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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무조건 현 외를 고집했다. 현만 벗어날 수 있다면 일본 지도에 눈감고 펜을 던져 찍히는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실제로 미즈가키 슌지는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서면서 방 벽에 지도를 붙여놓고 무작정 지우개를 던지기 시작했다. 어, 디, 가, 좋, 을, 까, 요. 알, 아, 맞, 춰, 보, 세, 요. 어떻게든 고향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지도가 새카매졌다. 우습게도 야구가 도움이 되었다. 마구잡이로 던지는 와중 기가 막히게 고향만은 피할 수가 있어서였다. 역시 한 가지 추가해야겠다. 현 외에 있는 대학교이되, 야구를 하지 않는 학교로. 현 외의 대학교를 고집한 이유가 있다. 아무 이례적 사건 없이,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가장 빨리 떠날 방법이라면 야반도주가 아닌 이상 대학 진학뿐이라서다. 마침 미즈가키는 성적이 좋았고 그 점에선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공부는 잘하고 볼 일이다. 기왕 간 진학교, 우물 안 개구리에 만족하지 않고 고향을 벗어나 레벨 높은 대학에 지원하겠다는 포부와 프리젠테이션은 쉽게 먹혀들었다. 말로만 놓는 허세가 아니라 때마다 판정은 양호했고 실전에선 낙승으로 붙기까지 했다. 미즈가키 슌지 인생 두 번째의 전국행이다. 비교하자면 요코테 제2중이 전국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쉬웠으리라. 그래서 합격 발표를 보고도 미즈가키는 별 감흥이 없었다. 탄성 대신 느긋한 입김이 흘러나왔다. 가족이 보기엔 그런 점이 아주 재수없었더라고 한다.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보다도 고향을 떠난다는 흥분으로 짐을 쌌다. 짐은 골판지박스 세 개가 다였다. 원래는 달랑 박스 하나였는데 왠지 야반도주하는 느낌이 들어서 나머지 잡동사니를 죄 쓸어 담았다. 소설책이 옷 위로 와르르 쌓여 흠뻑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 활자들의 무게가 고향으로부터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에 연막을 쳐 줄 것이다. 그렇게 미즈가키는 고향을 떠났다. 기숙사에서 짐을 풀자 룸메이트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너 참 책을 좋아하는구나.
미즈가키 슌지의 사 년간의 대학 생활을 정리하자면 흐르는 술에 몸을 띄우고 맥주 거품을 들이마시며 구름처럼 떠다니는 나날이었다. 흥청망청, 신선놀음이라 할 법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붕 떠 허우적거려 발바닥 한가운데가 종종 간지러웠다. 리포트 몇 부, 시험, 아르바이트, 술. 교차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뜨면 무거운 몸뚱이는 가늠할 수도 없는 먼 곳으로 흘러가 있기 일쑤였다. 망망대해인지 섬인지 강인지도 알 수 없었다. 들이쉬는 숨은 늘 미약한 알코올에 젖어있어 미간 앞이 잡히지 않고 혼미했다. 그럼 날숨으로 담배 연기를 뱉었다. 흐려졌다.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하게 쌓였다. 재떨이 가장자리가 노오래졌다.
그동안 고향과는 거리를 두었다. 요코테에는 일 년에 딱 두 번 돌아갔다. 오봉과 설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만 머무르다 어디 쫓기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요코테를 떠났다. 여행도 그보다는 못할 지경의 짧은 체류였다. 그러고 나면 명절 이후 사흘간은 핸드폰에 불이 났다. 요코테에 남겨둔 사람들이 전파로나마 따라붙은 것이다. 대부분은 왜 그냥 돌아갔느냐 하는 항의로 쨍쨍거렸다. 우스갯소리로 섭섭함을 토로하다가 울컥 화를 냈고 끝내는 일방적으로 서러워하기까지 했다. 오미즈, 너 정말 계속 이럴 거야? 미즈가키는 메일일랑 싸그리 무시했다. 전화는 드러누운 채로 받았다. 하도 성의 없이 받아 목소리가 잔뜩 잠겨 눌려 나왔다. 그래그래. 계속 이럴 테지. 깡그리 무시했다. 미즈가키 슌지의 고향에 아주 지극한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대학 동기들 사이 파다해졌다. 그 소문 또한 내버려 두었다. 매달리는 게 시커먼 사내놈들이라는 얘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건 꽤 재미있는 안줏거리였으므로 술자리에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래서 인기 많은 남자란. 다들 까르르 웃고선 술을 마셨고 곧 취기에 잠겨 출렁거렸다. 방학을 앞둔 술자리에서도 그러했다. 미즈가키는 곧 고향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지? 시시덕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여기저기 엉켰다. 그렇지 뭐. 또 전화가 오는 건가? 이 녀석, 전화 난리난다고. 빚진 거 아냐? 시끄러워. 그렇지 뭐. 집을 떠난 후 일곱 번째의 귀향이었다. 지독한 숙취로 기차를 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내려서야 겨우 헛기침을 하고 허리를 폈다.
집은 방문할 때마다 체감하는 그 크기가 달랐다. 어떤 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시야를 덮어씌워 하염없이 작아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형과 제가 나간 만큼 이가 빠진 공간이 감당 못하게 달려들기도 했다. 엄마가 웬일로 기분내서 커튼이라도 바꿨을 때에는 특히 그랬다. 축 가라앉아 있는 아이보리 색의 커튼은 처음 보는 것이다. 미즈가키는 달려드는 공허에 쫓기듯 내달려 방으로 들어갔다. 집의 크기가 방문하는 기분 따라 제각각인 것에 반해 방은 늘 그대로였다. 다 버려도 좋다고 했지만 그의 부모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방을 깔끔하게 관리했다.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책상과 침대, 침대 위의 이불, 책장과 옷장.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마저. 그 방에서 오직 미즈가키 슌지만이 낯선 공기를 입고 선 새것이었다. 먼지 냄새 하나 나지 않는 방에 드러누웠다. 열린 창으로 여름 특유의 녹진녹진한 공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중첩된 더위를 입고선 아른거렸다. 여름을 싫어한 적이 없다는 것이 좀 바보같았다. 고향을 싫어한 적이 없다는 것도. 병신이지, 병신. 습관적으로 담배 찾던 손을 내팽개쳤다. 어쩐지 이 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스운 것은 미즈가키 슌지는 이미 어릴 적에 제 방에서 곧잘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이었다. 밥 먹으라고 몇 번을 불렀어. 너 지금 담배 피웠니? 냄새 배니까 밖에서 피워. 아른거리던 엄마의 목소리가 일시에 현실감을 띄며 선명해졌다. 미즈가키는 냅다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 담배따윈 입에도 대 본 적 없다는 듯이. 옛날 옛적 흡연으로 인한 학교 호출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뻔뻔했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 밥상은 유난히 호사스럽다. 식탁이 빼곡하다. 사람도, 반찬도. 오랜만에 가족이 전원 둘러앉았다. 역시 명절… 좋을지도…. 옆에서 카나가 젓가락을 물고 황홀하게 중얼거린다. 가뭄에 콩 나듯 뜨문뜨문 돌아오는 오빠들보다도 풍성한 반찬이 더 좋을 테다. 물론 미즈가키도 가족보다는 풍성한 반찬 쪽이 좋다. 마요네즈 크로켓도 있고. 산더미 같이 쌓인 마요네즈 크로켓 말이다. 마요네즈 크로켓 하나로 명절 식탁이 순식간에 기억 속 죽마고우의 집 식탁 같아졌다. 하하.
“이게 왜 있을까?”
젓가락이 버릇없이 크로켓의 산을 탁탁 건드린다. 따끈따끈한 튀김옷이 파삭파삭 부스러진다.
“네가 좋아하잖아.” “그것 참 감동인데, 내가 이 솜씨를 좀 알지. 한두 번 먹은 게 아니거든. 이거. 역시 아주머니,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카요 아주머니라고? 아니야. 틀렸어.” “에? 그럴 리가.”
미즈가키 슌지 추억의 크로켓이 전면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내가, 그걸 못 알아볼, 수가, 있나? 내가, 이거, 귀신인데? 이거 헛귀신이로구만. 엄마도 카나도 혀를 찼다. 확실히 미즈가키 슌지는 고향을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 당황한 젓가락질에 크로켓이 뚫려 파사삭 부서진다. 녹진한 속 알맹이가 흘러나온다. 오빠 더럽게. 질색하는 여동생과, 그건 슈고가 만든 거야. 엄마의 목소리. 튀김에서 펄펄 일어나는 김. 허. 전혀 예상 못한 이름이었다.
“슈고가? 이걸?” “그럼. 이제 꽤 그럴듯하게 만들지.” “이제라니.”
더욱 혼란해졌다. 이제라는 말은 과거로부터 지속성을 가지고 온 말이다. 마요네즈 크로켓과도 카도와키 슈고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며칠 전, 혹은 몇 달 전, 미즈가키 슌지가 모르는 과거의 어떤 날로부터 튀김 냄비에 벌거벗은 크로켓이 하나, 둘, 뛰어든다. 벌금벌금 기름이 튀어 오르고 표면이 노르스름하게 그을릴 때까지.
“슈고가 왜?” “글쎄. 그냥 하고 싶었다더라. 걔도 참 별난 데가 있지.”
어차피 이 집안에서 마요네즈 크로켓을 제일 좋아하는 건 미즈가키 슌지 정도다. 미즈가키를 제외한 나머지의 관심사는 빠르게 옮겨졌다. 마요네즈 크로켓에만 집중하기에는 명절의 반찬이 너무나 많다. 미즈가키 홀로 크로켓을 버릇없이 쑤셔대는 것이다. 그래 오빠 너 다 먹어라. 카나는 그 행위에 일찌감치 질려 크로켓 접시를 멀리 밀어놓았다. 젓가락이 딸깍딸깍 크로켓 접시에 따라붙었다. 카도와키 슈고라.
카도와키 슈고를 본 지는 퍽 오래되었다. 족히 오 년은 넘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카도와키는 어련히 알아서 큰물로 떠나버렸고 미즈가키조차도 요코테엘 자주 돌아오지를 않아 접점은 희박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형에 추억을 덮어가면서 둘 사이는 멀어져 갔다. 소꿉친구에서 함께 야구를 한 적이 있는 중학교 동창으로, 거기서 더 나아가 아, 그런 친구가 있었지, 친했지, 친했어. 하지만 절대 먼저 연락은 하지 않는 옛 친구까지. 미즈가키 슌지가 그토록 갖고 싶어 몸부림치던 거리감은 허탈하도록 쉽게 주어졌다. 그리하여 미즈가키 슌지가 듣는 카도와키 슈고의 행보는 피상적이다. 전형적인 야구일로였다. 미즈가키가 한창 벽에 붙인 지도에 지우개를 던지고 있을 때, 그는 스카우트 관련 연락처를 수집하고 있었고 장고 끝에 하나를 골라냈다. 고등학교 진학 때의 경험이 있어 쉽지는 않았더라고 한다. 이마저도 엄마를 통해 카요 아주머니의 한숨에서 얻어들은 바다. 카요 아주머니가 집에 와서 한참을 토로하다 돌아갔다는데 낙관과 불안,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지하고자 하는 각오를 모두 섞어 내뱉는듯한 한숨이었다고 했다. 어찌나 무겁던지 과장 섞어 바닥이 꺼지는 줄 알았다고. 당시 카도와키 이면에 있었을 깊은 고민에 대해 미즈가키 슌지는 전혀 모르는 바다. 카도와키를 찾아가지도, 메일을 보내지도, 하다못해 응원조차 않았다. 제 수험공부 핑계를 대면서 두 발 세 발 멀찍이 물러섰다. 그것을 속된 말로 남이라 한다. 카도와키로부터도 딱히 이렇다 할 연락이 없었다. 이제 카도와키에게는 미즈가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분명해졌다. 미즈가키는 멀어진 후에야 카도와키 슈고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고민이 생기면 홀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가 숙고하는 타입이었구나. 이 작은 관심마저 금방 접어버렸지만. 미즈가키가 대학에 붙은 것, 고향을 떠난 것, 곧 카도와키마저 현을 떠난 것과 상관없이 결정적으로 둘 사이의 거리감을 가른 건 바로 이것이었을 거라고 미즈가키는 짐작한다.
카도와키 슈고의 근황까지 말하자면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고 말할 수 있다. 거창했던 고민에 비해 모든 일이 잘 풀렸다고 들었다. 대학이니 프로니 아귀가 잘 맞아 돌아갔다. 참 다행이지. 이제는 야구소년의 시절을 벗어나 일약 스타로 날아오를 일만 남았으니 날개를 펴길 바란다. 옛 동무여. 참고로 카도와키의 대학은 미즈가키의 대학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저에게도 운이 좋은 사 년이었다. 더욱더 최신 근황을 들면 크로켓을 산더미처럼 만들었다, 정도 있겠다. 그 카도와키 슈고가 마요네즈 크로켓을 만들었단다. 미즈가키 슌지가 그렇게 좋아했다고 기억 속에 남은 마요네즈 크로켓을. 산더미처럼 만들어서 이 집까지 찾아왔단다. 우리 연은 이대로 영영 소멸하는 게 아니었나?
“그래서 슈고가 이걸 주고 갔다고? 왜?” “어제 왔다 갔어. 슈고는 바쁘잖니. 우리 집 대학생은 탱자탱자 놀면서도 코빼기도 안 비추고.”
남의 집 아들에 대한 칭찬의 말로는 늘 자기 집 아들에 대한 타박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미즈가키는 어물어물 변명만 늘어놓았다.
“취업 때문에 바빴어.” “내정됐다며.” “그거야 얼마 안 됐고.”
얼마 안 됐다는 이야기의 정확한 속 알맹이는 부모님께 전달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다. 미즈가키 안에서 보고의 순번을 따지면 늘 부모님이 마지막이었다. 부모님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어쭙잖은 변명에 코웃음만 쳤다. 아들 하는 말을 쥐똥으로도 안 믿는 모양새다.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그래, 아주 거기 있을 거니?” “으응. 뭐.”
미즈가키는 대충 대답했다. 그는 대학 근방 지역을 중심으로 구직활동을 했다. 이 지방에 완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였다. 붙박이 할 곳이 없는 탈출이란 긴 끈을 묶고 나간 산책에 불과하다. 이곳이 그의 집인 이상, 언젠간 끈을 되짚어 돌돌 감아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한다. 돌아가지 않으려면 끈을 끊어야 한다. 이대로 이 도시에 정착한다면 요코테에는 영원히 안녕을 고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꽤 기를 썼다는 것만은 말해두겠다. 취업용 정장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다.
“집은? 앞으로 그쪽에서 살 거 아냐? 너 집 볼 줄은 아니?” “졸업하면 구할 거야. 졸업하고…. 어머니, 잊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아들은 아직 학생이랍니다.” “참 속 편하게 군다.”
그동안은 어디서 살았냐고? 학생이니 당연히 기숙사다. 네 성미에 공동생활을 퍽이나 하겠어. 주변의 모두가 흰눈 띤 데에 비해 미즈가키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4년을 아무 사고도 다툼도 없이 깔끔하게. 심지어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대해선 저 스스로도 놀랐으나 이유는 극히 명확했다. 기숙사 생활이 잘 맞는 게 아니라 미즈가키가 흥청망청 밖에서 노느라 기숙사에 잘 안 들어간 탓이다. 기숙사에서 잘 지냈다고 했지, 규칙을 잘 지켰다고는 하지 않았다. 매일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술과 자유를 즐겼으니 미즈가키는 행복했고 거의 독방 사용이 된 그의 룸메이트 또한 퍽 행복했을 것이다. 멋진 4년이었다. 그래, 행복했지. 참 편했는데. 그것도 보금자리라고 눈꺼풀 뒤쪽으로 아른거린다. 익숙한 창의 높이와 작은 방. 나란히 놓여있는 침대. 헤진 마루바닥. 가급적이면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졸업 전에는 정말 집을 찾아야 할 판이다.
“그래, 잘됐다. 슈고가 너랑 같이 살겠다고 하더라.”
짝. 주의를 환기하는 가벼운 소리. 엄마가 손뼉을 쳤다. 가족은 저와 상관없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근사한 제안이라는 양, 커다란 폭탄이 내려와 꽂힌다. 눈꺼풀 뒤 침대와 마루바닥 창이 모조리 부서져 나간다. 카도와키 슈고라는 이름표를 나풀거리며. 폭발의 여파로 마요네즈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입천장이 데인 듯 깔깔해졌다.
“어?” “어제 크로켓 들고 와서 얘기했어. 슈고야 매일 지내는 것도 아닐 테고. 너희 둘이 같이 산다면 나도 카요씨도 안심이지.”
언제까지 걱정을 해야 할는지. 종내는 미즈가키 슌지인지 카도와키 슈고인지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르게 흩어지는 푸념이었다. 미즈가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입에 모든 음식을 쑤셔박기 시작했다. 저가 해체해 놓은 마요네즈 크로켓을 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의무감만을 가진 듯 우물거렸다. 이럴 줄 알았지. 명백한 대화의 거부에 엄마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틀어 둔 텔레비전 속 예능 프로의 소리가 커졌다. 미즈가키는 하염없이 씹기만 했다. 죄 폭발하고 난 재를 씹는 맛이었다. 체기를 가라앉히듯 욕지기가 툭 튀어나왔다.
“왜 마요코로 같은 걸 만든 거야.” “그거야 네가 마요네즈 크로켓을 좋아하니까 아니겠어.”
미즈가키 슌지가 좋아하니까. 같은 말이 앵무새처럼 반복된다. 귀를 틀어막지도 못해 추억담이 알알이 맺혀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어린 미즈가키 슌지는 매번 입꼬리가 찢어져라 베어 물었더랬다.
“허. 어릴 때나 그랬지.” “너 지금 크로켓을 세 개나 먹었단다.”
답이 뻔해서 더 슬퍼졌다. 당시 미즈가키 슌지가 좋아하던 음식이야 뻔했다. 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간식거리. 자극적인 것, 기름. 마요네즈. 쉽게 배가 차는 것. 아직도 이런 걸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지, 그게 벌써 몇 년 전인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신기한 일이고 지긋지긋한 연이다. 모든 감정은 어린 시절 그 상태로 박제되어 정체되어 있다. 언제까지 카도와키 슈고와 미즈가키 슌지가 서로 죽고 못 살던 소꿉친구일거라 생각하는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 동네다. 고향이란 모든 관계와 감정을 어린 솜털처럼 보슬거린 채 박제된 생물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그래서 미즈가키는 떠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다 버리고 집을 뛰쳐나가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솟아올랐다. 마요네즈 크로켓의 산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조금 거한 상차림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명절이랍시고 이 집에 특별한 행사는 없다. 오랜만에 돌아온 장성한 자식들이 책이나 핸드폰을 붙잡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게 그나마 볼 만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끔찍하기도 해라. 이 끝으로부터 저 끝까지 굴러 데굴데굴 왕복한 미즈가키가 드디어 질린 듯 책을 덮고 일어섰다. 갈피가 처음 찔러 넣은 페이지보다도 한참 뒤로 넘어가 있다. 이 와중에 읽은 것이 신통하다고 해야 할지,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그는 책을 내팽개치고 거실을 한 바퀴 서성거리며 돌더니 현관의 제 신발을 한참동안 내려다 봤다. 그 후에야 나온 핑계거리는 참으로 조악했다. 아이스크림 사러 갔다 올게. 평소엔 슈퍼조차 가지 않고 내내 집에 박혀 있었으면서. 그는 이례적인 별일을 시도했고 낯선 혹성에 착륙한 듯 신발을 질질 끌었다. 슈퍼로 가는 길과는 정반대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지갑도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라곤 담배 한 갑과 핸드폰으로 핸드폰은 전원이 꺼져 있어 아무 기능도 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았다. 원래 명절에 집에 올 때는 으레 핸드폰을 꺼놓곤 했다. 귀찮은 연락이 올 게 뻔하니까. 실시간으로도 쌓이고 있을 메일이야 늘 하던 대로 돌아가서 확인하면 그만이다. 그나마 번호를 바꾸지 않은 것이 그의 살가움이라고 할 수 있다. 끝까지 매정하지도 못한 바보같은 미즈가키 슌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핸드폰을 여러 번 쥐었다 놓는다. 전원을 껐으므로 당연히 카도와키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다. 카도와키가 과연 집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마요네즈 크로켓을 들고 온 건 어제였다고 하니 이미 요코테를 떠났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가정을 주워 삼키면서도 무작정 걸었다. 카도와키 슈고의 집에 다가갈수록 그는 이 동네가 가지고 있던 관성에 가까워진다. 어설프게 질질 끌던 발은 어느덧 가벼워진다. 볼에 닿는 공기가 솜털을 어루만지듯 간지럽다. 다섯 살, 혹은 열한 살, 어쩌면 열다섯 살의 미즈가키 슌지. 이 짧은 길을 늘 뛰어갔었다. 지금의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굴리면서 천천히, 하지만 가볍게 걷는다. 그가 신은 운동화 코끝에 익숙한 맨발이 톡 닿을 때까지. 육 년 만의 재회는 얼굴이 아니라 발끝으로부터였다.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부터 종아리, 무릎, 허벅지, 허리를 타고 시선이 올라갔다. 선이 많이 굵직해졌군. 목에 건 타월은 여전하다. 미즈가키는 타월을 너무 자세히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한참 멀었어.” “엄마는 꽤 괜찮다고 했는데.” “옛날 먹던 그 맛이 아니야.” “그건 대체 얼마나 옛날인거야? 엄마도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고.”
카도와키 슈고가 눈을 둥그렇게 뜬다. 순간적으로 미즈가키 기억 속 앳된 얼굴이 배어 나왔다가 곧 흩어졌다. 추억이 흩어진 후 드러난 민낯은 몸과 마찬가지로 한층 여물어 있었다. 오, 슈고. 많이 컸구나. 장해서 눈물이 다 나온다. 짐짓 눈물을 흘리는 척한다. 여기까지 온 이상, 미즈가키는 발걸음에 붙은 관성을 따랐다. 먼 친척 아저씨마냥 허물없이 말을 건넸다. 원래 ‘척’하는 것은 미즈가키 슌지의 특기였고 이 동네의 관성은 둘 사이의 관계를 절친한 소꿉친구로 고정해 놓고 있었으며 카도와키 슈고는 관성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기에 대화는 흔한 안부 인사조차 생략한 채 어제의 어제로 되돌아갔다. 유치하게 툭툭 던지는 말이 오간다. 피하고 있던 타올의 이야기도 확실하게 한다. 제발 멀쩡한 스포츠 타월을 사. 상점가는 네 스폰서가 아니야. 빙빙 핵심을 에두르며 온 사방을 들쑤시는 대환데 카도와키는 이런 대화방식에 퍽 면역이 없었다. 미즈가키 슌지와 그 세월을 지내보고도 그랬다. 평화로운 실랑이 끝에 결국 카도와키가 두 손 들었다. 만나지 않은 육 년간을 한 번에 들어 올려야 했다.
“그래. 오랜만이야. 슌. 정말로 반가워. 너 마요코로 좋아하잖아. 난 네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고오맙네. 내 생각을 다 해주고. 황송해라. 있잖아. 슈고. 나는 네가 성인이 되면 좀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될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있나.”
쓴웃음이다. 입꼬리부터 사그라졌다. 치아 아래로 묵은 과거를 가만히 물고 조심스럽게 맛을 본다. 반가워 보이기도 했고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카도와키 슈고는 언제부터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되었을까. 세월이 쌓여야만 나올 수 있는 얼굴이 미즈가키는 신기했다.
“그 얘기를 내가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해봤어? “그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았어.”
뜻밖에도 부정적이었다. 큰 기대는 않고 내지른 일이라고 한다. 카도와키는 뒷목을 주물렀다.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웃기지 않아? 지극히 정론이었다. 이 시점에서, 정말로 미즈가키 슌지는 카도와키 슈고가 다 컸다고 인식했다. 어린애처럼 같이 살자고나 하는 마당에. 카도와키가 말을 이었다.
“역시 싫은 거지?” “싫다기보단 굳이 이제 와서? 왜…? 싶은 거지. 너 나랑 같이 살고 싶어?”
이어지는 얘기는 변명이라 하기엔 길었고 육 년의 공백을 채우기엔 말이 모자랐다. 어쩌면 푸념일 수도 있었다. 미즈가키가 명절 후에 받는 전화와도 결이 닮아 있었고. 단어는 중첩되었지만 발음은 또렷했다. 물론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어, 이미 해 봤고. 앞으로도 할 수 있어.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오만이지. 알아. 더 이상은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네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너랑 같이 있고 싶은 거야. 이제는 그래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그래서 같이 지냈으면 좋겠어. 구단이 그쪽이거든. 솔직히 경제적으로도. 둘이면 좋은 집으로 갈 수도 있을걸. 나는 매일 있지 않을 거고. 슌. 너도 편할 거야. 그리고 이제는 마요코로도 만들 수 있지. 카도와키 슈고는 천천히 말을 고르고 속내를 발라내어 보여준다. 그 과정은 신중했다. 결코 속도에 쫓기지 않았다. 그도 그동안 나름대로 제 의견을 설득시키는 요령을 쌓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끼어든 마요네즈 크로켓이 얼척없었다. 이 진지한 와중에 혼자서만 지나치게 바삭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마요코로야?” “그야 너, 엄마가 마요코로 해준다고 하면 머물렀으니까. 열심히 배웠다고. 엄마는 요리엔 엄격해.”
기억 속 카요 아주머니가 호호 웃는다. 먹고 가렴. 머리를 쓰다듬어 줬었다. 마요코로면 다 되는 줄 알지. 카도와키의 마요네즈 크로켓은 다소 간절하기까지 하다. 요코테라는 큰 땅에 박제된, 갈대같은 솜털을 가진 관성의 생물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하품을 한다. 모든 유년 시절을 굽어 살피며. 하품에서는 자장가 소리가 난다. 진절머리 나고 사랑스럽다. 미즈가키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 슈고. 그거 알아? 세상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프로포즈를 해.” “그럼 그런 걸로 하자.”
카도와키 슈고는 미즈가키 슌지의 순간적인 충동을 놓치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받아쳤다. 형태는 뭐가 되든 좋다. 미즈가키가 깔깔거리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슈고 나는 시내에 있는 고층 멘션이 좋아. 그래. 좋아. 방은 세 개여야 해. 그것도 좋아. 채광 확실해야 하고. 문제 없어. 근처에 지하철 역은 필수야. 알았어. 뭐가 알았어야. 멍청아! 웃다 못한 미즈가키 눈에 눈물까지 맺혔다.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과하게 웃는 건 미즈가키 슌지가 뭐든 허용해 준다는 뜻이다. 이 동네의 관성에 따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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