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공망 사숙에 대해서라면 들어는 봤다. 말 그대로 들어만 봤다. 원시천존의 수제자가 있는데 태공망이라는 이름이란다, 정도다. 황천화가 그 이름을 듣고선 어떻게 넘겼던가, 이제와선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마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헤-. 그렇구나, 하고 끝. 이름 기억한 게 용할 지경이다. 그만큼이나 관심이 없었다. 원시천존이니 12선인이니 수제자니 하는 것들은 그저 바람에 실려 왔다갔다하는 풍문이었고 황천화는 바람을 귀담아 들을 생각조차 않아서, 풍문은 그야말로 마이동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나마 그가 곤륜산에 있었을 적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태공망과 면식이 있는 자라 하면 그의 스승인 도덕진군일텐데, 도덕진군도 태공망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얘기를 들어봤자 황천화에게 하는 소리는 아니고 우연히 다른 선인과 대화하는 걸 주워들었던 거다. 대화란 으레 주변인의 안부 묻는 데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라 이런 저런 인물들이 불거지다가 이윽고 태공망의 이름 또한 나왔더랬다.
“아- 태공망? 뭐, 잘 지내나? 하하.”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웃음소리로 그는 많은 걸 얼버무렸다. 기억 상엔 대화상대 또한 12선 중에 하나였다. 그 또한 도덕진군을 따라 웃으며 얼버무렸다. 어지간히도 많이 내려놓은 웃음소리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다가 도덕진군의 웃음소리까지 가서야 황천화는 일순 궁금해지는 것이다. 태공망 사숙 그 작자가 곤륜산에서 대체 뭔 짓 하고 다닌 거지? 그리고 작은 사담을 덧붙이자면 12선은 그렇게 웃으면 안 됐다. 태공망 사숙이나 12선이나 전부 도진개진이다. 곤륜산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다. 곤륜산을 내려오기 전, 황천화의 태공망 사숙에 대한 이미지는 이 정도다. 결국 곤륜 이대로 괜찮은 건가? 로 귀결되는. 아주 틀리진 않았다.
뭐, 이젠 알겠다. 별 짓 안했다. 별 짓 안 해서 문제다. 별 짓을 했어야 했는데 안 했다. 원시천존의 수제자이자 봉신계획의 수행자, 주나라의 군사라는 작자의 취미가 의외로 농땡이였다는 소리다. 그는 순전히 농땡이를 부리기 위해 일을 했고 농땡이를 치기 위해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아버지한테나마 태공망 사숙이란 작자가 머리가 좋다는 소리는 들었던 거 같은데, 그 좋은 머리가 죄 이쪽으로만 돌아간다는 말은 미처 못 들었다. 그나마 숨 돌릴 틈도 없이 연달아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밑도 끝도 없이 노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반대로 생각하면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놀아날 짬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경이적인 시간의 마술사였다. 희발이 이것 하나만큼은 태공망에게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감히 우러러볼 수준이었다.
“아, 태공망? 벌써 튀었어. 난 그렇게 대단한 놈을 못 봤다.”
혀를 내두르는 게 어째 도덕진군이 웃던 것과 어조가 비슷하다. 그 농땡이를 치면서도 일에는 전혀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그 탓에 주공단이 이를 갈면서도 어찌 손을 대지 못한다. 제 작은 형님이 반이라도 닮을까 노심초사하는 건 잘 알겠다만 다행히도 시스템 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태공망은 최종결정권을 다 무왕에게 미뤄버렸고 정확히 그 앞 선에서 사안을 정리해놓고 튀었다. 태공망이 튀면 결정권을 가진 희발은 꼼짝없이 잡혀 있어야 했다. 태공망이 노는 중에는 그런 식으로 일이 돌아갔다. 군사 하나 논다고 해서 일이 지연되거나 멈추지는 않았다. 선인이 아닌 인간끼리 머리를 맞댈 시간도 그 사이에 주어졌다. 주공단이 태공망을 차마 어쩌질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엄청나게 찜찜한 얼굴이었다. 이 도사놈을 잡아야 해, 말아야 해. 사이에서 갈등하는 눈썹이 사납고 수심은 깊다. 황천화는 주공단의 표정을 보고 또 멀찍이 도망가는 인영을 본다. 줄곧 보고 있었다. 사불상조차 두고 튀는 치밀함이다. 사불상은 이미 중간에 잡혀서 있는 변명거리 없는 변명거리 다 지어내는 중이었는데 대단한 이유가 없었던 터라 변명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선 지리멸렬해지고 있었다. 사불상의 절절한 하소연은 끝내 주인 욕으로까지 이어진다. 불쌍한 하마. 다만 시간 끌기론 딱이라 잡힌 사불상을 버리고선 태공망은 이미 저만치 도망쳤다. 뒷모습에서부터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하마는 주인 욕을 좀 더 하는 쪽이 좋겠다. 웃차, 황천화는 허리를 든다. 주공단에게 손짓발짓을 한다. 대충 도망간 도사놈 잡아오겠다는 뜻인데, 주공단은 황천화마저 영 못 미더워하는 눈치다. 주공단도 이래저래 겪은 게 많아서 선인들에 대한 불신만 가득 쌓였다. 조금 억울하지만 뭐 어쩌랴. 적어도 이 건에서는 주공단의 예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황천화 또한 예외 없이 믿을 놈이 못 되는 것이다. 황천화는 심심해서 태공망을 따라 튀어보기로 했다. 순전히 심심해서. 훌쩍훌쩍 뛰면 멀찍이 도망가는 인영은 금방이다. 영수도 없는 도사 하나 따라잡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와, 사숙. 우연이네! 이런데서 다 보고!”
시침을 뚝 떼 봤자 상대가 상대인지라 걸릴 것은 다 걸리게 되어있다. 우연일 리가 없지. 그래선가 돌아보는 태공망 얼굴이 떨떠름하다.
“뭐야. 여긴 어쩐 일인고?”
딱 걸려버렸네. 이걸 어쩌나. 얼굴에 고대로 써져있다. 평소엔 뭘 생각하는지도 잘 모를 양반인데 그 순간만큼은 희한하게 머릿속이 제대로 보였다. 뻔할 뻔자긴 하다. 당장이라도 따돌릴 생각이 만반이겠지. 눈 안에 팽이 하나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게 보인다. 이 상태의 태공망이 말을 많이 하면 위험하다. 말려들어선 분명 시원스럽게 따돌려지고 말 테다. 황천화는 말이 길어지려는 걸 틀어막고선 일단 태공망 등을 떠밀고 봤다. 두 손 쫙 펼치면 그 등짝이 손바닥 두 개 안쪽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툭툭 밀 때마다 앞에서는 으윽, 하고 혓바닥으로 턱턱 토해내는 소리가 난다. 황천화와 같이 가는 게 영 내키지 않는 듯하다.
“어디 가는데? 나도 데려가라.” “엑.”
태공망은 결국 황천화를 데리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다. 사불상이 없어서 멀리는 못 간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한정적이다. 그렇게 되다 보니 순 늙은이 동네 산책이다. 태공망은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황천화도 따라 걷는다. 어슬렁어슬렁. 막상 따라가 보니 참 별것도 없구나 싶다. 그에 대해 태공망은 대충 얼버무린다.
“이거 보는 눈이 있으니 허랑방탕하게 놀 수도 없고.”
보는 눈이란 황천화를 말한다. 뭐, 황천화가 있다고 해서 썩 특별하게 잘 놀 것 같지는 않다. 기껏해야 방구석에서 뒹굴거리기나 하겠지. 지적했을 때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그럭저럭 들어맞는 듯하다. 아, 이 얼마나 뻔한 인간이란 말인가. 현기증이 인다. 농땡이가 1인 혹은 사불상을 동행하는 정도로 국한된 것도 딱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다 짬이 맞아서 희발과 튀어봤는데 막상 같이 나와 보니 별로 안 맞더란다. 게다가 희발 노는 게 워낙에 요란스러워서 금방 잡히더라고. 그 후에는 절대 희발과는 같이 안 다닌단다. 눈물날정도로 한심한 이야기군. 황천화는 혀를 찬다. 이 나라 왕이랑 군사 얘기였지, 참. 곤륜도 곤륜이지만 이 나라도 괜찮은 걸까.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문제의 군사 나으리는 남의 걱정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주전부리를 산다. 단 거다. 두 개를 산다. 하나는 어련히 황천화 몫이겠거니 하는데 과연 그랬다. 우리 사숙이 이리도 정이 많다. 곤륜과 주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던 황천화도 이럴 때 만큼은 잽싸게 말을 바꾼다.
“여기.” “아, 땡큐.”
생긴 것부터 그랬지만 받아서 입에 넣어보니 역시나 달았다. 달콤하고, 입천장에 닿았다 금방 부서진다. 입술에 들러붙는다. 어릴 때에나 가끔 먹던 맛이다. 어린애들은 단 거라면 환장하니까. 넓고 넓은 이 땅, 조가뿐만 아니라 서기에서도 비슷한 맛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태공망도 먹는다. 하나 묻히질 않고 먹는 모습을 보니 익숙해 보인다. 태공망이 언제부터 익숙하게 먹는 맛인지는 모른다. 이 서기에 와서부터인지, 아니면 그보다도 훨씬 전부터인지. 황천화로선 가늠할 수 없다.
“이걸 먹고 싶었다 이거지.”
아. 이걸 먹고 싶어서 튀셨구만. 너무나 하찮은 이유다. 사소한 진실은 주공단을 위해서 함구하기로 한다. 애초에 태공망이 주는 것에 공짜란 없으니 달다구리 부터가 입 다물어 주는 값인 게 틀림없다. 그래, 하도 달아서 입이 절로 다물어진다. 입 다물고 쭉쭉 빨고 부셔먹는다. 태공망도 나무그늘 아래 앉아 먹는다. 푸르게 그늘이 진다. 시장이 가까워 사람들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거리의 뜬소문들도 꽤나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뜬소문이라고 해봤자 별 건 없었다. 누가 어떻고 저가 어떻다던 약간의 가십과, 많이 팔리는 물건의 얘기와, 어느 집에선가의 경사, 그리고 은이니 주니 하는 와중 일어나는 약간의 불안감이 다였다. 여기서 주워들을 수 있는 건 그랬다. 별 것도 아닌 떠도는 잡담을 태공망은 오래도록 주워들었다. 손끝에서 막대기 하나가 까닥까닥 흔들린다. 일정한 리듬을 갖고선. 내쉬는 숨에서 가락이 잡힐락 말락 한다. 역시나 황천화는 모르는 노래다.
“사숙, 이제 어디가?” “글쎄. 슬슬 숨을까 싶다만. 주공단이 끄나풀을 풀 때가 됐지.”
태공망도 알고 황천화도 알다시피, 주공단 성정이 그다지 자비롭지는 않다. 이래저래 태공망이 일부러 시간을 주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결국에 아니꼬운 건 아니꼬운 거다. 그는 아무나 쉬이 놀리지 않고 아무나 쉬이 노는 꼴을 못 본다. 유도리와 법도가 있다면 그의 손가락은 자연히 법도를 가리키게 되어 있고 법도대로라면 도사놈은 잡혀 와야 마땅하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공단은 사람을 푼다. 그도 학습이란 걸 한다. 그동안 태공망을 잡느라 쌓은 시간과 경험이 그를 노련하게 만들었다. 수색을 위해선 일단 사람이 모이는 곳부터 푼다. 예를 들면 시장. 태공망이 지금 주저앉은 이 자리도 포함이다. 그래서 자리를 뜰 때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잡힐 수는 없기 때문에 수색이 오기 전에 시장을 떠야만 한다. 물론 사람 많은 시장으로부터 한적한 골방까지 찬찬히 포위망을 좁혀가기 때문에 언젠가는 잡히게 되어있지만. 그리고 황천화는 깨닫는다. 이 쫓고 쫓기는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주공단은 자신의 집요한 성격을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고. 자리를 터는 태공망의 뒷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주공단도 그렇게 생각할 게다. 튀어야지, 튀어야지. 중얼거리며 총총 걷는 발걸음에서는 흠뻑 화색이 묻어난다. 분명 태공망은 주공단과의 술래잡기 자체를 즐기고 있다. 문득 주공단이 가엾어진다. 그 불쌍한 양반도 말리길 대체 얼마나 말린 건지.
“근데 천화. 계속 따라올 텐가?” “왜, 안 돼?” “아니 뭐…”
말끝이 흐려지지만 아주 싫다는 소리는 아니다. 동행으로서 최악은 아닌가보다. 이로서 희발보다는 황천화가 조금 더 낫다는 게 드러난다. 뭐에 조금 더 낫다는 건지. 황천화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해서 금방 지워버린다.
“그럼 어디 사숙의 비밀 아지트나 구경해 보자고.” “그런 건 없다네.”
말투는 장난스럽다. 말끝이 늘어지다가 간결하게 갈무리된다. 원래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다.
태공망이 슬슬 걸어가지만, 어디 딱히 정해둔 데는 없는가 보다. 발길에는 정처가 없다. 황천화도 별 수 없이 흘러간다. 황천화 발걸음이 좀 더 경쾌하다. 살짝 뛸 듯이 디뎌, 공중을 걷듯 사뿐사뿐 걷는다. 태공망은 고저 없이 걷는다. 덕분에 황천화가 앞섰다가, 금방 뒤쳐지거나 한다. 계속 앞서기에는 길을 모르니까. 모를 얼굴이 두엇 보였다가 곧 사라진다. 웃는 얼굴이다. 하나같이 손가락질을 하는 게 그 방향에 주공단 끄나풀이 있는 듯했다. 언제 제보까지 받을 인맥을 쌓았는지 혀를 내두르겠다. 태공망은 마주 웃었고 그건 말 걸어오는 상냥함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간사한 웃음이었지만 어쨌든 고맙게도 알려준 방향과는 반대쪽을 향하기로 한다. 황천화는 시장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아까 먹었던 단 간식을 하나 더 샀다. 저가 먹을 것은 아니고 천상 몫이다. 조가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맛이라면 아마 천상도 좋아할 게다. 손에 짐이 늘었다. 손에 든 꾸러미를 늘어진 녹음이 파스스 쓸었다. 점점 음지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렷다. 술래잡기가 아니라 숨바꼭질임을 그제야 알았다. 그것도 등잔 밑의 숨바꼭질.
“사숙, 돌고 돌아서 돌아온 거 같은데.” “벌써 기어 들어가면 아깝지 않느냐. 놀다 가자구.”
주공단이 발을 구를 성 안쪽으로 더욱 숨어 들어간다. 그림자와 녹음이 겹쳐져 그림자가 짙어진다. 눅눅하고 푸른 향 또한. 누각 사이에 좁은 길을 걷고 다시 담장을 끼고선 걸어 들어간다. 한참 들어가서야 겨우 멈췄다. 그냥 공터였다. 휘파람도 잠시 고였다 흩어질 짙은 공터. 약간이나마 트인 데로 나오니 다시 햇빛이 보인다.
“그래서 여기가 사숙 아지트라고?” “그건 아니고.”
주공단이 수색에 도가 텄다면, 태공망은 반대다. 하도 숨어 다녀서 이제 숨는 데에 도가 텄고, 그래서 숨어 틀어박히는 곳은 매일 다르다. 숨다 보니 오늘은 여기다, 하고 끝나는 이야기다. 주공단이 푼 사람들이 성 밖을 쓸고 난 후 포위망을 좁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여기서 실컷 늘어지겠다는 건데 황천화로선 기껏 따라 나온 게 무색하다.
“사숙도 정말 재미없게 노는구만?” “뭐-, 그렇지.”
벌써부터 들리는 대답이 성의 없어졌다. 정말로 늘어질 심산인지 태공망은 대놓고 사지를 축 늘어뜨린다. 장소를 개의치 않고 드러눕는 건 예로부터 태공망의 특기다. 눈이 가늘게 감긴다. 낮잠이라도 자는 듯 보이지만, 또 아주 자는 건 아닐 것이다. 잔다고 마음 놓았다가 도리어 발목 잡힌 일이 몇 번 있다. 선잠과 사색의 경계선에서 그는 너울진다. 이럴 때 그의 얼굴은 조금 애 같다. 하도 애 같아서 이 사람이 나이먹지 않는 선인이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주전부리 얻어먹은 황천화도 뭐 별 수 있나. 같이 늘어지는 수밖에. 옆에 주저앉는다. 딱히 잘 생각은 없어서 앉아서 시간이나 죽인다. 노래나 흥얼거리지만 아까 태공망이 입술에 얹듯 말듯 했던 가락과는 전혀 다르다. 자장가와는 더욱더 거리가 멀다. 민가에서 떠돌아다니던 유행가다. 원래 가사 없이 흥얼흥얼 가락만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시구를 붙여 넣었다. 시가 하필 적나라한 사랑가여서 유행가는 그대로 사랑노래가 됐다. 웃기게도 가사가 붙은 노래는 애들의 입에서부터 붙어서 떠돌아다니다 이내 어른들에게도 옮겨 붙었다. 그때는 황천화도 애였다. 어릴 적에 배웠다. 이제와 부르려니 낯도 뜨거운 노래를. 자는 듯 마는 듯 애매한 수면에 있던 태공망에게도 고스란히 들렸을 게다. 얼굴 애 같은 태공망도 실상은 애가 아니라서 똑같이 낯 뜨거울 일이다. 사랑이라니 악몽 같다. 끙, 끙. 자장가도 아닌 노래가 악몽을 불러 태공망이 절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황천화가 깔깔 웃었다.
“이러려고 따라왔냐고.” “아니? 이러려고 따라왔지.”
고개를 숙이고 태공망의 머리를 젖힌다. 이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둥근 이마다. 실실 웃는 그대로 입술을 부닥치면, 태공망이 소리를 꽥 지른다. 버둥거리지만 어차피 얼굴이 잡혀서 못 움직인다. 따라 온 이래 처음으로 일이 재밌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낯간지러운 사랑시도 만들어지는가 보다.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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