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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봉신 / 천태 / 너의 꽃 2025-09-08 13:47




내맘대로 하나하키




어느 날부턴가 입에서 꽃을 토하기 시작했다.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구역질에 입을 틀어막았다가 손바닥 위 수북한 꽃잎을 보고 망연자실한 게 이 주 전이다. 그 이후론 입천장 위에 향수단지를 매달고 다니는듯한 나날들이었다. 분 냄새가 코를 얼얼하게 했다. 그동안 얻은 교훈이라곤 향기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걸지게 토악질을 하고 나며는 목구멍에 남은 향기가 다시금 구역질을 불렀다. 그러면 고개를 도로 땅바닥에 처박기 바빴다. 헐떡이며 앞니 뒤에 들러붙은 작은 꽃잎을 끌어냈다. 짙은 자주색에 가늘고 길어 끝이 갈라진 모양이었다. 무슨 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심하게 손을 털어 떨어뜨렸다. 작은 것을 가여워하기엔 저가 더 가여웠다. 원래 황천화는 꽃과 친하질 않았다. 입에서 꽃이 한가득 쏟아진다 해서 없던 관심이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다. 그래서 꽃은 애도조차 없이 버려졌다. 황천화가 가는 길을 따라서 줄줄이, 조가를 향하는 발자국을 대신했다.

몇몇 선인들이 이따금씩 코를 킁킁거렸다. 그네들은 채식을 해서, 풀냄새엔 보다 민감했다. 누가 꽃을 입에 물었느냐 했다. 으레 덜컥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잠자코 있는 황천화 대신 하마 닮은 영수가 선인들 따라 코를 킁킁거렸다. 하마가 선인들보다는 좀 더 나았다. 꽃 이름을 잘 알았다. 순박한 건지, 낭만적인 건지. 허허벌판 위 꽃구경하기도 힘든 터라 꽃향기로도 신이 나 조잘거렸다.


“주인님, 괭이밥 냄새가 나요.” 

“에잉. 무슨 꽃향기를 맡으면 신이 나는 자동차 같은 소릴…”  


하마 주인은 영 시큰둥했다. 모로 누웠다. 


“감수성도 없는 멍청한 도사같으니!”


사불상이 바로 욕을 했다. 욕하는 걸 보면 하마도 감수성이나 EQ와는 거리가 멀었다. 구경하며 낄낄 웃고 있자니 다시금 신물이 올라왔다. 사불상이 이번에는 쑥부쟁이 냄새가 난다고 해 겨우 쑥부쟁이인 걸 알았다. 목젖까지 올라온 걸 참고 기다렸다가 도로 삼켜버렸다. 눈치를 봤다. 멍청한 도사는 모로 누운 채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주가 지나서야 가까스로 알았다. 저 멍청한 면상을 보고 있자면 토악질이 올라온다. 뱃속으로부터 저벅저벅 꽃잎들이 발을 구른다.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근처에 꽃밭이라도 있는가 봐요.”


끝내 감수성을 버리지 못한 사불상이 숨을 가득 들이마시며 설레는 눈으로 지평선 저 너머를 봤다. 아니다. 꽃밭은 황천화의 뱃속에 있다. 기왕 꽃밭인 뱃속, 하마처럼 꽃향기 맡으면 신이라도 났으면 좋겠다. 




바보 도사 얼굴만 보면 배 안쪽이 간질간질하면서 토악질이 나기에, 자기도 기억 안 나는 원수를 진 게 아닐까 했었다. 순전히 구역질 하나에만 집중한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이 행군을 함께 하는 건 이곳에 아버지인 황비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참 대단한 효자가 아닐까, 혼자 자화자찬했다. 콧대가 한껏 올라가고 어깨가 불쑥 솟았다. 이렇게라도 현실도피 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서다. 은연중에 그를 보던 태공망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중얼거렸다.


“저거저거, 병 난 거 아닌가?”


잭팟이었다. 그냥 막 던진 것 치고는 제대로 들어맞았다. 괜히 원시천존의 수제자로 이름 난 게 아니다. 걸리는 게 있긴 했는지 단지 똥개훈련을 시키고 싶었던 건지 태공망은 황천화더러 곤륜산에 한 번 갔다 오기를 권했고, 저 하늘 위에서 가볍게 문진한 결과, 뭔가 병명이 나오긴 나왔다. 황천화로선 차라리 안 들었으면 했지만. 


“상사병이네.”

“지랄마소!”


탁자를 쾅 내리쳤다. 큰 병은 큰 병이다. 큰 병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본다. 으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꽃이라며.”

“뭐 이런 일차원적인 진단이 다 있어! 돌팔이 아냐?”

“꽃이라며. 게임 끝났지.”


의사인 줄 알았더니 앵무새다. 끈덕지게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일종의 세뇌 같기도 했다. 다 의사로서의 경험이다. 못 받아들이는 머저리들이 하도 많아서. 설득에는 논리보다는 우기기가 필요하다. 여러 번을 들려줘야 겨우 납득을 한다. 황천화도 그랬다. 한참 후에야 어깨가 축 쳐졌다. 마지못해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와… 미친…”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상사병? 상사병? 털끝만큼도 어울리지도 않았다. 황천화는 그간 구역질에만 집중했는데, 그는 사실 구역질 말고 꽃에 집중했어야 했다. 한 번이라도 손바닥 위의 꽃잎에 집중했더라면 금방 알았을 텐데, 너무나 많은 꽃들을 그냥 버렸다. 무심함으로만 걸어온 이주간이다. 


“그래서, 누구야? 누군데? 나한테만 살짝 말해봐. 이게 얘기를 하는 게 훨씬 속이 편할 수가 있다?”


이제 이야기는 병에서 가십으로 넘어갔다. 당장 죽을 병 아니고 사랑해서 앓는다는데 내 알 바 인가. 흥미만 해결하면 그만이지. 열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바쁘게 탭댄스를 췄다. 이름만 나오면 당장이라도 전 곤륜에 퍼트릴 기세다. 


“이 돌팔이 놈.” 


그래서 황천화는 단호하게 탁자를 뒤집었다. 문방사우가 죄 허공에 뜨는 와중 잽싸게 튀었다. 




“뭐라하던가?”

“뭐라긴… 걱정도 팔자지.” 


떠보는 태공망에게는 어물쩍 둘러댔다. 그리고는 바로 뒤돌아 한바탕 게워냈다. 저 아래서 꿀렁일 때마다 고운 이파리 하늘거렸다. 사불상이 이번에는 싸리냉이 냄새가 난다 했다. 쟨 뭐 날아다니는 식물도감인가? 옆에서 무길이 그렇다 맞장구쳤다. 짧은 인생 안 해본 일이 없는 애라 약초 캐러 어지간히도 다녀봤단다. 그래… 싸리냉이인가보지…. 손을 슬그머니 뒤로 돌렸다. 작은 흰 여러 송이 주먹 안에서 가련하게 짓이겨졌다. 그 어떤 동정조차 없었다. 툭 떨어뜨렸다. 걸어온 발자국에 싸리냉이 몇 송이도 더해졌다. 

상사병이라고 말을 듣고 나니 모가지 아래 활짝 고인 꽃들이 가엾기는커녕 더욱 부담스러웠다. 어쩌다가 이 판국에 이런…사…. 사랑이라고 생각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기둥에 머리를 박고 팔을 벅벅 긁었다. 본래 꽃과도 어울리지 않지만, 사랑과는 더더욱 안 어울렸다. 참 팔자도 편한가보다. 눈앞에 닥친 감정을 외면하려 할수록 꽃은 보란 듯이 피었다. 모두 자그마한 들꽃이었다. 눈을 감으면 곧 정원이었다. 




예로부터 상사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댔다. 불치병이다. 그래서 곤륜에서도 아무 처방을 안 하고 보내줬다. 누군지 말해주면 좋겠고, 연애는 알아서 잘 해봐, 가 다였다. 연애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여전히 바보 도사 얼굴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다시 이 주가 지나가 도합 한 달이 됐다. 요령이 생겼다고 하기엔 이상하지만 그래도 토악질에 제법 익숙해졌다. 사불상이 때마다 첨언하는 바람에 꽃에 대한 지식만 잔뜩 늘었다. 개망초와 낮달맞이꽃, 동자꽃, 씀바귀… 꽃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어나 역류했다. 입을 벌리면 여름꽃과 봄꽃과 벌판에 피는 꽃과 습지에 피는 꽃이 다 함께 쏟아졌다. 혀끝에서 주렁주렁 떨어졌다. 발로 슬쩍 밀어내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음 꽃이 피어났다. 


“그게 어떻게 생기는 건 줄 알아?” 


곤륜을 떠나기 직전 들었던 얘기다.


“사랑은 삼키면 병이 돼.” 


속에서는 죄 독이 된단다. 난 내가 뭘 삼킨 지도 몰랐는데. 황천화는 다소 억울했다. 정말로, 시작이 언제인지조차 모르는데. 

담배를 피웠다. 속으로 한 바퀴 돌렸다가 훅 뱉어냈다. 연기에도 꽃들은 잘만 흔들거렸다. 바람에 옹송그리듯 누웠다가 죄 일어섰다. 이제는 사불상이 없이도 몇 개 꽃들을 알아보았다. 꽃에 대해 배우듯 아주 천천히, 사랑에 대해서 배우는 기분이었다. 딱히 배우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상사병이라는 걸 들었음에도 이 감정 자체를 어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은연중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지. 그게 황천화의 선에서 사랑이라면 사랑이었다. 아름답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 대신 꽃이 아름다우니 됐다 싶었다. 




볼일을 볼 겸, 보급로를 살필 겸, 일행에서 한참 뒤쳐졌던 태공망과 사불상이 되돌아왔다. 모양이 다 망가진 꽃을 한주먹 들고선. 


“길잡이인지. 오는 길마다 떨어져 있더라고.”


황천화의 손을 펼쳐 놓고 뿌려 주었다. 선물이랍시고. 그가 걸어오는 내내 버려왔던 꽃들이 되돌아온 셈이다. 작고, 앙증맞고, 꽃이라고도 하기 힘들게 조각난 꽃잎들. 일그러진 감정들. 그동안 열심히 버려온 것들. 왜 하필 나에게 주는지. 다 알고선 가져온 건지. 손금 위로 꽃이 떨어지는 내내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꾹 다물었다. 동시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래로부터 벅차올라, 가슴에 고였다가 가느다란 목을 타고선 올라왔다. 황천화 손 위에 수북하게 올라간 꽃잎들을 보던 태공망이 빈손을 뻗어왔다. 목젖을 건드리고도 멈추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손을 쑤셔 넣었다. 다물린 이를 밀어내고 입천장에서 꽃잎을 긁고 혀뿌리를 눌렀다. 오래 참은 구역질이 쏟아졌다. 손을 빼기가 무섭게, 새로운 꽃잎들이 헌 꽃잎들 위에 쌓였다. 달린 잎의 개수와 색이 모두 온전한 모양이었다.


“…물매화.”

“…다들 꽃박사들이신가.”


태공망이 입을 뗐다. 또한 꽃이름이었다. 모양이 예쁜 하나를 골라 들어 황천화 눈앞에 두고 뱅글 돌려보았다. 작아서 손가락 두개로 겨우 잡혔다. 돌아가다가 비틀려 엄지와 검지 사이 으스러졌다.


“자네도 별 거 아니라며 별 일이 다 있네.”


태공망의 감상은 그게 다였다. 짧은 감상 토하더니 미련 없이 모양 망가진 꽃을 버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아니, 지금 알았지. 오는데 길이 예뻐서.” 

“아, 진짜.”


패착이다. 황천화는 손에 올라와 있는 걸 냅다 다 버렸다. 땅에 떨어지는 꽃들을 피해 태공망이 엉거주춤 발을 놀렸다. 이제 와서 피하는 걸 보니 괜히 부아가 확 치밀었다. 왜 피해, 왜. 다 까발려놓고. 화가 나서 태공망 얼굴을 잡고 양손으로 문질러댔다. 이판사판이다. 손바닥 안쪽 비린 풀내음이 코끝에서 문드러졌다. 와아아아악! 태공망이 몸부림쳤다.  


“그래서 어쩔 건데!”

“으아아아악! 낸들 알까.”


버둥거리는 통에 꽃잎 몇 개 채였다. 밟혔다. 여전히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저 입 벌리고 그 안에 죄 토해냈으면. 이런 충동들이 전부 사랑이라는 걸 안다. 부담스러워 이목구비 만지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젠장. 빌어먹을. 저기 저 멀리서 사불상이 이 꼬락서니를 보고 있었다. 부둥켜안고 흔들리는 것만 겨우 보였다.


“저건… 그래… 왈츠일걸요….”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말했다. 과연 꽃 이름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영수나 할 법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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