을 재촉하는 듯이. 뻔한 수작이 같잖다는 듯이. 하지만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아무것도 일렁이지 않는 눈은 고요하다. 뭔 말이 나오려다가도 그 얼굴 보면 꼴딱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 담배 한 갑이 추가되고 이거 다 비우면 고백한다는 다짐은 곧 다음 담뱃갑으로 넘어간다. 그런 날 피우는 담배는 유난히 텁텁하다. 다 알면서, 왜 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 복잡해진다. 


답답한 건지, 분한건지, 슬픈 건지, 저 깊은 속으로부터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담벼락을 걷어찬다. 예의 담배 가게 옆의 벽이다. 시멘트 벽돌 벽, 무릎보다 조금 더 위의 높이. 하도 차대서 황천화가 걷어찬 만큼은 검게 때가 탔다. 발자국이 더러 남아 있기도 하다. 화풀이 한답시고 걷어차고 있으면 주인장이 쪽창으로 얼굴만 내밀고 말한다.


“그래…. 한 백 구십 칠 년쯤 그리 차면 무너지겠네…. 어디 잘해보던지.”


그리고선 쏙 들어가서 깔깔댔다. 이 숫자는 이백부터 시작되었더랬다. 약이 바짝 오른다. 비꼬는 건지 부추기는 건지. 생생 ○○○이나 보는 주제에. 속은 시커먼 늙은이일게 틀림없는데. 다 알면서. 여러 말들이 들끓기만 한다. 다시 담벼락을 쾅쾅 차댄다. 


“니미, 진짜.”


억울하다. 화가 난다. 섭섭하다. 담벼락 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일 방법 없나 한참을 생각한다. 차올라 일렁이는 이 모든 어린애 같은 유치한 감정은 연애와도 연인사이의 실랑이와도 무척 닮았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사귀지도 않는데 벌써부터 이게 뭔가. 사귀기라도 했다간 더 큰일나겠다. 아니다, 얼토당토않은 김칫국이다. 연애라니 무슨 소리야. 황천화가 언제부터 연애 생각을 했다고. 이 멋모를 감정은 자연스럽게 소멸해야만 한다. 평소의 담배 가게와 손님 1로 남아 다시 평화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거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창피를 덜 당하는 지름길이다. 체면상하는 일도 사라질 테지. 하지만 체면 챙기고 싶어하는 그 마음조차 연애감정의 일환이란 걸 놓치고 만다. 황천화 머릿속 방향을 가리키는 바늘은 자주 갈팡질팡한다. 집안을 뱅글뱅글 돌다 정신사납다 잔소리만 들었다. 발걸음은 생각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주저앉는다. 턱을 괸다.









02


장고 끝에 황천화는 금연하기로 했다. 그는 대학생이고 대학을 허투로 다니질 않아서 강렬한 동시에 효과적이고 고급스러운 사회의 의사표명 방법을 배웠다. 곧 파업과 시위와 불매다. 이것만 다 태우면 고백한다, 보다는 그놈의 담배를 그만 사는 게 훨씬 빠른 방법이었다. 담배 가게 주인과 손님1이 되는 것보다 멋모를 동네 주민 사이가 되는 쪽이 원만하다. 갑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어쩌면 한 번 정도 더 생각해 줄지도 모르지. 여전히 바늘은 저 왼쪽부터 오른쪽까지를 혼란하게 오가고 있지만 정해진 행동은 하나다. 마지막이 될 담배를 사며 황천화는 결연하게 선언했다. 


“금연할거야.”


담배 가게에 발길을 끊겠단 예고였다.


“허….”


황천화가 처음 제 담배 샀을 때와 비슷한 한숨이었다. 아니면 탄식인지. 여전히 황천화는 구분할 수가 없다. 황천화가 헷갈려하는 사이 주인장은 뒷목을 좀 주무르고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손을 내저었다. 의외로 놀려먹거나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그거 며칠이나 가나 보자고 비웃을 줄 알았는데. 그럼 오기가 생겨서 더 오래 갔을 텐데. 맥이 빠졌다. 이런 줄다리기와 수 싸움에선 황천화가 한참을 밀렸다. 황천화가 아직 덜 당해봐서 모르는 게 가장 큰 패착이다. 


그리하여 호언장담한 금연은 딱 삼일 갔다. 그 삼일동안 황천화는 라이터를 백번 넘게 굴리고 펜을 입에 물고 다녔으며 손가락을 쉴 새 없이 까닥거렸다. 껌이나 사탕 같은 새 도피처를 만들기는 싫어 소위 맨 정신으로 버텨냈다. 큰길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집까지 서둘러 걸어갔다. 달려가기도 했다. 주변에선 유난떨지 말고 차라리 담배를 피라 했다. 항의의 목소리는 집에서 제일 컸다. 온 집안을 뱅뱅 돌며 다닐 때도 정신 사납더니 담배 끊으니 산만하기가 가속만 가했다. 황천상이 제 소박한 잔소리를 일기에 썼고 우려하는 담임 선생님의 첨언이 일기 밑에 잇달았다. 그렇게 삼일이다. 최소 작심삼일은 한 셈이다.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일말의 자존심은 지켜냈지만 그가 과연 담배를 참아냈는지 담배 가게에 가는 발걸음을 참아냈는지는 모를 일이다. 저조차 모를 충동을 힘겹게 누르고, 누르고 또 짓눌러대다가 한계가 왔다. 삼일 후 눈 뜨자마자 책상 서랍에 던져두었던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마지막이라 선언하고 샀던 그 담배였다. 다섯 개비 정도가 남아있었다. 급하게 탁탁 털었다. 그것마저 헛손질이라 후두둑 떨어졌다. 궁상맞게 주워 피웠다. 궁상도 잠깐이지 입에 물자마자 호흡처럼 편안했다. 삼일 간 그가 참아낸 모든 충동이 담배 한 모금에 깨끗하게 씻겨나갔다. 버릇처럼 떨던 손이 신기하게 멈췄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끊겠다고. 정신이 나갔었지. 황천화는 허탈하게 웃으며 연기를 가늘게 토해냈다. 흐늘거리며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를 눈으로 쫓다 문득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담배 가게에 발걸음하기 까지는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걸렸다. 금방 돌아가기엔 또 면이 안 살아서다. 황천화는 어정어정 하루를 미루고 또 하루를 더 미루고 반나절을 연장하는 식으로 짜잘하게 버텼다. 굳이 그 담배 가게 아니더라도 세상엔 담배 살 곳이 많아서 적어도 금연보단 쉬웠다. 쉽지, 쉬워. 주억거리는데 흡연양이 배로 늘었다.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 맘이 심란하면 저래. 누군가 여전히 손을 떨며 담배를 피우는 황천화를 손가락질하며 그리 말한다. 하나도 안 심란해. 받아치는 동시에 주머니 안의 라이터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러다 닳겠다. 라이터가 닳든가 맘이 닳든가.

금연에 열흘, 더해서 가게를 피한 지 일주일. 도합 열흘이다. 열흘 만에 돌아가고 말았다. 사흘 만에 담배를 물었을 땐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상쾌함은커녕 패배감뿐이다. 황천화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서성이다가 손을 뻗어 겨우 유리창이나 똑똑 두들기고는 말았다. 눈이라도 마주칠 새라 고개를 숙였다. 찰나였겠으나 체감 상 엉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드르륵 창이 열린다. 창 옆에 바짝 붙어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가게 주인은 용케 황천화가 온 줄 알았다. 탕자처럼 되돌아 온 황천화를 보고도 가게주인은 별 말 안했다. 금연이라며? 하는 그 흔한 소리조차도. 단지 목을 빼어 정말 황천화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늘 피던 담배를 내줬다. 일상에 가까운 무료한 손놀림이다. 손님 하나 들고 나는 것쯤이야 아무 영향도 없는 것처럼. 담뱃갑 위에 올린 둥근 손끝을 무심코 보고 만다. 변함없는 모습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뭐가 바뀔 거라 생각했을까. 그 무심한 반응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 사람은 황천화의 선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금연이고 뭐고 어차피 안 되리란 걸 알았고 돌아왔을 때 그나마 들 민망하라고 놀려먹질 않은 것이다. 티 나지 않는 아주 사소하고 세심한 배려였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황천화가 고마웠느냐 하면 글쎄올시다, 다. 차라리 손가락질 하고 실컷 놀려먹었으면 한다. 황천화는 다시 울컥해서 담배 가게 벽을 걷어찬다. 그제야 가게 주인이 말한다. 황천화에게는 열흘 만이지만 가게 주인에게는 일상이리라.


“잘한다, 잘해. 이제 한 백 구십 오년 남았겠네….”


늘 같은 레퍼토리. 법전을 베고 자는 머리 좋은 양반의 계산인지라 숫자는 일정하고 착실하게 줄어든다. 숫자가 하도 구체적이라 사실에 기반 한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말마따나 이대로라면 195년 후엔 무너지지 않을까. 이백 년으로 시작해 오년을 줄였으니 많이도 단축했다. 놀랄만한 성과에 자랑스러울 법도 하지만 칭찬이라고 들어봤자 썩 뿌듯하지도 않다. 진짜 무너뜨리면 어쩔 건데,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 그대로 일부러 한 번 더 걷어찬다. 단단한 벽에 하는 발길질로는 진동조차 일지 않는다. 아하하. 가게 주인, 태공망이 웃는다. 귀여운 자식. 속으로 중얼거리는 이 소리는 물론 밖까진 닿지 못한다. 황천화가 들었더라면 담벼락 수명이 족히 일 년은 더 줄었을 텐데.


200년은 나오는 대로 해 본 소리다. 얼마나 걸릴지는 태공망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경험으로 계산해보자면 태공망이 황천화의 옛 집 담벼락을 기어이 발로 차서 무너뜨리기까지는 50년이 좀 안 걸렸었다. 왔다 갔다 하며 매일 하루 두 번씩 꼬박 걷어찬 결과였다. 황천화의 옛 집, 그러니까 황비호의 조가 집 담은 흙벽돌을 쌓아 올린 것이었는데 벽돌 사이 틈이 커지고 작은 구멍이 나더니 마지막 발길질에 그만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당시야 어설프게 뭉친 흙벽돌이지 요즘은 또 세멘이라서 무너뜨리기 더 힘들 거다. 되는 대로 넉넉하게 잡은 200년인데 정말 그 정도는 걸릴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태공망은 단 한가지만을 정해놨었다. 저 담벼락 무너지면 가야지. 저 담벼락만 무너지면 얼른 가야지. 황천화의 감은 어중간하게만 들어맞는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담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허나 이 역시 담배 가게 앞에서 하는 다짐인지라 이 갑 다 피우면 고백해야지 만큼이나 부질없는 다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요원하구만….”


태공망은 매일 아침 담배 가게 담벼락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높이 지점을 바라본다. 신발 밑창 모양이 여러 겹 찍혀 새카맣기까지 하다. 황천화 살면서 꼴받는 일이 참 많기도 했다. 짧은 생에 벌써부터 이리 화가 나면 앞날은 어찌하려고. 작은 발은 희미하고 커질수록 선명하다. 족적을 살피기를 좋아한다. 그걸 모르는 황천화는 오늘도 전봇대를 걷어찬다. 왜냐고. 언제 쉬냐고 넌지시 물어봤더니 텔레비전 돌아보면서 한다는 말이.


“어, 음…. 맨날 맨날……?”


이라고 하질 않는가. 그야 그럴 것이다. 일은 개뿔이고 매일 놀고 있으니.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둔 채 무료함에 굴러다닐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 알고 있는데 황천화가 설마 그게 궁금했겠어. ○○정보통 말고 뭘 보는 지가 왜 궁금하겠어. 조심스레 물꼬 터서 데이트라도 해볼까 했던 값싼 수작질은 무위로 돌아간다. 황천화가 암만 노력해 봐도 그네들의 최선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담배나 쭈쭈바를 빠는 것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 황천화 달래준답시고 담배에 사탕 쪼가리를 올려 주니 더욱 열이 받는다. 이 사람은 황천화를 너무 쉽게 여긴다. 그리고 한결같이 어릴 거라 생각한다. 황천화가 레몬맛 사탕에 환장했던 나이는 저 먼 열 살 무렵이었다.


“내가 앤 줄 알어?” 

“애지 그럼 뭐겠어.”

“그러는 댁은 늙어서 참 좋겠네!”

“뇨호호. 좋지 그럼!”


높은 웃음소리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삶은 레몬맛 사탕이 올라간 담뱃갑이고 시트콤이다. 일일연속극이다. 연중무휴, 장수 프로그램이다. 까닥하다간 황천화의 첫사랑도 장수가 되겠다. 그래서 황천화는 레몬맛 사탕까지 남김없이 챙긴다. 나중에 입에 넣은 그 사탕은 담배 가게 주인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시었다. 아주아주 시었다. 황천화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이로 씹어 먹었다. 최대한 잘게 씹었다. 살기등등했다. 이걸 어찌 짝사랑 상대를 생각하며 먹는 표정일 수가 있을까. 무슨 원수라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금연카드도 흐지부지되고 레몬맛 사탕은 목구멍 아래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라이터의 기름은 닳지 않는다. 여전히 황천화는 담배 가게에서 창문을 맞대고 매일 한 갑의 담배를 산다. 어느 날은 손 안에서 라이터를 한 바퀴 굴리고 어렵사리 입을 뗀다. 


“내가 가게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어떨 거 같애?”

“기다리면? 기다리는 거지만.”


남 일인 양, 의외로 선선한 말투다. 이 사람은 틈도 안주고 지독하게 어렵다가도 이토록 선뜻 쉬워지기도 한다. 허탈할 정도로. 더 나아가서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럴 거면 안에서 기다리지 그래.” 


이 한 마디로 황천화는 생각지도 못하게 담배 가게에 굴러들어갔다. 창을 두고 넘겨다보기만 했던 미지의 공간에 이리 간단하게 들어갈 줄은 몰랐다. 신발을 벗고 쪽방 입구에 올라타자, 그가 그동안 밖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였다. 빽빽한 담배, 올려다보는 창문, 한정된 시야, 어두운 방 덕에 과하게 들어차는 오후 빛의 대비. 그러고 보면 담배를 줄 때 눈이 이지러지며 끝이 미세하게 떨리던 것을 기억한다. 황천화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 더 든 걸로 그다지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다행이었다. 밖에서 보기로는 들어가면 틀림없이 구석에 구겨져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앉은 채 흠벅 숨을 들이마셨다. 마시려고 했다. 담배 냄새는커녕 마른 먼지 냄새만 나는 어두운 색의 공기를.


“하, 담배 냄새…. 생각해 보면 여기가 천국 아닐까.”

“젊은 나이에 담배에 미쳐 버렸군…. 그렇게 말하면 여기가 아편굴 같지 않은가.”


가게 주인이 하는 일도 별 거 없는 터라 둘은 텔레비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잡담을 했다. 어쩌다 한 번씩 손님이 오면 가게 주인이 창문을 열고 담배와 돈을 교환하는 게 다였다. 가지각색 담배를 주인은 헷갈리지도 않고선 잘도 빼냈다. 더러는 이름을 듣지도 않고 내주기도 했다. 황천화 앞에서도 그랬듯이. 황천화는 달리 할 일이 없어 그가 늘 베고 자던 법전을 펼쳐 보았다. 군데군데 형광펜이나 연필로 뜻 모를 표시가 되어 있는, 진짜 사용하다 못해 너덜너덜하기까지 한 법전이었다. 법전 옆에는 예의 레몬맛 사탕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혹시나 해서 하나 먹어봤지만 역시나 시었다. 얼굴을 찌푸린 황천화를 보고 담배 가게 주인이 한참 웃었지만 그 역시 사탕 까서 먹을 때 얼굴을 똑같이 찌푸렸다. 눈썹을 잔뜩 구기고 양 미간을 모으면서도 끝까지 녹여 먹었다. 입술이 쭉 튀어나왔다. 그렇게 시어 죽겠으면서 왜 쌓아놓고 먹느냐 물었더니 건강에 좋다고 들었단다. 아직도 일 키로가 남아있다고. 어디 다단계에라도 말린 듯한 해괴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저녁 황천화는 사탕을 다섯 개 먹었다. 매번 얼굴을 구겨가면서. 그날따라 틀어 놓은 일일연속극 내용이 산을 타서 찌푸릴 때마다 마치 연속극에 깊게 이입한 사람 같았다. 정말로 이입한 사람은 황천화가 아니라 담배 가게 주인이었는데 욕을 웅얼거리며 얼굴을 구기다가 황천화 다섯 개째 사탕을 까는 황천화를 보고 말했다.


“거 아편굴처럼 숨 쉰 것 치고는 불로불사의 욕망이 크구먼.”

“어어. 완전 건강하게 살라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여기 담배 다 사고 연애도 하게. 뒷말은 삼킨다. 영 시큼하다.

담배 가게는 일일연속극이 끝나는 밤 9시에 문을 닫는다. 텔레비전을 끄고, 불을 끄고, 창문을 닫고, 슈퍼 자리의 철문까지 닫아버린다. 이전에는 철문까진 닫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슈퍼 자리가 비면서부턴 전부 담배 가게 주인의 몫이 되었다. 닫히는 문인지조차 궁금했던 그 철문은 끼이익, 하고 전신의 소름을 전부 긁어버리는 소리를 냈다. 다소 성가시고 귀찮지만 퇴근길이라 몸짓 하나하나에 신명이 난다. 일이라고 해봤자 하루 종일 굴러다닌 게 전부였으면서. 황천화는 철문의 끔찍한 소리를 들으며 머리카락을 쭈뼛 곤두세우면서도 끝까지 기다렸다. 끝나기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은 무료했지만 돌아오는 보람이 컸다. 저가 해아 할 일은 모두 끝냈으니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황천화에게 내맡기겠다는 뜻으로 가게 주인이 돌아보았을 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철문 삐걱이는 소리가 다시금 전신을 두들기는 듯했다. 일종의 희열이었다. 


황천화가 딱히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태공망을 기다린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 황금 같이 떨어진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줘도 못 먹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의 황천화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번드레한 데이트는 영 글렀다는 뜻이다. 황천화가 걷는 대로 태공망은 졸졸 따라붙는다. 나란히 섰다가 한두 발짝 뒤쳐지거나 한다. 황천화는 가로등을 길잡이 삼아 걷고 태공망은 그런 황천화를 쫓는다. 저녁을 지나 본격적인 밤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을. 그러다 보니 둘 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잊어버렸다. 정처 없는 산책이다. 동네 한 바퀴 도는 것과 뭐가 다른지도 구분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황천화는 충분히 즐거워했고, 태공망은 황천화가 즐거워하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까스로 황천화가 목적지를 정했을 때는 다소 놀랐다.


“이보쇼. 집이 어디더라?”

“집?”


결국 황천화는 이 목적 없는 산책을 적당히 배웅으로 얼버무리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가장 신경 안 쓴 듯 괜찮아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기어이 찾아낸 것이다. 참 든든하기도 하지. 하지만 정작 바래다 줄 집이 어딘지를 모른다. 담배 가게 주인은 볼 때마다 담배 가게에만 있어왔으니 알 턱이 있나. 태공망은 어깨를 으쓱거린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빙글 돌려 방향을 튼다. 길잡이가 뒤바뀌었다. 아까 전만 해도 황천화가 앞서 걸었는데 이제는 담배 가게 주인이 조금 앞서 걷는다. 황천화는 어정어정 뒤따라간다. 밤을 걷으며 함께 걷는 지금 시간이 마음에 들어서 기왕이면 집이 아주 멀었으면 한다. 대중교통도 타지 않고 아주 긴 길을 굽이굽이 돌아갔으면. 최대한 오래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은 소박하다. 허나 황천화의 소망을 아랑곳 않고 태공망은 왔던 길을 타박타박 걸어 도로 되돌아간다. 호젓한 걸음걸이다. 가로등을 되짚고 불이 켜져 있는 집들과 아직 왁자지껄한 호프집을 지나간다. 그렇게 온 만큼을 걸어서 이윽고 멈춘 곳이 여기다. 무안해질 정도로 황천화가 잘 알고 있는 곳이다. 


“집.”

“여기냐…. 어쩐지 댁을 동네에서 본 일이 없더라….”

“도보 1분 출근이니까.”

“그게 출근이냐? 지박령이지.”


맥이 빠졌다. 자꾸만 똑같은 길을 되짚을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돌고 돌아 다다른 곳은 담배 가게다. 아까 열심히 문 닫고 정리한 그곳에 돌아와 섰다. 황천화는 이 동네에서 살아온 지 십년 만에야 슈퍼 건물이 단층 건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만다. 왜 몰랐을까. 이 회색 건물은 본래 생길 적부터 2층짜리다. 의식하고 나서 살펴보니 건물 뒤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다가, 담배 가게 위로 똑같이 생긴 창문이 달려있었다. 대개 이런 건물들의 2층은 영락없는 살림집이었다. 거주할 사람이야 뻔할 뻔자 아니겠는가. 뭣도 모르고 동네만 빙글빙글 돌며 개폼 잡았다. 가벼운 낭패가 서린다. 새털같이 떨어져 가로등을 등지고 내려앉는다. 


“그래도 장하네. 이런 경험도 하고.”


담담히 할 말을 찾던 가게 주인은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황천화의 배려를 치하한다. 별로 좋은 수는 아니다. 나쁜 것 중에 제일 나쁘다 했던 바로 그 대견함이다. 무엇에 용 썼는지 훤히 꿰뚫린 것 같아 듣기에 거북했다. 예나 지금이나 황천화가 제일 싫어하는 건 폼이 무너지는 일인데, 하필 그걸 대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그래서 댓발 나오려는 주둥이부터 막기 위해 팔짱을 꼈다. 도착했음 어서 들어가라고 턱짓을 한다. 어떻게든 배웅이라는 핑계는 고수하고 싶어서다. 

저 사람이 올라가고 나면 담배나 하나 태우고 가야겠다, 마음먹는다. 어둠을 먹고 짙은 청색으로 바랜 건물 벽 네모지게 뜬 창문 불빛을 보며 땡기는 담배는 맛도 참 각별하겠다. 그런 생각으로 한눈을 파는 사이 그 사람이 바짝 다가왔다. 황천화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손을 잡았다. 온몸이 굳는다. 살짝 끌어당기고 긴장감에 굳은 손가락을 살살살 펴더니 사탕을 올리고 꾹 다물려준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심장은 손바닥 한 가운데에 있다. 그 심장의 위치를 사탕이 둥글고 완만하게 내리누른다. 레몬맛 사탕이 아니었다. 딸기맛이었다. 건강이니 뭐니 하며 줄창 레몬맛이다가 왜 하필 지금 딸기맛일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겠답시고 황천화가 집중력을 손바닥에 쏟아 부었다. 출제자는 답을 알려주지 않고 건물을 돌아 계단을 밟고 올라가버린다. 명확한 답이 없으니 황천화는 마음대로 생각해도 된다. 입꼬리가 간질거린다. 할미가 손주 용돈 주는 것처럼 쥐여 주는 사탕 하나가 뭐가 그리 좋았는지. 단지 딸기맛이라서 좋았던 건지, 딸기맛이 이것 단 하나뿐인 것 같아 좋았던 건지. 낭패감, 서운함이 모두 눈 녹듯 녹아내린다. 슈퍼의 철문 소리가 귓전에서 메아리친다. 이후로는 딸기맛 사탕을 먹을 때마다 두드러기처럼 전율이 일곤 했다. 손바닥 한가운데를 빨았다. 짝사랑은 단맛으로 연명하는 법이다. 


연명은 끊길 듯 꺾일 듯 오래갔다. 젊은 날의 치기, 청춘의 쌉싸름한 첫사랑치고는 오래갔다. 황천화의 예상보다도 길었다. 가늘면 길게 간다더니, 아주 조금만 그를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황천화는 신중하게 두 손을 모아 턱을 괴고 정신승리했다. 아주 조금만 좋아하니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위안하지 않으면 영영 얹히고야 말겠다. 간절히 모은 두 손은 흡사 기도를 닮기도 했다. 황천화의 정신승리가 얹힌 기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생각지도 않은 별 아래에서 반짝 이루어졌다. 그 별이 담배 가게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바로 그 별이었나 보다. 달밤의 산책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황천화는 창피한 배웅할 생각일랑 진작 때려치웠지만 기다림까진 멈추지 않았다. 한번 뚫어버린 담배 가게다. 그는 종종 슈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쪽방에 기어 올라갔다. 가게 주인으로선 탐탁지 않은 눈치였으나 황천화는 뻔뻔하게 흘려버렸다. 이건 처음 공간을 내어 준 가게 주인의 잘못이다. 기왕 틈이 있다면 최대한 파고들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황천화는 마음을 따라서 기꺼이 굴러 들어갔고 가게 주인처럼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대신 노트북을 펼치고 과제 등의 소일거리를 했다. 황천화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둔 채 담배 태공망은 제 일과를 이어나갔다. 시간이 되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낮잠을 자고, 그 사이사이 손님이 오면 찌뿌둥한 몸뚱이를 일으켜 담배를 꺼내주었다. 한 마디로 황천화가 방에 끼어들었다 뿐이지 둘 사이에 특별히 감정을 공유할 만한 일은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방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화젯거리가 됐다. 개수가 부쩍 줄어든 담배, 밖에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 날씨. 지나가듯 물어보는 황천화의 질문, 그리고 붕 뜬 대답. 아주 가끔 선심 쓰는 듯한 산책. 황천화가 엉덩이 붙이는 데에 성공해 밤 9시까지 버텨내거든 그 사람은 나가자고 말했고 그러거든 황천화는 어느 때고 하던 일을 접고 일어섰다. 어설픈 배웅의 연장선이다. 그 사람은 밤이 되어서야 장방형 방에서 벗어나 철문을 닫고 잠깐이나마 입방체가 아닌 숨을 돌렸다. 토한 숨은 담배 연기보다 옅어서 가로등 아래서나 겨우 보일락 말락 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었다. 아주 버릇 나쁜 짓이었는데 하도 끌다 보니 걷는 대로 길이 생길 것도 같았다. 황천화는 그 뒤꿈치 쓸리는 흔적 쫓기를 좋아했다. 중간에 어딘가에 들릴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이따금은 황천화의 집까지 쭉 가기도 했다. 시멘트 벽돌담, 주택의 골목길, 전봇대, 붉은색 벽돌 담벼락을 천천히 되짚어서. 배웅의 주체는 간단하게 뒤바뀌었다. 다만 그럴때 가게주인의 목적은 배웅이 아니라 황천화 집에 있는 다른 사람이었다. 황비호를 불렀다. 가게 주인은 외관상 아버지뻘인 황비호에게도 말을 편하게 했다. 유교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희한한 광경이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신기하게도. 황비호는 때마다 반가워하며 담배 가게 주인을 집에 들여 뭐라도 대접하려 했지만 성공한 적은 없었다. 현관 앞에 선채로 짧게 대화하는 게 다였다. 처음으로 이름을 알았다. 황비호가 담배 가게 주인을 태공망이라고 불렀다. 그 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둘 사이의 접점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황비호는 예전에 알던 사이라고만 했다. 그래서 이 동네에 이사 온 거야? 라는 질문에도 별 대꾸를 안했다. 부정하는 대꾸가 없으니 확신만 든다. 그것도 수상한 쪽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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