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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봉신 / 천태 / 돌고, 돌고, 돌고, 도는2025-09-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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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유희거리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좋은 시대네.”


황천화가 중얼거렸다. 누구 들으랄 것 없는 혼잣말은 늙은이의 넋두리에 가깝다. 관람차를 보고 하는 소리다. 그는 오늘 난생처음으로 관람차를 보았다. 순 쇳덩이로 이루어진 기구인데도 알록달록한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여느 장난감인양 깜찍하기 짝이 없다. 철골의 다리가 육중하고 깜찍한 무게를 마치 깃털처럼 들어올린다. 동그란 구체가 서서히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어느 방점을 찍고선 내려오는 광경은 보기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늘이 옛날보다도 훨씬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말마따나 가히 좋은 시대다. 시대가 바뀔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감개가 무량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말이다. 신기하고, 어색하고, 약간 씁쓸한 정도다. 그 맛이란 절로 입에 담배 하나 문 듯하다.


저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리려다가 멈췄다. 연기고 뭐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담배는 진즉에 압수당했다. 대다수의 공간이 금연이라는 건 이 시대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흡연구역에 어쭙잖게 껴서 피는 건 그림이 영 살지 않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황천화는 의외로 가오를 중히 여겼다. 태공망에게 씨알도 안 먹혀서 그렇지. 황천화의 가오따위 안중에도 없는 그는 담배를 뺏고 대신이랍시고 스프링 끝에 별이 달린 머리띠를 씌우고 츄러스를 쥐여 주었다. 어쨌든 길쭉하니 됐지, 하는 투였다. 욕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입에 달콤하고 길쭉한 츄러스를 구겨 넣었다. 계피 향이 확 났다. 코가 뚫릴 정도다. 그래서 입을 다시는 대신 코를 여러 번 킁킁거렸다.

가오는 좀 무너졌지만 둘은 대관람차 앞에 줄을 서 있다. 황천화는 우스꽝스러운 머리띠를 쓴 데다가 츄러스마저 들었다. 태공망도 딱히 다르진 않다. 머리띠만 안 했을 뿐이지 한 손에 분홍색 솜사탕 든 것은 역시나 나잇값 못하는 꼴이다. 여기서 나이란 외관 상이 아닌 좀 더 까마득한 나이를 말한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솜사탕이 막대 하나 의지하고선 볼썽사납게 흔들렸다. 이미 이리저리 뜯긴 설탕 솜뭉치는 패잔병의 깃발처럼 볼품없다. 솔직히 황천화로선 창피했다. 태공망 꼴도 그렇고, 자신 꼴도 그렇고. 여기서 자신이 혼백체라는 사실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혼백체라고 해서 머리띠 쓰고 츄러스 들었다는 현실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자, 가볼까.”


그래서 줄 막바지에 이르러 태공망이 당당하게 직원에게 티켓 두 장을 내밀었을 땐, 옳다구나, 하고선 바로 동그란 통 안으로 머리부터 디밀고 봤다. 반쯤은 도피에 가까웠다. 그 뒤로 태공망의 목소리가 따라 들어왔다. 자못 기특해 죽겠다는 말투다.


“허이구… 그렇게 타고 싶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소. 그거 아니야.”

“출발합니다.”


낭랑한 안내원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공간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저 허공에 매달려 돌고 있을 뿐이지만. 타기 직전에 본 관람차 통은 분홍색이었다. 이렇게까지 사랑스럽진 않아도 될 텐데. 확실하게 누구 들으라는 식으로 탄식한다. 정작 탄식 들어야 할 태공망은 뻔뻔하게도 못 들은 척했다. 아주 얄미워 죽겠다.




관람차란 느림의 미학이다. 감질날 정도의 느긋함을 철저하게 소비하며 꾸준히 올라간다. 천천히 평지에서 공간을 떼어내 붕 띄워 올리고, 발을 들어 올리고, 기분을 저 천정 위에 매달아 버린다. 마치 풍선처럼.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퍽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하늘은 그럼에도 멀다. 그제야 이해한다. 이건 하늘에 닿기 위한 유희거리가 아니라, 땅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유희거리다. 사람들의 표정이 지워져 점으로만 남고 앙증맞을 정도로 작아지는 도시를 보기 위해. 경관 그럴듯한 도시마다 하나씩은 있다더니, 그럴 만도 하다. 황천화는 짧게 감탄했다. 아주 짧게만 했다. 식상해서다. 미니어처만 한 인간 세상이란 신계에서도 신물 나도록 보는 것 중에 하나다.

감탄하는 새에 태공망이 츄러스를 한 입 빼앗아 먹었다. 달달하고 길쭉한 음식엔 딱히 미련도 없어서, 황천화는 태공망이 하는 대로 놔뒀다. 여전히 코는 창에다 박고 있었다.


“그게 아니지.”


코와 창을 가르는 목소리는 츄러스를 씹고 있어서 발음이 부정확했다.


“밑이고 위고 중요한 게 아니라, 밀폐된 장소에 단둘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거든, 관람차는.”

“헐….”


황천화로선 전혀 달갑지 않은 소리다. 창으로부터 코를 떼고 고개를 돌려 말한 사람을 본다. 그러니까 입가에 설탕 가루 잔뜩 묻힌 저 양반이랑.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단둘이서. 아까 줄 서던 꼴보다도 이 한 평 남짓도 안 되는 공간이 더 창피해졌다.

오르막을 오르는 관람차 옆으로 풍경이 완만한 사선을 그린다. 위에서는 금속이 맞물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불안한 소리가 이 공간의 낯섦을 새삼 상기시킨다. 손에는 연기 대신 단내나는 과자뿐이고. 앞에는 솜사탕 막대기만 남긴 늙은이가 웃는다. 너덜너덜하던 설탕 솜뭉치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그래, 원체 단것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었다. 단것만 먹더니 머리도 달짝지근하게 말랑말랑해졌나 보다. 하긴 그게 아니고서야 여기 올라탈 생각을 했겠느냔 말이다. 황천화 머리는 아직 들 말랑말랑하다. 아주 무릎마저 딱딱해져서, 불쌍하게도 제대로 굳었다. 발바닥만 막무가내로 간질간질해지기만 하다.


사선 아래의 풍경을 본다. 하늘을 도는 관람차보다는 좀 더 땅에 붙어있는 놀이기구가 보인다. 놀이기구라고 해봤자 작은 회전목마와 빙글빙글 도는 티컵 형태의 기구가 전부다. 여긴 유원지라기보다는 도심 속 큰 녹지 공원 같은 곳이다. 넓은 잔디밭 위로 흩뿌려놓은 사람들은 분수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호수 주위를 돈다. 호수에는 하얀 오리배가 한두 척 유유히 떠다닌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진짜 오리 같기도 하고. 움직임은 오리보다는 조금 더 매끄럽다. 오리 배에 탄 사람들 기분도 지금 관람차에 탄 이 기분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두둥실 두둥실. 페달이라기보단 기분 그 자체를 밟고 있는 느낌으로.

호수 저편으로는 바다가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걸 보면 어쩌면 호수도 한때나마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황천화는 최대한 낭만적인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려 애썼다. 도망이라는 말이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래 봤자 자꾸 무릎이 닿아서 노력은 죄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저 오리배 이름, 뭔지 아나?”


황천화 시선을 따라 찬찬히 호수를 훑던 태공망이 갑자기 불쑥 물었다. 손가락이 창문 어딘가를 꾹 누른다.


“오리배면 오리배지 이름이 어딨어.”

“퀸 조커 Ⅱ세 호일세.”

“컥.”


그리고 먼 기억 속에 묻어놓았던 이름마저 불쑥 튀어나온다. 너무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라 황천화는 일단 반사적으로 놀라고 봤다. 낡은 기억은 그보다 한 박자 늦게 까마득한 시간을 헤치고선 튀어 올랐다. 하하하하하, 일단 웃음소리부터 떠오른다. 배 주인인 조공명 웃음이 꼭 그랬더랬다.


“여기가 그때 그 강이었거든. 어느새 바다가 되었더군. 사람들 기억은 참 신기해. 뭔지도 모르면서 이름만큼은 어떻게든 이어지니까 말이야.”


말을 듣고서야 새롭게 내려다본다. 당시의 산과 강이 어땠더라. 큰 강과 거대하고 날렵한 조형물. 해를 찌를 듯 가파르던 흰 곡선의 끄트머리. 고대라는 까마득한 시대와 신화시대라는 이름이 절묘하게 어울렸던 그 광경. 그러고 보니 조금 낯이 익기도 한 것 같고. 아니다, 여전히 낯설다.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나. 시간이란 쌓이다 보면 신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땅을 일구고 물길을 바꾸고 산을 깎는다. 뽕나무 밭은 푸른 바다가 된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와중 태공망이 생각의 흐름을 냉큼 끊어버렸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선.


“뭘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래? 농담인데.”


덕분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맞닿은 무릎을 타고선 끈덕지게 쫓아오고 있던 몹쓸 로맨틱한 생각들마저 혼비백산하며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적어도 그거 하나는 고마운 일이다.


“사숙은 뭔 농담을 그딴 식으로 해?!”


캬캬, 웃는다. 웃음소리가 좁은 철제 상자 속에서 여기저기 부딪혀 낭랑한 소리를 낸다. 관람차 전체가 커다란 방울이 된 것 마냥. 아직도 사람 놀리는 재미로 사나 보다. 쌓이는 시간이 온갖 것을 갈아엎는다 했지만 사람 하나는 끔찍하게 변하지도 않는다. 유달리 사라지지 않는 감정 하나도 그렇다. 


“진짜면 조공명이 땅을 칠 거다. 그 멍청이, 저번엔 나더러 인간계 모든 배에 제 이름을 붙여 달라고 하더라고. 망할 놈…”

“말 마소. 난 그 배에 별로 좋은 기억 없거든. 사숙도 없을 텐데. 아니 애초에 그게 배가 맞긴 하던가.”

“뭐 없을 것까지야!”

“사숙은 속도 편해 좋겠수.”


깔끔하게 털어버린 듯한 태공망과는 달리 황천화에게는 좋은 기억이라곤 없다. 정말로 없다. 끔찍하게도 없다. 꿉꿉한 잔재물이 뱃가죽에 들러붙는다. 왜, 따지고 보면 전부 그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지 않은가. 전부 그 배 탓을 할 수도 있을 만큼 그때 이후부터 황천화 인생은 잘 풀리질 않은 것만 같았다. 아주 빌어먹을 배고 빌어먹을 요괴선인이다. 천 년도 몇 번이나 지나서 가물가물할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어떤 기억이나 장면들은 농도가 짙어서, 언제고 떠올려도 생생하기만 할 따름이다. 황천화의 기억으로 따지면 그 시절의 많은 장면이 대체로 그랬다. 너무나 곱게, 살아있던 그대로 박제되어서, 떠올릴 땐 당시의 감정마저 같이 재생되고야 만다. 살아있는 감정이 춤춘다. 어떠한 헐떡임처럼 가파르게 숨을 갉아먹으며. 오히려 또이또이하기만 한 신계에서의 나날들은 갈수록 희미해져만 간다. 때론 영원한 죽음보다 짧은 삶 쪽에 더 강렬한 맛이 있다. 설탕 묻힌 시나몬 과자 따위가 있는 만큼이나 더욱 그렇다.


“난 사숙 그때 죽은 줄 알았잖아.”


그게 마지막 얼굴인 줄만 알았지. 잘 해주었다고 말하던. 당시의 얼굴 또한 생생한 기억의 일부다. 강렬한 맛은 시나몬 과자 따윈 비교도 안 된다. 그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건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진지함은 의외로 온화하고 서글서글했었다. 침착한 어조가 그를 다독였었다. 그게 몹시도 생소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순순히 물러났었다. 설마 마지막이었나 싶었을 때에야 무심코 지나쳤던 표정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뒤통수를 빡 치고 말았다. 왜 하필 그런 얼굴을 했었나. 또 어쩌다 제가 그런 얼굴을 봐가지고는.


“흐음, 그런 적도 있었지.”


태공망은 부정하지 않는다. 호수 위에선 막 퀸 조커 Ⅱ세 호의 이름을 가지게 된 오리배가 입을 벌리고 깔깔 웃는다. 아래로부터 꽥꽥 환청이 비웃음처럼 들린다. 조공명의 웃음소리와 비교하면 많이 경박하다.

이제 와 생각하면 전부 얄궂은 일이다. 그 호수 위에서 삶과 죽음이 대체 몇 번이나 엇갈렸던가.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았고 멀쩡히 산 줄 알았더니 음. 역시 좋은 기억이라곤 없는 배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람차도 높이 떠올라 오리배도 흰 점으로만 보였다. 까마득하다. 꽥꽥 환청도 저 멀다.




죽어도 말 못 할 몇 가지가 있다. 말하느니 목구멍에 츄러스를 처박고 계피향에 숨 막혀 죽고 말겠다. 이미 죽어있지만 아무튼 그 정도의 마음가짐은 된다. 이건 그 몇 가지 중 하나로써, 흰 배에 관한 이야기이고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연애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하다. 끝까지 연애는 흉내조차 내보질 못했으니까. 연애 같은 걸 해보질 못해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허튼짓이나 하며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허튼짓이란 작은 철제 통 안에서 서로 무릎이나 진득하게 겹쳐가면서 호수 위 오리배에 손가락질하는 짓을 뜻한다. 혓바닥 아래의 달콤한 언어들을 자못 사랑스럽다 느끼며. 데이트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그렇게 다정한 말보다는 좀 더 구질구질한 말이 어울리는데, 황천화가 그랬듯 태공망도 아마 비슷한 말을 갖다 붙였을 것이다. 황천화가 붙이기로는 미련이다. 


“그런가.”


긍정하기라도 하는 말 같지만 어차피 혼잣말이다. 태공망은 등에 힘을 풀고 편하게 눕다시피 앉았다. 나태하게 눕는 게 그에겐 훨씬 어울렸다. 무릎이 황천화의 다리 사이를 더욱 파고들고 방종한 무게에 관람차가 아주 약간 기울어진다. 삐거덕.

정말로, 목구멍이 츄러스로 막혀도 말 못할 것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이렇게 꽉 막혀오는데. 흔들림에 목 안쪽이 절로 일렁거린다. 안다. 그때와는 다르다. 이 일렁임은 몇 번이고 기억하면서 그가 새로 덧씌워버린 멀미다. 그때의 배는 흔들리지 않았었다. 멀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배가 어찌나 거대하고 우아하던지 강은 또 어찌나 넓고 유유히 흘러가던지. 마지막인 줄 알았던 그 얼굴은 어찌나 단호하던지. 그리고 또. 담배도 없고 츄러스도 먹지 않았는데 코가 시큰하다.

시작이 어디인지 말해줄까. 저 배가 시작이었다. 호수 위의 흰 점. 강 위에 뜬 백색 초승달. 말도 못하고 태공망 홀로 남겨두고 돌아가던 바로 그때다. 황천화는 태공망에게 반했다. 아니 도사리던 몹쓸 충동 하나가 기어이 그를 덮치고 이성을 마시고 사랑에 빠지게 했다. 마냥 고이던 물이 덜컥 넘쳐흘렀다. 고이기 전까진 단순한 호감이었는데 왜 넘치고 나니 사랑인지는 모를 일이다. 흔들다리 효과 아니었을까, 하고선 여러 번 생각을 고쳐먹으려 했지만 그다지 잘 되지는 않았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살았지만 감정은 생각과 전혀 다른 곳에 살아서였다. 그건 이를테면 뱃속에서 살았다. 뱃속에서 똬리를 틀었고 피 한 움큼과 함께 감정도 울컥 터져 나왔다. 그래서 좋은 기억이라곤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왜 빌어먹을 배 얘기를 꺼냈담.

생명의 심지에는 불이 붙어버렸고 기가 막히게도 사랑을 자각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 짝사랑 상대가 죽었더랬다. 다시 떠올려 봐도 기가 막힌다. 호수 위에서 불길하게 솟아오르던 빛줄기 하나를 보던 순간. 모두가 그러했듯 황천화 또한 태공망이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만큼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덜컹.

정상에 다다른 관람차가 방향을 바꾸며 흔들렸다. 육중한 쇳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발밑이 미세하게 꺼졌다. 그래, 틀림없는 이 소리다. 심장이 떨어지면 바로 이런 소리가 난다. 숨을 앗고 발밑을 꺼뜨린다. 우리는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모르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관람차를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맞아. 꼭 이런 느낌이더라고. 젠장.”


후에도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했다. 영혼은 쉬이 떠오르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의 심장은 가라앉는다. 저 밑으로 까마득하게, 가벼운 영혼과는 달리 살아있는 자 특유의 억겁같은 무게를 가지고. 훅 꺼져들면 목 안쪽부터가 막혀온다. 상실감도 슬픔도 분노도 아닌 찰나의 느낌을 뭐라 정의할 수는 없다. 심장이 덜컥 떨어지고 나서야 심장 뒤편으로부터 나머지 감정들이 물밀처럼 밀려온다.  


“그래. 그랬었지. 죽는 줄 알았다니까. 반은 죽었었나?”


헷갈리는지 태공망은 조금 고개를 갸우뚱 한다. 헷갈리기까지 한 걸 보면 당시 사선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헷갈릴 만치 대수롭지도 않다는 것도.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것보다 태공망의 명줄이 조금 더 길었다. 그는 완벽한 비극을 좋아하지 않았다. 보던 사람들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선 사지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덕분인지 때문인지 황천화 사랑도.


“어이구, 어이구, 자랑이다.”


별일도 아니었다는 듯 구는 모습이 얄미워서 나머지 츄러스를 전부 먹여 주었다. 이미 드러눕듯 앉은 사람이라 한껏 버둥거려봤자 쑤셔 넣기는 쉬웠다. 이 사람이야말로 한 번 목구멍이 콱 막혀봐야 한다. 그래야 제 미련한 미련병이 낫는다. 염원이 먹히긴 먹혔는지 태공망이 한동안 밭은기침만 내뱉었다. 사레들렸나 보다. 시나몬 때문인지 설탕 때문인지. 격하게 기침하다 눈꼬리에 눈물까지 고여서 황천화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것 치곤 그다지 진지하지는 않았다. 눈이 살그머니 가늘어진다. 장난스럽게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찡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책망하는 듯, 마는 듯. 농담과 원망의 경계선상에 아슬아슬하게 선다.


“…그걸 아는 놈이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사레 얘기가 아니다.

태공망에게 츄러스 먹이느라 반쯤 일어섰던 황천화가 도로 주저앉았다. 이 무게에도 관람차가 삐그덕 한다. 쇳소리와 함께 하늘도 살짝 기울어진다. 별 수 있나 오리배나 다시 쫓는 수밖에.




황천화도 누군가의 심장께나 잡고 끌어내린 전적이 있어서 이 화제 앞에선 자연스레 죄인이 된다. 원래 법칙이란 게 그렇다. 가위바위보처럼 간단하다. 살아있는 자 앞에서 살지 못한 자들은 죄 죄인이다. 누군가의 심장 하나씩을 꼭 추처럼 매달고 떨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못 한다. 한 평 남짓 로맨틱한 공간에서 무릎을 비벼 봤자 순 이런 얘기밖엔 안 나온다. 사랑을 속삭일 자리에서 죽음을 이야기한다. 다만 시간이 많이 지나서 표정만이 살가워지고 선택하는 어휘만이 가벼워졌다. 쉬이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태공망이 특히 그랬고, 황천화는 아직은 조금 무거웠다. 이는 순전히 그가 이 가위바위보 앞에 죄인이기 때문이리라. 뻔히 질 걸 알면서도 괜히 얘기는 꺼내가지고. 머리를 긁는다. 괜시리 어색할 때 하는 짓이다. 태공망은 황천화가 멋쩍어 하는 걸 안다. 켁, 나머지 사레들린 기침을 덜어낸다. 덤이라면 덤이었다.




기억의 편리한 점이다. 큰 강의 흰 배로부터 낡은 성 황혼의 새벽녘까지를 단숨에 건너뛴다. 황혼과 새벽녘이 동시에 엇갈리고 샛별은 지고 동이 텄다. 지평선 너머가 붉게 밝아왔다. 선명했다. 공기는 청량하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다. 청명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게 비록 황천화의 하루는 아니었겠지만. 사람 하나 심장 떨구는 게 이런 식이었다. 저쪽편의 심장이 뚝 떨어지는 반면 몸뚱이는 아주 가벼워졌다. 가벼워서 몸뚱이를 지탱하지 못했다. 소름끼치도록 홀가분했다.

쫓아온 태공망 심장이 얼마나 덜컹 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외로 사람이 담대한 기질이 있어서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를 숱하게 스치고 지나간 많은 죽음들 중 단 한 조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럼에도 황천화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닥에 깔고 본다. 기대감에서 추락하더라도 지나치게 실망하지 않도록, 쿠션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했다. 그 위로 지독한 기대감들을 겹겹이 쌓았다. 어쩌면 관람차를 타는 것과 같다. 처음 타보고서야 비슷함을 느낀다. 두둥실 올라간다. 정점에 이르렀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덜컹, 하다가, 내려간다. 내려가지만 추락하지는 않는다. 빙글빙글빙글 돈다. 생각하고 기대한다. 실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며 다시 기대감을 품고선 떠오른다. 황천화의 관람차는 무슨 색이었을까. 적어도 분홍색은 아닐 것이다. 이 낭만적인 생각의 회전마저 구질구질했으므로.

그래, 황천화로선 태공망 심장이 되도록이면 깊이 떨어졌으면 했다. 아주 끝도 모르고 떨어졌으면 했다. 이기심이 이리 못돼 처먹었다. 내 죽음이 가급적이면 당신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존재감은 되었으면 좋겠다. 이거 아니면 내가 당신에게 뭐 하나나 남겨 보겠어. 

아, 이것도 다 죄다. 이래서 연애를 못한다. 우리가 아니다. 내가 못 한다. 분명 그땐 이런 생각 한 적도 없었는데 돌고, 돌고, 돌다보니 남은 것이라곤 이거다. 다른 거 다 해냈으면서 단지 이거 하나 청산하지 못하고 죽어서 그런가보다. 

그러니까 이런 미련덩어리를 이런 날분홍 유희거리에 태워놓고 놀려먹는 저 사람이 제일 못됐다. 까마득한 시간을 저 혼자 잘만 쏘다니더니, 갑자기 나타나서 끌고 다니는 이유를 모른다. 왜냐고 물어봤다간 무슨 대답이 나올지 무서워서 묻지도 못하겠다. 이미 그의 입 안은 충분히 달다. 귓바퀴 안쪽까지 달아지면 어쩌나 싶다. 그렇다면 정말 겉잡을 수 없이 마음대로 하고 싶어질텐데. 




관람차는 서서히 내려가는 중이다. 위로 다른 관람차 칸들을 켜켜이 이고 있다. 내려갈수록 오리배는 점점 커지고 꽥꽥 환청소리마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죄인인 황천화는 일단 지고 들어가기로 했다. 태공망이 저 말 한마디 툭 던지고 말아버려서 괜히 찔린 탓이다.


“사숙.”

“…”

“사숙, 삐졌냐?”


부러 가볍게 묻는다. 


“흠…그냥. 그대가 엄청나게 나간 거 같아서. 어디까지 가나 보려고.”

“사숙이 쓸데없는 말이나 해서 그렇지.”


태공망 앉은 자세는 여전히 방종하기 그지없다. 자세 그대로 눈만을 치떠 물끄럼 올려다본다. 때로는 입보다도 눈이 더 많은 말을 한다지만 이 눈을 보고 있노라면 다 거짓말 같다. 눈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까마득하다. 마모될 정도로 마모되어서 다 깎여나갔다. 아무것도 없는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본다. 결국에는 황천화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때까지. 빙글빙글빙글 도는 황천화. 맴도는 구질구질한 감정들. 태공망이 사지 멀쩡히 살아 돌아오는 바람에 심장이 덜 떨어져서 거기선 미련만 쑥쑥 자랐다. 사랑이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할 리가 없다. 미련이다. 미련이 맞다. 그리고 돌아온다. 아무것도 없는 눈으로.


“다 왔으니 이만 내려갑시다.”

“에잉… 귀찮은데. 한 바퀴만 더 돌면 안 될까.”

“안 돼, 임마. 여기 평생 살려고 그러지.”


무릎을 잡고 힘을 주어 일어선다. 더 이상 무릎이 닿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손을 잡고 늘어진 몸뚱이를 일으키려 하면 요지부동이었다. 참 어지간히도 퍼졌다. 맞닿은 손바닥은 따뜻하다. 깍지를 낀다. 손가락 사이의 움푹 파인 곳에서부터 제대로 맞물리는 느낌이 난다. 태공망이 모든 것을 예감한 양 눈을 깜박한다. 다 알면서도 묻는다. 천연덕스럽기도 하다.


“이건 또 무슨 바람일까?”

“그냥.”


깍지 낀 손을 잡아당기고 그 반동으로 얼굴과 얼굴까지는 한달음이다. 코부터 살짝 부딪힌다. 입술 위치를 확인하듯 건조하게 찍고선 떨어진다. 그 다음에야 제대로 입맞춤한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마주한 입술선이 웃음을 따라 올라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이윽고 숨이 축축해져서야 한 입에 삼켰다. 단것을 먹을 때 으레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는 단단하고 혀는 말랑하다. 그리고 한없이 달콤하다. 혓바닥 아래 감춘 온갖 다정한 언어들을 긁어먹는다. 진작 이렇게 하고 싶었다. 철제 기구는 분홍색인데다가 무릎은 부대끼고 당신은 사랑스럽다. 한 번쯤은 좋을 대로 해도 괜찮을 것처럼. 그래서 늘 한 번 정도는 좋을 대로 했다. 정말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면 이걸로는 끝나지 않았을 테다. 키스를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사랑에 관한 고백을 하고 어떤 부정적인 답변도 못하게 입을 막고 손바닥 안쪽의 살을 모조리 빨아먹었을 게다.

몸은 관람차 통과 함께 지상으로 가라앉는데, 기분만이 붕 떠오른다. 어디 하나 메이지 않고선 한도 끝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눈이 파랗게 번들거렸다. 정말로, 정말로. 

덜컹.

관람차를 지상에 잡아두는 소리. 문이 열린다. 내릴 때가 되었다. 미련에서도 언젠가 내려야 할 텐데, 그것만큼은 도통 되질 않는다. 살아있는 새 감정이 덧씌워진다. 깍지 꼈던 손을 뒤집고 최대한 정중하게 웃는다. 노인 봉양 같기도 하고 에스코트 같기도 하고.


“가 보실까요.”

“하하!”


이윽고 태공망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즐거운 시간 되셨나요? 직원이 인사치레 묻는다. 여기서 내리는 모두는 진심으로 답하지 않는다. 정하지 않았어도 인사법은 똑같다. 손을 가볍게 들고선 손목을 가볍게 회전하며 손가락들을 팔랑이는 것이다. 그게 바로 분홍색 상자 속 십오 분짜리 연애에 대한 답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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