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계의 내려온 이래, 두세 번인가의 봄을 맞았다. 그곳은 서기이기도 했고, 서기를 벗어난 어딘가 이기도 했다. 어디에서나 봄은 비교적 공평하게 찾아왔다. 어쩌면 조가에서도 봄이 왔을지도 모르지. 조가의 봄이 어땠더라. 어쩐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꽃이 피는 것보다도 빨리 찬바람이 누그러지는 것으로 봄을 알았다. 그럴 때면 으레 담배연기가 조금은 달짝지근해졌다. 순전히 기분 탓이다. 분위기에는 쉬이 좌우되는 편이라. 조가를 향하는 중이었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중에도 여지없이 봄은 와서 모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머무는 중에는 짬을 내 해바라기를 했다. 그런 오후였다. 황천화가 두 모금 째의 달달한 구름사탕을 빨고 있을 때, 옆에 태공망이 있었다. 분명 앉아서 멍을 때리고는 있는데 손가락이 쉬질 않고 움직인다. 왜인고 하니 곧 농번기란다. 진군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서기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군사에게 사계절은 이런 식이다. 분위기나 낭만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옆에 이런 낭만도 없는 작자가 앉아 있자니 담배연기가 퍽 써지고 만다. 소위 입맛이 쓰다는 일이 이걸 게다.
“사숙 나랑 사귈래?”
무심결에 말 한 마디가 혓바닥 위에서 물수제비를 차고 날아오르고 말았다. 태공망의 정수리를 툭 건드린다. 머리에서 곰곰 생각한 끝에 흘러내려 나오는 말이 아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다. 그만큼이나 말에는 무게가 없어 가볍게 날아갔다. 태공망이 눈으로 날아가는 말을 멀리 쫓는다. 손끝에서 숫자가 흐트러진다. 모든 계산이 무의미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나랑 사귈래?’ 메아리. 막상 말한 황천화가 더 무안해졌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왜 굳이 그런 말을 선택했는지는 황천화 자신도 잘 모르겠다.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 지금 이 둘 사이에서 제일 안 어울리는 말이 하필 그거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빈말이었다는 거다. 농담의 종잇장 같음은 듣는 태공망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그랬는지 얼굴이 대번에 구겨진다. 정말로 기분이 나빠져서 찡그린다기보다는 그저 황천화에게 보여주기 위한 찡그림이었다. 어물쩍 장단에 맞춰주는 셈이다. 원래 태공망이 그런 걸 잘했다. 손가락은 이제 됐다. 나머지 계산은 주공단 시키지 뭐. 못된 생각으로 눈이 가늘어진다. 여기서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웃고 끝나면 그만이겠으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게 태공망 성격이다. 특히 못된 생각하는 태공망이라면 더. 문제의 사숙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가 실없는 놈이라며 허, 하고 혀를 차더니 갑자기 눈을 굴리고 대번에 손바닥을 뒤집는다. 너무나 쉽게. 부침개 뒤집는 것도 이것보단 어렵겠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엥.”
담배가 떨어진다. 달짝지근한 맛도, 씁쓸한 맛도 몽땅 떨어진다.
“왜 못 할 거 같은가?” 대놓고 장난하자는 태공망 얼굴이 황천화를 올려다본다. 천연덕스러운 게 울컥할 정도로 얄미운 얼굴이다. 어떻게 이런 것만 잘해가지고는. 담배 떨군 입을 마저 다시면 빈 말 물수제비 찬 혓바닥에서는 달달한 맛도 씁쓸한 맛도 동시에 느껴진다. 달콤쌉쌀하다.
“아니. 못 할 것도 없지?”
태공망만 문제가 아니다. 황천화도 성격이 문제다. 이게 무슨 도발이라고 시원하게 넘어갔다.
“엥.”
이번에는 태공망 턱이 톡 떨어졌다. 얼척도 참으로 없었겠다.
그래서 진짜 사귀었다. 그랬다. 빈말로 시작했는데 진짜로 사귀게 되었으니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정말로 사귀었고 사귀는 사람끼리 할 수 있는 모든 얼레리 꼴레리를 다 했다. 그 태공망과 그 황천화가. 단순한 빈말 하나로. 하지 말자 무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데이트? 뭐 그런 것도 했던 것 같다.
“선인계에서는 데이트를 어떻게 하더라?” “그건 내가 잘 배웠지.”
그나마 황천화보단 태공망이 좀 더 할 만했나보다. 황천화 턱 긁는 소리에 태공망이 짝짝 박수를 쳤다. 저 멀리서 하마가 꽃을 한아름 들고선 날아왔다. 웨딩카가 부럽질 않네. 끝내주게 낭만적이다. 하여간 토행손 그놈이 문제다.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연애를 한다는 놈이 이래서야. 토행손의 평생소원인 드라이브를 본의 아니게 황천화가 이뤘다. 딱 반만 이뤘다. 아웅다웅 사불상 타고 오붓하게 난 것 까진 좋은데 앞에 태운 게 사불상 주인이라서. 선인계가 아닌 인간계 상공을 낮게 날았다. 야트막한 능선과 황무지, 초원을 좇았다. 우습게도 데이트 하는 내내 사불상이 제일 즐거워했다. 손에 쥔 꽃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낭만을 아는 하마다. 그리고 도사들은 낭만이라곤 모른다. 그들이 아는 연애는 낭만보다는 저속함 쪽에 가깝다. 그쪽이 쉬웠고 태공망은 본래 타고나길 타고난 속물이었다.
연애란 생각보다 공공연했고 발칙했다. 소문은 알음알음 파다하게 퍼졌고 둘은 딱히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었으며 그리하여 연애전선은 사불상이 아는 낭만에서 반조차 따라잡지 못했다. 대신 발칙함이 어느 정도였냐면 사불상이 손에 든 구슬마저 떨구고 눈 가릴 정도는 됐다. 대놓고 스킨십이 난무했다는 뜻이다. 어쩌다 지나갈 때 어깨나 사심 있게 두들기고 말 정도면 아무 말을 안 하겠는데, 아주 입술 잘 날이 없었다. 하늘 위 도 닦는 사람들 연애가 어찌 이럴 소냐. 둘 사이에 사귀잡시고 어설프게나마 땅땅했던 그 순간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고 싶은 것이기도 했고. 솔직히 황천화는 그랬다. 나중에는 아예 오기가 붙기도 했다. 도발에 넘어가 시작한 연애이니만큼 더 그랬다. 과연 태공망이 어디에서 물러서나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래도 안 멈춰? 하는 식의 어깃장. 그간 했던 발칙한 스킨십들은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곤란한 듯 눈을 찌푸리며 미안하다 더는 못 하겠다 말하는 태공망을 조금은 기대하면서. 허나 여기에 태공망이 선을 그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여간 둘 다 성격에 뭐가 있다. 그 성격들이 이 연애를 더욱 길어지게 했다. 황천화가 뭐라도 할라지면 태공망은 언제나 눈을 살짝 찌푸리고 찰나의 시간동안 생각하고선 아무 생각도 안 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그래, 하고 말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그 얼굴. 새하얀 벽지를 바른 것 마냥. 그 아래 얼마나 많은 생각들은 덮어 놓은 건지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더 빨리 손을 뻗었다. 연애질이란 걸 할 때, 보기 거북한 얼굴을 가리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그건 바로 입을 맞추는 일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것은 연애였고 연애였기에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얄궂게도 가장 속물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모두가 아는 연애의 방법이 그런 것이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 장갑 아래의 맨살을 만지고 도드라진 손가락 마디를 더듬고 의미도 없는 귓속말을 하고 나란히 걸을 때 귓바퀴를 보다 귓바퀴 위로 입을 맞추고 불시에 장갑 낀 손이 무릎을 두드리고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허벅지가 움찔 떨리는 이 모든 것이 연애였기에. 말 한마디보다도 살가운 게 손짓 한 번 이었다. 연애감정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천화가 좋아한다는 말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던가? 없다. 마치 일말의 정직함이 미덕이자 양심인 것처럼 말이다. 이건 온갖 종류의 거짓말들 중 그들이 토하지 않은 유일한 거짓이다. 대신에 황천화는 종종 물었다.
“우리 계속 사귀는 거야?”
태공망은 여전히 같은 얼굴을 했다. 아주 찰나의 생각하는 얼굴을 슬라이드처럼 스쳐 보내고는 이내 아무 생각도 안 했다는 듯 얼빠진 표정을 내보이고선 말했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얼굴 위로 그어지는 선은 여전히 없었다. 온통 직진, 직진, 직진 뿐.
“그럴걸?”
생각하는 표정은 짧았다. 얼굴을 뒤집어 내보이는 표정은 길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 짧은 표정이 황천화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정도는 됐다. 기억에는 남았으나 하도 순간이어서 여전히 알기는 힘든 사람이었다. 얼굴이 바뀌는 궤적을 쫓으려 했지만 언제나 말미에서 놓쳐버렸다. 눈이 깜박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서. 그래서 남는 것은 웃음밖에 안 나오는 촌극이었다. 허, 황천화가 웃었다. 태공망이 따라서 웃었다. 웃음소리 끝내주게 경망스러웠다. 웃음 하나로 연애는 지속되었다. 아무도 멈추자 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입 맞추고 키스하고 심지어 섹스까지 하는데도. 말했잖은가. 사귀는 사람끼리 할 수 있는 모든 얼레리 꼴레리를 다 했다고. 섹스는 태공망의 천연덕스런 표정만큼이나 별 거 아니었다. 아니 가슴에 손을 얹고 좀 더 정직해져 보겠다. 처음 섹스했을 때 황천화는 이 사람이랑 연애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섹스 아니면 그 사람이 언제 나에게 이렇게나 다정하게 대해 주겠어.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자르는 게 칼 같기가 따로 없었다. 키스하든 포옹하든 섹스하든 그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연애장난 기름기를 쏙 뺀 태공망이 황천화에게 얼마나 얄짤 없었느냐면 말이다. 황천화는 담배를 뻑뻑 핀다. 계절은 계절이고 봄여름가을겨울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입이 마냥 쓰기만 하다. 저기 멀리 금오도랑 곤륜산이 떠 있는데 황천화는 땅에 발붙이고 앉았다. 괜히 태공망이 들쑤시며 말하는 바람에 아픈 적도 없던 배가 다 따끔거린다. 매정하고 매정하고 냉정한 사숙. 하지만 황천화도 태공망 탓할 주제가 못된다. 어차피 황천화도 칼 같기가 태공망과 다르지 않아서. 세상 제일 모진 말들은 죄 귓바퀴로 헛돌다가 떨어진다. 아주 귓등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금오도도 곤륜산도 추락하고 나서도 훨씬 후의 일이다. 하도 일들이 많았어도 그 많은 일 중에 그런 날도 있었다. 딱 한 번 태공망이 황천화 어깨에 이마를 박고선 가만히 있었던 적이 있다. 사귀는 사이임을 빌미로 삼아서. 끌어안는 것이나 입 맞추는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아서 황천화는 가만 내버려 뒀다. 태공망은 울지 않았고 한없이 무료한 표정으로 머리를 기대고선 재미도 없을 풀 한포기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애도도 쓸쓸함도 비통도 아니었다. 그저 한없이 무료하기만 했다. 황천화는 조금쯤은 울고 싶었으나 태공망이 그러했기에 울지 못했다. 그래서 황천화 대신 황천상이 많이도 울었다. 그런 날이 있었다. 하루. 하루에서도 십 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런 걸 연애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조잡한 자기위안을? 황천화가 묻는다면 태공망은 아마도 예의 그 표정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게 중요한가?”
맞다.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끝내주게 다정하고 달콤하게 굴었다. 황천화가 이렇게 기억하는 건 선계대전때와 마찬가지로 태공망이 연애하지 않을 때는 끝내주게 안 달콤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백 번 입을 맞춰 봤자 다음날이면 황천화는 여지없이 길을 나섰고 태공망은 여지없이 길을 막아섰다. 그 다정함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생각하려니 다시금 배가 쑤신다. 이젠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상처인데도. 배를 훔쳤던 손바닥을 본다. 새하얗다.
그리하여 봄으로 되돌아간다. 신계의 날씨란 항상 봄 같아서 사고는 자주 그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뜻한 날들과 바보 같던 표정과 입천장에 닿던 달콤 쌉쌀하던 담배 맛. 그날 이후론 그 담배 맛이 안 난다. 그날 왜 사귀자고 말을 했었을까.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배는 매끈하고 건조하다. 더 이상 피가 새지 않는 배를 끌어안고선 황천화는 생각한다. 몇 백 번이고 동녘 햇빛을 보면서. 그래. 조가에도 봄이 오더라. 안다. 그 당시의 우리들에게는 그런 다정함이 필요했었다. 그런 다정함이라도 있어야 다정함을 방패로 때가 올 때 한없이 매정해진다. 태공망이 황천화에게 그러했고 황천화가 태공망에게 그러했듯이. 이제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쏟지 않아도 된다. 매정해야 할 일은 모두 사라졌다. 곧 한없이 가볍게 다정해야 할 일도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더 말 걸어 볼지도 모른다. 그 때랑 똑같이 별 것 아닌 농담인 것처럼. 아무 무게도 없이 기대도 없이 장난을 흠뻑 적셔서.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척 장난을 제대로 받아쳐주는 뻔뻔한 얼굴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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