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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저 밑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든다. 왼발 발바닥 아래로 깊은 바다가 출렁거린다. 도시를 통째로 들어다가 바다 위에 올려놓은 듯하다. 흔들흔들. 푸딩 위에 올려놓은 생크림 덩어리같은 도시. 빨간 딸기 모양 장식 젤리. 도로의 소실점은 파도와 말캉하게 맞물리다가 잠겨 사라진다. 바다는 눈 시리게 시퍼렇다. 너무 시려 괜히 눈물이 나올 것도 같다. 잠긴 아스팔트는 시퍼런 바다 아래 새까맣게 녹고 사위는 어둠이 자리 잡아 와르르 경계가 흐릿해진다. 생크림 모양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위와 아래가 뒤섞여 구분되지 않는 혼곤한 밤이다. 저 멀리 달빛 받은 파도의 굴곡만이 희미하게 너울거려 별조차 보이지 않는 밤하늘보다도 도리어 바다가 밝다. 흔들흔들. 발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소금내음을 훅 들이쉬고 그 껍질을 벗겨내면. 알맹이는 매우 동그랗고, 몽롱하다. 이로 깨물자 싸구려 장식 젤리 맛이 난다. 어금니 사이로 석류알처럼 바스라진다. 그리고. 방울방울 빨갛게 떨어지는데. 으깨진 열매들도 전부 파도에 쓸려나간다. 쓸려나가고 난 자리가 시뻘겋다. 오른손이 묵직해진다. 환상과 비유와 지표들은 계시처럼 단 한 가지를 가리킨다. 간혹 현실과 꿈에 양 발을 걸칠 때가 있다. 균형이 맞지 않아 현실이 왼편으로 기우뚱 기울어진다. 평생 뱃멀미라곤 해본 적이 없는데, 왼발만 늦은 뱃멀미를 하나 보다. 그래서 이부키 아이는 이따금씩 휘청거린다. 팔을 휘저어 겨우 중심을 잡는다. 오른발로 밟는 것은 바다가 아닌 보도블록이다. 왼발을 높이 들어올린다. 길길이 줄 선 자동차 매연을 훌쩍 뛰어넘는다. 바다도 뛰어넘는다. 그러면 비로소 왼발이 바다를 떠나 아스팔트에 디디게 된다. 양발을 제대로 디디고 있다면야 문제는 없다. 그가 중심을 잃는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더 이상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당장 보이는 등을 쫓는다. 목덜미를 잡아당겨 쓰러뜨리고, 몸무게로 찍어 누른다. 버둥거리는 몸뚱이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수갑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겨우 긴장을 내려놓는다. 푸하. 숨을 쉰다. 확보 시간을 고하는 순간 벌써 양 발의 불균형은 잊었다. 바다는 이미 먼 일이다. 소금내음은 희미하다. 매연 섞인 텁텁한 숨을 맘껏 들이마신다. 이야, 육지다. 아예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쉬는 이부키 아이를 외면한 채 시마 카즈미는 피의자를 일으켜 잡아끈다.
“에에- 시마, 나는? 나도 일으켜 줘.” “어른이잖아. 알아서 일어나.”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의 이변에 대해 지적한 일이 없다. 유난히 볼썽사납게 허우적거리던 팔을 똑똑히 봤음에도 눈을 돌린다. 찌푸린 얼굴을 보아하니 꼴불견이라 생각하는 것만큼은 역력하다. 그게 전부다. 꼴불견이라니.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데.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도로 삼켜내고 만다. 하나를 토해내면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 나올 것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부키 아이는 변호를 멈추고 시마 카즈미는 함부로 추궁을 하지 않는다. 그게 아무리 볼썽사나워도. 정말로 지적하고 싶은 듯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꾹 눌러버린다. 꽤 열심히 참네.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의 인내를 내버려둔다.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의 허우적거림을 내버려 두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다. 툭툭 털고 일어난다. 시마 카즈미 말마따나, 이부키 아이는 얼마든지 혼자 일어설 수 있다. 잠깐 균형을 잃어도 얼마든지 다시 뛸 수도 있다.
최악의 꿈이라고만 했다. 그 장황함을 설명하기엔 가장 짧은 설명이었으나 이보다 더 정확할 수가 없는 설명이었다. 이부키 아이도 시마 카즈미도 동의했다. 최악이었지. 최악이었어. 말세를 막 앞둔 늙은이들처럼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그 뒤로 달라붙는 것들은 모두 번잡스러운데다가, 막상 떠올리면 입맛이 짜기까지 했다. 전신을 바닷물에 담근 바람에. 약보다도 바다 위 넘실거리던 때에 입에 들어오던 짠 비린내를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정말로 한동안 비린내라면 진저리를 쳤다. 그럼에도 이부키 아이가 물은 적이 있었다. 부러 한껏 다정하게 물었다. 근데 시마. 무슨 꿈이었어? 그날로부터는 아주 멀리 왔지만 그들이 꿈이라 하면 당연히 그날의 환상을 가리킨다. 그 외에 또 무슨 꿈이 있을까. 꿔봤자 개꿈이 다가 아닌가. 뭔 말이든 무시할 생각 만만이었던 시마 카즈미는 불시에 들어온 습격에 그만 켁켁거리며 마시던 물을 뱉어냈다. 허리가 앞으로 한껏 굽었다. 물병에서 물이 넘쳐 뚝뚝 흐르는데 어쩐지 그날 방울 맺혀 떨어지던 모든 것들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이부키 아이는 저가 먼저 말을 꺼냈음에도 조금 후회하고 말았다. 시야 밖의 밤바다를 몰아내고자 눈을 깜박였다. 꾹 감고서 떴다. 바다에 머무는 시간은 언제고 찰나라서 쉽다. 오늘은 막 날짜를 넘긴 2019년 10월 16일이 아니고, 이곳은 분주소고, 떨어지는 것은 맹물이고, 시마 카즈미는 그저 사레들려 목을 쥐어짜내고 있다. 그 와중 시마 카즈미의 기침이 지나치게 격해졌다는 걸 이부키 아이는 눈치챘다. 발을 어찌나 슬금슬금 움직였는지 다 죽어가는 기침 하면서도 벌써 저만큼이나 떨어져 있었다. 아하, 이대로 튀시겠다? 가끔 얘는 너무 되도 않는 수를 쓴다. 같잖은 수를 보자마자 후회가 쏙들어갔다. 후회가 말끔하게 들어간 자리를 오기가 채운다. 저기요, 시마쨩. 이번은 좀 턱도 없었다. 그치? 굽은 등을 찬찬히 두드리니 아래서는 쳇, 하고 작게 낙담한 소리가 났다. 허파 속의 바람 하나 들리지 않는, 아주 멀쩡한 목소리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똑바로 펴고 이부키 아이를 흘겨보았다. 이부키 아이는 저가 다 억울해졌다.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혼이 나는 부조리가 바로 이 장소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입을 댓 발은 내밀어봤지만 씨알이 안 먹혔다. 이로써 시마 카즈미가 당시 일에 대해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음은 명백해졌다. 예상은 했지만. 당시 험한 꼴 봐 가며 얻은 교훈에 비하면 이거 리액션이 너무 상반되지 않은가. 해서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에이, 그러지 말고.” “귀찮게 왜이래? 만지지 마, 만지지 마. 저리 가.”
요란한 푸닥거리가 지나갔다. 이부키 아이가 떠밀려 봤자 고작 세 발짝거리다. 파트너라는 게 그렇다. 위치가 만드는 자석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적어도 근무시간인 이상은. 명목을 붙잡고 어거지로 들러붙는다. 이부키 아이가 하도 치근덕거리자 시마 카즈미도 결국 떼어내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표정이 벌써부터 피곤하다. 이부키가 피곤하게 구는 건지, 꿈을 떠올리려니 피곤한 건지. 이부키 아이는 가급적 후자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냥… 좀 더러웠어. 그렇게 뒷맛 더러운데 왜들 하는지 몰라.” “…그러게.”
찬찬히 띄엄띄엄 에둘러 말할수록 시마 카즈미의 묘사는 꿈으로부터 아득하게 멀어졌다. 구구절절 말하지만 그가 토해내는 단어 중 무엇 하나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본질을 흐리고 거짓말을 섞어서 진실을 헷갈리게 만드는 맹탕이었다. 피상적인 감상문은 다소 메스껍기까지 했다. 차라리 최악이었다던 단순한 단어 하나가 훨씬 더 나았다. 그건 현장감이라도 있었다. 전혀 소득 없는 답을 감흥 없이 듣다 보니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를 들여다본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오 이거 좀 위험할지도, 생각함과 동시에 겨눈 화살이 뱅글 돌아갔다.
“이부키 너는.” “나?”
쨍쨍한 화살은 이제 이부키 아이의 코앞에 있다. 이렇게 돌리기 있어? 혀를 내둘렀다. 애초에 이 화제는 양날의 검이다. 이부키 아이가 그날의 꿈에 대해 캐묻는다면 동시에 이부키 아이 또한 속을 까내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부키 아이는 시답잖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왜? 나는 얘기 할 수 있는데에?”
도발에 가깝다.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으므로 가슴을 쭉 폈다. 손가락을 박고 갈빗대를 들어 내 말랑한 속을 보이면, 그날의 밤이다. 있잖아. 술술 나올 줄 알았다. 그 배에서 말야, 어땠는지 알아? 얼마나 끔찍했냐면. 머리맡 자장가처럼 뱉으려 했다. 하지만 입이 막혔다. 누군가 틀어막은 듯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늘한 손은 입이 아닌 가슴부터 부드럽게 틀어막았다. 천천히 갈빗대를 조이고 뚜껑을 닫았다. 빗장을 걸어 잠그고 그 위에 딸기 모양 젤리를 올려놓았다. 손바닥의 온도는 여전히 바닷바람처럼 서늘했다. 이부키 아이는 눈만 멀뚱하게 떴다. 턱이 벌어졌지만 나오는 소리는 순 무음이었다. 아니, 말하려고 했는데. 쌕쌕거렸다. 간단하게 줄이자면, 그렇다. 막상 토해내려니 너무나도 속이 거북해졌다. 거듭해서 운을 떼는 데에 실패해 땀을 뻘뻘 흘리는 이부키 아이의 꼴을 보다 못해 시마 카즈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작은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실소 조각을 뿌렸다. 오후 햇살에 빛나는 먼지처럼 하찮았다. 가장 쓸모없는 잡동사니 같은 웃음소리를 모아 놓고선, 그 주제에 참도 상쾌했다.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가 제 갈빗대를 눌러 닫은 손을 눈치 챘다는 걸 알았다. 동시에 시마 카즈미가 생각하는 바 또한 완전히 알아먹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그도 웃었다. 하. 합의는 완만하게 일치했다. 보이지 않는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합의였다. 이후로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 이부키 아이만 잠시 투덜거렸다. 암만 합의를 했어도 억울한 마음은 남아 있다. 최후의 오기를 부려봤다.
“정말 얘기 할 수 있었어.” “알아.”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군.” “뭐…”
말을 흐렸다. 부정과 긍정 사이의 애매한 띄어쓰기다. 이부키 아이가 앞으로도 절대 좋아하지 못할 화법이었다.
그렇게 둘이 함께 구덩이를 파고 꿈 두 개를 묻어버렸다. 두 개다. 사이좋게 각자의 것을 구덩이에 삼키고 잠그고 씹어 넘겼다. 차곡차곡 덮어 마냥 썩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썩지 않는 꿈은 뱃속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다. 평생 잊지도 못할 바다 내음을 견딘다. 세상에 불변이라 하면 사랑뿐이라, 어쩌면 이런 게 사랑일까 봐 덜컥 겁이 나곤 한다. 손바닥 안쪽 고인 식은땀을 훔친다. 삼키고 묻고 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날들이 흘러갔다. 때로는 잘 하기도 하고 잘못 하기도 했다. 누가 묻거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다. 네에?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나요. 간혹 떠오르는 안 괜찮은 면은 둘만이 안다. 똬리가 풀려 꼬리라도 붙잡을까 조심하면서. 식은땀을 다시 훔쳐야겠다. 아직도 사랑 외에 다른 불변에 대해서는 못 찾았다. 이부키 아이는 왼발을 바다에 두고 왔다. 배에 두고 온 왼발은 때때로 이부키 아이를 밑으로 잡아당긴다.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 왼발의 뱃멀미를 무시한다. 정작 그는 이따금씩 깊게 침묵한다. 그럴 때면 의식을 벗어난 왼손이 느릿하게 지면을 더듬거리는데 이부키 아이도 그걸 못 본 척 한다. 왼손이 어딜 떠다니는지 안다. 시마 카즈미가 왼손을 그곳에 두고 왔음이다. 시마 카즈미의 멀미는 이부키 아이의 멀미와는 다르게 비틀거리지 않고 정적이다. 잠기는 손톱을 상상해 본다. 단단한 손톱 새로 빼곡히 차오르는 붉은 물방울. 으깨지는 딸기 모양 젤리. 먼눈을 돌린다. 기왕이면 그가 올라탄 바다에선 니모가 헤엄쳤으면 좋겠다. 흔들흔들. 이부키 아이는 현실에서 푸딩과 생크림과 바다와 빨간 석류알의 꿈을 꾼다. 시마 카즈미의 꿈은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그때 웃은 것은 그런 얘기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에게서 최악을 꼽는다면 대부분은 짐작이 간다. 이 바다에 없을 열대어가 유영하길 바라지만 그의 꿈 또한 바다 위에 생크림을 올려놓고 과즙이 쪼개지는 그런 꿈이었을 것이다. 남의 꿈을 베어물어봤자 똑같은 맛이 날 것이라, 모른 척 한다. 꿈을 꾼다. 꿈은 잊고 사는 와중 불청객인 양 쳐들어온다. 오른손이 무겁다. 검지가 안으로 굽는다. 바다 내음을 맡을 때 이부키 아이는 손가락에 힘주는 걸 망설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리하여 이것은 악몽이 된다. 방아쇠는 이부키 아이가 당겼다. 이건 이부키 아이의 꿈이 아니다. 시마 카즈미의 꿈이다. 우리의 최악이 결국 맞닿아 있음을 안다. 달콤하게도. 그래서 종종 욕지기가 난다. 불쾌한 내방이 언제 끝날 런지는 모른다. 설마하니 영원히 계속될까 싶다. 영원히 계속된다면…. 이부키 아이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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