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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봉신 / 천태 / 별이 있다 2025-09-08 11:01



리퀘박스




곁에서 줄곧 지켜본 사불상의 입을 빌어 말하건대, 그의 봉신계획을 따지자면 봉신계획을 일임하고 인간계에 막 내려왔던 초반이 제일 파란만장했다고 한다. 그것은 약간의 패기와 약간의 모험과 또 약간의 머저리짓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행착오라 할 만한 이야기였다. 뚜렷하게 기승전결이 있지만 결말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다 하마의 말이다. 하마는 그 때를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저리친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가 금방 흩어진다. 몸고생 마음고생 아주 온갖 고생을 다 해놔서 차라리 지금이 천국같단다. 그 바보도사 한 짓 중에 그나마 제일 잘한 일이 동료 모은 일이었다고 했다. 시작은 단 둘 뿐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 건사하게 될 줄은 그도 사불상도 꿈에도 몰랐다고. 다들 이상한 사람이지만 말이죠. 하마가 굳이 덧붙인다. 이건 하지 않았어도 될 말이다. 태공망 옆에서 지내온 짬바를 생각하면 사불상이 제일 이상하다. 저 진실만을 말하는 입을 가지고도 용케 살았다.


지나가던 도사님, 점쟁이, 그리고 은의 궁중악사까지. 황천화는 그 파란만장했다던 이야기의 단편을 엿본다. 그것도 저잣거리에서. 황천화가 엿보는 단편은 과거가 이따금 상흔처럼 벌어져 벌름거리는 틈이다. 하는 꼴을 보면 파란만장이 얼마나 맨바닥에서 맨손으로 허술하게 일궈낸 이야기인지 겨우 알겠다. 정말 잡다한 기술은 다 동원하고 살아왔군. 황천화의 탄식은 동정과 한탄, 그 사이 어드메에 자리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늘에선 정어리가 춤춘다. 바다에서나 볼 법 한 생명력을 가장하며 펄떡펄떡 날아오른다. 이보다 좀 더 먼 미래에 예수라는 사람이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인다더니 적어도 그 전까지는 못 볼 물고기 장관 아니겠는가. 구경거리 났다고 사람들이 몰려서 곧 정어리도 정수리도 보이지 않게 됐다. 황천화는 말려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아버지가 봤으면 헛짓거리로 힘 빼지 말라고 했을 테다. 


기본적으로 선인들은 녹을 받지 않았다. 선인된 도리로 그랬다. 기껏해야 숙식이나 제공받는 정돈데, 불행히도 선인들 중 우두머리라는 태공망이 욕망의 화신이었다. 욕망의 화신 중에서도 모든 탐욕을 주둥아리에 모은 화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의 논리는 이 한 마디에 집약되었고, 오직 그만이 주공단 앞에서 드러누워 급여투쟁을 했다. 곤륜의 위세는 태공망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노인은 나이 먹을수록 애가 된다더니, 다 늙은 늙은이가 맨바닥에 드러눕는 것도 참 몹쓸 짓이다. 아니 늙은이 늙은이 해도 그는 곤륜에선 나이 어린 축이잖은가. 그러면 또 선인 도사들 중엔 어리니까 이래도 된다고 받아쳤다. 말이나 못하면. 인간이 가진 모든 탐욕을 주둥아리에 모은 만큼 탐욕을 위한 주둥아리도 잘만 움직였다. 긴 투쟁과 대치 끝에 주공단이 한 발 물러섰다. 이미 태공망이 야금야금 곳간 털어 훔쳐 먹는 양이 상당한데다가 다른 선인들이 무급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게다. 태공망에게 훔쳐 먹질 말고 돈을 내라며 용돈께나 쥐어주었는데 그걸로는 입에 택도 없이 부족해서 결국 태공망이 스스로 나섰다. 몇 푼 용돈으로 해결보기엔 세상에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것이야말로 대륙의 힘 아니겠는가. 그래서 맨손으로 돈을 일궈내기 시작했다. 저잣거리 나오면 쉬이 구경할 수가 있었는데 이젠 일종의 거리 공연 내지 쇼가 되었다.


그는 한 때나마 조가의 점쟁이였고, 꽤 신통했다. 종류는 여러 가지고 가리질 않는다. 정어리, 땔감, 돌멩이, 쌀알, 기타 등등. 흡사 공기놀이 같기도 하고 저글링 같기도 했다. 늘어놓은 것으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지만 태공망의 손가락은 쌀알 사이사이를 잘도 누비고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헤집었다. 필요한 운명을 재빠르게 낚아 올렸다. 

서기 사람들은 점을 치기보단 구경했다. 애초에 점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나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에 매달리는 건 주로 발밑이 불안한 나락의 주민들이다. 장사는 점괘만큼 신통치 않았다. 사람들은 쇼를 잠깐 구경하고 금방 흩어졌다. 그러면 간이 점집 노점은 금방 한산해졌다. 태공망은 수지가 안 맞는다고 한탄했다. 조가에서 도망쳐 나왔다던 땔감장수나 진지하게 점을 쳤다. 조가에서 살던 버릇을 버리질 못해서. 그 신통함을 익히 알고 있어서. 허나 그가 묻는 것도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절박하게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던 그의 질문도 날이 갈수록 가벼워졌다. 급기야 여기까지 올 정도였다. 오늘은 고기를 먹을까요, 생선을 먹을까요. 서기란 그런 곳이었다. 태공망은 대놓고 정어리로 땔감장수 머리를 쳤다. 생선이다, 생선. 


그 다음엔 사람이 드문드문 왔다. 다들 땔감장수 만큼이나 즉흥적이고 가벼운 점을 쳤다. 내일 잔치에 가는데 무슨 색 옷을 입는 것이 좋을까요? 내일 비가 올까요? 오늘 하는 게 좋을까요, 내일 하는 게 좋을까요? 그 사람이랑 결혼 할 수 있을까요? 그네들이 그리는 미래는 비교적 평탄하고 낙관적이다. 하루 정도로 생사는 갈리지 않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지속될 것이다. 점쟁이가 아니라도 다들 그 정도는 알았다. 사소한 고민엔 길게 대답해 줄 것도 없어서 태공망은 짤막하게 한 마디씩만 해줬다. 그만큼 사람들은 짧게 머물렀고 금방 떠나갔다. 다시 한산한 자리를 지켰다. 

그림자는 점점 짧아졌다가, 보이지도 않게 발밑에 옹송그렸다가, 다시 길어졌다. 태공망은 자주 멍을 때렸다. 한 점 응시하는 시선이 멀고멀었다. 하마의 입을 또 빌려보자면 저 멍청한 도사는 그렇게 시간 버리는 일 하난 잘했다. 그러니까 너무 힘 빼지 말라는 충고까지 곁들였다. 경험자의 조언이 아버지의 조언과도 닿아있었다. 희한하게도 닿아있으니 그게 아마 정답일 성 싶었다.

험담에 험담을 거듭하면서도 사불상은 끝까지 이 파리 날리는 노점 자리를 지켰다. 신의 있는 영수의 귀감이다. 태공망은 좀 더 자신의 영수에게 고마워할 줄을 알아야 했다. 기왕 고마워하는 거 황천화에게도 고마워했으면 좋겠다. 재밌는 거 없나 하고 괜히 나와 봤다가 점집 구경하느라 황천화도 적잖이 시간 깨나 날리고 말았다. 버린 담배꽁초만 한 무더기다. 아까부터 이 점집은 태공망, 사불상, 황천화 셋이 개장해 셋이 지키고 있다. 손님보다도 점집 장사치들이 더 많은 셈이다. 둘이야 그저 구경꾼이지만. 왜 이 구경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다가 말았다. 그냥…, 이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퍽 궁색해지고 만다. 


“…자네가 바람잡이를 하지. 앉아서 호들갑 좀 떨어봐.”


멍때린 끝에 태공망이 타개책을 냈다. 무료함에 대한 타개책인지 없는 손님에 대한 타개책인지는 몰랐다. 아마도 전자의 성격이 더 강해보였다. 태공망 앞자리는 비어있고, 태공망은 앉은 채 황천화를 빤히 올려다본다. 짐짓 기대하는 눈초리다.  


“내가?”

“그래. 잠깐 앉아봄세.”


종용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하게 전자다. 전자임이 분명하다. 그저 심심한 거다. 이제 가만 멍때리기도 심심해진 거다. 재미는 황천화에게로 넘어왔다. 태공망은 친절하게 말한다. 


“재밌는 얘기든 고민 상담이든 뭐든 말해봐!”


여기서 재미는 태공망에게만 재미있는 얘기를 뜻한다. 황천화는 주춤주춤 쭈그려 앉았다. 같이 자리 지켜줘서 고마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아주 날로 벗겨먹으려 든다. 양심도 없는 사숙. 새 담배를 물고 불부터 당기고 봤다. 숨을 얼마나 깊이 들이쉬었는지 담뱃불이 파르르르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좋다, 할 맘이 생겼다. 들이쉰 만큼 연기로 구름이 진다. 사불상이 대놓고 인상을 썼다. 


“그럼 사숙이 제일 재밌어 하는 얘기로 하자.”

“그거 좋지.”


태공망이 반색하고 봤다. 


“연애 얘기.”

“아 …별론데.”


이건 별론가 보다. 의외로 태공망이 연애담엔 관심이 없었다. 황천화도 마찬가지긴 한데, 해볼 마음이 생겨서 그렇다. 해 볼 마음이 생기면서도 당최 뭘 해보려고 하는지 생각하자면 빙글빙글 돈다. 매연과 햇빛과 정어리와 나무 조각 몇 개와. 땔감으로 만들어진 뗏목을 타고 정어리가 바다를 건넌다. 파도 한 번에 넘실거리고 뗏목이 뒤집어지고 어이쿠, 어이쿠 소리를 지른다. 오천 명을 먹이러 가기엔 너무 머네요! 정어리는 소리를 지른다. 그래봤자 뻐끔뻐끔이다. 오천 명이 배를 곪는다. 그 행렬이 조가를 덮고, 조가를 넘어서고, 그리고, 그리고.


“자네 너무 나갔는데.”


빙글빙글 돌아서 가장 사소한 물음으로 돌아온다. 배를 곪는 질문은 지금 그들의 질문이 아니다. 서기의 땅은 아직 풍요롭다. 그러므로 가장 사소하고 가장 의미 없으며 가장 관심 없고 가장 쓸 데 없는 질문을 한다. 서기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황천화도 이제 서기의 주민이 다 되었으므로.


“그러니까 연애운을 봐달라는 거지.”

“누구?”

“나.”

“…”


그리하여 태공망도 재밌어지고 황천화도 재밌어졌다. 땔감 하나 받쳐 앉은 채 태공망이 킬킬 웃는다. 사불상 표정이 안 좋다. 땔감 저건 왕귀인 끝내주게 태워먹었던 땔감이라 안 좋은 시행착오와 모험의 기억만 가득하다. 이래저래 경험해 본 놈이 다른 법이다.


“요건 재미있구만? 언제 이렇게 또 애정운 볼 사람을 만들었는고?”

“사숙이랑?”

“…”


이번에는 재미가 없어진 침묵이다. 태공망은 깊게 침묵했다. 아주 진심 아닌 건 아는 듯 했지만 어쨌든 깊게 침묵했다. 장작 마른 껍질을 파드득 파드득 부숴가면서, 그는 어쨌든 침묵했다. 사불상 표정은 여전히 안 좋았다. 화룡표를 황천화에게 넘겨서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뭐, 까짓거 하지.”


장작은 껍질을 다 벗겨버려서 쓰기가 그렇다. 정어리는 햇빛에 바짝 말랐다. 그래서 대신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썼다. 황천화는 영 못미더웠지만 원래 이런 점이란 못 미더울수록 좋은 일이라 입이나 다물었다. 돌멩이 몇 알 모으니 정말로 공기놀이 같아졌다. 손 안에 가득 찼다. 황천화는 구경하며 턱을 괴었다.


“난 이런 거 곤륜에서 안 배웠는데.”

“자네는 수행할 때 한 눈을 안 팔아서 그런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지.”


소소한 대화였다. 할 때마다 태공망이 눈을 치떴다. 돌멩이를 하나하나 넘고 넘어 꼭 눈을 마주쳤다. 그게 점괘에 무슨 영향이라도 줄런지는 몰랐다. 원래도 태공망이 이렇게 자주 눈을 마주쳤던가? 헤아려보았다. 어쩐지 가물가물했다. 그 사이 돌멩이가 쌀알처럼 흩뿌려졌다. 방향조차 정하지 않은, 무작위로 던진 돌이 운명처럼 날았다. 후두두둑. 떨어지길 중구난방이었다. 수행하느라 바빴던 황천화는 돌멩이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가급적이면 태공망도 못 읽기를 바랐다. 바람대로 되는 일이야 아무것도 없었지만. 손가락이 돌을 집고 저만큼의 거리를 헤아렸다. 그걸 마치 하늘의 별 읽듯 했다. 땅의 박힌 돌은 빛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두운 돌 헤아리는 것이 하늘의 별 세는 것보다 훨씬 더뎠다. 던진 것이 돌이라서, 황천화는 그리 여겼다. 내 사랑은 별이 아니다. 알고 있었다. 


“흠…”


생각은 소리가 되어 나왔다. 난색을 표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돌멩이들을 그러모았다. 땅 위에 펼쳐진 보잘것없는 별자리들은 이내 주먹 안에 응집되어 사라졌다. 그것들은 이제 아무 뜻도 가지지 못한 돌멩이들이다. 태공망은 돌멩이들을 후두둑 버렸다. 돌무덤처럼 뭉쳐 고였다. 


“봤어? 봤어?”

“음… 안됐어, 안됐어.”


그는 동정 아닌 동정을 하고 혀를 차면서 한참을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돌을 버리고, 정어리를 치우고, 장작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좌판을 접고 일어섰다. 파장이다. 사불상만 좋아했다. 그는 점괘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애정운인데도 그랬다. 저 정도 담대해야 태공망 영수 겨우 해볼 일이다. 사불상이 등을 떠밀어서 둘은 저잣거리를 벗어났다. 태공망은 아직도 뜸을 들였다. 음, 음. 


“그래서 뭐냐고.”

“음…”

“에라이, 이 양반아. 아무것도 없었지?”

“음…”


사불상이 밀면 밀리는 대로 밀려갔다. 태공망은 끝내 얼버무렸다. 말은 입술사이로 죄 문드러졌다. 평소에는 턱턱 나오더니만. 바보 같은 사람. 그는 분명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모르는 대로 얼버무린다. 


“알아, 알아. 아무것도 없었지?”

“음…”


발 뺄 수 있는 여지를 줬음에도 태공망은 끝까지 말 한마디 안 했다. 돌멩이를 버리고 왔는 줄 알았더니 죄 입에 털어놓고 온 듯 꾹 다물었다. 곤륜에서 점에 대해 배우지도 않는 황천화는 자신의 점괘를 믿기로 했다. 돌멩이 사이를 못 읽는 황천화가 어디를 보고 읽느냐면 표정을 보고 읽는다. 그림자가 많이 길어졌다. 태공망 주머니 안에서 몇 푼이나 동전 몇 개가 짤랑거린다. 황천화는 거기에 자신의 동전도 하나 얹었다. 꼴에 이것도 복채랍시고. 넣으면서 조금 씁쓸할 뻔했다.


여기서 황천화가 간과한 사실은 단 세 가지뿐이다. 하나, 별은 모두 돌멩이다. 나머지 하나는 태공망은 점을 틀린 적이 없었다.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세 가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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