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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배터리 / 카이미즈 / 뭘까 2025-09-08 11:28





카이온지 카즈키로부터 연락이 부쩍 늘었다. 아니, 부쩍 늘어난 정도가 아니다. 뭐해? 밥은 먹었어? 난 오늘은 뭐 했어. 잘 지내고? 거긴 어때? 어제 텔레비전 봤어? 나중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 기타 등등. 핸드폰을 보면 얼굴이 절로 찌그러진다. 메시지 목록에 하나 건너 하나가 죄 카이온지 카즈키라서. 메시지는 가지각색이지만 그 안에 내용은 없다. 고작해야 안부인사, 시시껄렁한 잡담이 다다. 그리고 미즈가키 슌지가 생각하기에, 카이온지 카즈키와 미즈가키 슌지는 시시덕거리며 이런 잡담 따위나 나눌 사이가 아니다. 언젠가 그걸 지적했더니, 섭섭하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이건 틀렸다. 아주 틀려먹었다. 엮어도 잘못 엮였다. 적어도 카이온지가 생각하기에 카이온지와 미즈가키가 어떤 사이임에는 분명하다. 미즈가키는 별로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사이가 대체  뭐란 말인가.


“친구지.”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


감자튀김 던질 뻔 했다. 애가 고등학교 가더니 아주 못된 것만 배워왔다. 속도 없고 실도 없고 밸도 없는 놈. 욕지거리는 입에서만 빙빙 돈다. 욕해봤자 속도 없고 실도 없고 밸도 없는 놈이랑 감자튀김이나 먹고 있는 자신은 더한 머저리가 되기 때문이다. 

카이온지로부터의 연락은 핸드폰 메시지로만 끝나지 않아서, 이렇게 종종 만나 가십이나 풀어대고는 한다. 주로 가십을 푸는 건 미즈가키 쪽이고 카이온지는 듣는다. 듣다가 꼭 한 두 마디씩을 아무렇게나 찔러 넣는다. 그건 제법 묵직하기도 하고 때로는 종잇장처럼 아무 무게 없기도 하다. 아무 무게 없는 쪽이 차라리 덜 피곤하지만 피곤하지도 않은 얘기를 하려고 황금 같은 휴일에 카이온지 카즈기와 얼굴을 맞댄다는 사실도 썩 달갑진 않다. 결국은 모두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다. 온전히 자신에게 돌아가야 하므로 욕지거리는 삼키는 게 당연하다. 속도 없고 실도 없고 밸도 없는 놈. 

속은 파버렸다. 실은 납작하게 밟아버렸다. 밸은 깨끗하게 들어냈다. 그리하여 남는 건 껍데기다. 껍데기만 남은 미즈가키 슌지가 카이온지 카즈키와 함께 농담 따먹기나 한다. 영혼이 비어있어 말투는 중심을 잃고 흐느적거린다. 속에서 내놓을 게 없으니 주변 잡기들을 끌어 모은다. 그래서 남는 게 가십이다. 카이온지 카즈키는 그것만으로도 좋단다. 정말로 퍽 즐거운 듯하다. 그 얼굴을 보며 미즈가키 슌지는 몇 번이고 감자튀김을 내던지고 싶은 욕망을 씹어 삼킨다. 

메시지에서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잡담을 몇 시간이고 해내고 나면 카이온지 카즈키는 꼭 이렇게 말한다. 


“그럼 미즈가키, 다음에 또 봐.”

“다음은 무슨.”


미즈가키의 답변도 한결같다. 물론 미즈가키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다음은 없다고 숫자를 셀 수 없을만치 되뇌이지만, 그 결심은 한 달을 채 가지 못한다. 한 달이 무어냐, 이미 다음날 카이온지 카즈키의 메시지를 보면서부터 모든 건 글러먹어진다. 주말에 얼굴이나 보지 않을래? 저렇게 말하는 놈은 바로 어제 봤던 얼굴 아니었던가. 원점이다. 씹어 삼킨 감자튀김으로 가득 찼던 속은 꼭 그만큼이 도려내어진다. 짠내조차 남지 않는다.

원래는 진작 끝이 났어야 했던 인연이다. 시합은 꽃이 채 지기도 전에 끝이 났는데, 관계는 무 자르듯 깔끔하게 썰어지지 않고 질질 끌기만 한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방향으로 얼룩만 남긴다. 카이온지는 이걸 친구라고 말한다. 미련을 질질 끌며 과거를 곱씹고 끈덕지게 연락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어떻게든 이어가는 이 관계를 정의하기를 그렇게 한다. 친구? 웃기지도 않은 소리 말아라, 싶다. 시시때때로 연락하고 황금같은 주말을 쪼개 같은 동네도 아닌 닛타와 요코테란 거리를 횡단해 만나는 게 친구라고? 미즈가키 슌지의 친구라는 정의 안에는 이따위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가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건, 관심 있는 여자애 앞에서 뿐이다. 아무렴, 모든 노력의 목적은 명료해야만 한다. 그래서 묻는다.


“너 나 좋아하냐?”

“무슨 소리야?!”


그 안에 담긴 연애적인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닌지 카이온지 카즈키가 펄쩍 뛰고 본다. 연애적 의미가 아닌 쪽으로 순수하게 좋아하지, 라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조차도 나오지 못한 걸 보면 어지간히 놀란 듯 싶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진심을 보는 건 재미없다. 자신이 생각한 쪽의 진심이 아닐 때에는 더. 그만 혀를 차고 만다.


“와, 나 지금 좀 상처받은 거 같아. 내 하트는 연약하다고.”

“그럼 안 놀라게 생겼어. 진짜 깜짝 놀랐다. 넌 농담을 해도 참.”

“지금 네가 그래. 네가. 아주 추근거리기가 꼬시는 수준이라고.”

“누가 누굴 꼬신다는 거야.”


기가 막힌듯한 한숨. 한편으로는 이런 공방이 아주 싫지도 않나 보다. 하긴 카이온지 카즈키와 이런 쓸데없는 입씨름을 벌여 주는 것도 미즈가키 슌지 밖에는 없을 테다. 카이온지 카즈키는 이걸 꽤 즐기는 편이고 미즈가키 슌지는 이 점이 꽤 골치 아프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러니까 꼬시는 거 아니면 이런 거 관둬.”

“에.”


카이온지 카즈키가 잔뜩 서운한 소리를 낸다. 미즈가키의 말뜻을 전혀 못 알아먹은 것이 분명한 얼굴로. 그래, 전혀 못 알아먹었으니 메시지가 계속 오는 거다. 꼬시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똑같이 별 게 없다. 잘 잤냐는 안부인사다. 다만 월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왔다는 게 문제다. 반듯한 문장 위로 정색하던 카이온지 카즈키의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고 두야. 미즈가키 슌지는 머리를 싸쥔다. 노력이란 목적이 명료해야 된댔다. 카이온지의 정성의 목적은 대체 뭐란 말인가. 친목도모라기엔 도를 넘었다. 연애목적도 아니랬다. 나오는 게 신음이다. 드러누워 앓는 소리만 가득한 채 핸드폰을 들고선 답문을 보낸다는 데서 신음소리는 더욱 깊어져만 간다. 왜 끊지를 못하고 이러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전송버튼을 누른다. 속도 없고 실도 없고 밸도 없는 미즈가키 슌지.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일어났니? 빨리 나와서 밥 먹으렴.




미즈가키 슌지는 왜 이런 쓸데없는 노력에 어울리고 있는가. 왜 굳이 답변을 보내고 만나자는 권유에 어울리는가. 단 한 번도 빼지 않고선 말이다. 그의 목적은 카이온지 카즈키보다는 차라리 명쾌하다. 결론은 이거다. 이럴 바엔 이자식이랑 연애를 하고 말지. 자포자기에 다다른 결론은 삐딱선을 탄다. 미즈가키도 삐딱선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고작 고등학생이고 고작 애인지라 이런 소모적인 감정낭비엔 그만 억울함이 앞서는 것이다. 약간은 홧김이랄 수도 있겠다. 친구? 웃기지도 않는 소리 말라지. 이딴 간질간질한 친구따윈 필요 없다. 미즈가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도 모르고선 메시지가 온다. 주말에 뭐해? 

그래서 주말이면 또 만나 밥을 먹는다. 먹는 밥이라고 해봤자 똑같다. 학생들이 가 봤자 어딜 가겠나. 패스트푸드다. 값싸고 편리하고 익숙하다. 비슷비슷한 메뉴를 골라 먹고 감자튀김을 케첩 위에 뭉개며 잡담을 한다. 감자튀김이 뭉그러질 때, 미즈가키의 안에서도 무언가 뭉그러지곤 하는데 그는 그걸 애써 무시한다. 그만큼 지독한 맛의 감자튀김도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닛타시를 통틀어서도 제일로. 


“저기,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듣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읊어줄 수 있다. 미즈가키로선 들어봤자 재미도 없는 이야기인데, 고교야구 이야기였다. 슬슬 작년에 비해 어디가 실력이 두드러지고 어디가 팀 재편성을 잘해냈는지가 드러날 때다. 정말로 듣고 있었지만 카이온지가 못 믿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고교야구 이야기니까. 역시나 안 믿는 눈치다.


“무슨 생각하길래 그렇게 골똘해?”

“너랑 연애할 생각.”

“에-”


솔직하게 말했더니 카이온지 얼굴이 감자튀김만큼은 뭉그러진다. 적어도 미즈가키에게 있어 이건 볼만한 얼굴이다.


“지금 충분히 좋은데 꼭 그래야만 해?”

“너나 좋은 거겠지.”

“미안하네. 나만 좋아서. 미즈가키는 이렇게 노는 거 맘에 안 들어?”

“그래. 그래서 지금 너 꼬실 생각 만만이니까.”


음료 빨대를 문다. 오늘은 콜라다. 영 미적지근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못 골랐군. 또한 상대도 잘못 골랐다. 연애는 싫은데… 카이온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선명하다. 그래, 참 싫기도 하겠다. 이젠 알겠다. 카이온지 카즈키는 미즈가키 슌지가 연애 상대로 싫은 게 아니라 연애 자체가 싫은 거다.


“쑥맥같으니.”


닛타시도 취소한다. 아주 세상에서 가장 맛이 없을 감자튀김을 먹는다. 일단 다 먹는다.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대신 케첩통은 감자튀김을 짓이겨 놨더니 아주 엉망이다. 어딘가 난자한 것 마냥. 


“미즈가키가 나랑 연애를 하고 싶어 할 줄은 몰랐는데.”

“하고 싶은 거 아냐. 근데 너랑 이따위로 지낼거면 그냥 연애를 하는 게 낫겠어.”

“연애라…”


카이온지 카즈키가 턱을 괸다. 목소리에 달콤함이라고는 한 스푼도 묻어나지 않는다. 휘저어 봤자 일말의 호기심과 막연한 거리감 정도다. 그리고 또 뭘까. 감도 안 잡히는 나머지 미지근한 콜라들. 


“됐다, 됐어.”


미즈가키 슌지는 난자한 상흔같은 케첩의 흔적을 내려다본다. 속도 없고 실도 없고 밸도 없는 놈. 빈껍데기 안에 감자튀김만 가득 쌓여서 목이 졸려 죽을 거다. 집에 가면 일단 핸드폰의 카이온지 카즈키의 이름부터 지워버린다. 여동생에겐 카이온지 카즈키가 이미 죽었고 집으로 전화하는 건 귀신이니 전화가 오거든 바로 끊고 소금을 뿌리라고 말해놔야겠다. 이런 웃기지도 않는 시트콤은 오늘로 확실하게 끝을 낸다. 모 아니면 도였다. 연애를 하던가, 영원히 빠이하거나. 


“가자.”


쟁반을 들고 일어선다. 카이온지 카즈키가 나머지 감자튀김 부스러기를 쓸어먹는다. 손끝에 남은 기름기를 닦는다. 미즈가키는 친절하게 기다려 주기로 한다. 마지막이니까. 정말로 안녕! 아디오스! 영원히 다시 보지 않기를! 꿈에서라도! 집에 가거든 카이온지 생각따윈 하지 않고 감자튀김도 더 이상 먹지 않을 테고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은 다음에 이른 잠을 잘 테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일 수도 있고, 잠깐 놀려주려는 마음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단순한 충동일지도 모르겠다. 패스트푸드점을 나와 유난히도 기분 좋아보이던 미즈가키가 슌지가 순간적으로 친 장난이었다. 슬쩍 주변을 보고,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카이온지 카즈키에게 달려들었다. 속도 실도 밸도 없는 카이온지 카즈키의 껍데기에서는 감자의 맛도 콜라의 맛도 나질 않는다. 입술은 까끌하고 그 안에서는 일말의 호기심과 막연한 거리감만이 여전하다. 이런 숨을 잘도 쉬는군. 미즈가키 슌지는 생각한다.


“잘 있어라.”


톡 밀면 카이온지 카즈키는 그대로 한 발 밀려난다. 벙 찐 쑥맥을 버려놓고선 미즈가키 슌지는 도망쳤다. 가는 길에 카이온지 카즈키의 번호와 주소는 죄 지워버렸다. 끝이란 건 싱겁다. 이대로 핸드폰도 버렸으면 좋겠는데. 현실이 드라마와는 다르게 녹록치 않다. 집에 오니 카나가 오빠가 말하던 귀신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아, 역시나. 미즈가키는 부엌에 가서 소금을 찾기로 한다. 뭐, 생각대로 소금을 찾지는 못했다. 소금 찾는다고 했다가 손등이나 얻어맞았다. 주소록에서 카이온지 카즈키의 이름은 정말로 지워버렸다. 매일 오던 쓸데없는 메시지들도 안녕, 주말마다 허송세월하며 먹던 감자튀김도 안녕. 

다만 그걸 용납 못하겠다는 듯 귀신으로부터의 전화는 자꾸만 온다. 며칠 내내 온다. 예전부터 끈덕진 건 알아줘야 했다. 미즈가키는 눈치가 보여 전화기에 소금을 뿌리지는 못하고 소금통을 전화기 옆에 가져다 놓는다. 


“제발 살려주십쇼.” 


경건하게 두고선 앞에서 합장을 하는데 여동생이 한심하다는 듯 본다. 이 오빠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도통 모른다. 당연히 모르지. 그러니까 카이온지 카즈키를 집안에 불러놓는 걸 테다.


“에그머니나.”

“에그머니나, 는 무슨. 어떻게 된 거야? 그러고 가면 끝이야?”


사뭇 진지한 얼굴이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시간은 테이프를 되감아 그때 그 장소로 되돌아간다. 미즈가키 슌지가 냅다 입술박치기를 하고 튀었던 바로 그 때로. 카이온지 카즈키는 그 때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러니 쑥맥이지.


“나의 친구 카즈키쨩은 이미 죽어서 성불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누구신지.”

“친구는 하기 싫다며.”

“그래. 그래서 죽여 버렸어. 나무아미타불.”


카이온지 카즈키가 냅다 미즈가키 덜미부터 잡는다. 그 험악한 제스처로도 충분하다. 카나가 잘도 알아들어 손가락질한다. 미즈가키 슌지의 방이 저쪽이라는 뜻이다. 짧은 눈짓과 간단한 손짓으로도 쉽게 알아들어서 카이온지는 그대로 미즈가키 슌지를 끌고선 방으로 들어간다.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죽이 잘 맞았나 몰라. 이 와중 미즈가키 슌지는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하자, 연애.”


방에 들어오자마자 듣는 한 마디에 치밀었던 부아도 그대로 사그라든다. 카이온지 카즈키의 얼굴은 전에 없이 진지하다. 시뻘건 것이 더없이 홍당무같기도 하다. 연락 좀 끊었기로서니 바로 연애하자고 쫓아오는 속도 없고 실도 없고 밸도 없는 카이온지 카즈키. 


“뭐? 됐어. 너도 참 징하다.”

“싫어?”

“왜, 그놈의 친구놀이나 계속 하자고 하지. 대체 네 친구 사이가 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까지 말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의 미적지근한 숨이다. 조금 눅눅하고 여전히 입술은 말랐다. 그게 꾹 눌러오면서 미즈가키 슌지는 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났다. 그러고선 꽤 오래 있었다. 코앞에 있는 그림자에서 호기심과 거리가 싹 사라진 것을 본다. 저도 모르게 닿고 있는 입술이 말라온다. 화끈거린다. 어쩌면, 어쩌면. 카이온지 카즈키가 꽉 감고 있던 눈을 뜬다. 


“적어도 이런 사이는 아니겠지.”


얼굴은 여전히 시뻘겋다. 그럼에도 정답이다. 갑자기 속이 꽉 차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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