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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H2 / 히데히로 / 끝 2025-09-08 13:22





“길어야 3개월이지.”


평화로운 오후였다. 병원 또한 평화로웠다. 얇은 블라인드 사이로 초겨울의 햇볕이 새어 들어왔다. 의사는 약간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진단서에 알 수 없는 영어를 써내려가다 흘끗 쿠니미 히로를 올려다보았다.


“아, 그래요?”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쿠니미 히로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이해는 청각보다 느렸다. 의사 앞에서야 모두들 그러할 것이다. 의사도 그에 익숙한 듯했다. 자신의 얼떨떨한 모양새에 일말의 동정조차 섞이지 않은 눈빛으로 그는 말했다.


“괜찮아. 일상생활엔 별 지장 없어.”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이다. 의사가 툭툭 내뱉은 말들은 여전히 쿠니미 히로의 이해에 가 닿지는 못했다. 의사는 다시 진단서에 시선을 집중했다. 필체가 시원시원하게 종이를 채워 내려갔지만 알아 볼 수 있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분명 쿠니미 히로의 팔에 대한 단어들일 텐데도. 의사가 맨 마지막으로 힘차게 점을 찍는 모습을 쿠니미 히로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탁. 점이 찍히고 펜이 내려놓이는 순간,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격한 운동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선고는 담담하고 무료하게 의사의 일상 속에서 이루어졌다. 쿠니미 히로는 묻고 싶어졌다. 선생님, 그럼 야구는 격한 운동일까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짧은 상담 끝에 쿠니미 히로는 진료실에서 쫓겨났다. 그가 의사를 더 붙들고 있기엔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병원 스피커로 울리는 낭랑한 마이크소리가 곧 야구와의 영원한 안녕을 고하는 종소리였다. 귀가 먹먹했다. 쿠니미 히로는 그 방송소리를 들으며 큼큼 헛기침을 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뒷목잡고 쓰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팔을 두어 번 털어보았다. 놀랍도록 멀쩡했다. 유리팔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의사가 밥 잘못 먹고 구라 친 거 아닐까. 애들의 의심은 뻔한 곳에 가서 닿는다. 하지만 히로에게는 그 정도로 반발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그러기엔 의사는 너무나도 침착했고 엑스레이 사진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히로의 유리팔이 마치 그의 일상 내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양 군 데다가 일말의 동정조차 하지 않았다. 히로는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의사의 태도에 휩쓸려갔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와, 나 팔이 망가졌구나.




히로가 하도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나와서 셋은 별 일 아닌 줄 알았다. 노다 아츠시는 기지개를 켰다.


“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온 히로도 그럴싸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밥 먹자. 뭐먹지?”


가면서 넷은 팔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무탈하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팔 얘기를 제외한 온갖 잡담이 흘러나왔다. 아니 히로가 의도적으로 팔 이야기를 피했다. 제일먼저 위화감을 느낀 건 아마미야 히카리였다. 밥을 먹는 히로를 보다가 불쑥 물었다.


“병원에서 뭐라고 한 거야?”


“끝났대.”


히로는 먹던 채로 우물거리며 답했다. 입에 음식이 잔뜩 들어가 있어 발음이 불분명했다.


“히로, 뭐라는 거야. 똑바로 말해봐.”


히카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히로는 나머지 음식을 마저 씹어 삼켰다. 어떻게 하면 가장 아무렇지도 않게 잘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자신에게 말했던 의사처럼.


“너 임마 두 개 먹었잖아.”


히로는 괜히 아츠시 먹는 것에 트집을 잡으며 현 상황을 묻혀 말했다. 끝났다고. 한동안 히로 혼자서만 밥을 먹었고 아무도 먹지 못했다. 쿠니미 히로에게는 의사만큼의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일상생활엔 아무 지장 없댔어.”


셋을 달래준답시고 할 수 있는 얘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아 그래?”


이윽고 아츠시가 다시 젓가락을 집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츠시의 젓가락은 가끔 헛돌았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밥을 한술 뜬다는 게 빈 젓가락이었다. 입에 넣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노인네처럼. 그걸 보고 화를 낸 건 히카리였다.


"너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어쩜 그렇게 태평해?"


타치바나 히데오가 히카리를 말렸다. 나란히 앉은 히로와 아츠시는 서로를 마주보고 그냥 밥만 먹었다.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냐고 질문 받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츠시의 허리춤에도 사형선고가 내리꽂혔다. 아츠시는 같은 의사의 같은 말을 목전에 두고서야 히로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싶어졌다. 아츠시가 병원에서 나올 때 히로는 그도 같은 소리를 들었음을 알았다. 그렇지. 그렇게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밖에 없어진다. 이날 넷은 전과 같이 밥을 먹고 헤어졌다. 히데오가 히카리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화제는 이어지다가도 뚝뚝 끊겼다. 히카리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본 히데오는 가로등 아래 한참을 쭈그려 앉았다.


야구가 전부였다. 야한 책 몇 권과 야구로 이루어진 어린 시절과 중학교였다. 한여름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그것들은 일순간에 불이 나가고 천천히 점멸하다가 금방 깜깜해졌다. 그때의 쿠니미 히로는 곧잘 코시엔의 꿈을 꾸었다. 코시엔의 꿈이었음에도 일어나서 생각했다. 이거 참 꿈자리가 뒤숭숭하군.




겨울. 히로와 아츠시는 센카와 고등학교에 지망했다. 히로는 대놓고 히데오의 앞에서 지망 고등학교를 썼다. 히데오는 팔짱을 끼고 그걸 내려다보았다. 야구부가 없는 학교.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히데오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안 할 거야?”


타치바나 히데오가 물었다.


“어. 건강이 제일이잖아. 야구가 인생의 전부인 것도 아니고.”


쿠니미 히로는 지극히 옳은 말을 했다. 너무 옳아서 히데오는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히데오는 고개를 돌리고 히로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는 전부였잖아.




친구이자 우상이었다. 야구를 하던 셋의 관계는 그랬다. 방에서 뒹굴며 야한 책이나 뒤져보고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며 시시덕거리는 친구였지만 야구에 있어서는 믿음직한 팀 메이트였고 동경이었다. 우정과 호감과 동경과 자랑이 그물처럼 얽힌 낡은 담요 한 장을 타치바나 히데오는 질질 끌고 다녔다.


3루에서 내내 봐왔다. 쿠니미 히로의 등번호.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햇빛과 마운드 위의 그림자. 모자를 벗어 땀을 닦고, 손을 허리 뒤에 돌려 공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노다의 사인을 보고 와인드업. 그 손목의 움직임과 손끝에서 뿌려지는 공. 모두가 공에 집중한 순간. 글러브에 닿는 경쾌한 소리. 스트라이크! 3루에서 움직일 필요조차 없이 발을 땅에 박고 지켜보던 그 스트라이크. 마운드 위의 햇빛은 유독 밝았다. 적어도 그가 본 것 중엔 가장 밝았다. 그건 아마도 사랑과 가장 흡사한 어떤 것이었을 거다.


그게 더 이상 없다고 한다. 타치바나 히데오는 히로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기에 히데오는 히로가 야구에 집착할 거라 생각했다. 몇 년을 해온 야군데 쉽게 버려질 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미련이라도 질질 끌 것이라고. 그건 히데오의 생각이라기 보단 바람에 가까웠다. 히데오는 사실 히로가 야구를 놓지 않기를 바랐다. 허나 그건 다 바람일 뿐이었고 히로는 이보다는 더 미련 없을 태도로 야구를 그만둔다고 했다. 히데오와 히카리 앞에서 환자들은 보란 듯이 의논했다.


“역시 그만두는 게 좋겠지?”


라고 말하고 서로 고개를 주억거렸을 때, 히데오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중얼거렸다. 거짓말. 도리어 둘에게 쓴 소리를 한 건 아마이야 히카리였다.


“남자답지 못하게! 근성도 없어.”


“예이 예이~”


히카리의 말들을 그냥 그냥 받아넘기는 둘은 죽이 잘 꽤 맞았다. 역시 배터리는 배터리였다. 쿠니미 히로는 학교 그라운드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히데오보다는 히로쪽이 좀 더 현실을 빨리, 그리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야구가 없는 일상은 히로 위를 천천히 부유하며 지나갔다. 히카리는 히카리답게 히로의 결정을 받아들여 주었고 그렇게 자기대신 이상을 말하며 화를 내 준 히카리가 히로는 고마웠다. 이대로 노다 아츠시와 함께 야구부가 없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이다. 야구가 아닌 팔에 무리가 가지 않는 다른 부 활동을 하고 여름방학엔 코시엔 신경 쓸 것 없이 해변으로 놀러나가고. 아 히데오는 분명 갑자원에 갈 테니 히데오를 응원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겨울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박탈감이었다. 히데오는 갑자원에 갈 수 있겠구나. 공을 던지고 치고 잡고 히데오는 다  할 수 있겠구나. 중학교 그라운드에서 연식공을 잡았다. 역시 경식공을 한번쯤 던져보고 싶었다. 어느새 히카리가 옆에 와 있었다.


쿠니미 히로의 굿바이 투구는 여기서 이루어졌다. 굿바이. 굿바이.




굿바이 투구. 마지막 연식 공. 이제 정말 끝이었다. 쿠니미 히로는 히카리와 헤어져 이제 막 가로등 불을 밝히기 시작한 골목길을 혼자 걸었다. 히카리가 공을 반 어거지로 히로 손에 챙겨주었다. 그걸 히로는 익숙한 버릇대로 손안에서 굴렸다. 그간 담담하게 눌러왔던 것이 불쑥 솟아올랐다. 나는 여기서 끝이었다. 사실 경식공도 한번 던져보고 싶었고 히데오와 같은 학교에 가고도 싶었고 셋이 함께 또 야구부에 들어가고도 싶었다. 시합을 하고 싶었고 그 설레는 긴장감을 계속 누리고 싶었고 코시엔을 노리고도 싶었고 코시엔 마운드에도 서 보고 싶었다. 이미 꿈속에서는 백 번 천 번도 넘게 서 봤다.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믿었었는데. 한 달 전만 해도.


향할 곳이 없었기에 눌러놓았던 것들은 상실을 제대로 실감하면서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싫다. 이런 구질구질한 감정. 히로는 공을 한번 허공에 던졌다. 이건 다 야구로 인해 쌓인 감정이었고 히로는 그걸 야구로밖에 해소할 줄을 몰랐다. 그 야구는 이제 영원히 뺏겨버렸고 야구로 빚어온 작은 인생의 한 토막이 떨어져 나가 완전히 부셔졌다. 울컥 솟아오른 것을 쿠니미 히로는 막지 못했다.




여기서 약간 재수가 없었다면, 타치바나 히데오가 하필 그날따라 집에 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건만 영 텐션이 살지 않았다. 확실히 히로와 노다가 야구를 그만두게 된 게 히데오에게는 타격이 컸다. 게다가 같은 학교도 아니었고. 히데오는 그날 연습을 일찍 접었다. 와르르 웃고 있는 텔레비전 소리와 형광등. 히로가 멋대로 붙여놓은 포스터와 정리하고 가지 않은 비디오, 과자봉지. 그리고 배트와 막 가지고 연습하기 시작한 경식공. 물끄럼 바라보고 있는데 탕탕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저 예의상이었고 히데오가 문을 미처 열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쿠니미 히로였다.


예고도 없이 히데오의 방에 들어온 히로가 손에 야구공을 들고 있는 걸 보며 히데오는 굉장히 안심했다. 저조차도 놀랄 정도의 안심이었다. 거봐, 히로가 공을 손에서 놓을 리가 없잖아. 말은 그래도 히로는 어떤 형태로든 야구를 할 것이라고. 자신은 공을 던지는 히로의 등을 계속 바라볼 수 있다고. 그런 종류의 기대와 안심이었다.


정작 히데오의 안심 따위, 히로는 알 바 아니었다. 아니 히데오를 배려할 만큼의 여유가 히로에게는 없었다. 히로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다. 조금 이기심을 부려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 상대가 타치바나 히데오였던 것도 있었다. 너는 계속 야구를 할 수 있잖아. 고등학교에 들어가도 야구를 하고, 갑자원에서도 또 그 이후로도. 계속. 계속. 세상의 모든 야구를 하는 사람을 대표해서 내 어리광 하나쯤은 받아줘. 그런 생각이었다. 또한 히데오는 꽤나 믿음직한 친구였으니까.


쿠니미 히로는 방을 한번 훑었다. 중학교 때 곧잘 놀러와 굴러다니며 놀았던 친숙한 방. 낯익은 포스터와 비디오. 텔레비전의 액정. 바닥에 굴러다니는 과자봉지.


“그대로잖아.”


히로가 중얼거렸다.


“뭐 바뀔 것도 없잖아.”




히데오가 히로의 혼잣말을 맞받아쳤다. 하긴. 히로는 그에 수긍했다. 손에 들려있던 공을 다시금 보았다. 한번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 손에 감기는 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와인드업을 하고 제대로 던지려다가 그만두고 그냥 대충 히데오에게 던져주었다. 툭 던지니 침대 머리맡에 앉은 히데오가 양손으로 받았다. 히로가 제 손에 고무공을 볼 때부터 히데오도 공을 계속 보고 있었다. 히데오는 이제 자신의 손에 들어온 공을 보았다. 때가 탄 고무공. 중학교 야구부에서 연습할 때 쓰던 연식구였다.


“내 마지막 공이야.”


쿠니미 히로가 말했다.


히데오는 아직 그 공의 의미를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말조차도. 히로는 그냥 싱긋 웃었다.


“쿠니미 히로 선수. 굿바이 투구. 타자 없음. 포수 없음. 한가운데 직구. 키로 수 불명. 스트라이크!”


히로의 말을 들으며 히데오는 손안의 공을 보다가 히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히로는 웃고 있었다.


“시합 종료.”


마지막 공이었다. 이제 영영 히로가 공을 던질 일은 없을 것이다. 반 장난으로도 이제 히로는 공을 잡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더 깔끔한 마지막이 있을 수 있을까. 히데오가 아직 히로가 야구를 버리지 않을 거라 철없이 믿고 있을 동안 히로는 이미 마지막 준비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히데오는 눈도 감지 못했다.


“내 마지막 공 너 줄게.”


히로는 그 마지막 공에 미련조차 두지 않았다. 히데오는 다시금 때탄 공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오늘의 히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말을 하고 히데오에게 이제 끝이라는 사실을 연신 박아 넣고 있었다. 히로 네가 야구를 그만둘 리 없잖아.


“거짓말.”


늘 속으로 품던 말이 뇌까려졌다.


“거짓말 아냐.”


입으로 뱉은 말은 금방 히로에게 부정당했다. 그리고 그걸 부정하는 순간 히로의 속에서 꿈틀대던 감정이 최고점을 찍었다. 부정하는 건 쉽다. 내가 그걸 긍정해 체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지옥을 밟아 내려갔나. 히데오는 그 지옥을 모른다. 거짓말 아냐. 이 말이 얼마나 힘들게 나오는 말인지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모르니까 그렇게 쉽게 말이 나오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라고.


“너 그거 아냐?”


히로는 말속에 아주 작은 손톱을 세웠다. 중학교 와서 내 처음 공과 마지막 공. 너는 둘 다 못 쳤지. 중학교 첫 만남 때의 삼진. 그리고 최후의 타자 없는 스트라이크. 타치바나 히데오는 모두 방망이조차 닿지 못한 셈이 되었다.


“그러니까 너한테 주는 거야. 이렇게 대단한 투수가 있었음을 알고 고등학교 가서도 더욱 정진하도록.”


크흠, 히로가 헛기침을 했다. 쳐 보지도 아니, 보지도 못한 쿠니미 히로의 마지막 공이 타치바나 히데오의 손 안에 있었다. 히로는 이쯤 됐다 싶어졌다. 너무 돋궈놨군.


“자 그럼 안녕.”


슬슬 튀자 싶어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쿠니미 히로는 그대로 다시 방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에 히데오가 히로의 팔꿈치를 억세게 쥐고 끌어당겼다. 힘은 생각보다 훨씬 셌다. 히로가 문고리를 놓치면서 열렸던 문이 밤공기를 한 움큼 집어먹고는 도로 스르륵 닫혔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히로는 방금 히데오가 앉아있던 바로 그 침대 가장자리에 주저앉혀졌다. 히데오가 잡아당긴 팔꿈치가 몹시 아팠다. 엑스레이 사진 위로 의사가 볼펜을 튕기던 문제의 팔꿈치였다.


“인마, 난 환자야!!”


히로가 항의했지만 히데오는 듣지 않고 있었다. 들었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히로의 팔꿈치는 히데오에게 있어 그 의미를 잃어버렸으므로. 공을 던지지 않는 팔 따위. 히데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히로의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굳은살 박인 손가락. 이젠 영영 옛날의 유물이 되어버린 손. 어떻게 이 손이 공을 잡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히데오는 두 번을 뇌까렸다. 처음의 말은 히로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마디가 들렸다.


“비겁해.”


너는 비겁해. 히데오는 그렇게 말했다. 네 손을 영원히 야구의 무덤에 묻어놓고, 너는 그렇게 떠날 셈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무덤 위에 자신은 더 이상 꿈조차 꾸지 못할 훈장을 걸어놓고선. 과거의 화석에 이제 히데오의 배트는 영영 닿지 못한다. 그런 무덤은 필요 없었다. 너는 네 야구의 무덤을 만들고 박물관을 만들어 그걸 나한테 떠넘길 셈이지. 연식구는 그것이었다. 연식구를 볼 때마다 히데오는 히로의 묻어놓은 마지막 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평생 갈런지도 몰랐다.


“너는 비겁해.”


이윽고 히데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망가지 마. 그렇게 도망가지 말아줘. 히데오는 눈을 부릅뜨고 히로를 노려보며 울었다. 참고 있었는지 눈가가 빨갰다. 눈물은 굵어 산을 타는 개울처럼 히데오의 뺨을 타고 흘렀다. 히데오가 줄줄 울면서도 도통 닦을 생각을 안 해 히로는 손을 뻗어 히데오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조금은 우악스런 손놀림이었다. 손가 락끝은 건조하게 일어나 있어서 히데오는 눈가가 쓰렸다. 히데오는 히로의 손을 나꿔채 그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손가락 사이를 타고 눈물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평생 야구를 못해도 좋아? 상관없어? 히데오의 숱한 물음들은 눈물과 함께 뚝뚝 떨어졌다. 히로의 손이 히데오의 눈물로 푹 절여질 때까지 히로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히데오의 손에 잡혀 가만히 앉아있었다. 끝끝내 미안하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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