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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MIU404 / 이부시마 / 거짓말을 해도 되는 밤2025-09-08 14:53


만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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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 아이의 미소는 시마 카즈미에게 있어선 일종의 경보다. 적색 램프의 색을 띈 소리없는 웃음은 기척없이 다가와 온 몸의 털을 거꾸로 훑는다. 그 때에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한 호흡의 마음의 준비란 게 필요한 터라 충분히 경보의 역할을 한다. 어느덧 명확하게 구분도 하게 되었다.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벌려 소리내어 웃거나 맞물린 이를 활짝 드러낸다면 괜찮다. 이부키 아이는 본래 그렇게 웃곤 하니까. 위험의 신호는 은근하고 부드럽게, 앞니 위로 어둠이 드리워져 입술이 가늘게 다물려질 때에 온다. 양옆으로 길게 찢어져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눈매 또한 갸르스름해져 눈동자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 시마 카즈미 왈, 참 수상쩍게도 웃는다 한다. 경험상 이 경우 시마 카즈미의 신변에 좋은 꼴이라곤 일어난 적이 없다. 

지금 이부키 아이가 그렇게 웃는다. 출근한 시마 카즈미 얼굴을 보자마자 칼로 얇게 의뭉을 떠낸 것처럼 웃는다. 눈이 마주치자니 소름이 오소소 돋고 손이 앞을 향해 절로 나가 방어태세를 취한다. 다가오지 마. 이부키 입 찢어지는 일 미리마다 일 미터씩은 멀어져야 한다. 시마 카즈미의 공식은 그렇게 짜여 있다.


“뭐야. 수상쩍어.”

“저기, 저기. 시마.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봐라. 운을 떼자마자 우문이다. 이부키 아이와의 대화는 종잡을 수 없을수록 수상해지는 경향이 있다. 시마 카즈미가 허리를 낮춰 방어자세를 더욱 깊게 한다. 오늘은 4월 1일이다. 본디 출퇴근이 요일대로 돌아가지 않는 직업이라 날짜는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니까 우문이라는 것이다. 바보 아냐? 그제야 이부키 아이가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그렇지.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지. 이부키 아이는 숫자를 싫어한다. 날짜보다는 그 밑에 달린 자그마한 글씨 읽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세계 강아지의 날 같은. 시마 카즈미는 오늘의 숫자나 보고 근무가 어떤지나 살피고 있었겠지만 사실 오늘도 숫자 밑에 글씨가 붙는 날이다. 거기에 동그라미를 많이도 쳐놨다. 일주일 전부터 쳐놨는데 보지도 않았나보지? 시마 카즈미 앞에서 양팔을 벌려 흔드는 이유도 같다. 동그라미만큼의 설렘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의 설렘은 계절을 따라가기에 죄 봉오리져 있다. 


“짜잔. 오늘 만우절이야.”

“만우절인 것 치고는 쓸데없이 정직하군.”

“아차.”


뻣뻣하게 굳어있던 방어자세가 겨우 내려간다. 안심해서가 아니다. 싸늘한 예감이 시마 카즈미로 하여금 팔을 내리고 손가락의 힘을 풀게 한다. 보아하니 하루 종일 시달리겠다. 장기전엔 지구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힘을 바짝 주면 곤란하다. 그 지구력이 대체 무어냐 하니. 적절한 무시, 알맞은 태클, 태산같은 인내를 비율에 맞게 24시간으로 조합하면 지구력이 된다. 이부키 아이를 대하며 수십의 날을 조합한 결과물이요, 황금비율이다. 


“자, 뭘 할까. 역시 거짓말대회가 좋겠어. 그렇지?”


빠밤. 따라란. 열 손가락이 일사분란하게 공중에서 춤을 춘다. 이부키 아이는 오직 이날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고민을 해왔다고 했다. 소위 이부키 아이 1호, 이부키 아이 2호, 이부키 아이 3호 등등이 벌린 마라톤 회의다. 1호부터 10호까지 있어봤자 머리는 전부 이부키 아이니 회의는 고만고만했다. 수많은 이벤트 후보군이 제시되었다. 다른 기수와 차 바꿔 타기, 헬륨가스 마시고 무전기 받기, 정말로 멜론빵 팔아 보기, 기타 등등. 위험하기 짝이 없는 브레인스토밍이다. 일주일 동안이나 옆자리에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게다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한 길 사람 속이 너무 깜깜해 시마 카즈미 가슴이 절로 서늘해진다. 제 딴에는 자유분방하게 떠올렸으나 과연 이부키 아이 판단에서도 공무방해는 아니다 싶었는지 대다수의 안건은 자체적으로 기각되었다. 그리고 최후에 남은 것이 고작 거짓말대회란다. 소소하지만 부담 없고 재미있지. 이부키 아이 스스로의 평가로는 이렇다. 나, 사실은 두뇌파가 아니었을까? 약간의 자화자찬을 곁들여서.


“어때. 좋지?”


박수를 친다. 오프닝 세레모니. 시마 카즈미의 의견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이벤트 선정이다. 야심차게 내민 사안을 시마 카즈미는 영 탐탁지 않게 받는다. 아니 거절한다. 됐습니다.


“너, 오늘 내가 진실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 꼴을 보고 싶은 거로군.”

“시마는 진심으로 할 것 같아서 무서운걸.”


하긴. 어느 쪽이 거짓말에 더 어울리냐면 단연 시마 카즈미다. 맘만 먹는다면 시마 카즈미 말마따나 하루 종일 혓바닥에 거짓말을 뒤집어쓰고선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미끄러질 테다. 평서문과 의문문과 명령문, 명사부터 동사를 거쳐 감탄사까지 죄 거짓말을 발라놓고도 그 뜻이 전부 제대로 통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맘만 먹는다면. 대회라고는 했지만 이부키 아이는 일찌감치 우승자를 점찍어 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개최하는 건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서다. 이 얼마나 유희적인가. 강을 건너고 도로와 도로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건물 사이를 누비는 혓바닥의 유희. 좌회전을 하며 기대는 조금 더 또렷해진다.


“시이마. 시마. 역시 거짓말대회 하자.”

“됐습니다.”

“좋아. 부상을 걸자. 지는 사람이 맥주 사는 거야. 내일 아침에. 하는 거지?”


이미 내정된 우승자가 있는 이상 이부키 아이로선 정말 통 크게 쏘는 셈이다. 이 배포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칼같이 끊어내지는 못할 텐데 시마 카즈미는 모르는 모양이다. 아예 알고 싶지도 않던가. 시마 카즈미의 지구력으로 빚어낸 철저한 무시가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메꾼다. 신호등을 보고 무전에 귀를 기울이고 가끔 창밖으로 몸을 빼내며. 서에 들러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보고를 하거나 회의를 한다. 언제나 하는 과정이고 평범한 하루다. 사이사이 이부키 아이가 타령을 주워 삼는다. 숫자 아래 글자가 붙는 날인데 평범하다니, 재미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담. 서의 사람들과 인사차 한 마디씩 주고받은 농담으로는 기별도 안 간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되잖아? 혼자서라도 엔트리 해 봐.”

“나 지금 너무너무 신나고 재미있다. 저기. 듣고 있어요?”


무전기를 향해 말하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시마 카즈미에게도 닿지 않는다. 공허한 울림은 데굴데굴 홀로 굴러간다. 정말 거짓말도 재미없게 하는군. 시마 카즈미는 깨닫는다. 이 자식은 재미있는 만우절 거짓말에 서툴구나, 하고. 그래서 살포시 얹히는 것이 측은지심인가? 그럴 리가. 여기서 논해야 할 건 약간의 오차다. 모두가 짐작하는 지점보다도 시마 카즈미는 조금 더 짓궂고 유머러스하다. 아주 조금 더. 이 오차가 지금까지 모두의 허를 찌르고 의외성을 만들어 왔다. 그럼 한 가지만 말해둘까. 이것 또한 일종의 경보인데,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의 경보에 익숙해진 데에 반해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의 경보에 익숙해지질 못했다. 오히려 대비를 할 생각조차 없다는 쪽이 옳겠다. 그는 늘 열려있고 이번에도 맨몸을 온전히 내놓은 채 고개를 기울인다. 


“나는 너를 사랑해.”

“…에.”


간단한 구조의 문장, 쉬운 단어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의미를 지닌 만큼 강력한 폭탄이 무방비의 이부키 아이에게로 떨어진다. 아주 부피가 큰 사랑이 부풀어 오르다 이내 정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끝말잇기 시작부터 마그네슘을 집어던진 셈이다. 시마 카즈미는 깔끔하게 한 방으로 만우절을 종결시킨다. 여파는 제법 커서, 이부키 아이의 머릿속에서 글자도 숫자도 새하얗게 날아가고 만다. 그가 만우절 글자 위에 겹겹이 그려 넣었던 펜 자국만이 촘촘하게 쌓인다. 새하얀 공백을 메우고, 메워서 이내 까맣게. 


“이제 됐지.”


폐허에서 오직 시마 카즈미만 평화롭다. 유성이 떨어진 크레이터를 가볍게 거닌다. 그에게 4월 1일은 오직 숫자이기에. 졸졸 차체를 돌아 조수석에서 정신이 넝마가 된 이부키 아이를 끌어낸다. 팔다리를 도로 잘 접어 운전석에 고이 앉혀놓는다. 자 이제 출발. 운전대와 차례를 동시에 돌려받는 바람에 이부키 아이는 퍽 막막해지고 만다. 목은 자꾸만 뒤로 넘어가는데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머릿속은 여전히 깜깜하다. 늦은 후회가 넘실거린다. 룰을 정해 뒀어야 했다. 처음에는 마그네슘을 못 쓰도록. 하지만 룰 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거늘 룰을 만든다는 발상부터가 무리다. 앓는 소리가 나온다. 우승자를 점찍어 뒀다는 것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다는 것은 아주 다른 얘기다. 어떻게든 대항하고 싶다. 깜박이를 켜고. 똑딱거리는 소리에 맞춰 시마 카즈미가 비웃는다. 지독한 숙제를 해치운 듯, 시원해 보인다. 깜박이가 꺼진다. 이부키 아이는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어둠이 내리고 지상에 드리운 인공 별들을 밟아가면서 생각한다. 별 마냥 반짝이는 가로등과 창문마다의 불빛, 간판, 모든 것들을. 붉은 글씨가 차창에 드리우다가 쉑 하고 지나간다. 차체의 곡선을 따라 너울거린다. 사랑보다 멋진 거짓말. 시마 카즈미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있잖아. 나는 너를 싫어해. 불편해. 아니다. 기분만 상하게 할 거짓말은 소용없다. 시마 카즈미의 판단대로 이부키 아이는 괜찮은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 거짓말을 이길만한 건 그럼 진짜 사랑밖에는 없지 않나? 골몰하는 이부키 아이 옆에서 시마 카즈미만 신났다. 네가 조용한 게 거짓말 같으니 엔트리로 쳐주겠다는데 더욱 얄밉다. 저, 저, 저, 주둥이. 끙, 하고 앓는다. 하지만 말이야. 사랑은 최강이지. 엄청나지. 하루에 불과한 가짜라 하더라도 가장 멋진 말임은 분명하다.


“와. 이건 진짜 못 이기겠어.”


인정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항복은 더디게 온다. 새벽 내내 들이댔던 몇 가지 거짓말들은 발끝에도 못 미쳤다. 이부키 아이의 판정으로도 그러하다. 12시도 지난 지 오래, 시한도 지난 지 오래다. 타임아웃. 이부키 아이는 노트북에 코를 박고 끙끙거리다 양 손을 들고 패배를 인정한다. 손가락 끝이 화끈거린다.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의 패배 선언을 보면서도 영문 모를 얼굴을 한다. 그렇지. 그가 내던진 사랑이 먼 옛날이라도 된 것처럼. 본래 간밤이란 건 늘 깊어서 잠겨 있노라면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게 된다. 한참을 헤집는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까지 더듬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동안 이부키 아이는 노트북 액정 위에 사랑을 연거푸 쓴다. 터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옛날 노트북이라 궤적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래? 거짓말 아닌데.”


이윽고 시마 카즈미가 백지같이 바랜 얼굴로 대꾸한다. 만우절에 연연하지 않는 시마 카즈미. 그는 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난 거짓말대회 참가하겠다는 말 한 적 없어. 말장난이다. 말장난이지만 어마어마한 두 번째의 파장이 이부키 아이를 덮친다. 고요한 폭발음이 사방을 뒤흔들고 귀가 멍멍하다. 그러니까 맥주는 안사도 돼. 4월 2일. 오전 세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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