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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이부키 아이에게 생명선이 길다고 말해줬던 사람은 가마고오리 시게오였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여름날, 대수롭지 않은 순간이었다. 싸움에 단단히 말린 후였고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대고 있었다. 단단한 손이 이부키 아이의 손을 감싸 쥐었다. 이미 이부키의 손은 한참 커서 가마고오리의 손이 그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작은 손이 달래주듯 손등을 덮었다. 터진 딱정이를 살피고 두드렸다. 이부키는 낯간지러웠지만 그게 썩 싫지는 않았다. 어른이 그리 다정하게 손을 잡아준 적이 거의 없어서 그랬다. 그러다 가마고오리가 문득 깨달은 듯이 말했다.
“너, 생명선이 길구나.”
그는 작게 감탄했다. 잔주름 없이 진하고 굵은 생명선이라 했다. 이부키 아이의 생명선을 이부키가 스스로 그려낸 것도 아니었건만, 가마고오리는 기특하다는 듯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잔병치레 없이 오래 살겠어. 굳은살 박인 엄지손가락이 천천히 굵은 곡선을 파고 내려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깃털로 어루만지기라도 하는 듯 간질거렸다. 손바닥이 아니라 속이.
“좋은 건가?”
그래서 그는 그만 괜한 너스레를 떨며 손을 빼고 말았다. 가마고오리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비어버린 손으로 무릎을 치며 낮게 웃었다. 탁, 탁. 이부키는 관심 없는 척 둔탁한 부딪힘을 귀담아 듣는다.
“좋다마다. 건강하게 오래 살수록 좋은 일도 더 많이 있을 거 아니냐. 그리고 형사는 말이다, 오래 사는 게 제일이야. 어떤 범인들보다도.”
그건 가마고오리 시게오가 그만의 방식으로 이부키 아이를 축복했던 것임을 그는 나중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건강하고 오래, 바르게, 행복하기를. 꿈대로 형사가 된다면, 해를 당하지 않기를. 여러 번 쓸던 손길은 바람이 섞인 일종의 기도였던 것이다. 사실 당시 이부키 아이에게 생명선의 길이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그의 길고 단단하다는 생명선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 이후로는 손바닥을 자주 들여다봤다. 의식하고 보면 과연, 길고 선명하기도 했다. 이부키! 컨닝하냐! 멋모르는 선생들이 이부키를 보고선 소리 질렀다. 와, 신뢰도 바닥.
학창 시절 그렇게 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는 가마고오리의 바람대로 되었다. 기적적으로 이부키 아이의 이름 석 자는 지역신문 사회면으로부터 훌쩍 벗어났다. 약간 돌고 돌기는 했지만. 거 돌고 도는 길이 우여곡절에 가깝긴 했지만. 적어도 생명선에 관해서만은 정확했다. 이부키 아이는 서른 더하고도 몇 년을 지나치게 잔병치레 없이 잘도 살아왔다. 그럼, 좋다마다. 가마고오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건강하고 튼튼하고, 빠르고, 조금 구른 정도로는 다치지도 않는다.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와서 이부키 아이는 결국 시바우라 서에 닿고야 말았다. 쾌거다. 그리고 또. 어느 빌딩 옥상에서 자랑스럽게 손바닥을 펴서 보여주는 날도 기어이 오고야 만다. 가마고오리가 손을 잡아오던 당시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생명선이 길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헤헤, 웃는다. 어금니에 맞물리는 웃음소리가 제 것인데도 아주 쓰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되게 면회를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 날은 유독 웃음이 쓰고 길이 길더라. 한낮인데도 그림자를 질질 끌었다. 무거웠다. 그럼에도 그는 가마고오리 시게오의 말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 복잡하지 않은 일이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그 어떤 범죄자보다도 오래 살 것이다. 이 생명선에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달렸다.
가마고오리 시게오가 생명선에 대해 말한 순간이 이부키 아이에게 오래도록 남았듯 이부키 아이가 자랑스레 다섯 손가락 쭉 피던 순간도 시마 카즈미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버렸다. 그 후론 줄곧 생명선 하나에 사람 둘이 달린 셈이다. 자칭 속이 넓은 남자 이부키 아이는 손바닥에 기꺼이 시마 카즈미의 무게만큼을 매달았다. 그는 아주 가볍게 꽂혀서는 아주 무겁게 마음을 내주곤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달고 나니 꽤 무겁긴 한데, 그럭저럭 괜찮다.
그리하여 시마 카즈미가 실제 이부키 아이의 손바닥을 들여다 본 건 훨씬 나중에서다. 그날의 옥상을 넘어 도쿄만을 지나고 나서야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더러 손바닥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당번 근무를 시작한 지 열 여덟 시간도 더 지난 어떤 새벽, 차 안에서였다. 운전대는 시마가 잡고 있었다. 그는 교차로 빨간 신호에 멈춰 손가락을 까닥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손 좀 보여 달라고 했다. 별 일이 없어 비스듬히 창에 기대 바깥이나 보던 이부키가 반색할 만한 일이었다.
“뭐야. 시마쨩? 터치? 터치? 하고 싶은 거야? 해줘?” “열 받네. 됐어. 안 해. 관둬.” “에에에에에이. 지금 엄청나게 하고 싶었으면서.” “아아아아아닙니다. 됐습니다.”
어째 단 한 번도 고분고분 말을 들어주는 일이 없다. 티격태격하는 동안 신호가 바뀌어 시마는 눈만 가득 흘기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부키가 운전석에 손을 내준 건 다음 빨간불에서 차를 멈춘 후였다. 시마는 그걸 또 못 믿어서 어깨를 움츠린 채 이부키를 노려봤다.
“자, 자. 아무쪼록 마음껏 보세요.” “이걸 그냥 수갑을 채웠으면….”
이부키가 정신 산만하게 이리저리 손을 팔랑거리는 바람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불신으로 썩은 표정과는 반대로 손가락 다섯 개를 받쳐 드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그는 그대로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봤다. 가로지르는 생명선을. 좁고 깊은 구렁을. 지그시. 밑바닥이라도 찾는 것처럼. 보는 내내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이부키는 손바닥이 뚫리는 줄 알았다.
“어이, 시마. 신호, 신호.”
영원같았지만 빨간 불이 파란 볼로 바뀌기까지의 짧은 시간이었다. 재촉에 놀라 시마는 이부키의 손을 던져버렸다. 거 참 매정하네. 이부키가 내팽개쳐진 손을 잡고 투덜댔다.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가끔 시마의 뜻 모를 행동은 참 재미가 없다.
시간을 가리지 않는 무전을 받고 한바탕 뛰고 싸움을 쫓아다니고 새벽을 지나 날이 하얗게 밝아 올 때쯤 시마 카즈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진짜네.”
간신히 쥐어 짜내는 목소리였다. 목소리라기보단 숨이었다. 작은 입술의 달싹임을 이부키 아이는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고개를 돌리려다가 혼신의 힘으로 참아냈다. 더 이상 시마 카즈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건 그가 이십여 년 전 들었던 가마고오리 시게오의 목소리와 닮았다. 몇 번이고 손바닥을 쓸며 뇌까리던 기도. 생명선이 참 길어서 다행이다. 그런 것을 듣고 있노라면 그는 여전히 속이 간질거린다. 어린 그는 쑥스러워 손을 빼내는 게 다였지만 지금의 그는 어쩐지 울컥거려서. 가마 씨. 비록 그렇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마 씨. 틀리지 않았잖아요. 이부키 아이와 시마 카즈미가 그 고랑에 매달려 있다. 이십 년 전 어른의 따뜻한 한 마디. 기도 의지할 곳이라곤 그 생명선뿐이다. 보잘것없는 미신을 맹신하고 매달려 쉽게 죽지 않도록, 쉽게 죽이지 않도록. 그렇게 어떻게든 해 나가겠지. 우리는 결코 능숙하지 않고 앞으로 십년이 지나도 똑같은 자리에서 버둥댈 것이다.
“내가 생명선이 길어서 좋지?” “…그래. 좋다마다.”
차에서 내리면서 물어봤다.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전 아홉 시 육 분. 정신줄을 바짝 소모한 후에 보는 세계는 조금 희끄무레하다. 그래선가 시마 카즈미가 솔직하게 말한다. 좋다마다. 이부키 아이의 생명선이 길어 기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나 더 생겼으니 물론 이부키 아이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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