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천화가 인간계의 땅을 밟는 것은 퍽 오래간만의 일이다. 같은 바닥, 같은 땅이라도 인간계와 선인계는 발에 닿는 느낌부터 다르다. 허공에 떠 있는 땅과 뿌리 깊은 땅을 어찌 비교할쏘냐. 발에 힘을 힘껏 줘 디뎌본다. 단단하구만. 늦은 감상은 꽤 단순한 편이다. 이런 소소한 감상도 다 복이 아니겠는가. 막 내려왔을 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감상에 젖을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대충 일단락되고 나서야 겨우 한숨 뱉는 중이다. 황천화 한숨은 죄 담배 연기라 약간 텁텁하다.
수년 만에 돌아온 인간계는 낯익고도 낯설었다. 땅은 땅이되 서기 땅이라서 그랬다. 그는 인간계에 살 적에도 조가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기껏 내려와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올 줄을 알았으랴. 인생사 알 수 없다. 기왕 낯선 땅을 밟는 거, 좀 더 그럴듯한 모양새로 들어갔다면 좋았겠으나 여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꼴을 따질 정도가 아니라 용케 살아왔다고 하는 쪽이 맞겠다. 아주 너덜너덜해져서 풍읍을 밟는지 마는지도 모르게 들어왔으니. 그나마 목숨이나 건져서 다행이다고 할 정도다. 다시금 말한다. 살아서 다행이다. 그 안도감이란 단단한 땅을 밟는 느낌과 제법 닮았다. 익숙해지기 위해 여러 번을 디뎌 밟는다.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인간계에, 또한 이 서기 땅에. 그리고 전쟁에. 혹은 어떤 사람에게.
“아, 천화. 무성왕 못 봤는가?”
양반은 못 되었다. 태공망이다. 말로만 들어보고 얼굴 보긴 얼마 전에 처음 본 소문의 원시천존의 수제자. 아까부터 성내를 부지런히 쏘다니길래 일 없는 산책인 줄만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눈 마주치자마자 황비호의 행방부터 묻는다. 물어온 건 좋은데, 거 참 아쉽게도 땡이다. 아버지 행방은 황천화도 모른다.
“아버지? 글쎄.” “그래?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머리를 긁적이더니 금방 지나쳐간다. 저도 모르게 눈으로 등을 쫓고 말았다. 까무룩 멀어지는 등이 왜소하기만 하다. 저런 사람이었나, 무심코 생각해 버릴 정도로.
서기 오기까지는 팽팽 노는 거로만 보였던 태공망이 막상 풍읍에 들어오고 나서는 제일 바빠졌다. 그것도 주로 입이 바빠졌다. 전쟁이란 의외로 탁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나 보다. 첫발 떼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 그 탁상머리에선 몇 날 며칠이고 얘기가 계속되었다. 태공망과 희창, 주공단은 계속 앉아 있었고 제 아버지인 무성왕도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남궁괄과 기타 등등 이런 사람들 저런 사람들이 잠시 자리를 채웠다가 비웠다가 했다. 천화도 어쩌다 한 번씩은 자리를 차고앉았다. 황가의 일원으로서 이기도 했고, 선인들을 대신해서 앉은 것이기도 했다. 같이 서기에 왔던 선인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곤륜에 돌아가 버렸고, 선인들의 입을 대신할 사람이 태공망을 제외하고는 황천화 정도밖에 없었다. 황천화는 어느 쪽이었냐면 좀 더 황가의 일원으로서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머리보다는 팔다리가 되고 싶었다.
이야기는 거시적이기도 하고 미시적이기도 했다. 서기라는 큰 땅을 건사하면서 나머지 동, 남, 북을 포섭해 조가까지 움직여야 하는 일이 그랬다. 다들 저들의 생각을 가지고 탁상 위에 한 마디씩을 얹었다. 탁상 위엔 지도 하나만 달랑 올라온 데 반해 말들은 산더미 같았다. 정작 지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조가는커녕 아직 서기 내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손가락이 조가까지 가는 길을 뚫는 일이다. 정당성은 조가까지 이어져 있기도 하고 드문드문 끊어져 있기도 했다. 앉은 사람들 개개인이 가진 감정이 아마도 정직한 정당성은 아닐 것이다. 황천화가 가진 감정이 그렇고 태공망이 가진 감정이 그러하듯이. 순 달기와 악연 있는 이들이 전부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으니. 다들 대의를 자신의 감정 쪽에 가까이 두려고 했다. 그게 유일한 채신머리의 방법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대의는 고삐 풀린 말처럼 길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는 살벌하다가도 금방 철학을 끼고 대의, 연민, 감정, 이성을 넘나들었다. 그러다 침묵했다. 감정이 울컥 역류해 올라올 때 마다였다. 침묵은 묵념처럼 길었다. 어느 한 명의 감정이 그럴 때마다 모두 함께 침묵했다. 그들이 모인 이유가 다름 아닌 그것이었기 때문에. 고삐 풀린 대의마저 순간만큼은 침묵했다.
화제는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이라고 했다. 정중한 아전인수의 물밑싸움 위로 곧 머리만 들어도 아픈 숫자들이 덮쳐들었다. 감정이 정당성과 이어져 있다면 돈은 현실성을 말했다. 움직일 수 있는 군대의 규모가 여기에 달려 있었다. 이 국면에 이르자 서기의 살림을 틀어쥐고 있던 주공단이 자주 머리를 싸쥐었다. 오히려 태공망이 씩 웃으며 머리 식히는 마당이었다. 살림살이 걱정이야 애교다 싶은 거겠다. 홀홀홀 늙은이처럼 웃으며 다 식은 차를 얄밉게도 홀짝거렸다. 이야기하는 시간은 길고 차는 곧잘 식어서 다시 우린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황천화도 태공망을 따라서 차를 마셨다. 따라 마시면 뭔 생각이라도 날까 봐서였다. 식은 차에서는 약간 풀 비린내가 났다. 소싯적 희창이 좋아했었다고 한다. 다 소싯적이다. 희창이 좋아했다던 차로만 종류를 바꿔가며 몇 날 며칠 들이고 있다는데 황천화는 희창이 좋아하는 낌새조차 보지 못했다. 그저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시는 느낌이었다.
주판을 두들기는 주공단 너머로 희창과 태공망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도 나올 얘기가 또 있었나 보다. 대화를 시작할 때, 희창은 주로 뜬구름을 던지며 운을 떼었다. 그걸 태공망이 아무렇지도 않게 낚아채었다. 숫자 이야기가 아니라서 주공단은 대화에 신경 끈 채 죽간에 숫자만 마냥 나열했다. 차를 마셔봤자 낄 말도 생각 안 나는 황천화는 그저 꿈결처럼 경청했다. 탁상 앞에서 태공망의 어조는 나직하다. 사용하는 단어는 정확하지만 다소 고리타분하며 사안을 하나하나 강조해서 말하다 보니 웅변조를 띄기도 했다. 눈을 감고 넌지시 귀만 열어 들으면 희창과 동년배로 들릴 지경이다. 눈을 뜨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애어른 하나와 노인 하나. 막힘없이 흐르는 대화. 평소에 늘어져서 말하는 거나 경망스러운 태도와는 퍽 다르기도 해서 신선했다. 선계에서 들었던 그를 둘러싼 소문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듣고선 상상했던 이미지와 얼추 포개질락 말락 한다. 그게 황천화의 엉덩이를 조금 더 오래 붙들어 주기도 했다. 저 목소리, 말투는 언젠가 들어본 것도 같다. 가물가물한 의식 너머로 꿈꾸듯 새겨진 소리는 딱 문중과 대치했을 때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들었던 목소리다. 귓바퀴 안쪽에 무력감으로 달라붙은 소리는 영 안 좋은 기억이다. 슬슬 자리를 떠야겠다. 애초에 황천화는 이 깊이 있는 대화를 오래 견디지 못했다. 간혹 섞여 듣다가도 알아서 하소, 하고선 담배 핑계로 도망을 하곤 했었다.
나쁜 기억을 틀어막듯 문을 닫는다. 그리하여 대화는 방 안에 고인다. 태공망의 목소리와 황천화의 기억 또한 방 안에 고인다. 그럼에도 황천화의 꽁무니로 듣기도 어려운 사상이 한 마디, 한 마디 띄엄띄엄 딸려 나왔다. 형이 언제쯤이나 도망 나오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황천상도 황천화와 함께 딸려 나온 문자들엔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저거 무슨 얘기래?” “좋은 얘기.”
아주 완벽히 틀린 소리는 아니다. 암, 좋은 얘기고 말구.
“그렇구나. 좋은 얘기구나.”
황천상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을 한다. 착한 애였다. 서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잘 적응했다. 좋은 얘기는 좋은 얘기대로 내버려 두고 둘은 둘이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간다. 선골이라 그런지 황천상은 딱히 스승이 없어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아가며 이것저것 잘도 배우고 있다. 오늘은 황천화의 차례다. 나가면서 황천상에게 탁상 위 대화의 일부분만을 말해주었다. 천상을 마냥 어른들의 사정에 떠밀려온 어린애로 놔두고 싶진 않았다. 다만 어린애의 수준에 맞추느라고 내용은 꽤 유치찬란해지고 말았다. 나쁜 악당에 맞서 정의의 편이 일어서고 악당을 무찌르자는, 애들도 안 볼 만화 수준이다. 그것도 결말 없는. 아직 시작도 안 해서 황천화도 이 화끈한 활극의 결말은 모른다. 다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달기가 나쁘다는 것과 그래서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 거점이 지금 밟은 서기라는 것과 그걸 끌고 가는 사람이 태공망이라는 것 정도다. 여기서 황천화는 조금 망설였다. 황천상이 태공망을 영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아서. 저도 못 미더웠지만 일단 태공망을 두둔해야 했다. 그래도 우리 대빵이긴 대빵이 아니겠는가. 둘러댄다는 게 그만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 양반이 머리가 좋아.”
황천상은 따로 토를 달지 않았다. 대신 자못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알아.”
표정은 말끄러미 했다. 눈망울이 크고 둥글다. 정말로 뭔가를 아는 것만 같았다. 황천화보다도 더 많은 무언가를. 황천상이나 황천화나 태공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그 확신이 조금은 부러웠다. 애의 표정이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라 그 표정도 순식간에 지워졌다. 황천상이 먼저 훌쩍 뛰어갔다. 언제고 단단한 땅만을 밟아온 걸음걸이다. 멀어지는 등은 일전에 본 태공망의 등과는 전혀 달랐다. 아차, 아차. 나쁜 기억은 방 안에 두고 나왔지. 황천화도 땅을 밟는다. 인간계에서의 걸음에선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그것이 중력이라고 했다. 단단한 땅을 밟은 가운데 태공망이란 사람에 대한 인식만은 조금 붕 떠 있다. 너무 높이도 아니고 너무 낮지도 않다. 어중간하다. 종잡기가 영 모호했다. 아마 황천화는 황천상같은 표정은 죽어도 못 지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여기 살게 되는 거야?”
황천상이 갑자기 툭 내뱉었다. 말 사이로 창도 툭 하고 내질러졌다. 황천상의 찌르기는 대놓고 노골적인 면이 있어서 피하기가 쉬웠다. 아주 노골적이어서 피하는데 그걸 분해하는 것도 어린애답다.
“아마도?”
황천상의 말로 그제야 실감했다. 정말로 서기에 살게 된 것이다. 잠깐 손을 멈춘 틈을 타 황천상의 창이 옆구리 사이를 노리고 들어왔다. 여전히 노골적이었다.
시작부터 대의 아래 말들은 한참이었으나 매사가 말들만큼 원활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세상일 계획대로만 됐다면 아마 진작 달기 물리치고도 남았을 게지, 라고 태공망이 말했다. 태평했다. 다 이럴 줄 알았다는 얼굴엔 초조해하는 기색조차 없어서, 황천화는 이게 생각보다 멀리 내다봐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황비호는 분명 태공망을 따라 끝을 볼 테고 그렇다면 황천화도 그 곁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황천화는 머물렀다.
그 짧은 새에 황가 식구들은 서기 사람들이 다 되었다. 가장인 황비호를 필두로 그랬다. 식사가 맵다고 젓가락을 집어 던져 봤자 그게 곧 서기 식이었다. 한 번 제대로 섞이고 나니, 풍읍은 조가 사람, 원래 풍읍 사람, 저기 곤륜서 온 사람, 여러 사람 모여 개판이 다 됐다. 정말로 개판이다. 앞으로 큰일 하실 양반들이 순 얼간이 같은 사람들이라(황천화는 과감하게 제 아버지도 얼간이에 포함시켰다.) 대사란 농지거리로 시시덕거리고 헛짓거리로 삐거덕거리며 움직였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일 테다. 거기서 따지자면, 황천화는 그나마 들 얼간이 같은 축이었고, 태공망은 제일 얼간이 같은 축이었다. 모두 얼간이였다. 부산스러웠고, 허술했으며, 기반은 엉성하고, 탁상 위에서만 소꿉놀이 같은 공작이 이어지던 나날이었다. 서기에 단둘 남아버린 선도들은 일단 선도 태를 훌렁 벗고 봤다. 하나는 서기의 군사였고 하나는 무성왕의 일족이었기에. 그랬더니, 훨씬 재미있었다. 태공망에게 원시천존의 수제자나 봉신계획 수행자로서의 권위는 없다. 헤벌리고 다니는 그 사람은 누구와도 쉽게 어울린다. 그건 황천화하고도 예외가 아니라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이상한 놀음을 일삼곤 한다. 아주 얼간이같이 논다는 뜻이다. 그 제일의 얼간이가 제일 크게 일을 벌였다. 다들 얼간이라 좋다고 일을 키웠으면 키웠지, 말리지는 않았다. 황천화는 자신이 황천상에게 해줬던 말을 자주 되새겼다.
그래도 그 양반이 머리가 좋아. 그래도 그 양반이 머리가 좋아. 그래도 그 양반이 머리가 좋아.
되새기는 생각들은 군사들이 쟁기질하는 고랑마다 씨를 뿌렸다. 무슨 싹이 돋을는지는 황천화 자신도 잘 몰랐다. 씨 뿌린 고랑은 선선한 흙냄새로 향기로웠다. 농사를 보기 위해서인지 훈련을 보기 위해서인지 태공망은 시시때때로 나와 밭을 보고는 했다. 흙 한 줌을 쥐었다가 그대로 흘려보냈다. 검은 흙이었다. 지그시 보더니 풍년이 될 거라고 했다. 확신하는 말투였다.
“흐음, 진짜?” “곤륜에서 이거저거 털어왔거든. 첫 끗발은 제대로 봐야 하지 않겠나.”
서기는 군사를 잘못 들였다. 현자가 아니라 약팔이다. 태공망이 이런 사람이었다. 제일 얼간이. 그나마 들 얼간이인 황천화가 한숨을 쉬었다. 딱 담배 연기만큼만 깊었다. 더하다 덜하다의 차이지 어차피 같은 얼간이인 주제에.
“사숙, 난 참 걱정이다…” “자네, 의외로 잔걱정이 많구먼?” “누구 때문에 걱정이겠수. 댁 때문에 걱정이잖아.”
태공망 어깨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넋두리를 하자, 태공망이 상체를 뒤틀며 웃었다. 그건 어떤 나이 한 터럭에 갇힌 웃음이었다. 문턱 하나를 미처 넘지 못한. 웃을 때 몸이 잘게 떨었다. 팔꿈치까지 진동이 자르르 왔다. 고랑 어딘가에 묻힌 씨가 덩달아 덜거덕거렸다. 팔에 무게를 좀 더 실었더니 그것도 무거운지 태공망 무릎이 휘청하며 기울어졌다. 마음이 기울어지는 게 모두 이런 식이다. 훗날, 어떤 한순간을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황천화는 이 순간을 꼽을 거로 생각했다. 어느 봄과, 짙은 흙내음. 그야말로 땅과 신록의 냄새. 잘게 떨리는 어깨, 웃음소리. 그건 분명 사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평화와 생명이었음에도 가장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황천화가 하필 그 고랑에 많은 생각들을 묻어버리는 바람에 그랬다. 황천화가 생각을 묻고 태공망이 싹을 틔우는 바람에.
걱정은 걱정이고, 생각은 생각이었다. 고랑에선 황천화의 걱정과 생각 대신 작물들이 자랐다. 푸르렀다. 군사들은 때아닌 잡초 뽑기에 몰두했다. 물론 풀 뽑는 것이 은의 군사들에게 창 겨누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때때로 휘파람 같은 바람이 불었다. 땀 식히기엔 충분치 못했다. 작물은 송알송알 떨어지는 땀을 먹고 자랐다. 저기 조가에서는 작물들이 핏방울을 먹고 자란다던데. 조가에서 멀수록 소문이란 흉흉했다. 그사이 서기는 진짜로 나라의 이름을 걸게 됐다. 역성혁명이 된 셈이다. 단순한 이름이었음에도 커다란 바퀴처럼 무게가 있었다. 육중했다. 그 앞에서 제일 크게 신음한 것은 희발이었다. 어깨가 하도 무거워져서. 유독 처지고 말았다. 나라 이름을 걸기까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제일 큰일은 희창이 죽은 일이었을 테다. 혁명의 첫발을 떼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서기의 대제후로서 죽었다. 제후의 이름은 그의 사후에야 뒤집어졌다. 이제 그의 아들은 왕이 되었고 덩달아 사후의 그도 왕의 이름을 달고 말았다. 봉신대 가는 노잣돈처럼 쥐어진 왕의 이름을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나라 이름을 걸고 나서야 태공망은 입지도 않은 상복을 개켰다. 입을 시간이 없어서, 하고선 조금 쓰게 웃었다. 황천화는 웃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었지.”
황천화는 최선의 단어를 고를 때 그리 말한다.
“그래.”
황천화의 최선을 읽은 것이기도 했고, 말 자체에 대한 긍정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태공망은 오래 곱씹었다. 분명 묵념보다는 길었다.
곡소리는 그렇게 가장 각별했을 성안 쪽에서부터 끊겼다. 희창의 상을 채 치르기도 전이었다. 희발이나 겨우 볼 마를 새 없이 훌쩍거렸다. 그것마저 금방 그쳐야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매정한 양반들은 희발 눈물 마르기도 전에 빠르게 자리를 만들었다. 그 매정한 양반 중의 하나가 태공망이다. 어찌나 가차 없던지. 억지로 덜미 끌려 떠넘겨진 자리였지만 희발은 꽤 그럴듯하게 왕위에 앉았다. 그럭저럭 시작할 만 해졌다. 그러니까 전쟁을. 감정들은 별개의 생물이었다. 희로애락은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각기 움직였다. 구석에선 사람들이 상복을 입고 어진 군주를 애도할지언정, 광장에선 혁명으로 풍읍 전역이 들끓었다.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긴다면 전리품은 천하가 된다. 폭풍 전야의 앞에서야 태공망이 사지를 축 늘어뜨렸다. 이제야 그럭저럭 시작했다는 안도감에서였다. 볼을 문질렀다. 희발 구슬리다가 한 대 맞았더라고 했다. 예상한 듯 예상 못 한 듯 그리 말했다.
“저놈은 아직 젊으니까 말이지.” “도사씩이나 돼서 맞고 다니고 말이야.” “아니, 그 마당에 약 올릴 수는 없잖은가.” “그래?”
어디 봐봐. 하니 얌전히 고개를 젖힌다. 맞아봤자 도사도 천연도사도 아닌 사람 주먹이다. 게다가 희발도 진심은 아니었을 게다.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볼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여기 입이라도 맞추면 어떨까 싶었다. 쉬이 떠오르는 장난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더하든 덜하든 얼간이들이었다. 그래서 황천화는 떠오르는 대로 했다. 볼은 생각보다 말캉하고 부드러웠다. 태공망이 눈을 깜박였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길게, 그뿐이었다.
2.
그때는 그랬다. 그런 장난들을 곧잘 쳤었다. 아직 어수선했고, 기껏 나라 하나 세웠다지만 초가집에 기둥 하나 겨우 세운 듯한 엉성함이 적잖이 남아 있어서, 좀 더 조촐하고 자유로운 맛이 있었다. 자존심만 앞세운 요리대회를 하니 코끼리경주를 하느니 하는 시국에 같잖은 장난질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뽀뽀 정도야 별일이었을까. 선도의 껍데기를 잠깐 내려놓은 황천화는 황비호 일족 중 그저 쌈질 좀 잘하는 차남에 불과했고 황씨 집안사람들이 서로에게 그렇듯 장난도 많고 정도 많았다. 그 집안사람들이 원체 그랬다. 어찌나 정이 많고 넉넉하던지, 아주 철철 넘쳐흘렀다. 내리사랑이라고 황비호로부터 황천화로 흐르고, 황천화로부터 또 황천상으로 흘렀다. 그리고 마냥 타인인 태공망으로까지. 넉넉한 인심이었다. 가족의 경계를 허물고 관성에 가까운 버릇에 힘입어 발목까지 잠기도록 찰랑찰랑 넘쳐흘렀다. 다소 험한 손길이었지만 쉬이 달라붙었고 농담을 했고 장난을 치고 머리를 두드리고 손을 끌어당겼다. 태공망은 흘러넘치는 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으레 그런 것처럼 받아들였다. 의외로 사랑받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미움 사는 데에도 익숙하고. 면상 하나로 따귀도 부르고 입맞춤도 부른다는 소리다. 어차피 태공망에게는 둘 다 지나가는 바람만도 못했다.
황천화는 그걸 꽤 일찍 눈치챘다. 다만 명확한 사실이라기보다는 그저 감으로서만 알았다. 깨달음이란 고작 찰나에 불과하다. 담배 한 모금 빨면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가, 내뱉는 숨에 모든 것이 사라져 갔다. 그럼 또 어쩔 수 없이 멍청한 장난질이나 일삼고 마는 것이다. 툭툭 건드리면 바로 받아 쳐주는 맛이 좋아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공의 랠리에 작은 쾌감을 느끼듯이. 그의 가족들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그러하듯 태공망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 얼간이들.
“그렇지, 얼간이들이지.”
태공망은 낄낄 웃었다. 높고 새된 것이 목구멍을 바짝 조여서 나오는 소리였다. 일부러 보여주는 웃음소리임이 분명했다. 태공망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황천화뿐이었으므로, 황천화가 들었다. 일부러 내는 소리이니만큼 어떤 뜻이나 가락이 있을 법도 했는데 끝내 잡지는 못했다. 흩어지는 찰나의 깨달음처럼. 대신 황천화는 연기 섞인 큰 한숨을 쉬었고 담배를 비벼 껐다. 누구 머리를 식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식히게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그건 황천화가 가장 쉽게 기분을 환기하는 방법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 같이 가자고 했다. 태공망 팔을 잡아끌었다. 팔꿈치 접히는 쪽을 엄지로 살짝 눌렀다. 쉽게 접혔다. 그만큼이나 태공망은 쉽게도 그러자 했다. 할 일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도 말이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는 얼른 가자고 했다. 잡히기라도 하면 꼴이 우스워진다. 황천화도 괜히 눈치를 봤다. 어째 인간계 내려오고 나서는 순 눈치만 늘었다. 뭐, 걸려도 갖다 댈 말은 많았다. 순찰도 있고.
순찰이 딱히 뻥은 아니다. 가는 길은 정처 없었지만, 어차피 도는 길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게 곧 순찰길이다. 궁을 돌고 민가를 돌고 야트막한 지붕들을 지나가면 금방 벌판이었다. 모든 땅은 단단하고 기반이 깊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삶도 깊었다. 길을 지나는 중에 밭을 몇 개고 지나쳤다. 병사들이 하도 부지런한 덕에 잡초들은 이제 뽑는 손길을 피해 두렁에서나 겨우 자랐다. 잡초 사이에서도 꽃은 피었다. 황천화가 이름을 아는 꽃만 해도 네 가지였다. 그것들은 대개 노랗고 하얗고 작았다. 혹여 뽑힐세라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조그맣게 망울을 틔웠다. 손톱보다도 작게. 황천화는 강아지풀을 두어 개 뜯고 그 불쌍한 흰 꽃들도 몇 개 꺾었다. 큰 손가락으로는 엮기가 여간 힘이 들었다. 한참을 걸으며 꼼지락거렸다. 그래서 만든 것이 손가락 하나 길이만 한, 정말로 작은 꽃다발이었다. 조잡하기까지 하다.
“자네도 의외로 이런 거 좋아하는구먼.” “손이 심심하거든.” “재주도 좋네.”
발이 심심해서 걷고, 입이 심심해서 담배를 피고, 손이 심심해서 가만 놔두질 못한다. 심심하다는 결과물이 참 낭만적이다. 태공망은 꽃다발인지 꽃 뭉치인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꽃향기보다는 푸른 내가 물씬 났다. 황천화가 만들되 들고 오기는 태공망이 들고 돌아왔다. 여러 번 햇빛 아래 비쳐 보면서. 얼굴 위로 하얗고 푸르게 그림자가 졌다. 작은 얼룩 같았다. 이번에도 황천화는 고개 숙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원래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하듯이. 하얗고 푸른 그림자는 황천화 그림자에 금방 밀려났다.
꽃은 나중에 탁상 위 서간 사이에서 발견했다. 일부러 말린 건지 어쩌다 거기 있어 말려진 건진 모르겠지만 곱게 잘 말려 있었다. 강아지풀이 유독 노오랬다. 손끝으로 쓸어보니 먼지처럼 부서져 흐트러졌다. 우리들 놀이가 전부 그런 식이 아니겠는가.
한낱 다정함과 장난들은 로맨스의 옷을 입기에는 약간 부족했고 친근감이라고 하기는 조금 과했다. 넘치지만 모자라는 정도로 잘 지냈다. 하도 희한한 사람인지라 그런 모순적인 말들이 그리도 찰떡같았다. 군사 나으리도 필시 그랬던 모양인지 마주 치대오는 것이 거의 엇비슷했다. 원래부터 정이 많았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좀 더 긍정적인 쪽으로 고쳐먹는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렇게 싫다 소리 하나 안 하고 다 받아주지. 반면 황천화는 가끔 갈팡질팡했다. 제가 먼저 그리하였으면서도 그랬다. 이것도 원래의 성격 문제다. 보통 그가 선호하는 쪽은 모 아니면 도였다. 기왕이면 확실한 쪽이 좋았다. 태공망과의 관계를 따져 본다. 사숙, 아버지 친구, 주의 군사, 또 뭐가 있더라.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 연결은 죄 타인을 통해서다. 황천화는 직접 연결된 관계의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그게 확실하니까. 도와 모. 도 쪽으로 걸어갔다가, 손으로 먹여주는 쬐그만 과자 한 조각에 다시 모 쪽으로 걸어도 봤다. 마음과 마음 사이는 멀지 않았다. 금방 닿아서 참 많이도 갈팡질팡했다. 태공망이라는 사람을 만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그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 많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밟아 본 숱한 모와 도 중에 로맨스에 관한 것도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꽤 자주. 그때의 기분이 어땠느냐면…, 제법 싱숭생숭했었다.
태공망이 마냥 싱숭생숭한 황천화 입을 벌리고 걸리적거리는 앞니 사이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앞니 아래 닿는 손가락으로 소름 끼쳤다. 손길은 정중하면서 다급했다. 빗장이 열렸다 싶게 뭔가 하나 도로록 굴러들어왔다. 입천장에 닿자마자 태공망은 바로 황천화 턱을 쳐서 올려 버렸다. 혓바닥 전체가 썼다. 어찌나 쓴지 침이 절로 나왔다. 뭔고 하니 기력 보충하는 환약이란다. 정리하는 중에 한 통 나왔다고. 통 전체가 새 통이더라 했다. 정리라고만 했지만, 어딜 정리하는 중이었는지는 뻔했다. 인자했던 제후는 약 한 알조차 제대로 삼키질 못했던 게다.
“아오 씨, 진짜.”
뱉을 뻔한 걸 겨우 삼켰다. 알고 나니 더욱더 쓰디썼다. 태공망은 황천화가 완벽하게 삼키는 걸 확인하고선, 약통을 옆구리에 끼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이런 식으로 한 알씩 다 멕이고 다니는 모양이다. 쫓기로 했다. 쫓아서 약통 뺏는 것보다도 일단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본인에게도 꼭 한 알 먹여 줄 테다. 멕이기만 하지 본인은 안 먹었을 게 분명했다. 일단 뛰었다. 뛰면서 사불상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 역시 잔뜩 써 죽겠는 얼굴로 사탕 하나 빼 물고 있는 걸 보면 이번만큼은 절대 주인을 도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잘됐다. 좀 더 힘을 주어 땅을 박찼다. 등이 점점 가까워지고, 손을 뻗으면 어깨가 닿았다. 중심이 홱 이동하고 발을 헛디뎌 나동그라졌다. 아이고. 나동그라진 얼굴엔 착잡함 하나 없었다. 그 와중에 병은 또 놓치지 않았다. 누운 채로 태공망은 끔벅끔벅 하늘만 봤다. 보고 싶었던 표정이 이런 거였나. 아마도 아니었을 게다. 허탈해졌다. 그 얼굴 앞에 딱히 할 말도 없어져서, 황천화는 주저앉아 환약을 하나 더 씹었다. 스스로 먹는 환약은 정말로, 끔찍하게 썼다.
“많이 먹고 오래 살게나.”
황천화가 부러 한 알 더 먹는 걸 보며 태공망이 한 소리 했다. 그도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아무 소리나 하고 자빠진 것 같았다. 얼마나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하는 말인지 표정은 아주 농담 같지도 않았다.
“누가 할 소릴 해.” “엑.”
황천화는 아까 태공망이 하던 대로 억지로 입을 벌리고 환약 한 알을 처넣었다. 단단한 앞니를 밀고 말랑한 혀끝을 누르며 입 저 안쪽에 밀어 넣었다. 정말로, 정말로 쓴맛에 태공망이 누운 채로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보고서야 속 시원히 웃을 맛이 났다. 황천화 입안도 써 죽겠는데도.
그래, 그런 날들이었다. 손가락만 한 꽃다발 하나가 바사삭 마르기까지가. 땅은 단단하고 마음은 불안하고 확장보단 내실이었으며 모와 도가 훨씬 가깝던 날들. 곤륜이 멀고 인간사를 함께하던 시절. 선인들과 선인들이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직전. 밤하늘을 보며 단순히 별만 헤아릴 수 있던 날. 북극성 하나만큼은 조가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별의 지도는 같은 듯 달랐다. 동트기 전 샛별이 반짝거렸다. 푸르고 짙은 어둠. 언제고 또 볼 수 있을까. 황천화는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고, 황천화가 입 밖에 내지 않은 생각을 태공망이 그대로 말했다. 망루는 꽤 높아서 새벽바람이 훅 불고 지나갔다.
“무섭게 조용하구먼. 평화롭고.”
순간에서만 찾아오는 안식이었다.
“더 좋은 그림은 어때.”
황천화는 팔을 쭉 벌렸다. 안아달라는 수작질이었다. 뻔뻔하게도 뭔 수작질이었는지. 언제고 그렇듯 도와 모 사이에서 단순한 충동이었다. 반은 장난이었고 반은 궁금하기도 했고 또 어느 반은 싫다고 하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말했잖은가. 태공망은 마다한 적이 없었다. 그래그래, 하고선 허허실실 안아줬다. 팔을 돌려 황천화 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그건 좋은 그림 만들어 주기보다는 그저 애 하나 달래는 쪽에 가까웠다. 혹은 짐승 하나 어루만지거나. 찬 새벽바람 같이 맞은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따뜻했다. 아, 어떡하지. 샛별은 반짝거리는데. 그야말로 모를 제대로 밟아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서다. 풍읍이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한순간의 로맨스는 장난처럼 지나갔다. 백일몽에 가까웠다. 황천화도 이젠 그게 생각으로만 끝난 건지 실제로 체온이라도 닿았는지가 아리송했다. 사지 보전하며 눕는 동안 기억 또한 드러누운 모양이었다. 사소한 찰나들은 바닥에 쏟은 물처럼 줄줄 퍼져 사라져 버렸다. 다시 담으려야 담을 수도 없겠다. 쉽게 체념했다. 일단 너덜너덜해진 사지부터 맞추는 게 우선이었다. 팔다리 아무는 데에 마음마저 아물어 버릴까, 아주 조금은 그러길 바랐던 것도 같다.
3.
넝마가 된 팔다리가 완전히 아무는 데까지는 시간이 약간 걸렸다. 그 약간이라는 게 참 애매하기 마련인데, 황천화가 체감하기에는 조금 길었고 도덕진군이 말하기로는 조금 급하다 하는 정도의 시간이었다. 곤륜과 인간계가 서로 체감하는 시간차가 원래 그랬다. 그리고 황천화의 체감은 늘 인간계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항상 급했다. 좋게 말하면 젊은 혈기고 나쁘게 말하면 성급한 놈 술값 먼저 내는 거고. 그는 처음 곤륜에 올라왔을 때부터 느긋함에 대해서 라고는 일절 배우지 않았다. 배울 생각조차 없었다. 요즘 어린애들은 다들 그렇단다. 천 년을 묵은 선인들이 그리 말했다. 그 또한 아주 급할 거 없다는 듯이. 그게 상대적으로 황천화의 조급함을 부채질했다.
시간은 빠르고 몸은 마냥 더딘 것만 같았다. 감정은 그보다도 더 더뎠고 기억만이 엎어진 채 지리하게 빠져나갔다. 제일 먼저 그 새벽부터 엎어졌다. 긴가? 민가? 아니, 기였지 참. 그날과는 전혀 다른 새벽이 몇 번이고 꼴깍꼴깍 넘어갔다. 목마름을 부채질했다. 곤륜의 엉성한 중력 위로 팔다리가 자꾸만 가라앉았다. 회복하는 동안 황천화는 하릴없이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엄지손가락을 굽히고, 검지를 굽히고,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까지. 뜻대로 구부러지고 또 펴졌다. 그다음엔 발가락. 열 발가락을 다 하고 나면 무릎, 팔꿈치. 다시 처음부터. 좀 더 빠르게, 혹은 좀 더 느리게. 딱히 품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몸과 머리는 따로 놀았다. 그러니까 잡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는 뜻이다.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버렸다. 몸뚱이보다도 빠르게 인간계에 내려갔다. 곤륜의 중력이 팔다리를 가라앉혔다면 인간계의 중력은 그를 저 아래로, 아래로 잡아끌었다. 중력인지 인력인지는 약간 헷갈렸다. 인간계과 선인계가 체감하는 약간만치 그랬다.
그는 이를테면 단단한 땅에 대해 생각했다. 되도록 땅에 대해서만 생각하려고 했다. 사람 말고, 어떠한 순간에 대해서도 말고, 새벽에 대해서도 말고 그저 땅. 그러다 보니 땅은 넓어졌고 넓어지다 못해 한 폭의 지도가 되었다. 저 끝에 서기가 있었고 나머지 한끝에는 조가가 있었다. 지도를 가로지르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귀 기울였다. 여러 소리가 동시에 부딪히고 엇갈리다가 가지런하게 정렬했다. 행렬이 길었다. 눈을 뜨면, 땅도 말도 온데간데없었다. 손가락이 구부러지려다 말았다. 엎어졌던 어떠한 새벽이 굽어진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딱 새벽답게도 아리송해서 애써 피하려고 했던 게 아무 소용도 없어졌다.
황천화는 되도록 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리가 제 뜻대로 움직였으니 이만 되었다고 했다. 아마 황천화만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영 아니올시다, 하는 표정의 도덕이 운중자와 둘이서 쑥덕거렸다. 딱 쑥덕거리기만 했다. 요즘 애들은…, 으로 시작하는 예의 레퍼토리임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요즘 애 중에 요즘 애들인 보패인간마저 팔다리를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오래지 않아 황견역사를 탔다. 황건역사는 유난히도 가볍게 땅을 박찼다. 곤륜의 땅은 박찬 만큼 살짝 밀려난다. 마지막으로 온몸의 모든 조각을 차례차례 접었다 폈다. 팔다리는 멀쩡했다. 원하던 대로 마음이 아물었느냐, 하면 아니라고 하겠다.
향하는 곳은 서기가 아니었다. 풍읍이 그렇게 뒤집어진 뒤, 오래지 않아 주의 군대가 서기를 떴다고 한다. 정식으로 새 나라의 이름과 선전포고를 앞세운 진군이었다. 무성왕의 지위가 있으니만큼 황비호도 앞장섰을 게다. 그걸 두 눈으로 보지 못하게 된 건 아쉬운 일이다. 까지 생각했다가 희발을 떠올리고는 금방 그만두었다. 황천화가 생각하기에 희발이 그렇게까지 잘할 것 같지는 않았다. (반은 맞고 반은 조금 넘게 틀렸다) 진군까지 했다니 더는 서기에 볼일이 없었다. 황천화는 바로 주의 군대를 쫓았다. 조가를 향하다 뿐이지 딱히 어디 있다 위치를 정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아서, 따라잡는 데는 고생깨나 했다. 황건역사는 군대의 뒤꽁무니부터를 가까스로 따라잡았다. 황천화가 찾는 사람들은 죄 앞머리에 있었다. 뒤꽁무니부터 앞머리까지의 행렬이 몇십 리도 더 되겠다. 훑으면서 머리를 찾아 올라갔다.
수만의 군사들이 줄지어 걷고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군사들과 그들이 든 무기들과 깃발. 수천 마리의 말, 수레에 얹힌 여러도구들, 군량미. 그야말로 군대였다.
“진짜잖아.”
처음의 몇 날 며칠을 말로만 논의하던 군사가 실재의 군사가 되어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아주 탁상 위의 공론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군대는 멀리서 내려다보기에도 퍽 위풍당당했다. 위풍당당했지만 전쟁의 경험이 적어 젊은 군대에서는 노련함보다 활기가 두드러졌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땅을 밟았다. 밟고 나서야 알았다. 곤륜산 위에서의 조급함의 정체를. 단순하게도 발바닥에 닿는 이 감각이 그리웠었다. 그는 그렇게 두 번째로 돌아왔다. 고향이 아닌 곳을 마치 고향인 것 마냥. 태공망이 황천화를 보고선 반갑다는 듯 웃었다. 그래 저 얼굴도 그리웠었나 보다. 이번에는 순순히 인정했다.
군대가 군대의 모양을 갖추게 된 만큼, 전쟁 초반의 어수선함은 어딘지 먼 일이 됐다. 여전히 어수선하긴 했다. 사람이 늘어나서다. 그러니까 선인들이. 선인 중엔 괴짜가 하나둘이 아니라서 요란함이란 아주 괴악하기 짝이 없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사랑과 전쟁이 여기에 있었다. 사랑에 전쟁이라니, 지금이나 예나 이만큼 사람 끌어당기기에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 사랑과 전쟁 중 사랑을 하필 토행손이 담당한다는 게 더욱더 괴이쩍긴 했지만. 황천화는 아직 사랑까진 담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그냥 팝콘 튀겨 먹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막장 드라마 앞에서 가끔 황비호가 아들 선인계로 보냈던 게 옳은 일이긴 했던 걸까, 생각하는 게 빤히 보였다. 거기에 또 황천화가 바로 답을 못했다. 다들 저렇게 또라이는 아니니 괜찮습니다, 하고 거짓부렁 치긴 또 멋쩍어서 말이다. 그는 되도록 진실만을 말하려 한다. 어디 우리 편이 늘어나다 뿐이겠는가. 하루가 멀다고 싸울 일도 많아져서 풍읍에서의 한가했던 날들은 다 꿈이었나 싶어졌다. 군대는 부지런히 진군했고 때론 멈췄고 멈추면 꾸물대지 않고 빠르게 불을 피우고 막사부터 펼쳤다. 노상에서 자는 데에는 익숙해졌다. 선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천상은 캠핑의 달인이 다 되었다. 뚝딱하고 시범을 보였다. 황천화가 손뼉을 쳤다. 내 동생 장하기도 하다. 그러면 황천상 어깨가 하늘 끝을 모르고선 올라갔다. 옆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공망도 손뼉을 쳤다. 한 사람 몫을 넘어 세 사람 몫을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다. 이번엔 황천상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올라갔다. 태공망 칭찬의 이유야 뻔했다. 아주 주둥이에 기름칠만 하고 사는가 보다. 옆구리를 쿡 찔렀다.
“사숙 너 이 자식. 애한테 일 떠넘기려고.” “에잉. 야박하구먼. 젊은 애들이 힘을 써야 할 거 아냐.”
이 사람은 전장을 나와서도 여전히 뻔뻔하고 게을렀다. 그게 참으로 답기도 하고 못 미덥기도 하고 말이다. 군사씩이나 되어서. 태공망이 황천화의 말을 바로잡았다. 손가락이 머리를 톡톡 쳤다. 가벼운 리듬이었다. 뜨내기에게 못된 거라도 가르치듯이 경쾌했다.
“군사씩이나 되어서지. 머리를 써야 몸이 편해지거든.” “허이구.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는 생략되어 웃음소리 사이로 흩어졌다. 허탈하게 웃었다. 적어도 조가까지 가는데 심심하지는 않겠다. 멀리서 양전이 불러서 태공망은 금방 끌려갔다. 까다로운 이야기들은 풍읍의 탁상이 아닌 이곳에서도 늘 산적해 있었다. 캠핑 준비가 아닌 이거야말로 바로 그의 일이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황천화가 그 자리까지 앉을 필요는 없었다. 못 미더운 군사 옆에 믿을 만한 보좌가 붙었으니 잘된 일이다. 그들은 어지러운 대화들을 쉬이 했고 선문답 사이의 핵심을 꼬집었다. 중간에 튈 일도 사라진 황천화는 먼발치서 구경만 했다.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졌다. 허전하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하여 태공망과 황천화의 대화는 좀 더 하잘것없어졌다. 어차피 쓸모 있는 이야기들은 알아서들 하니 이쪽에선 잡다한 얘기나 주워 삼는 정도는 뭐 상관없지 않나 싶어진 것이다. 태공망과는 종종 그때의 얘기를 했다. 처음 서기에 들어와 엉성하고 호젓하던 나날들의 얘기를. 태공망과 황천화가 공유하던 날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 새벽의 이야기를 제외하고선. 황천화가 꺼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태공망도 꺼내지 않았다. 시내가 돌을 끼고 흘러가듯 훌훌 흘러갔다.
매 관문을 문턱처럼 넘어갔다. 야영의 날들이 이어졌다. 막사가 이제는 제집 같았다. 어설픈 침대에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곤륜에선 생각만 하던 땅을 직접 가로질렀다. 달리면 모래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매일의 풍경은 비슷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어쨌든 군대는 움직이고 있었다. 황야를 밟고 초원을 밟고 때론 강을 건넜다. 태공망은 사불상 위에서 빈둥거렸다. 일을 여기저기 떠넘기려고 했는데 잘 되진 않는 듯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게 불만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불안인 것인지 이따금 발끝이 발목을 축으로 흔들렸다. 발꿈치가 땅을 쳤다. 일이 지나치게 잘 돌아갈수록 그랬다. 걱정을 사서 한다고 책을 줄만도 한데 저 군사 양반 사서 하는 걱정이 괜한 걱정도 아니라서 말이다. 걱정보다는 예측에 가까웠고, 그리고 걱정 자체가 군사의 일이기도 했다. 태공망은 적어도 그 일 만큼은 남에게 떠넘기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이구, 장하기도 해라. 천상 앞에서 칭찬했던 것마냥 해보려고 했지만 그만큼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니다. 대신 둥글게 튀어나온 볼을 따라서 꾹 눌러봤다. 주둥이에선 풍선 바람처럼 공기가 샜다. 그에 슬쩍 한숨을 섞은 것이 보였다. 한숨 쪽이 좀 더 텁텁하였으므로. 걱정도 팔자라고, 괜한 말을 한 건 도리어 태공망 쪽이 해주기를 원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태공망은 그 말만을 기다린 듯이 웃었다. 한숨만큼 무게가 덜어졌다.
“팔자가 사나워서 원.”
공교롭게도 새벽이었다. 언제고 피하고 돌아가 봤자 매일의 새벽이 오기 마련이었고 결국에는 둘의 밤 같은 새벽을 다시금 맞닥뜨렸다. 밤하늘이 무거울 정도로 별을 이고 있어서 화톳불은 보잘것없었다. 담뱃불도 마찬가지로 보잘것없어서 깊게 들이쉬었다. 한 번에 훅 타들어 갔다. 지평선을 보았다. 땅과 하늘이 맞물린 오직 먼 그곳만이 어슴푸레하게 파랬다. 동쪽이었다. 쭉쭉 가면 조가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서기와 조가 그 사이에 껴 있었고 태공망이 말하는 팔자 또한 여기에 끼어 있었다. 새벽이 저 멀리에 있다. 군청색으로 밝아져 왔다. 별이 서서히 빛을 잃었다. 그만큼 하늘이 가벼워져서, 파랗게 쏟아질 것 같았다. 덩달아 황천화마저 가벼워지고 말았다. 새벽은 사람을 충동적으로, 감상적으로 만든다. 사람이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혓바닥이 가벼워진다. 목젖을 두드린다. 무심결에 안아달라고 했던 그 새벽처럼.
“사숙 나랑 도망갈래?”
참 가볍게도 나왔다. 일전 풍읍에 있을 적 산책가자 조르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만큼이나 말이 헛나왔다. 미쳤나. 욕지거리가 입천장을 빠르게 돈다. 다만 욕까지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그저 밝아오는 지평선을 봤다. 한없이 파랗고 한없이 깊어서 저기에 가자고 하고 싶었다. 그냥 그랬으면 했었다. 나온 말은 전혀 딴판이지만. 그러니까 미쳤군. 우리가 뭐라고.
“그래, 좋아. 튈까?”
태공망 얼굴이 확 밝아졌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입꼬리가 씰룩이며 올라가고 눈 밑으로 짓궂음이 한가득 고였다. 지금 튀면 당장 군량 계산 안 해도 될걸. 하고 말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을 기세로 말만 그렇게 했다. 그렇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황천화도 절로 즐거워졌다. 점호 안 봐도 되고, 막사 정리 안 해도 되고. 줄줄 나오는데 이건 분명 사심 섞였다. 그동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태공망은 당장 피하고 싶은 것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것도 가장 하찮은 것들만을 골라서. 날 밝으면 닥쳐올 잔소리나 잡일들 말이다. 황천화는 거기에 슬쩍 거들었다. 자신의 귀찮은 일들도 얹고 또.
“아, 바다는 좀 가고 싶을지도.” “흠. 바다라.”
처음으로 목적지를 말했다. 태공망은 그에 대해서는 거들지 않았다. 그럼 저쪽이 아닐걸, 정도로 끝냈다. 저쪽은 황천화가 계속 보고 있던 지평선과 조가 방향이다. 어느새 푸르러졌다. 이곳에서 해 뜨는 걸 보는 건 이런 식이다. 붉게 물들기보단 푸르게 빛이 흩어진다. 일출인 걸 깨닫기 전에 해가 뜬다. 태공망 이목구비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웃고 있는데도 영 모를 얼굴이었다. 어쩌면 알 것 같기도 하고. 화톳불을 밟았다.
“정했으면 가자.” “그래그래, 가세나.”
태공망 목덜미를 끌어안고선 발걸음을 옮겼다. 태공망이 쉬이 따랐다. 그렇게 서로의 막사로 기어들어 갔다. 괜히 해본 소리란 걸 어쩜 그리 잘 알고 있는지. 그게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정말로 간다면 좋을까? 둘이서 어디론가 떠난다면. 문득 든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꺼져가는 화톳불과 조는 군사들과 군영 한복판.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말도 안 되고 턱도 없는 소리다. 그래서 할 수나 있는 농담들이다. 여길 버리고 어딜 가겠어. 황천화는 곧 생각을 털어버렸다.
4.
혼이 날아가는 장면은 언제고 봐도 섬뜩하다. 손 쓸 수 없이 완벽한 끝이라는 느낌이다. 형체를 잃고 날아가는 빛의 여정에는 절로 눈으로 좇게 되는 경이적인 면이 있다. 뻔히 봉신대로 가는 걸 알지만서도 말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마저 섬뜩해지고 만다. 그날 혼백만 둘이 날아갔다. 빛줄기를 보며 말을 잃었다. 아득했다. 전쟁의 한복판이었고 그의 싸움이 아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손 놓고 보기만 해야 할 때가 훨씬 답답한 법이다. 주인 잃은 창과 검들이 모로 쓰러져 혼 향하는 곳 가리켰다. 인사인지, 원망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들의 혼백은 날아가지 않으니 그저 모든 것이 무언이다.
혼백이 날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혼과 함께 땅에 묻혔다. 날아가지 않다뿐이지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것이라 대충 염하는 흉내는 냈다. 깊게 파고, 흙을 덮고, 최대한 꾹꾹 밟았다. 큰 돌, 작은 돌 가리지 않고선 돌을 많이 주워왔다. 검을 꽂았다. 아직 무기가 모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게 그대로 비석이자 무덤의 표식이 되었다. 전투만으로 이 정도의 사상자가 나오는 건 거의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많이도 헤맸지만, 그럭저럭 잘들 해냈다. 앞으로는 좀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지, 란 생각은 아예 뇌리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들도 명백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동안 운이 좋았다뿐이지 무혈입성이란 꿈이다. 이 사소한 현실은 일개 군사들이 아닌 선인들마저도 뼈저리게 체감했다. 뒤늦은 전운이었다.
그렇다면 이 전운 끌고 온 양반은 지금 뭐 하고 있느냐. 뒷수습이다 정비다 뭐다 해서 한창 바빴다. 태공망도 오가며 몇 번이고 땅을 다져 밟았다. 말랑말랑한 흙이 다지고 다져져 단단한 땅이 될 때까지. 발놀림은 답지 않게 정중했다. 인간의 전쟁이었으나 말려든 인간 목숨 제일 가엾이 여기는 게 선인들이다. 원래 이쯤 수습해 묻자고 말한 게 태공망이었다. 표식할 만한 게 있어야겠다고 말한 것도 태공망이고. 왜냐 물으니 죽은 혼을 위로함이 아니었다. 혹여 나중에 이들의 가족이라도 원하거든 찾아올 수 있게 하지 않아야겠냐고 했다. 누가 서기서부터 이 멀리 있는 길 찾아올까 했더니 그러니까 혹시, 라고 하지 말하며 씁쓸히 웃었다. 그렇게 웃는 양반 왼쪽 팔꿈치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 그의 손목 또한 여기 어딘가에 함께 묻어버렸다. 미련도 없이. 손목의 무덤에는 표식조차 없었다. 과연 그가 그의 팔을 찾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 여기로 돌아올 날이 올까. 의문이다. 황천화는 묻을 것이 없어 담뱃재나 허투루 털고 말았다.
‘군사씩이나 되어서지. 머리를 써야 몸이 편해지거든.’
불과 얼마 전에 태공망이 그런 소릴 했었더랬다.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탄식할 일이다. 아주 말만 잘한다. 말만 잘해. 머리를 써야 몸이 들 고생한다고 말한 그 양반이 앞장서서 팔 한 짝을 날려 먹고 왔다. 그 잘난 머리는 어디 갖다버렸나. 같이 날렸나. 전투가 끝났을 때, 팔 한 짝은 예사 시체들처럼 땅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 피가 한참을 말랐다.
“이거 면이 없구먼.”
겸연쩍어진 태공망이 뒷머리를 긁으려다가, 왼손이 그야말로 비었음을 알아차리고선 오른손에 쥔 타신편을 넣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오른손으로 긁었다. 상실이 야기하는 불편함이 고작 그 정도였다. 그보다도 그 어색한 전환을 보는 사람들 심상이 더 불편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은의 태자들이 둘 전부 죽은 비정함, 첫 전투의 처참함, 군사의 팔 한 짝을 보는 허탈함. 모든 일이 일단락된 끝의 한가운데서 침묵이 길었다. 태공망은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손뼉은 치지 못해서 허흠허흠 헛기침이나 겨우 했다. 다들 그제야 정신 차린 듯 겨우 움직였다. 그저 뭔가 해야겠다 싶어서 움직이는 것이지 목적이 있는 걸음들은 아니었다. 움직이려다 산적한 전사자들을 보고선 발을 멈췄다. 그래서 전사자 수습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그 뒤로 한동안 태공망은 자주 몸을 기우뚱거렸다. 아무래도 무게 양쪽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 듯했다. 툭하면 붕대 감은 쪽 팔이 벌떡벌떡 솟아올랐다. 암만 들어 올려봤자 짤막하여 중심을 영 잡아주지는 못했다. 멀리서 보던 등선옥이 그럴듯한 평을 했다. 펭귄 같잖아. 그녀가 하는 말이니만큼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못 볼 꼴 본다는 듯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니까 꼬락서니 자체의 문제보다는 괜히 연상되어서 보기가 싫은 쪽에 가까웠다. 일전의 대결에서 탈 뒤집어쓴 모습이라도 떠올리는 듯했다. 그녀의 평에 황천화는 어느 정도는 동의했다. 다만 등선옥처럼 표정은 구겨지지 않았는데 이건 그가 펭귄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휘청거리기만 했다뿐이지 용케도 자빠지는 일은 없었지만, 본인보다도 보는 사람들이 더 불안해했다. 이래저래 구박하던 이들도 걱정은 많았다. 거기다 무길처럼 죽고 못 사는 정 많은 애라면 심정이 더했을 거다. 뒤치다꺼리며 편의를 살뜰하게 봐줬다. 조금 과하게 말해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태공망도 이때다 싶었는지 선의에는 선뜻 올라탔다. 간혹 저 늙은이 오냐오냐하다가 버릇 나빠진다고 하면서도 팔꿈치 아래 없는 거 보면 절로 살가워지고 말았다. 황천화마저 그랬다. 오뚜기처럼 양옆으로 흔들리는 몸, 혹여 넘어질세라 받아 낸 적이 있다. 딱 팔 한 짝 덜어낸 만큼 가벼웠다. 괜히 책을 해봤다.
"허이구. 머리를 써야 몸이 편해진다더니."
그랬더니 이 양반, 대체 뭐라는 줄 아는가. 이것과 비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했다.
“평생 쓸 일 사라졌으니 이게 또 틀린 소리는 아니지.” “와… 개소리.”
그러니까 말이나 못 하면 말이다. 참 쉽게도 나온다. 어이가 없다 보니 절로 양팔에 힘이 쭉 빠졌다. 태공망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코부터 갖다 박았다. 요령껏 안 자빠질 수도 있던 것을 황천화 덕분에 제대로 갖다 박았다고 아주 죽는 소리를 했다. 누운 채로 코를 잡고 좌로 구르고 우로 굴렀다. 그러니까 오냐오냐하면 안 된다니까.
“아이고오오오오! 이 버르장머리 없는 거 보소.” “아, 쏘리.”
고작 땅에 구른 거로 다 죽어 가는데 저 뭉툭한 팔꿈치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나 싶었다. 저거 날아갈 땐 눈도 꿈쩍 안 한 인간이 말이다.
오래 지체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수습되는 대로 목숨 기백과 팔 하나가 묻힌 땅을 뒤로하고선 떠났다. 희발은 출정 이래 처음으로 발을 머뭇거렸다. 말이 주춤주춤 제자리걸음 했다. 고삐 잡은 손이 시원치 못해서 태공망이 눈치를 줬다. 조가로 들어가고도 제일 먼저 이 무덤으로 돌아오는 이가 있다면 희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렇게 생겨선 이렇게 정 많은 군주도 또 없다. 그걸 말했더니 태공망은 눈썹 한 번 까닥하고선 말했다.
“그건 아닐걸.” “웬일로 확답이네.” “그렇게는 못 두지. 조가에 들어가면 엄청 바빠질 거라. 저놈한텐 그런 자유 시간 없어.”
칼 같고 매정하기도 했다. 태공망이 은근 무왕에게는 엄한 구석이 있었다. 얼 빼고 허술하게 굴다가도 이럴 땐 안면부터 싹 바꿨다. 설령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랬다. 그게 왕이 기꺼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황천화로선 못 해 먹겠다. 굳이 그런 얼굴 마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표식조차 없는 팔의 무덤이 떠올랐다.
“그럼 사숙은?” “글쎄…”
말이 흐려졌다. 한 번 뒤돌아보았다. 뒤로 까마득한 군대의 행렬만 보일 뿐, 그들이 두고 온 무덤들은 보이지 않았다. 팔 한 짝도 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기만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영영 결별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인사는 침묵이었다. 그런데도 황천화는 언젠가 저 무덤 찾아 돌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들었다. 돌아간다면 들고 가는 것은 될 수 있으면 자그마한 꽃다발이 좋겠다. 묻힌 건 고작 팔 한 짝에 불과하므로.
기다리던 여유는 다음 숙영지에서야 찾아왔다. 처음 발 떼기를 머뭇거렸던 무왕은 막상 어느 정도 길을 떠나오자 여정을 서둘렀다. 전투의 흔적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벗어나고 싶었을 수도 있고, 체류하느라 버렸던 시간을 벌충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거 괜찮냐고 눈짓했는데 태공망은 그냥 무왕 하는 대로 놔두라고 허허실실이었다. 자기는 영수 타니까 그만이란다.
행군은 시내 흐르고 목초지 펼쳐진 곳에 가서야 멈췄다. 이젠 수습할 무덤이 없어 평범하게 막사를 펼치고 불을 피웠다. 정찰할 인원들이 늘 나가던 정찰길을 나서고 망볼 이들은 망을 보고 밥할 이들은 밥을 했다. 밥을 하고 나누어 먹었다. 군사들은 모닥불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했다. 아주 잡다한 이야기였다. 고향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하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피하러 일부러 우회하는 것이 느껴졌는데 이젠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들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황비호도 그리 말했다. 금방이라고. 그리고 반복될 거라고. 괜히 전쟁터 다닌 무성왕이 아니었다. 익숙함에 마모된 모습이었고 이미 이보다도 더한 무언가를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더한 게 뭔지는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들었다가는 언젠가 정말로 맞닥뜨릴 것만 같아서였다. 부자끼리 진지한 얘기를 하건 말건 태공망은 멀리서 손만 한 번 내젓고 사라졌다. 이만 자러 간다는 뜻이었다. 하여간 안됐다고 오냐오냐해줬더니 끝도 없이 버릇이 나빠졌다. 황비호도 그 오냐오냐해주는 사람 중 하나라서 웃어넘기고는 말았다.
“아버지는 속도 좋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말이다.
“그리고 오냐오냐보단 노인공경 쪽이 맞지 않겠냐?”
나이깨나 먹은 양반들은 맞는 말만 해서 골치가 아프다. 그리고 황천화가 보건대, 그보다도 더 나이를 먹거든 입에서 나오는 게 순 개소리뿐이다. 저 위 곤륜에도 잔뜩 있지만, 지금 막사 들어간 그 노인네가 대표적인 예다. 잠깐 갔다 온다고 했다. 황천화도 어쩔 수 없이 오냐오냐 혹은 노인 공경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서다.
막사는 막사다. 금방 펴고 금방 접는 거라 별거 들여놓지도 않는다. 관문 앞이라던가 해서 오래 머무는 경우라면 좀 더 이것저것 늘여놓는데, 오늘처럼 눈만 붙였다 뜨는 경우엔 안 그래도 협소한 살림살이가 더욱 줄어든다.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이부자리 하나 깔아놓고 마는 정도로. 펼쳐 보는 죽간 등은 본 그대로 바닥에 던져 놓았다. 밟을세라 띄엄띄엄 걷는다. 다리가 절로 비틀리고 춤을 춘다. 발끝 들고선 휘청거리는 걸 보면 태공망도 좋다 비웃었을 텐데 자고 있느라 별 반응이 없었다. 얇은 이불 하나 그저 부풀어 있다. 고른 박자로 부풀고, 꺼진다. 발 한 짝만 이불 밖으로 겨우 나왔다. 맨발이다. 삼시 세끼 낮잠을 챙기고도 밤잠을 잘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게을러도 되는 걸까, 의구심부터 든다. 짧은 거리 몇 개의 장애물을 넘고 나서 겨우 침상에 도달했다. 가만 내려다봤다. 여기까지 와서도 깨는 기색이 없으니 주나라는 망했다, 망했어. 자는 얼굴은 그야말로 평탄했다. 윤곽의 그림자가 슬며시 밤에 녹아들었다. 그 그림자가 그리는 얼굴은 불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색색 잘도 숨 쉬었다. 어둠 속에 시퍼런 숨이 샜다. 날마다 잘 잤구나. 그게 오히려 안쓰럽기도 했다.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잘 자면 안 됐다. 이렇게까지 아무렇지도 않아선 안 됐다. 날려버린 게 팔 뿐만이 아니고 묻어두고 온 게 팔 뿐만이 아닌지 그는 그러면 안 됐다. 잘만 뻗어 튀어나온 맨발을 꼬집고 싶어지다가도 차마 손이 안 나갔다. 말아 쥐었다.
귀엽고 불쌍한 사숙.
중얼거렸다. 말은 탄식과 연민 그 중간께에 초생달처럼 걸렸다. 가늘게, 아주 가늘게. 자면서 뱉는 숨보다도 더 가늘게. 황천화의 탄식인지 연민인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은 참 오래도 잤다. 잘 잤다. 색, 색. 허리를 숙이고 시퍼런 숨을 오래고 들이마셨다. 깊게 침묵했다. 새벽만큼 깊었다.
5.
그 이후로부터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잃으면서 나아갔다. 어딘가에 묻힌 팔 한 짝 따위야 금방 잊혔다. 정말로 많이 잃고 나니 그건 잃은 축에도 들지 못했다. 그래서 황천화가 태공망 자는 머리맡에서 혀 끌끌 차는 일도 사라졌다. 다만 물끄러미 보다 얼굴 어디고 주둥이 찍어내는 것만큼은 여전했다. 간혹 태공망이 손을 뻗어 황천화 목덜미를 끌어당기기도 했다. 둥근 손가락의 온기가 맨살 위를 꾹꾹 디뎠다. 그게 퍽 간지러워 몸을 떨었다. 심장 안쪽도 덩달아 간질거렸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키스하고 눈을 찡긋하고 뭐하고 별 주접을 다 떨었어도 그게 연애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관계는 무언가 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도 더 못했다. 그 사람은 원시천존의 수제자였고, 봉신계획의 수행자였으며, 주나라의 군사였고, 어느 재주 많은 나무꾼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 중에 황천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이름이 있던가. 없었다. 황천화는 몇 번이고 관계의 정확한 이름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황천화로부터 세어 들어가자면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게 사숙이었다. 또는 아버지의 동료. 그들은 인간계에 내려온 숱한 선인 중 둘이었다. 그게 다였다. 고작 그 정도의 관계라서 태공망은 황천화 앞에 얼마든지 무정해졌다. 어쩌면 고작 그 정도의 관계인데도.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비단 태공망만을 탓할 건 아니다. 황천화 또한 태공망 앞에서 고집불통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은 한쪽 귀로 들어가서 한쪽 귀로 흘러나갔다. 황가의 넘치는 정도 이럴 땐 바닥이 말랐다. 팍팍도 했다. 고작 그 정도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보다도 우선할 수 있는 게 따로 있었다. 그래서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바로 어제 목덜미 주무르고 별것도 아닌 농담을 일부러 귓바퀴 위로 속삭이다가도 오늘이 되면 그딴 다정함들은 아무 소용조차 없어졌다. 태공망은 대놓고 얼굴색 싹 바꿀 줄을 알았고 황천화는 알아듣는 척만 잘했다. ‘당신 말이 맞소.’ 하고 물러서는 건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뜻과도 같았다. 여기에서 좀 더 나쁜 일은 황천화 목숨이 황천화의 우선순위 안에서도 꽤 뒤에 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태공망의 우선순위에서 황천화의 목숨이 더 위에 있었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다. 그게 뭐 그리 중하다고 높은 선반 위에 걸쳐 놓고선 황천화 손도 닿지 못하게 하려 했다. 황천화는 기어이 손을 뻗었다.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톡 떨어졌다. 목숨이 어찌나 연약한지 톡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그냥 산산조각이 났다. 이 엇갈림들이 그날의 새벽을 낳았다.
어쨌든 우리가 조가에 가긴 갔다. 일전에 농담처럼 말했던 도망에 대한 모든 공상과 이야기는 죄 조가로 귀결되었다. 황천화에게는 돌아왔다고 하는 쪽이 정확하겠다. 태공망으로선… 모르겠다. 그가 여길 돌아왔다고 해도 될는지, 입성했다고만 해야 할지. 아마도 그가 몇십 년 전 최초의 조가 방문을 어떻게 생각했을지에 달렸을 것이다. 황천화는 돌아왔다는 쪽에 걸고 싶었다. 이걸 일종의 여정이라 한다면 그쪽이 좀 더 아름다웠다. 돌아왔음에도 하늘은 처음 보는 듯 새로웠다. 하늘만이 새로웠고 도시는 허름했다. 성 아래에서는 낯설고 삭막한 공기가 흘렀다. 무너진 나라의 기색이란 먼지같이 조촐했다. 감개무량할 틈이라고는 없었다. 거기다 우리라고 하려니 황천화로선 새삼 미안해진다. 그에게도 일말의 양심 정도는 있었다. 우리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우리가 아니라 나와 그가 들어왔다. 태공망은 아마 이런 식으로 들어오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사이에선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 태공망이라고 뭐 조가 들어오자마자 죽는 목숨 보는 걸 원했을라고.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를 흔히들 컵 안 절반의 물로 얘기하곤 한다. 절반이나 남았느냐, 절반밖에 안 남았느냐. 황천화는 전형적인 후자의 반응을 보였다. 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황천화의 뱃가죽이 컵이 되었다. 절반밖에 안 남았는데, 그마저도 깨진 독이다. 손바닥으로 막아 봤자 줄줄 새었다. 절반은 무슨, 절반조차 안 되겠군. 그의 마지막 생의 나날들은 말라가는 컵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었다.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놔두자,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새었다. 손바닥이 순 제 피로만 시뻘게졌다. 콸콸 흐르다가 종내에는 졸졸 새었다. 새어나갈 것조차 얼마 남지 않은 것 마냥. 그의 생각은 아주 협소하게 줄어들었다. 딱 컵에 남은 양 만큼으로 줄어들자 몹시 단순해지기까지 했다. 한 방울밖에 안 남았군. 떠나간 숱한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까지 담담했는지를 겨우 알았다.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야 사람은 초연함에 대해 배운다. 이 단순한 가르침은 인간과 선인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러니까 말이다, 황천화는 지나치게 담담했다. 피를 너무 많이 잃어서 더 잃을 것도 없었다. 하긴 피만 잃었다 뿐이냐. 이젠 정말로 잃을 것이 없었다. 죽음 앞에 초연했다던 사람들이 그를 앞서 너무 많이 있었다. 그가 굳이 그들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저 그를 그 땅에 메어 놓을 만한 사람들이 다들 먼저 가 버렸다. 땅에 남은 건 의지와 결기같이 물질과 목숨을 벗어난 것들뿐이다. 황천화는 떠난 사람들 따랐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기꺼이 따라갔다. 따라붙은 손 하나는 그가 직접 뿌리쳤다. 원래부터 그리 단호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기어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고 조가에 들어왔고 끝을 봤다. 그는 그의 마침표 혹은 종점을 바라본다. 정말 끝내주는걸. 더더군다나, 마중 온 사람도 있고. 마지막 한 방울마저 뚝 떨어진 걸 느낀다. 얼마나 간당간당했던지 아쉬움마저 사치다.
이제 곧 멈출 것을 알면서도 숨은 열심히도 들고 날았다. 쌕, 쌕, 희미하게 숨 쉬었다. 밭았다. 내뱉는 숨마다 끔찍하게 피 냄새가 났다. 그조차 얼마 남지 않았음이다. 후련한가? 제대로 종지부를 찍었나? 그 이후엔 뭐가 있었을까? 있었다 해도 크게 미련 남진 않았다. 마지막에 그 얼굴만 보지 않았더라면. 다급하게 달려왔다. 모든 감각이 흐트러져서 그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숨소리와. 먼 소리와 가까운 소리가 구별 없이 섞여 이명이 일 것 같았다. 그제야 조금 슬퍼졌다. 죽는다는 게. 예상치 못한 감정은 다소 생경하기까지 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의 죽음 말미에서 혀를 차는 건 뜻밖에도 희발이다. 다 죽어가는 마당에 희발을 떠올릴 정도로 사이가 돈독했었나. 소리 없는 환청에도 귓바퀴가 다 웅웅거렸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이명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난 몰랐는데. 저런 얼굴 하고 뛰어올 줄은.
하필 희발을 떠올린 건 그가 두고 온 얼굴이 주로 희발 앞에서 보였던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태공망이 무왕에게만큼은 유독 엄하게 굴었다고 했었다. 군사의 지위 때문에라도 더군다나 그랬다. 풍읍에서 적잖이 논 세월이 있으니만큼 희발도 못지않게 징징거렸지만 결국에는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왕의 그릇이 그릇이기는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적응을 했으니 말이다. 필요한 일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뒤끝 또한 없었다. 나중엔 곧잘 진지한 얘기에도 눈썹 하나 꿈틀을 안 했다. 그럴 때 보면 그의 아버지를 퍽 닮은 것도 같았다. 황천화도 가끔은 둘의 대화를 보며 아직 주가 서기였을 적, 나이든 제후와 어린 얼굴의 도사를 떠올리곤 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언뜻언뜻 비치는 분위기 같은 게 그랬다. 희발이 이리 받아줄 걸 알아서 태공망도 제법 엄하게 굴었나 보다. 알고 보면 둘도 여간 잘 맞는 것이 아니다.
태공망의 엄한 얼굴을 생각해 본다. 평소 게으르게 벌어진 이목구비도 바싹 조이고 나면 나름 차가워졌다. 순식간에 굳어져서 장난을 싹 거둬냈다. 바늘 들어갈 틈도 남지 않았다. 단순히 표정 하나보다도 그 차이로 인한 어색함이 더 컸다. 저 위로부터 아래까지의 낙차가 서늘했다. 위엄에 짓눌리기보다는 기묘한 위화감을 부르는 얼굴이었다. 그에 말문이 막히면 곧 냉정한 말들이 머리를 때렸다. 말도 잘해가지고, 진짜 그럴 땐 매몰찼다. 그걸 굳이 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괜히 마주했다가 정 털리면 어떡해. 무마하겠답시고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반쯤은 진심이다. 어차피 황천화는 왕도 아니었고 태공망과 얼굴 붉힐 일은 없지 싶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아차 피하질 못했다. 결국 그놈의 엄한 얼굴이라면 실컷 봤다. 질리도록 봤다. 황천화 남은 게 고집뿐이라, 볼 수밖에 없었다. 저 혼자 혼나는 거 아니라 좋다고 환청 속 희발이 낄낄 웃으며 손가락질한다. 그래, 봤다. 시종 위화감에 휩싸이면서. 정을 뚝뚝 떨궈가면서. 살가웠던 얼굴, 몇 번이고 손바닥 뒤집어 가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딘 검처럼 혓바닥에서 마음을 발라내었다. 조잡한 상처들만 남았다. 황천화에게는 대수로운 상처가 아니다. 몸이 죽어 가는데 그깟 혓바닥이 대수랴. 그래서 황천화는 말한다.
사숙도 나도 이딴 말들엔 아무렇지도 않잖아.
황천화로선 말의 허울을 조금 벗겨내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난잡한 말다툼보다도 우선할 게 훨씬 많았으므로. 그가 언어란 걸 그다지 믿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 거들었을 거다. 그 말에 태공망이 무슨 표정을 지었느냐면, 황천화는 오늘에야 비로소 그걸 보게 된다. 저 사람이 상처받는 표정이 어떤 것인지. 마지막에 보는 것이 다 무슨 소용 이냐 싶겠냐마는 마지막에야 보게 되어 의미 있는 것도 있다. 허물어졌다. 감정의 모든 칸막이가 사라졌다. 이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이목구비 안에 칸막이를 잘 세웠었는지를 알겠다. 그 얼굴이 이렇게도 무너졌다. 차고 들끓고 질척이고 증발하는 온갖 혼돈이 함께 뒤엉켰다. 거기에서 겨우 한 마디 짜냈다. 고르고 고른 듯한 한 마디는 정제되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참 미안할 것도 많다. 힘 준 손이 가늘게 떨었다. 어깨 위에 올라오는 것이 여느 밤과는 생경하게 달랐다. 흩어지는 목숨을 여실히도 긁어모으려 했다. 부질없는 짓이란 걸 죽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알았다. 알지만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손짓에 매달린 간절함으로만 겨우겨우 위로받을 때도 있었으므로.
그 얼굴이란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영원이란 게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야 눈에 밟혀서 어떻게 가겠어. 하지만 고작 한 방울 남은 물에선 숨이 끊어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이제 모두 끝이다. 비단 황천화의 짧은 생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여정의 끝이고 이후의 일들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6.
그래, 황천화는 그런 식으로 죽었다. 세상 다 망한 표정 하나를 문지방마냥 덜커덕 밟고 별의 꼬리를 질질 끌며 겨우 봉신대에 입성했다. 꼬리가 어찌나 버겁던지 삶만큼이나 무거웠다. 밟히는 얼굴은 떠올리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일이 그리된 걸 그라고 뭐 어쩌겠어. 눈을 감아 봤자 영혼은 길 잃지 않고 잘만 날아갔다.
영혼들의 쉼터는 의외로 고즈넉했다. 조그마한 기차가 하늘의 길을 가로질러 다니고, 띄엄띄엄 누각이 있고, 물이 작은 줄기를 이루어 흐르고, 공기는 선선하고, 그 사이로 어디선가 한가로운 차 향기가 났다. 그건 사뭇 다르지마는 곤륜에서 곧잘 보던 풍경이었다. 죽어 봤자 별다를 것도 없군. 익숙함을 체감하자마자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허탈함이 피로를 부채질했다. 많이 지쳤다. 그저 쉬고 싶었다. 얼핏 고생 많았다,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아버지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래서 황천화는 일단 맘 편히 쉬었다. 영혼도 잠을 잘 줄 알더라. 아니 그도 잘 거라는 상상까진 해 본 적 있었다. 평생 잘 줄 알았다뿐이지. 영면이란 게 다들 그렇듯이 말이다. 상상과는 다르게 황천화는 잠을 깼고 눈을 떴다. 삼 일이 지나있었다. 배에선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 짧은 사이 저 아래 땅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뭐, 그랬다고 한다. 황천화가 봉신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왕의 목이 떨어졌다. 늙은 나라는 담담히 죽었다. 함성이 사방을 메우고 하늘을 뒤덮었다. 아마 수년 전 풍읍에서의 함성도 이와 비슷했겠지. 이로써 은은 완전히 망했고 동시에 신화시대는 완벽하게 저물었다. 풍읍으로부터 서기까지 참으로 오래도 걸렸다. 무언가가 끝나기는 끝났다. 사람들은 주왕 목이 떨어졌던 자리를 자주 올려다봤다. 정말로 끝났음을 실감하기 위해서였다.
막간의 한숨을 모두 공유하고는 인간들은 새로운 역사를 향해 찬찬히 발을 내디뎠다. 이에 큰 공로 세운 선인들은 감회까진 함께 했으나 곧 역사의 이면으로 뒷걸음쳤다. 경쾌하게도 손 흔들며 사라졌다. 모조리. 그리하여 앞을 향해 걷는 건 순전히 인간들의 몫이 되었다. 저 위로는 왕의 정치로부터 저 아래로는 민간 생활까지. 신화시대를 갓 벗어난 그건 어찌 보면 걸음마에 가까웠다. 보잘것없고 동시에 위대했다. 어수선해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게 보였다. 왜, 걸음마의 수장부터 희발이 아니었던가. 황천화는 말했다. 그러니까 다 맡기고 여기 올 수 있던 거라고. 그때 끄덕였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도덕진군이었나 문중이었나. 의외로 주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공간이 얼마나 놀라우냐면 그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한다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그러니까 주왕이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 단 한 번이었지만 만나보니 그럴 만하더군.”
그의 표정 또한 평화로웠다. 왕 해 먹어본 자가 하는 말이라 믿음직하다. 솔직히 황천화는 긴가민가했었지만, 주왕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못 이기는 척 믿어보기로 했다.
봉신대 오자마자 들은 목소리 말고 진짜 아버지 얼굴 본 건 그보다도 더 후였다. 피차 죽은 사람끼리 차탁을 마주 보고 앉았다. 그들 부자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인지도 모르겠다. 예의 차향이 공기 중에 스몄다. 여기선 다들 똑같은 차를 마시는 듯했다. 황비호는 물 마시듯 마셨다. 그런 건 변하지 않았다. 죽어서도 고치지 못할 습관도 있는 법이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얼굴 보고 감회가 어릴 법도 했는데 상대가 하필 황비호였다. 황천화의 간단한 소회를 듣고 난 황비호는 정말 별말 다한다는 듯한 얼굴로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하고 말했다.
“뭐, 그래도 고생은 많았다.”
뒤늦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맥이 쑥 빠졌다. 황천화는 그대로 차를 원샷했다. 금방 애틋해진 황비호 눈빛 피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아버지가 다정하면 영 맥을 못 추겠다.
그렇게 한가해졌다. 하도 한가해서 좀만 넋을 놓아도 하는 일이 생각이었다. 죽어봤자 대단한 철학은 없었다. 그저 그런 인생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다였다. 아직 죽은 것이 제대로 실감 나지는 않아서 일부러라도 자주 생각하려 했다. 무언가 한 막이 끝난 기분이기는 했다. 그걸 오래고 맛보아야만 했다. 어중간한 맛이 참 쓰기도 했다. 어쩐지 차 맛이 그리도 떫더라. 괴리감이었다. 제 딴에는 거창하게 끝이라고 했는데,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서 그랬다. 그에게만 쫑이었지 남들에게는 쫑이 아니었단다. 시간은 모두가 함께 쓰는 거라서 누구 하나 멈췄다고 같이 머무르지 않았다. 죽은 그를 내버려 두고선 모두 잘만 흘러갔다. 오직 그만이 구시대에 고였다. 구시대가 곧 봉신대였다. 죽은 후 영면을 생각했던 그로선 흘러가는 시간이 참 멋쩍기도 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혹은 아무것도 아닌 생각으로 도 아닌 도를 다 닦게 생겼다. 어쩐지 봉신대 사람들 표정이 한결같이 평온하다 했다. 심지어는 아버지마저. 다 놓고 와서 그런 줄만 알았더니 본의 아니게도 도 닦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황천화는 두 손을 들었고 도 닦는 무리에 얌전히 끼어들었다. 새 시대와는 다르게 낡은 영혼들의 쉼터, 봉신대는 변한 게 없었다. 변할 것도 없었다. 과연 시간이 하는 일들이 그러했다. 오로지 흘러가는 일. 봉신대 하나만을 휘돌고 흘러갔다. 그 와중에 봉신대에선 나지막하게 이야기가 하나 돌았다. 이 외딴섬에선 입막음이고 자시고 새어 나갈 곳도 없어서 비밀은 공공연했다. 끝이 났지만 이게 끝이 아닐 거라고. 그리고 이야기에 덧붙여 조만간 봉신대의 역할 또한 있을 거라 했는데 황천화는 그건 그냥 넘겨들었다.
황천상이 봉신대에 왔다. 일전 민지성의 건으로 봉신대 견학이 가능하다는 걸 다들 알았음에도 승강장은 언제나 한산했다. 견학이란 사실은 눈 가리고 아웅으로 넘어갔다. 다들 알고 있는 걸 쉬쉬했다. 어쩌다 한 번씩 남들 눈을 피해 몰래몰래 갔을지는 모르겠으나 보통은 면회를 터부시했다. 사자들의 안식을 위해서든 산 자는 산 자, 죽은 자는 죽은 자라는 생각이 있어서든 심리적인 벽이 분명히 존재했다. 생과 사의 영역은 확실하게 분리되었다. 함부로 넘으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만큼 오늘 황천상의 방문은 조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황천상의 상태도 조금 이례적이라는 뜻이다. 어른들은, 혹은 그보다 더 산 늙은이들은 뒤늦게나마 아이의 우울을 책임지려 했다. 애 앞에서 모두가 터부시했던 금기들은 느슨해졌다. 원래 애들한테는 너그러움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저들 싸움에 의지할 가족을 잃은 애라면 더욱. 모두 제 신념하나 위해 버린 목숨들이었다지만 결국에 떠안게 될 것은 남은 아이다. 그들은 아이가 납득하고 그네들의 죽음을 안전하게 떠안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황천상이 봉신대에 갔다. 그간 봉신대엔 손님이 워낙 없어 놔서 차장이자 엔지니어인 백감은 간만에 기름칠했고 덕분에 기차는 칙칙폭폭 잘 달렸다. 정말로 칙칙폭폭 달렸다. 소리가 앙증맞기도 했다. 황천상은 귀 기울이며 창에 코를 바짝 가져다 대고 까마득한 높이의 질주를 바라보았다. 객실에는 황천상 하나뿐이었다. 기차였음에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달콤한 것들을 실은 간식 차는 준비되질 않았고 황천상도 간식에 눈 돌아갈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짧은 여행은 내내 조용했다. 백감도 아무 말을 안 했다. 칙칙폭폭 깜찍한 소리만 들렸다. 증기기관도 아닌데 기차 굴뚝에서는 연기를 뿜었다. 흡사 구름을 짜내는 것만 같았다. 그걸 일종의 운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여기는 대다수가 이치보다는 운치로 돌아간다. 황천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걸 이해했다. 기차가 점점 느려지더니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 백감이 손짓했다. 본래 거북이 요괴인 그것의 손끝은 뭉툭했다. 손이 가리키는 쪽, 죽은 자들이 저만치서 손짓하며 서 있었다. 황천상은 달려가려다 참았다. 주먹을 쥐었다. 어떠한 감정을 참을 땐 그렇게 했었다.
산기슭 안쪽에서 새가 소쩍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단지 운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소리였다. 이곳에는 살아있는 새가 없다. 운치를 위해서라고 했으나 살아있지 않은 생물의 소리는 이치와 운치를 모두 거슬러 다소 기괴하기까지 했다. (황천화는 운중자 짓일 거라고 생각했다) 황비호와 황천화가 마주 앉던 차탁에는 황천상까지 세 부자가 둘러앉았다. 차는 예의 그 차로 단 두 잔이었다. 황천상의 몫은 없었다. 산 사람에게 사자의 공간에서 뭘 먹인다는 게 여간 찜찜해서 말이다. 황천화는 이번에는 단번에 마시지 못했다. 분위기는 무슨 삼자대면만치 엄숙했다. 기껏 먼 길 찾아온 황천상은 그 치고는 여간 말이 없었다. 사실 황천화는 이 상황이 조금 머쓱했다. 황천상이 오기만 하면 당장 울며불며 달려들 줄 알았는데, 애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우리 가족은…참…그렇다…생각했던 그림은 하나도 안 나오고…. 분위기를 알아서 말로는 하지 않고 속으로만 삼켰다. 다시 새가 울었다. 못 본 새 훌쩍 성숙해진 황천상은 차분하게, 오래 기다렸다. 그의 우울이 그걸 도왔다. 혓바닥을 옭아매고 침착하게 했다. 여전히 주먹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이윽고 기다린 끝에 답이 왔다. 형보다는 아버지가 조금 더 나았다. 황비호는 그럴 필요까지는 전혀 없었음에도 한껏 몸을 쪼그렸고 천상과 눈을 마주쳤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자주 그러했었다.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말은 황천화가 봉신대에 처음 올 때도 들었던 말이었다.
“고생 많았다.”
꽉 쥐었던 주먹이 느슨해졌다. 감정을 쥐고 있기가 더는 버거워서, 눈물샘이 왈칵 풀어졌다. 그제야 황천상은 엉엉 울었다. 황비호는 미안하다고 한 백번쯤 말하면서도 드문드문 그 어쩔 수 없었다던 이야기를 했다. 가치나, 신념이나, 머릿속에 있는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울이 기울어지는 급경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뚱이와 그 후 남은 것들에 대한 미련의 무게 또한. 애한테 맞춰주기보다는 순 제 식으로 말했다. 투박하고 우스갯소리 같았지만 솔직했다. 말을 고르느라고 마디가 자주 끊어졌다. 사이를 황천상 울음소리가 틈틈이 메꿔서 소리가 비는 일은 없었다. 울면서도 황천상은 제대로 들었다. 그거야말로 황천상이 진짜로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간혹 눈물을 훔치며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건 영락없는 어린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황천화도 알 수 있었다. 애란 이런 식으로 계단을 디뎌 어른이 된다. 그런 감각 황천화는 이제 평생을 알 수 없을 테다. 눈물로 얼룩덜룩한 얼굴이나 훔쳐 주었다. 킁, 황천상이 코를 들이쉬었다. 이제 우는 건 다 끝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서야 가족은 예의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갔다.
나타가 천상 떠맡은 얘기를 듣더니 황비호가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나중에 나타에게 밥이라도 사야겠다고. 인간사에도 끼기 힘들 어린 천연도사 팔자가 어지간히 걱정은 됐었나 보다. 아비 치레인지 뭔지, 참 여전한 양반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진지하게 말했다. 숫제 무릎까지 쳤다. “그 녀석이 안 그렇게 생겨서 진짜로 착한 녀석이야…!” 엄숙이라니 이 사람들 사이에선 못 할 짓이다. 황천화보다도 막내아들이 훨씬 천연덕스럽게 어울려 줬다. 나타 형한테 한턱 내도 정말 크게 내야 한다고 했다.
“허이고. 뭐로 낼 건데.”
또 이걸 받아내는 걸 보면 황천화도 별수 없이 황씨 일족이다. 그리하여 진지한 얘기들은 전부 허물어졌다. 황비호는 천연도사였어도 본래 인간의 삶을 산 사람이라 세상 새로 돌아가는 일을 궁금해했고, 황천상은 쓸데없는 얘기와 쓸모 있는 얘기를 한 8대 2 정도로 섞어서 말해줬다. 저 옛날 황천화가 황천상에게 해 주었던 유치찬란한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확실한 악당이 있고, 우리 편들이 힘을 모아 악당을 물리치러 간다는 게 요지다. 여기서 2 정도를 차지하는 쓸모 있는 얘기는 새 곤륜산과 봉래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새 곤륜산에도 황천상 시야에서의 자질구레한 잡담들이 많이 끼어있기는 했다.
“…그래서 봉래도에 갈 거래. 이젠 다들 좀 안 죽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은 거의 한탄조였다. 말하는 황천상으로선 별 생각 없는 듯 천연덕스러웠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은 뜨끔하고 말았다. 조금 전만 해도 한바탕 울던 애 달랜 양심이 남아있어서.
달기가 잡히지 않았으므로 선인들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달기 뒤의 배후도 이름까지 가지고선 어른거렸다. 봉신계획의 규모는 의외로 컸고, 봉신대의 영혼들뿐만 아니라 선인 대부분이 그걸 느끼고 있었다. 그건 황천상의 입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여와라고 말했다. 낯선 이름이었다. 황천화는 처음으로 자신이 너무 빨리 죽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아쉬움일까? 모른다.
“태공망이 너무 오래 있지는 말라고 했어.”
차는 반도 줄지 않았다. 아무것도 마시지 않은 황천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황비호도 황천화도 안절부절못했다. 대접을 할래도 그렇고 안 하고 보내는 것도 그렇다. 황천상은 개의치 않아 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끌어안았다. 아직도 정수리가 황비호의 허리춤을 조금 넘고는 말았다. 아마 이대로 돌아간다면 여간해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도 으스러지라 안아주는 일밖에는 없었다.
“그래, 태공망은 잘 지내지? 안부 전해줘라.”
황천화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피한 사람의 이름을 황비호가 찾았다. 다 죽어 놓고선 안부를 전해 달라니, 산 사람이 퍽도 좋아하겠다. 죽은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어서 배알이라도 꼴리면 어떡하라고. 황천상은 그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공망은 바빠 보이지만 잘 지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 그렇겠지.”
힘겹게 짜냈다. 입이 잘 안 떨어졌다. 하도 밟혔던 얼굴이 되살아났다.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그거라, 잘 지낸다는 태공망을 상상하는 건 조금 어려웠다. 아니 많이 어려웠다.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해.”
무슨 봉신대를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 친척 집인 양 대했다. 황비호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말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놀러 오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황천상도 그러마 했다. 그도 인사치레지 꼭 그리하겠다 하는 건 아니었다. 애가 사회성만 늘어가지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천상이 에헤헤, 하고 웃었다. 기차에서 내릴 때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황천상도 황비호도 황천화도 뻔한 사실을 어물쩍 덮어버리고 이별했다. 여긴 지난 시간이 고이는 곳이고 동시에 시간이 휘감아 돌고 흘러가는 외딴 섬이며 뒤돌아보는 자만이 그리워할 곳이다. 멀쩡히 산 사람들이라면 이곳에 들르지 않으며 태공망 또한 그럴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우리 사이에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태공망이 이곳에 올 이유는 더욱더 없었다. 그럼에도 황천화는 조금은 기다렸던 것 같다. 한 번 정도는 더 보고 싶었다. 아주 단출한 이유였지만 정말로 그게 다였다.
7.
기차가 흰 연기 뿜으며 멀리 달려갔다. 길게 길게 미련처럼 손짓했다. 그 이래 다시 기차를 본 일은 없었다. 아무도 봉신대에 오지 않았고 망자들은 도로 동그마니 고여 한가해졌다. 황천화가 기다리는 사람도 오지 않았다. 기대하진 않아서 기다림을 아주 접지는 않았다. 때론 기대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황비호는 몸이 찌뿌둥한 걸 영 못 견디겠는지 자주 산을 돌았고 황천화도 몇 번인가는 따라붙었다. 천성은 아버지 빼다 박아서 그랬다. 정상에선 구름만이 자욱했다. 그건 마치 거대한 구름으로 이루어진 강과도 같았다. 구름을 뚫고선 봉우리가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황천화는 봉우리의 숫자를 셌다. 어떨 때는 스무 개였고, 또 다른 때에는 열세 개였다. 황비호는 봉우리 숫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몸을 접고 펴고 앉았다 일어나며 스트레칭을 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들이 들이마신 숨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지. 끄트머리를 따라가 보려다가도 번번이 실패했다. 오히려 담배 연기는 흘러가는 게 빤히 보였다. 멀리멀리 가다가 흐릿한 구름의 꼬리를 물었다. 곧 커다란 구름이 되었다. 구름 헤아리는 게 일이 되었다. 구름이 기억을 몰고 기억이 구름을 몰았다. 공교롭게도.
손님 대신 기억이 그를 찾아왔다. 도사가 아닌 인간으로 치더라도 짧은 축에 드는 그의 인생 자체가 과거가 되고 기억이 되어 새삼스럽게 손님치장을 했다. 기억들은 기차를 타지 않았다. 불쑥불쑥 찾아와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거나 혹은 하나하나 따로 들어왔다. 슬그머니. 후자가 훨씬 쓸데없는 기억이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소한 기억 말이다. 길가에서 풀 하나 뽑아 입에 물고 코 밑에 풀내음 가득 달고 다니던 별것도 아닌 발걸음들. 그런 것들이 유독 크게 몸을 불리고 향수처럼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그가 그렇게까지 삶에 미련 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기억들은 신기하게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황천화와 썩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고, 그 스스로조차 생각했다. 거 참 희한하네. 똑같이 풀 뽑아서 빼물어 봐도 그때와 같은 감정 하나 일지 않았다. 그저 어른어른하기만 했다.
태공망이 풀피리를 불 줄 알았다. 그의 조잡할 정도로 많은 잔재주 중 하나였다. 이 정도면 곤륜에서 수행하던 동안 뭔 짓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도덕진군은 간단하게 답했다. 농땡이. 그러니까 여태 도사 하나 못 벗었지. 도덕진군도 죽고 나서 쓰잘머리 없는 말만 늘었다. 큰일 하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지만 미묘하게는 쓸모가 있는 정말로 잡다한 잡기술뿐이었다. ‘잡’이라는 말이 붙을 만도 했다. 수맥을 잡고 점을 치고 가끔 문도 따고 별을 헤아리고 날씨를 건너다봤다. 풀피리는 한 백팔 가지 쯤은 되는 듯한 그의 잔기술 중의 하나였다. 황천화가 사춘기 남자애인 양 손을 어쩌지 못해서 꽃을 묶고 돌을 차는 동안 태공망은 풀피리를 불었다. 이슬 맺힌 거 똑 떼어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얇게 핀 입술로 풀을 베어 물었다. 꾹 다물려졌다. 소리는 거칠고 날카롭다가 이내 높은 지점을 두드렸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갔다. 음계를 하나하나 짚고 그 후에야 들어봄 직한 노랫소리 같은 걸 만들어냈다. 그건 그나마 좀 있어 보여서 황천화는 풀피리 부는 법을 태공망에게 배웠다. 소리다운 소리 내는 것부터 어려웠다. 입술 오므리는 게 여간 일이 아니어서 공기는 소리를 품지 못한 채 자꾸 새었다. 담배 연기로 도넛 만드는 게 이천 배는 쉽겠다. 시간 좀 들이고 나서야 겨우 삑, 하고 소리가 났다. 겨우 요령이 잡혔다. 오랫동안 물고 있어 입술이 다 저렸다.
“자네도 이게 아니라 사람 입술을 이렇게 빨아봐야 하는데…”
라고 태공망이 부러 말했다. 끝이 엄청나게 착잡해졌다. 풀잎마냥 까끌까끌했다.
“이 노인네 징그러운 소리 한다, 진짜.”
농담에 황천화가 한참 물고 있던 걸 퉤 뱉어 버렸다. 태공망이 웃었는데 풀피리 물고 있어서 웃음소리에마저 피리 소리가 났다. 삿되게 갈라져서 삑삑 웃었다. 입술 안쪽으로 파랗게 물이 들었다. 비웃는 가락마저 거슬려서 냅다 뺏었다. 그랬더니 낭랑하게 대놓고 웃는 소리가 났다. 그 또한 피리 소리 못지않게 높았다. 타박하던 늙은이 목소리와는 또 딴판이었다. 아주 숙맥이구나. 주둥이 살아 나불거리는 태공망에게 황천화가 물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많지가 않다. 머리치고 두건 꼬아 뒤집어씌우고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수밖에. 태공망에게서 뺏었던 풀피리 쪼가리는 그대로 황천화가 들고 다니다가 그날 밤이 되어서야 다시 물었다. 의외로 소리가 쉽게 났다. 망할 사숙이 저만 소리내기 편한 걸 물고선 날 속였구나. 욕이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나왔다. 욕인지 노래인지 밤새 삑삑 불었다. 뱀 나오겠다. 황천화 입술에도 파랗게 물이 들었다. 이제 황천화는 풀피리를 제법 잘 분다. 적당히 고르는 요령도 알았고 부는 방법도 잘 배웠다. 노래도 몇 곡조 배워서, 배운 걸 따라 하기도 하고 제가 알던 노래를 풀피리로 불기도 한다. 매끄럽고 높은 소리가 난다. 높이 치솟았다가 완만하게 내려왔다. 봉신대에 온 최근에야 불현듯 깨달았는데 풀피리는 태공망이 곤륜에서 배웠던 잡기술이 아니다. 강족의 많은 사람이 풀피리를 불었다. 읍강 또한 쉬이 불었을 것이다. 비슷한 풀을 뽑아 똑같이 입술을 오므리고, 같은 음계를 밟아 내려가는 걸 시작으로 같을 가락을. 이건 태공망 그가 아주 어렸을 적, 그의 피붙이에게서 배운 것이다.
황비호가 황천화 풀피리 소리를 듣고선 아주 멀리 나갔을 때 들은 적이 있다고 해서 이런 생각도 퍼뜩 떠오르고 말았다. 그렇구나, 태공망에게서 그런 걸 배웠던 거구나, 하고선. 그래서 부는 멜로디가 애달파 지기라도 하던가? 약간은? 황천화는 자문자답 속 말을 흐린다. 부정은 못 하겠다. 태공망에게도 그런 사사로운 인생이 있었다는 것과 그런 개인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는 게 황천화로선 더 인상이 컸다. 황천화가 기억하건대 태공망으로서의 개인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은 온통 그래놔서. 풀피리를 부는 건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곱씹는 건지 입술은 여전히 앙다물어졌다. 그때의 풀피리는 어디로 갔던가. 일전의 황천화 들꽃다발처럼 말라비틀어져 어디론가 날려갔을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스러지는 방법들을 따라서. 좀 더 오래 입이나 붙여볼 걸 그랬다. 태공망이 그리 놀리더라도 말이다.
숱하게 찾아오는 기억은 황천화를 배신하고 가장 큰 적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은 단꿈과 악몽처럼 번갈아 왔다. 매일매일 다른 기억이 다른 향수를 입고선 머리맡을 두드렸다. 그 손짓이 얼마나 살가웁던지.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기억들은 죄 도와 모 사이를 서성거렸다. 그가 시작했던 도로부터 결국 머물렀던 모까지. 그럼에도 싸우느라 치여 잊어버렸던 모든 부차적인 감정들을 모두 어루만졌다. 여전히 상냥한 손짓과 발걸음이었다. 그가 인간사에 놓고 온 것이라곤 몇 안 남은 피붙이와 마지막 얼굴이 다라서 유독 자주 생각했다. 천상은 왔는데 그 작자는 오지도 않는다. 괜히 서운해서 심통도 난다. 답지 않게도.
그건 뭐였을까. 그가 숱하게 가엾다 귀엽다 여겼던 작은 동정들. 자는 사람 머리맡에서 자장가처럼 중얼거렸던 작은 감탄들. 그렇게 쉽게 눈 밖으로 내쳐버렸으니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그때의 황천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질과 사숙으로부터 곤륜의 도사 둘까지.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두 사람이 군영을 돌고 술을 나눠 마시고 별을 헤아리고 풀피리를 불고. 그렇게나 다정했다던 손짓을 하고. 파랗게 물든 입술 보면서도 우습다 손가락질하다 입을 맞추고. 입술 사이로 노랫소리를 몽땅 훔쳐 왔었다. 새파란 풀 비린내. 바람이 불었다. 한 줄기 휙. 앞머리를 들췄다. 그 한 줄기에도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원래 바람 양 떼처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비록 필요 앞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내쳐버리긴 했어도.
아무것도 아니라기엔 말이다. 그건 분명 어떠한 무언가이긴 했다. 그는 모를 밟았고 그건 맞았다. 아무것도 없었다니 다 거짓말이다. 황천화를 속이고, 태공망을 속이고, 눈을 감고 모래에 머리 박은 타조처럼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되뇌던 거짓말이다.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둘 다 똑같은 놈들이어서 똑같이 그랬다. 그러니까 태공망이 얼간이라고 했었다. 순 얼간이라고. 어쩜 그리 옳은 말만 했는지 얄미워 죽겠다.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너무나 많았다. 떠올리라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겠다. 언젠가의 밤공기와도 닮아서.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다. 도망갈래? 속삭이던 세상 시시껄렁한 농담들. 그러자 웃던 목소리. 마치 진심처럼 잡던 손. 손바닥 안쪽이 말랑말랑했었다. 이 손 잡고 어디까지 갈 건데,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럴 마음 하나도 없었으면서. 그 사람이고 자신이고 그럴 생각 눈곱만큼도 없었으면서. 뭐가 좋다고 그리 시시덕거렸나. 깊은 어둠에 눈이 시렸다. 눈 시려 껌벅껌벅하면서도 꼬박 밤을 새웠다. 봉신대에서도 달이 뜨고 별이 뜨고 먼동이 트고 하늘은 깊더라. 그리고 붙잡던 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의 우리가 도망가자고 떠들고 웃으면서도 무슨 생각 하고 있었는지는 뻔했다. 우리는 온통 당면한 앞날의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군대가 갈 길을 그리고 적을 예상하고 다음의 싸움만을 생각했다. 이걸 다 놓는 도망이라니, 절대 꿈에서라도 꾸지 않았을 일이라서 그리도 낭만적이라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모순되는 감정의 틈에서 그것만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감히 낭만을 입에 올려본다. 적어도 황천화는 그랬다. 지금 돌이켜보니까 그렇다. 인제 와서. 하지만 인제 와서 아니면 언제 낭만 따위를 운운하겠어. 이렇게나 어른어른하는데. 기억의 손님이 슬며시 웃는다. 그런 밤도 있었고 지나간 밤은 돌이켜 생각하자면 따뜻했고 그때 당신 얼굴은 분명 사랑스러웠다. 황천화는 이제 와서 그걸 부정하진 않기로 했다. 지금 한창 싸울 태공망이 감히 사랑을 생각하겠어. 싸워본 황천화가 안다. 돌이켜 생각하는 건 오로지 죽은 사람이 해야 할 몫이다. 황천화는 기꺼이 그 역할을 맡았다. 그럼에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더뎠다. 더딜수록 애틋해졌다.
별 빛나는 밤에서부터 해 뜨기까지를 꼬박 지켜봤다. 밤은 시리고 아침은 눈이 부셨다. 가늘게 떴다. 안개가 서서히 흩어지고 청명한 산자락이 드러났다. 그림자가 저만치 물러섰다. 모로 누웠다. 앞으로도 이 시린 걸 까마득하게 안고 일어나야만 했다. 사랑 한 번 했기로서니 그의 새벽녘이 참 가혹도 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새벽에는 안개가 없었지. 구름 위로 솟은 봉우리 수만큼 해가 졌다. 또 떴다. 담배 연기 뱉었다. 구름이 되었다.
8.
황천화가 확실하게 사랑이었음을 인정했을 무렵이었다. 죽은 사람은 짊어질 책임이 없어 팔자 좋게 과거의 사랑을 생각했다. 현재는 그를 과거에 둔 채 새 전장으로 나아갔다. 얼기설기 얽힌 싸움의 뿌리를 찾으러 갔다. 사자들보다 산 자들이 훨씬 치열했다. 사는 게 원래 그랬고 황천화도 살아봤다시피 다들 그렇게 살았다. 지금의 황천화로선 가물가물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간에 그게 삶이란 거였다. 치열함 한껏 늘리고 늘려 길고 길게 살아가는 선인들조차 삶과 그 싸움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하물며 세계 존망을 위한 것이라면야. 마지막 싸움 앞두고 전운이 어찌나 거대하던지 몸 저리는 긴장이 삶과는 거리 까마득한 봉신대로까지 흘러들어왔다. 큰 풍랑이었던 그것은 머나먼 봉신대까지 닿으면 어느새 자글자글한 파도 되었다. 그리하여 수면은 이따금 전조를 부르며 잘게 흔들렸다. 그 위로 꽃잎 흩어졌다. 하도 심상찮아 죽은 자들마저 무언가를 예감했다. 몇천 년을 유지했던 세계의 질서는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방향이든 개편이 올 것이다. 잘은 진동과 더불어 공공연히 돌던 소문은 어느덧 확실한 실체를 입었다.
봉신대 해방.
문중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포가 졸을 건너뛰었다. 옥돌 깎아 만든 장기짝이 탁 소리를 냈다. 황천화는 졸지에 상을 잃었다. 에라이. 그는 당장 닥치지 않은 싸움보다는 눈앞에 당면한 이 전쟁부터 해결하려 애썼다. 장기판이다. 쫓아오는 차를 피해 그의 장은 급하게 대피했다. 황비호는 아들 장기판에 내세우고선 훈수조차 안 둔다. 구경에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겠다. 장기짝에 떡하니 이러저러한 한자 새겼는데 그 정도는 눈 가리고 아웅으로 넘어간다. 역사가 송두리째 무너지게 생겼는데 그깟 순서 좀 꼬이는 게 뭐가 대수랴. 그보다 그의 장이 한 수라도 더 오래 사는 게 더 급했다. 장이 빨리 죽으면 당장 고민할 일도 사라지고 그러면 애써 미뤄놓은 더 큰 일을 고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봉신대가 해방되면.
“장군.”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이게 여기가 아닌데.” “무르기 없어, 인마.” “아버진 대체 누구 편이요?!”
아차, 괜히 딴생각하다가 이 꼴이 난다. 사면초가다. 태사를 장기로 이겨 먹기엔 짬이 딸린다. 뒤에 선 아버지도 어째 남의 편이고. 장기판 위에서도 장기짝들이 불온한 진동으로 딸깍딸깍 울었다. 마치 진격을 앞둔 말발굽 소리 같았다. 쉼 막바지의 장기놀음이었다. 결국 마가 장의 목을 쳤다.
은주혁명이 끝났는데도 영혼들은 길 잃지 않고 봉신대로 잘도 찾아 들어왔다. 봉신대는 아직도 허기가 지는지 하염없이 영혼을 빨아들였다. 누구 하나 봉신되거든 봉신대의 넋들은 우르르 모여 별똥별 쫓듯 영혼의 머리를 찾았다. 죽은 자에게 하기도 좀 안 된 말이지만 봉신대에선 그들이 곧 호외였다. 하 수상하게 돌아가는지라 귀동냥만 심해졌다. 귀 기울이는 봉신마다 마지막은 부쩍 가까워져 왔다. 황천화도 이제는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판이라는 장기까지 지고 나니 더욱 그랬다. 뒷정리는 패자의 몫이다. 장기판 위 패전의 형세를 와르르 쏟아 넣으며(문중이 아주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턱을 괴었다. 턱뼈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더 미루고 미뤄 봤자다. 어떻게든 그의 태도를 결정해야만 했다. 장기짝 서로 짜각이며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것 또한 문중이 아주 싫어했다)
봉신대 해방이 황천화에게 뜻하는 바는 그랬다. 역사고 세계고 비장함이고 뭐고 뱅글뱅글 돌다가 끝내는 단 한 가지로 안착했는데 태공망이 봉신대에 오지 않아서, 황천화가 태공망 얼굴 보러 가게 생겼다. 이게 결론이었다. 결론 위에 조심스레 발을 디딘다. 동시에 탄식했다. 망했네…. 이래서 황천화가 살아생전 연애를 못 했다. 설렘은 탄식에 밀려서 사라졌다. 그래서 한숨만 남았다. 망했네. 좆됐네. 뭐가 좆되고 망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혼돈을 대변하는 말들은 대부분 비속어로 떨어졌다. 결론 위에서 서성거리며 맴만 돌았다. 혼돈이다. 그리워만 했지 딱히 기대하지는 않아서 황천화는 이 상황이 못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곧 다가올 재회는 그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요, 문제요, 미지의 그림이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장기다 바둑이다 뭐다로 한참 도망도 다녔다. 뭐든 달리 머리 굴릴 곳만 있으면 되었다. 그의 도피에 은의 태사는 손속을 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장을 몰아넣고 처참하게 목 죄어 죽였다. 잔인한 사람. 더 도망갈 곳도 없어진 황천화는 목 떨어진 장기짝들 흔들며 생각했다.
혼돈 속 무슨 표정 하고 봐야 할지는 더욱 감이 오지 않았다. 하도 날카롭게 부딪쳤고 그의 마지막이 마지막이었던 지라. 최후에 들었던 사과는 귀가 아니라 영혼이 들었다. 영혼의 귓바퀴는 어디 있을까. 사과는 그 안쪽에서 왕왕 메아리쳤다. 이걸 담아버렸는데 무슨 얼굴 하고선 다시 본단 말이야. 심지어 저 말 이후로는 변명도 회한도 없이 뚝 떨어지는 공백이다. 황천화가 죽은 후 그들의 간격은 뚝 끊어졌고 그대로 공백으로 남았다. 태공망의 그림자와 황천화의 발 사이로 공백의 삼도천이 흐른다. 공백에는 아무것도 없고, 동시에 모든 것이 있다. 얼마나 깊은지는 모른다. 황천화가 죽은 지 얼마나 됐더라. 그가 봉신대에 오고 나서 체감하기로는 시간이 퍽 많이도 지난 것 같다. 한가한 하루하루가 일정한 감정을 굴리고 불리며 느릿하게 흘러갔었다. 아주 오래오래. 하지만 막상 봉신 되던 그날을 떠올리면 바로 어제 같았다. 그렇다면 더 옛날의 나날들은? 완전히 까마득했다. 그 시간들은 존재하되 까마득해서 사랑스러운 거다. 피부에 닿는 시간은 순 황천화 멋대로였다. 그래서 태공망과의 일방적인 거리는 체감하는 시간과 함께 몹시 애매해졌다. 어색할 정도로 멀거나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깝거나 했다. 나머지 동정들은 저 거리 사이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서 적당한 정도에 던져 놓았다. 데구르르 굴러갔다. 이걸 한데 끌어 포괄할 만한 태도를 황천화는 알지 못했다. 태공망과 황천화의 사이의 공백 기간에 태공망이 과연 무엇을 채웠을지는 모르겠으나 황천화는 또 하필 핑크색 감정만 잔뜩 채워 놨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더 깝깝해졌다.
그는 머릿속에서나마 재회의 장면을 몇 번이고 그려보려 했다.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그림이 지나갈 뻔도 했다. 좋은 그림도 있었고 나쁜 그림도 있었다. 허나 전부 실패했다. 그려보기엔 너무 난해한 그림이고 그에게는 상상력이 꽤나 빈곤하다. 무엇보다도 태공망의 얼굴을 잘 상상하지 못하겠다. 웃을까, 화를 낼까, 슬퍼할까. 아니면 전부 아니거나. 그는 최대한 그의 상상 너머의 표정을 생각해보려 애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봤던 얼굴은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선 자신은 뭐라 말해야 할지. 오랜만이요, 사숙. 소리 내서 말해봤다. 자신의 목소리였음에도 몹시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말 외에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입술 끝이 일그러졌다. 힘을 주었다. 많은 고민 하고 나서야 겨우 솔직해졌다. 황천화는 될 수 있으면 웃고 싶었다.
영혼 하나 긴 꼬리 그리다 말았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별똥별마냥 가늘고 긴 선이 허공에서 똑 끊어졌다. 희미하여 끝을 쫓을 길 없었다. 봉신대의 아무도 쫓지 않았으니 어디로 향하든 어디로 사라지든 제 맘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몹시 그다웠다고 할 일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바람 불었으나 완전히 옛 바람은 아니었다. 바람에서는 좀 더 습한 냄새가 났다. 이를테면 태풍 직전의 바람 같은. 하지만 그것 또한 바람이었다. 이쯤 되어서 황천화의 혼돈은 거의 극한에 치달았다. 심각하게 담배 말렸다. 진짜 저놈의 사숙은 황천화 생각이나 예상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다. 그가 애써 연습했던 미소들은 죄 허물어지고 이 사이로 부질없게 새어나갔다. 우습게도 공공의 적이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고 그게 그를 혼돈에서 건져내었다. 죽었어도 그는 타고나길 전사였다. 전사의 제정신이란 본디 전장에서 살아나는 법이다.
멀리서 북소리 들렸다. 맹렬한 박자가 정적을 깼다. 없을 심장 소리 둥둥 하고선 대신 냈다. 북소리가 사슬을 끊고 옭아매던 중력을 깨부수었다. 억압이 풀렸다. 본래 혼에게는 잡아둘 무게가 없고 고일 형체가 없다. 그래서 혼이다. 무게와 형체를 억지로 잡아두던 신선놀음의 중력이 흩어지자 발이 붕 떠올랐다. 덧없게도 자유로웠다. 그건 저 옛날, 땅에 발이 닿았던 감각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땅만이 여전히 같았다. 그렇기에 고향이었다. 감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생과 사가 변해도 땅만이. 그래서 황천화는 처음 돌아왔을 적에 했던 말을 다시금 중얼거리고 마는 것이다. 어쩜 인생사 이리도 알 수 없는 일일까. 하고선.
그렇지, 사숙.
그때의 태공망이 뭘 하고 있었느냐면, 한창 주먹다짐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아니 다 죽이고 죽어가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치고 던지고 물고 쥐어뜯고 난리가 났는데 마지막 싸움이라기엔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어째 고차원적 싸움일수록 원시적인 드잡이질로 돌아가는 듯한 경향이 있었다. 사람은 가장 간절하게 패고 싶을수록 주먹을 쥐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태공망은 그네들이 말하는 사람이 맞는 듯도 싶었다. 얼굴은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얼마 만에 보는지도 아리까리한 얼굴은 낯익은 듯 생경했는데, 뭐 조각조각 난 형체 알아볼 수나 있어야지. 그거 보니까 절로 어이구, 어이구, 애간장 끓는 소리도 나고 그랬다. 그 언젠가 막사에서 혀 차던 소리처럼. 애쓴다. 몇천 년을 질리지도 않고선. 의뭉스럽게도 그랬다. 오래도 애쓴다. 그런 모습으로 하여금 모두가 기꺼이 손 내밀게 하는 것이리라. 죽은 사람들마저.
황천화로선 재회의 그림 따위 상상하지 않은 게 차라리 잘한 일이었다. 봉신대로부터 우르르 쏟아진 혼들이 한둘이었어야지 말이다. 황천화도 그중에 하나에 불과해서 재회는 거의 하이파이브 한 번으로 지나갔다. 그제야 멀쩡한 얼굴 봤다. 눈빛이 천천히 이목구비 쓸었다. 황천화가 죽은 이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립기도 했었고, 과거 얼굴 되새기며 사랑도 했었다. 다시 보니 재회는 상상외로 싱거웠다. 싱거웠던 데다가 막상 얼굴 보니 그간 고민했던 건 다 무색해졌다. 그 십몇 년을 태공망과 함께했던 게 헛된 세월은 아니었다. 그도 그만큼은 태공망에게 익숙했다. 그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허허, 그냥 웃음 나왔다. 그가 그간 연습했던 미소들과는 영 딴판으로 비틀어져 터져 나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언제고 태공망 보거든 이런 식으로 웃었던 것 같다. 참으로 여전하다. 기가 막히게도.
9.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건 다 옛날에 옛날에로 운을 떼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고 황천화도 호랑이 따라 골초였을 시절이다. 그 황천화의 죽음은 먼 먼 옛날 일이 되었고 봉신 되어 있던 시간조차 찰나에 불과해졌다. 지금의 황천화는 그의 짧았던 삶보다도 몇 곱절을 더 신계의 신으로서 살았다. 그들의 전쟁은 역사의 영역에도 들어가지 못한 신화시대의 이야기다. 신화시대의 이야기는 알알이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또 더러는 문자로 전해지다가 자연스럽게 조금씩 소실되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인간들은 저 옛날을 잊어버렸다. 흔히들 잊은 시대를 신화라고 불렀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 대신 환상 속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미 그렇게 되었으므로. 황천화가 알던 인간들은 모두 억겁의 역사 아래로 묻혔다. 그 위로 새 역사가 켜켜이 쌓였다. 보다 정돈된 문자가 역사를 기록했다. 문자에서는 먹 냄새가 났다.
주가 끝장났을 적에는 그도 좀 슬펐던 거 같다. 그와 땅 사이 유일하게 남은 연결점이었으므로 그럴 만했다. 그 이후엔 정신이 없어서 아무래도 상관 않았다. 황천화가 정신없는 게 아니라 인간사가 정신없었다. 전쟁이 지나갔다가 태평성대가 지나갔다. 이쪽이 평화로우면 저쪽이 어지러웠다. 머리맡에는 희발 대신 노자가 더러 앉아 중얼거렸다. 태상노군을 만난 적조차 없었음에도. 황천화의 상상 속에서 태상노군은 느긋하게, 숨 쉬듯 한 마디 겨우 뱉었다. 사람은 바뀌었고 그 뜻 또한 바뀌었지만 듣는 말 만큼은 여전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귀에 딱지가 앉겠다. 이 말에 대한 황천화의 반응도 한결같다. 나는 그럴 줄 몰랐는데. 황천화는 정말로 그럴 줄 몰랐다. ‘그럴 줄’ 이 말하는 바에 대해선 좀 복잡하다. 대충 복잡한 모든 것을 포괄해서 이른 작금의 상황을 뜻한다. 봉래는 봉래대로 돌아가고 황천화를 포함 봉신대의 주민들이 신이 되고 태초의 인간이란 작자는 꼬리 말고 잠적했으며 인간들은 저들끼리 못살아 아주 지지고 볶는 그런 상황 말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자유라고 한다. 하긴 다들 그럴 줄 몰랐으니 거침없이 사는 거렸다.
태초의 인간의 행방은 아직도 수색 중이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아있다더라, 소식 들려오고 나선 사람 찾기에 활기를 띠었다. 본래 연을 가지고 있었고 딱히 할 일이 없는 한가한 선인들이 들러붙었다. 특히 하마가 열심이다. 반쯤은 오기인 듯도 한데, 인간계 훑고 와서는 여지없이 분통만 터트렸다. 잘 안되나 보다. 반이 오기라면 나머지 반은 정이다. 그래도 정이 절반이나 되니 착하기로는 하마가 두 번째로 착했다. 무길 다음으로. 무길은 순전히 백 퍼센트의 정으로 스승을 찾았다. 그리고 매번 어깨 축 늘어져서 돌아왔다. 세상에 그렇게 착한 애도 또 없었다. 황천화는 고생하는 무길에게 딱히 줄 것도 없어서 손만 꼭 쥐여주고는 말았다. 네가 고생이 많다. 무길은 선히 웃었다. 고생 축에도 안 든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새 교주는 바쁘다면서 수색에선 손을 뗐다. 새 봉래도 굴리느라고 바쁘다고 했다. 개중 입이 제일 바빴다. 매일 바쁘다 바쁘다,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순 생색이었다. 사실 괜히 천재가 아니어서 그는 새 선인계의 토대 정도야 진작에 다 다져 놨다. 주를 건국할 때 함께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던 모양이다. 이런 사회나 저런 사회나 합리적인 시스템이야 결국엔 비슷비슷한 형태로 귀결되기 마련이라서. 그래서 한껏 바쁜 척 엄살 부리고선 뒤로는 두 다리 잘만 뻗었다. 다리 뻗고 뭐 하는지는 모르겠다. 모른 척 혼자만 따로 재미 보지 말고, 하고 찔러봤는데 양전은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뭐?”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허허허.”
어설프게 찌르는 거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시침을 뚝 떼고 만다.
“그럼,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뭐라도 더 캐물을세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하나도 안 바쁜 거 다 안다. 높은 자리 꿰차더니 뻔뻔함만 늘었다.
황천화는 사람 찾기엔 대놓고 참여하지 않았다. 무길이나 사불상에겐 자주 소식 얻어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는 그리워하는 사람이지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전히 상상 속에서 노자의 한 소리 들었다. 오지랖은 귀찮음의 가장 큰 적이다. 노자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남 인생 머리맡에서 훈수 둘 성격이 못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봤자 상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됐다. 돌림노래처럼 반복되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상상 밖에선 사불상이 황천화를 나무랐다. 대놓고 손가락질했다. 하마에게도 꽤 날카로운 면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불상 말이 맞았다. 간절하다면, 정말로 보고 싶다면 마냥 손 놓고 기다려선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마라고 불린 억하심정도 좀 섞인 것 같지만. 수색의 진척을 얘기해 주다가도 사불상은 불쑥 화냈다. 황천화에게 화를 내는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제 주인을 욕하는 건지는 헷갈렸다. 황천화는 사불상의 책을 고스란히 들어줬다. 결국엔 사불상이 졌다. 에휴, 하고 한숨 쉬었다. 무길을 태우고 봉래로 갔다. 그의 비행에도 터덜터덜이라는 말이 있다면 지금 모습이 딱 그랬다. 황천화는 손 흔들어 줬다. 그들이 황천화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황천화의 그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기다리는 역이다. 물론 좀은 쑤셨다, 자주 기지개 켰다. 그렇다면 기다리면서는 뭘 할까.
황천화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했다. 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하러 가고, 코치와 어울리고, 여전히 지는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또 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불상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 얻어듣고, 기대하진 않는 기다림을 하고, 머리맡에서 태상노군의 한탄을 몰아내는데 쓰는 건 쓸데없는 게 아니었다. 저 일들을 모두 하고 나면은 남는 자투리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을 소비했다. 너무나도 쓸데없어서 몰래몰래 했다. 시간의 조각이나마 몇백 년의 조각을 쏟으니 어마어마해졌다. 몇 번이고 그날 밤으로 돌아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천천히 조심조심 뒷걸음질 쳤다. 세월이 많이 흐를수록 뒷걸음질 치는 걸음수도 까마득하게 늘어났다. 조가의 새벽을 넘었다. 봉래도 이전의 곤륜산과 금오도를 넘고 강을 건너고 관문들을 지나 풍읍을 향해 되밟아 돌아갔다. 하필 꼭 집어서 그날 새벽이었다. 저 옛날 옛적 신화시대의 밤과 새벽, 그 경계.
별은 신계에서 볼 때보다도 청명하고 밝았다. 낮의 하늘은 훨씬 멀었고 밤의 하늘은 훨씬 가까웠다. 떨어질 것만 같아서, 저 멀리 내다보면 지평선이 밤하늘을 겨우 이고 있었다. 경계는 어둠에 뭉그러졌다. 어둠은 파랬다. 그곳을 향해서 도망갈까, 말했었다. 태공망은 그러자 했었고. 곧 웃었다. 하도 말이 안 돼서 웃었다. 봉신 됐을 무렵부터 자주 떠올렸었다. 유독 그 순간이 그에겐 그랬다. 특별했구나. 정말로 도망갔다면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봤다. 강족의 마을을 찾아가거나, 깊은 산 속 들어가 능선을 타는 모습을 그렸다. 강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고, 북극성을 향했다. 그가 했던 말대로 바다를 찾으러 갔다. 걸어도 걸어도 지평선에는 닿지 않았을 것이고 그게 오히려 기분을 호젓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황천화도 좀 더 거리낌 없이 사랑 따위를 속삭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손잡고 입술 부닥치던 것보다도 훨씬 달콤하게. 그런 생각들에 시간을 기울였다. 쏟았다. 물 흐르듯 사라졌다. 또는 술 흐르듯 사라졌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특별했던 순간을 위하여. 그러고 나면 시간의 뒷맛이 썼다. 물이 아니라 술임이 틀림없었다.
이 모든 낭만적인 상상들이 연습의 기반이 됐다. 그게 그를 위로하고 북돋아 줬다. 안 그랬으면 도저히 쑥스러워서 못 해 먹었을 게다. 정도 많고 사랑도 많은 황가 차남이면서도 황천화는 낯간지러운 일에는 도통 면역이 안 됐다. 그래서 연습이라도 해야 했다. 이 성실함은 도덕진군이 가르친 거다. 하여간 잘 배우긴 잘 배워먹었다. 무얼 연습했냐면.
당시 황천화가 했던 ‘도망갈래?’는 무심결에 나온 말이었다. 그조차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고 말했다. 막지를 못하고 튀어나온 것에 가까웠다. 말한 황천화도 뭘 원하고 뱉었는지를 모를진대 받아준 태공망은 당장의 현실도피 외에 대체 무슨 생각 갖고 있었는지. 인제 와서 그것도 좀 묻고 싶은데 정작 본인이 없으니 황천화가 억측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라 완벽하게 공상으로만 남은 그 도주가 매력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단지 황천화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해서 웃긴 김에 받아줬을 수도 있다. 후자가 좀 더 설득력 있었다. 다만 억측의 영역이기에 황천화는 좀 더 제 좋을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거기에 자신이 끼어 있었기에, 둘이 가자고 했기에 더 괜찮은 공상으로 보였었기를 바란다. 그 이상으로 넘겨짚지는 않는다. 왠지 슬플 것 같으니까. 그보다는 황천화 자신에게 집중해야만 했다. 그게 연습이었다.
그는 일전에 봉신대가 해방되기 직전, 웃는 연습을 한 적이 있었다. 단지 재회한다면 웃는 얼굴이었음 해서 그랬었다. 정작 얼굴 봤을 땐 연습 그딴 거 다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후로도 연습은 이어졌다. 어쩐지 한 번 정도는 더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고도 싶었다. 그래서 연습했다. 충동이 앞서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도덕이 가르쳤듯, 성실하게, 자투리를 쪼개고 쪼개갔다. 얼굴도 여러 번 쪼갰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쪼갰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영 아니다 싶었다. 가만 보다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밑으로 완만한 곡선 그렸다. 가끔은 치아를 보였다. 씩 웃으려 했다. 너무 지어낸 웃음 같아서 금방 어색해졌다. 웃다가 아니다 싶으면 이목구비를 전부 무너뜨렸다.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서 처음이란 황천화가 수없이 되돌아갔다던 그날 밤을 뜻했다. 그때마다 태공망 얼굴 생각했다. 이젠 그 사람 아니겠지만 그래도 떠올릴 때면 으레 태공망을 생각했다. 희미하게 빛 받던 볼의 윤곽과 코 아래로 지던 음영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다행이었다. 희미해지지 않아서. 사소한 사실에 매번 안도했다.
다시 만난다면,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저의 의지로 확실하게 말해보고자 했다. 그걸 위해 연습했다. 연습하고 연습해서, 가장 자연스럽고 확실하게, 어떻게 들어도 지나가는 소리는 아니도록 들렸으면 했다. 로맨티시스트는 아닌 그의 고백은 도주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그날이 가장 특별했던 밤이었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갈 곳이라고는 조가밖에 없었음에도. 최초의 고백이 그런 형태였다면, 다시 하는 고백 또한 어설픈 권유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띄엄띄엄 말해봤다. 저 멀리로 나랑 도망가자고.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고, 두 번째에는 못 견뎌서 굴러다녔다. 세 번째부터는 기억이 안 난다. 좀 더 지나자 얼굴 빨개지지 않고 문장 하나를 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해서 말하는 권유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다음엔 좀 더 다듬었다. 권유의 뒤꽁무니를 어지간히도 뜯어고쳤다. 짧은 문장이었는데도 이렇게 힘들 수가 있나. 끙끙거렸다. 몇백 년을 산 신이 숫제 사춘기 소년처럼 그랬다. 더듬거리고 얼버무림과 동시에 웃으려 했다. 어느 날은 또 아차 하면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런 날에는 그만두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아서, 하루 건너뛰어봤자 별일도 없을 텐데 괜스레 쿵쾅거렸다. 그가 아는 태공망 성격상 그랬다. 어느 날이고 당장 들이닥칠 것도 같아서였다. 이젠 정말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그들이 가야 할 조가는 없다. 보았던 지평선과 별들은 그대로 남았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권유 정도는 해도 되잖아. 어디로든 가자고. 그에 태공망이 뭐라 할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웃을까, 화를 낼까. 왜 이제 와서냐고 할까.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을 거 같아서, 웃었다. 몇백 년을 하니까 그것도 퍽 자연스러워지더라.
10.
어느 순간부터는 태상노군의 속삭임도 별 힘을 쓰지 못했다. 황천화의 상상력이 빈곤한 탓이다. 그들은 상상력의 안쪽에서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순전히 황천화의 어휘력에 기대야만 했고 황천화는 기대에 처참하게 부응했다. 실컷 짜내 봤자 듣는 내면의 소리라고는 앵무새 같은 반복밖에는 없었다. 레퍼토리는 지지부진했고 조금 지겨워졌다. 자신의 무지를 상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말이다. 소리 들리지 않는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에게는 새로운 계시가 필요했다. 가급적 신선하고 기발하며 번뜩거리는 쪽으로. 다시 속삭임 들려서 풀 뽑아 힘껏 불었다. 삐이이이익. 잡념이 새된 소리에 놀라 물러갔다.
신선한 계시는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어느 날 황천화의 머리맡에 상상 속 희발도 노자도 아닌 복희가 쭈그려 앉아 속삭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황천화는 평소처럼 귀 막고 돌아누우려다가 뭔가 다른 느낌에 눈을 떴다. 복희가 황천화를 거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관조적으로 하는 말과는 정반대로 예의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도 사람이고 때도 때이니만큼 좀 달라 보이긴 했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인 인상을 말해보자면 여전했다. 한갓진 눈, 뚱한 표정. 황천화가 몸을 일으키는 데에 맞춰 쭈그린 그의 시선도 천천히 올라갔다. 이윽고 같은 방향,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눈을 깜박.
“그럴 줄 알았다니… 뭔 소리야.” “…그냥 하는 소릴세.”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그냥 하는 소리마냥 무심했다. 뜻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 말은 말이 아니라 숨결 같았다. 그리하여 그간 황천화의 귓바퀴에서 내내 떠돌던 목소리는 처음으로 대화가 되었다. 몇백 년 만에 하는 대화로는 실없기 짝이 없었다. 평범한 안부조차 되질 못 했다. 어깨가 축 처졌다. 원래 이 사람이랑 대화하고 있노라면 어깨에 힘이 절로 빠졌으니 어떻게 보면 이거야말로 그럴듯하게 돌아가는 대화이기도 했다. 둘은 한 박자 늦어서야 인사를 했다. 성의가 영 부족했다.
“오랜만일세.” “오랜만이야.” “…”
하필 물꼬를 그런 식으로 터버린 탓에 피차 어정쩡해지고 말았다. 황천화는 벙 찐 채로 가만히 있었고, 복희는 복희대로 황천화가 별 반응을 안 해줘서 가만있었다. 그렇다고 눈만 마주치는 그 순간이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침묵은 일행처럼 함께 자리 잡았다.
황천화로선 당장에 캐물어야 할 게 많았다. 진짜 살아있는 건 맞는지, 그간 어디에 있었는지, 사불상이 한참을 찾아도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건 무슨 이유에선지, 이제사 다시 모습 드러낸 건 또 무슨 일인지, 지금이 처음인지, 봉래도는 가 보았는지, 원시천존은 뭐라 했는지. 우르르 쏟아질 뻔도 했다. 허나 입을 벌리고선 뻐끔뻐끔만 했다. 황천화는 그 질문들이 그의 의식 너머 그대로 흘러가게끔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해 봤자 소용없어질 질문들이었다. 그는 침묵이 일행으로서 계속 그들의 곁에 있도록 놔두었다. 대신 손을 뻗었다. 살아있는 생살이 만져졌다. 말랑했다. 헤, 웃음이 나왔다. 잘도 살아있네. 안도감에서 이기도 했고 반가움에서 이기도 했다. 아니면 복희가 말하는 대로 그냥, 일수도 있고.
물어야 할 말을 모두 떠내려 보내니 할 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멀뚱멀뚱하게 볼따구나 만지는 게 다였다. 이것도 새삼 손 떼려니 민망해져서 그랬다. 만지는 손에선 점점 손속이 없어져놔서 볼이 크게 밀려났다. 눈가가 찌그러지고 난리가 났다. 다정함은 다정함이되 방향이 엇나가서 강새이 같은 자식 손자놈 어루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얼굴 가만 내주는 걸 보니 할 말 없기론 복희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들 잘 지내지?”
황천화 손에 얼굴 잔뜩 뭉그러져서는 두루뭉술하게 한 마디 꺼냈다. 그저 예의상 꺼낸 말일 뿐, 어련히 알아서 잘들 지내겠지 하는 투였다. 그래서 진지하게 답할 필요도 없었다.
“사숙이 그런 거 물어볼 처지가 못 될 텐데….”
당장 이 양반 출현을 누구에게라도 찔렀으면 이런 속 편한 소리는 나올 수가 없다. 복희는 그저 나 몰라라 했다. 입이 뭉툭하게 튀어나왔다. 실컷 여유 부리는 걸 보니 최초의 인간이 다르긴 달랐다. 여차하면 튀면 된다 이거렷다. 남겨진 황천화야 뒷일이고.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기왕 잡은 볼을 꼬집어 흔들었다. 복희가 아야야, 하며 앓는 소리를 다 냈다. 괜히 엄살이다.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고 답해야 할 것을 답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고, 대화는 두서를 잃고 띄엄띄엄 이어졌다. 아니 이어진다고 하기에도 어설펐다. 인간계의 복숭아 얘기를 한두 마디 하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고, 일행이었던 침묵의 천사가 지나갔다. 그래서 황천화가 어쩔 수 없이 봉신대가 신계가 되면서 견학용 기차를 더는 쓰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복희는 그래, 하고 받았지만 크게 관심 있어 보이진 않았다. 어차피 황천화도 제일 잡다할 화제 찾아 꺼낸 것에 불과했다. 해야 할 일을 잃은 백감은 오랜 휴가를 받아 봉래 어디에선가 선글라스 끼고선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다. 본래 거북이 요괴선인이었으니 원형에 부끄럽지 않을 일이다.
“에잉, 그 녀석이 일을 뭘 했다고 휴가를 즐긴단 말야.”
복희는 백감이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말에만 크게 반응했다. 어째 노는 사람들의 시기 질시가 더하다. 노는 꼴만 보면 배가 아파 죽겠나 보다. 황천화 표정이 절로 한심해졌다.
“제일 뺑뺑 노는 사람이 지금 누군데….” “나도 나름 바쁘단 말이지. 공사가 다망하다네.”
이거 양전이랑 똑같은 소리 한다. 양전도 딱 저런 얼굴로 그런 소리 했었다. 하도 봐서 황천화도 이제 안 속는다. 왜 윗대가리들은 다들 저 모양일까.
“공사 좋아하시네. 노느라 바쁘지, 아주.” “흠…”
부정은 못 하겠는지 복희가 눈을 돌렸다. 딴청 피우며 먼 허공만 봤다. 다시 침묵. 이런 식으로 끊기면 멀뚱멀뚱 서로 보기만 하다가 어쭙잖은 이야기 또 하나 꺼냈다. 이 또한 쓸데없기로는 비할 바 없다. 그러니까 금방금방 끊기고 마는 것이다. 새는 봉신대 때와 다름없이 지저귀고 있었다. 지나가는 천사의 침묵을 끊고 복희와 황천화 단둘이 격리되어 떠오르는 공간을 도로 가라앉혔다. 그때마다 새삼스럽다는 듯, 복희는 신계를 둘러보았다. 둘러봐도 선계와 그다지 다를 것 없을 텐데도. 깎아내린 절벽과 흐르는 물과 기괴한 암석들, 오래된 나무와 풀. 이 모든 것들을 난생처음 보는 듯 봤다. 하도 신기하게 보는 바람에 황천화는 이거 가이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하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깃발 대신 나뭇잎 하나 잘게 흔들었다.
“…이거, 만드느라 고생했겠구먼.”
한참을 보고 나서야 조그맣게 나온 건 감탄이었다. 대견함이기도 했다. 이곳을 만든 이에게 하는 말임은 분명했는데 정작 누가 하는 말인지는 불분명했다. 황천화가 이리 생각했던 건 태공망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황천화가 아는 태공망이라면 가이드에 손이라도 들어줬어야 했었다. 그들의 장난질이야 원래 그랬잖은가. 시선은 멀었다. 봉신계획 수행자라기보다는 봉신계획 입안자로서의 태도였다. 있어야 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계획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데에 대한 감탄. 신기함. 황천화는 처음으로 복희가 낯설어졌다. 거기다 대고 ‘그래, 여기 살아보니까 정말 괜찮더라고. 같이 살아볼래?’라고 너스레를 떨 수는 없었다.
“그래, 살만하던가?”
의외로 황천화가 생각만 하고 있던 걸 그대로 찔러온 건 복희였다. 가이드는 다 틀려먹었다. 황천화는 지어진 아파트 조경 보러 온 건축회사 사장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어물어물 얼버무렸다. 그가 떠올렸던 너스레와는 전혀 달랐다.
“어… 뭐… 그럭저럭…”
말마따나 신계 환경은 더할 나위 없다. 하기야 죽은 놈 입장에 무얼 더 따지겠어. 대충 그런 의미였다. 복희는 적당히 알아먹은 듯했다. 알아먹었지만 원한 대답이 아니었을뿐더러 애초에 그의 질문 또한 조금은 잘못되었다. 다시 침묵. 천사가 지나갔다. 잠자코 지나가는 개미 행렬을 봤다. 졸졸졸 줄지어서 가고 있었다. 황천화도 따라서 고개를 수그렸다. 다 큰 남정네 둘이서 쭈그려 앉아 개미 떼나 구경하는 꼴이란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코미디 속에서 황천화는 침묵 속에서 방금 복희의 질문을 다시금 헤아렸다. 왜인지 그걸 원하는 것으로 보여서.
잊고 있던 새벽 이후의 공백이 되살아났다. 그와 그를 단절하던 순간. 어찌 이 사달이 났었는지가 기억났다. 방금 그건 신계가 살만하던가, 하는 질문이 아니다. 황천화더러 살 만하냐 묻는 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낯설기까지 했던 최초의 인간은 도로 제가 알던 사숙이 되어 있었다. 뒤통수는 여전히 개미를 쫓았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디 그래서 속은 많이 풀렸는가.”
수어 분만에 덧붙여졌다. 복희 그도 그 잠깐 말을 고르고 골랐음이다. 간결한 문장 안은 그들의 공백만큼 커다랬다. 큰 문장 안에 든 단어가 없어서 메아리처럼 왕왕 울렸다. 그렇게 다 버리고 제 생명도 버리고 죄 마음대로 해서 속 편해졌느냐 묻고 있었다. 약간 책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일종의 사죄 같아 보이기도 했으며, 정말 그랬기를 바라는 바람같이도 보였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태공망 그의 공백은 이런 거였다. 하필 그게 걸려서 황천화를 만나러 온 것이다. 기차조차 타지 않고 워프존을 건너서. 고작 단절의 순간을 물으러. 황천화의 오랜 기다림은 처음으로 의미를 얻었다. 그 기분이란 말이다.
일종의 환희였다. 간사하게도 쭉 차올랐다. 발끝부터 치솟아 올라 입천장을 건드려서 저도 모르게 입을 씰룩쌜룩했다. 나는 당신의 마음속에 툭 튀어나온 돌멩이 정도는 되는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겠지만, 그 작은 게 얼마나 눈에 선히 밟히는지는 황천화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도무지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는 걸림돌이다. 무시하고 밟는 순간 어찌나 껄끄럽게 발바닥에 닿아오던지. 그 또한 그랬으므로. 그게 황천화를 유쾌하게 했다. 선뜻 말했다. 망설임조차 없었다. 실제로 그랬다.
“여한도 없이 끝났지. 속이 시원하다.”
황천화는 부러 말했다. 복희가 그제야 황천화 얼굴을 봤다. 정말 그랬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으로 오랫동안 더듬었다. 이목구비 사이사이로 진심을 엿봤다. 이마부터 콧날을 훑고 양 눈으로 보고 광대뼈 아래로 미끄러지는 볼과 입술의 폭으로 감정의 골을 재려 했다. 태공망이 이렇게 표정 지우고 황천화 빤히 바라볼 때면 언제고 가슴 한편이 근질근질 해졌더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근데 사숙 얼굴은 좀 걸리더라고.”
복희는 이번에도 황천화 얼굴을 샅샅이 봤다. 다만 이번에는 황천화가 거짓말하는 거기를 바라는 기색이었다. 본래 구라 잘 치는 사람들이 남의 진심을 이리도 못 미더워한다. 어디 백 번을 봐 봐라. 거짓말인가. 황천화는 최선을 다해서 웃어 보였다. 그가 그렇게나 연습했던 미소였었다. 미소가 기어이 태공망 표정의 다리 하나를 걷어찼다. 무너뜨렸다. 입술이 비틀어지고 허, 웃었다. 웃었지만 균형이 맞지 않아 기묘한 모양새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인제 와서.” “그러게나 말이야.”
몇백 년 어치의 연습이다. 황천화 화통한 웃음은 고작 그 정도엔 무너지지 않는다.
11.
복희는 황천화 앞에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연 사라졌다. 사라지는 데에는 아무 전조도 마무리도 없었다.
“아 그런데.”
이게 다였다. 징검다리 같은 대화를 일순 끊어버리고, 하늘로 솟는지 땅으로 꺼지는지도 모르게 가버렸다. 이렇게까지 즉흥적인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희한도 하다. 끊어진 대화의 마디는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것처럼 단면을 훤히 내보인 채 나부꼈다. 흔들던 손짓 비슷했다. 복희가 마지막에 손 팔랑팔랑한 게 나름의 인사라면 인사라고 하겠다. 가벼웠다. 내일이라도 다시 마주칠 사람인 양.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이거저거 끌어내다가 인간계 새 유행 얘기까지 하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하고 혀를 끌끌 찼었다. 옷차림이 말세야, 말세. 말하는 말세는 이미 지나간 지 한참인데도. 이런 잡담이나 했으니 복희로선 크게 아쉽지 않을 법도 했다. 황천화는 아쉬울 뻔도 했다. 뻔만 했다.
시작이 제일 어렵기 마련이다. 그 말인즉슨 첫 번째가 있으면 언젠가는 두 번째 또한 있을 거란 뜻이다. 까마득하게 가능성만 기다리던 이전보다야 훨씬 낙관적인 희망이었다. 거 성질머리 좀 모자라더라도 시간만큼은 충분히 남아돌았다. 그래서 황천화는 가는 복희를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마음먹는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뒷모습 배웅도 못 하게 사라진 건 좀 심했다. 너무하네, 우리 사이 섭섭하게. 이젠 우리 사이 가지고 농담도 다 할 줄 알고, 많이 컸다며 받아 줄 이 없이 혼자 웃었다. 복희 사라진 자리를 쓸었다. 그림자 정도는 조금만 더 오래 남겨줘도 됐을 텐데. 야박도 해라. 개미 떼 지나간 자국만 새카맸다.
예상대로 대체로 들어맞았다. 그 이래 복희는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비단 황천화에게만 온 건 아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내키는 대로 얼굴 비췄다. 얼굴만 비췄다. 빈도도 위치도 불규칙적이었다. 인간계와 신계, 봉래를 가리지 않았다. 방문이 아니라 충동이라 할 만했다. 사실 황천화도 최초의 목격자라기보다는 저런 식으로 다니다 보니 우연히 얻어걸린 걸지도 모른다. 이 가설은 상당히 신빙성 있었지만 인정하기엔 조금 씁쓸하니까 접어두기로 했다.
황천화를 비롯해 목격자는 몇 명인가로 더 늘어났다. 그 사람들이 모두 목격담을 신고하지 않고 능구렁이처럼 쟁여두는 바람에 복희의 출현을 공식적으로 확정 짓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이다. 다들 눈치 게임이라도 하는 양 입 꾹 다물고 모른 체했다. 나중에야 그러고 보면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지나간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말했다. 목격담의 퍼즐이 맞아떨어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억지로 캐묻고 털어내 짜 맞추고 나서야 역시나, 라는 결론이 나왔다. 결론과 한숨이 한꺼번에 뭉뚱그려졌다. 새삼스러워하기엔 너무 뻔했다. 심지어 뭔 영문인지 저 사불상마저 쉬쉬하고 있었다. 어쩜 주인에게 호박씨 까는 법만 배웠는지 말이다. 자백의 순간조차 그랬다. 하마는 눈 크게 뜨고 한참을 놀란척하다가 영 안 먹힐 걸 깨닫고 나서야 실토했다.
“그랬더라구요. 그 바보도사.”
만난 지는 꽤 되었는지 과거형으로 말했다. 예전 그대로의 호칭으로. 어차피 만날 사람 만났다는 듯,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는 태도였다. 어깨를 슬쩍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그동안 사람 하나 찾겠다고 인간계 죽어라 뒤지고 쏘다닌 것 치고는 너무나 심플해서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그 천연덕스러움은 태공망을 닮았다. 황천화는 냉큼 하마 콧등을 튕겨주었다. 손이 얼마나 매웠던지 사불상 눈에 눈물까지 찔끔 고였다. 감정 꽤 실렸나 보다.
“아이! 진짜! 왜 나한테만 그래요!” “하마 네놈 반응이 제일 재수 없었어.”
그게 아니라 부러워서 그랬다. 부러워서. 뭐가 부러웠느냐고 묻는다면 황천화도 잘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 하나 만났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완벽한 일상으로 돌아올 자신이 황천화에게는 없었다. 그러니까 괜히 얄밉다는 핑계나 대는 것이다. 시큰거리는 콧등 붙잡고선 사불상이 한참 징징거렸다.
“다 일러줄 거예요!”
아무래도 부러우니 한 대 더 때려야겠다. 눈치챈 하마가 재빠르게 튀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붙잡아 한 대 더 쥐어박을 때만 해도 황천화는 이게 복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더랬다. 저 사람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출몰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알았으면 아마 두 대는 더 쥐어박았을 거다. 두 번은 더 오라고.
“때렸다며?” 무슨 마실 나온 사람처럼 걸어와서 한다는 말이 이거다. 뒷짐 지고서 한가하게 거닐고 있었다. 아주 황천화 보란 듯이. 누가 보면 신계 주민인 줄 알겠다. 보폭이 넓었다. 어지간히도 한가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걸음걸이다.
“허! 그 하마가 진짜 이르네.”
고새 사불상이 쪼르르 일러바쳤나 보다. 세월을 먹더니 어째 다들 치졸해져만 간다. 일러바치면 또 일러바치는 대로 주인이 쫓아오질 않나. 그나마 반가우니까 말 안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구시렁거리며 황천화는 자연스럽게 옆에 서서 동행했다. 어디로 가는 산책인 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화제는 말세 아닌 말세에서 끊어진 채 그대로였다. 그걸 외면한 채 복희는 이전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너무 똑같아서 기시감마저 잊고 예전 대답 그대로 할 뻔했다.
“다들 잘 지내지?”
다들 잘 지내는 거 뻔히 보고 다니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한 마디로 소갈머리 텅텅 빈 소리였다. 차라리 요즘 애들 말세 얘기가 낫겠다. 그래서 황천화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쭉 이어졌다.
“잘 지내지…. 아주 잘 지내서…이르기도 잘하고…. 이른다고 누가 몽둥이도 들고 쫓아와 주고…. 잘 지내지….”
황천화의 구시렁구시렁도 텅텅 비었다. 맴맴 도는 소리에선 쓰잘머리 없는 울림만 났다.
“그럼! 사불상이 아주 혼내 달라고 하더라.”
복희가 대번에 다리를 들어 올렸다. 망아지마냥 엉덩이라도 차이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럼 그렇지, 무릎 높이 올라오려다 말아버렸다. 발은 공중에서 갈지자로 휘고 바로 다음 걸음 걷는다. 황천화만 어설프게 무릎 굽힌 채 요상한 모양새 됐다.
“감동이네, 진짜. 그거 쥐어박았다고 여기까지 쫓아오고. 세상에 주인밖에 없어.”
이쯤에서 황천화는 생각했다. 역시 한두 대는 더 쥐어박을걸, 하고.
“그야 동고동락한 영수와 도사 사이 아닌가. 각별하지.”
복희가 자랑스레 말했다. 각별이란다. 맘이 있는 소리이기는 한지 아까와 속 빈 소리와는 다르게 특별한 울림이 났다. 의외로 이런 말도 부끄럽지 않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타고난 거짓말쟁이인 이유는 때때로 진심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슬쩍 흘리는 것처럼.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되는 양. 그 틈에 사로잡힌 사이 거짓말만 술술술 쏟아냈다.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황천화는 넘어가 줄까 말까 고민했다. 취한 건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점이다.
“호오. 사불상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와… 지금 좀 상처받은 거 같은데.”
그렇게 각별한 영수 실컷 골탕 먹이고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 모습 드러냈냐 물으니 숨바꼭질엔 질렸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그건 마치 오랜 시간을 벼려놓은 대답처럼 식상했다. 누가 언제라도 물어본다면 그리 대답할 수 있도록. 그의 거짓말이 이런 식이었다. 진심 한 조각, 거짓말 아홉 조각, 합이 열 조각. 손가락 가득 찬다.
“이래서 사불상이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라는 거지.” “…자네도 예전 같지 않구먼. 쉽지가 않아.” “내가 언제 사숙한테 쉬운 적이 있었나.”
처음으로 황천화가 말로 이겨 먹었다. 복희가 팔짱 끼고 끙, 소리 냈다. 엉덩이 대신 돌멩이를 걷어찼다. 중력과 마찰에 개의치 않고선 떼굴떼굴 굴러갔다. 신계는 둥글지 않으니 굴러가다 굴러가다 영원의 틈새 사이로 떨어질 것이다. 이곳은 영원이 떠받치고 있는 섬이 아니겠는가. 복희가 쉬이 들락날락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그만큼 영원에 가까운 사람도 또 없을 테니까. 영원이야말로 그의 영역이었다. 그리하여 황천화는 까마득한 영원을 살았다던 현자에게 답을 구한다. 몇백 년 그의 머릿속에 똬리 틀고 자리 잡은 의문을 내비친다. 그에겐 그 나름의 답이 있었으니 어쩌면 고해성사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그 영원으로부터 나를 보러 왔냐고, 정말 그리 밟혀서 왔냐고, 물어보기는 창피해서 돌려 말한다는 질문이 도리어 핵심에 가까웠다.
“하마가 각별했으면, 그럼 우린 무슨 사이였는데?”
꼭 유치하게 운을 떼야만 한다. 수백 년 산 황천화도 치졸에서 그다지 벗어나지를 못했다. 만 년을 살면 혹시 다를까? 막상 복희 보면 만 년 가지고도 멀었다. 저 딴청 피는 걸 봐라. 한 조각 섞어 보여주던 진심마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열 손가락이 다 거짓말이다. 복희 만났다던 선인들 다 능구렁이더니만 본인이 제일가는 능구렁이였다.
“글쎄.”
복희는 넌지시 딴 곳 봤다. 이럴 때 태공망은 여간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관상용 구슬처럼 눈동자가 한 바퀴 팽그르르 돌았다. 눈으로 저 끝의 구름으로부터 반대편 끝의 지평선을 쓸고 나서야 황천화 머리카락이나 겨우 봤다. 시선 어째 멀어서 위치만 그럴 뿐이지 황천화를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뒤통수 너머를 보는 듯. 으으으으으음. 길게 끌었다. 장난치거나 거짓말할 때 운을 떼길 늘 이런 식으로 했었다.
“생각하면 성가셔지는 사이?” “그래도 생각은 해보지 그래.”
약간 보채는 소리처럼 나왔다. 혹은 투정이거나. 제 목소리임에도 듣는 저의 귀가 다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 늘어졌다. 성가시다는, 어찌 보면 저 부정적인 말이 차라리 나아 보여서였다. 한 조각 진심과 아주 흡사한 모양으로. 아무렴 그랬다. 아무 사이 아닌 것보단 성가신 게 훨씬 나았다. 아예 그럴 거라면 최대한 성가셨으면 했다.
“글쎄다.”
복희는 여전히 갈지자 걸음 한 채로 팔짱 꼈다. 훨씬 흐트러져 숫제 흐느적거렸다. 바위산을 넘어 능선을 타고 내려가 숲으로 접어들었다. 신계에도 혼백체나마 사람 꽤나 살고 보는 눈이 있어 그걸 피해 숨어들었다. 해도 없는 신계인데도 빛은 있어서 그늘은 잘만 졌다. 박달나무 아래 부드러운 이끼를 밟고선 몸을 한껏 구겼다. 온통 펼쳐진 녹음이 사람도 그림자도 가려주었다. 음, 음, 음. 생각하는 소리는 나지막한 노랫소리처럼 한가로웠다. 몹시 유연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 마냥. 그 언제 적의 풀피리도 바로 이런 소리 아니었던가.
하나하나 검토해 보기로 했다. 아주 말단으로부터 올라가, 심장에 다다를 때까지. 진심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면서.
“우리 사귀었었어?” “에이, 설마.”
막무가내로 던진 말에는 코웃음 쳤다. 황천화도 복희도 동시에 그랬다. 그런데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런 사이였다.
“그래도 그렇지, 거 반응 너무 빠른 거 아니요. 우리 사이 섭섭하게.”
일전에 생각만 했던 걸 고대로 말했다. 그때도 장했지만 황천화 많이 컸다. 농담이 술술 나왔다.
“와…. 섭섭할 사이까지는 되는구먼….”
말단에서는 조금 더 들어왔다. 복희가 괜히 감탄했다. 감탄은 그저 척이었다. 놀리듯 휘파람 섞여들었다. 딴말 하려니 머쓱했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그 정도는 되는 거지.”
거기에서 한 발짝을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려 했다. 의외로 복희는 주저하지 않고선 따라왔다. 동료, 그런 사이이기도 했지. 친구, 뭐 비슷하려나? 난 그보다 더 특별한 것도 좋은데. 어느 쪽으로 특별하길 원하는 겐가? 방향이야 어쨌든. 그럼 웬수지 웬수. 누가 누구더러 하는 소리야? 관계의 모든 가능성을 짚어나갔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생각한다는 건 생각보다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혼자 잴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넓은 폭을 잴 수 있었다. 황천화는 더는 그 혼자 막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그럼에도 막히는 시점이 있었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느끼고 있던 게 튀어나왔을 수도 있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다만 누가 말했든 둘 다 동시에 들었다. 여기에서 복희도 황천화도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하면 할 말이 없었다. 어쩌다가 마음을 줘버려서. 어쩌다가 하나는 죽고, 또 하나도 죽어서. 선인들은 까마득한 세월을 산다고 하던데 그 세월 살아 봤자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 건 대체 어찌해야 하나. 여기 오기까지 모든 계획 주관했던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임에도 아무 말 없었다. 미처 이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딱 조각 하나만큼의 진심이었다.
12.
시작점은 말단이었으나 도착점은 미로이어라. 막다른 난제 앞에서 생각의 발걸음이 빙빙 돌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혔다. 그러게,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꼬. 순 제자리걸음이라 동동거리는 발자국만 남았다. 중첩되다가 온 사방이 발자국 투성이 되었다. 막다른 길 너머로 가기엔 주저하는 사람들처럼. 이게 어떤 종류의 특별한 관계가 되기 위해 가는 과정이라면 참 어렵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이런 식으로 연애할 거란 생각은 좀처럼 안 들었다. 그에게도 연애에 대한 상식이란 게 있다. 뻔한 길을 지나치게 멀리 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시도는 했다는 게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몇 달이 지난 것도 같았다. 어차피 일 년 미만의 시간이야 또이또이하다. 황천화는 여전히 제 할 일 했고 남는 시간엔 실컷 한가해 했다. 굴러다녔다. 복희는 신계에 발걸음을 끊었다. 얼굴 구경 퍽 힘들어졌다. 사불상이 인간계 다녀온 걸 보면 아주 꼬리를 감춘 건 아닐 테다. 그날을 기점으로 딱 신계만 피한다는 사실이 황천화로 하여금 제 발 저리게 했다. 제 발이 저려 잘 때는 발가락이 절로 곱아들었다. 혼백도 잠을 자는가? 그냥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한때나마 인간이었던 이들의 버릇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누울 적 곧잘 들리던 환청은 싹 사라졌다. 희발이든 태상노군이든 그럴 줄 몰랐기 때문이리라. 대신 황천화가 혼잣말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서 무의미하게 헛돌았다. 괜한 말을 했다거나, 아주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 했다. 말했듯이 황천화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고 무한한 시간이 있는 이상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기도 했다. 모두가 그걸 위한 연습이 아니었던가.
이제 우리는 그 숱한 연습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것만큼은 헛된 일이 아니어야만 했다. 자기 위안으로만 남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시간 따위 아까운 게 아니라 그가 두고 왔던, 질질 끌며 가지고 왔던 감정들이 아까웠다. 손가락 사이로 샐 것조차 아까워서 두 손을 바싹 모았다. 오랜 시간 중첩되어 입천장에 들러붙은 말을 혓바닥으로 긁어내렸다. 어쩐지 쓴맛이 났다. 이게 바로 새벽 혹은 깊은 밤 별들의 맛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목구멍 뒤쪽에서 별들이 반짝반짝 튀어 오르는 것도 같았다. 목젖을 치며 회전을 하고 움직임이 별자리를 그렸다. 따가웠다. 별들이 가리키는 방향 그대로 말했다.
나랑 저어어어기 도망갑시다. 다 버리고. 우리 둘이서. 단둘이서.
띄엄띄엄 끊어졌다. 목구멍이 하도 따가워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뻐금거렸다. 그러다가 영 안 되겠어서 담배 물었다. 들숨 날숨에 구름 통하니 살 것도 같다. 새벽하늘 흐려졌다. 이대로 있다간 혓바닥이 굳겠다. 생각했다. 그동안 그는 기다리는 축이었지만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 다시 한번 심호흡했다.
황천화는 반성했다.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지. 생각만 너무 많았지. 마침내 황천화가 떼를 쓰기로 작정했다. 그가 쓰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무조건 윗대가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원래 그의 스타일은 아닌데, 후에 배우기를 그랬다. 특히 태공망이 가르치기를 그렇게 했었다. ‘치려거든 우두머리를 쳐라.’ 물론 이러라고 가르친 건 아니겠지만 배운 사람이 이 모양으로 배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원시천존에게 가볍게 까이고 더 위로 올라갔다. 그간 시침 뚝 떼던 교주님은 이번에는 표정 하나 숨기지 않았다. 진심으로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뭘 하긴 하고 있었는지 손도 잠깐 멈췄다.
“인간계에 가고 싶수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록 혼백체지만. 일단 이름은 신을 달고 있었다. 가본 적도 있었다. 물론 과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관료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긴 힘들었다.
“가서?”
양전은 최고 결정권자로서 당연한 질문을 했다.
“웬수같은 사숙의 목을 딴다?”
목적은 붕 떴다. 여기서 웬수의 의미란 다면적이다. 황천화는 가급적 양전이 한쪽의 의미만을 봐주길 바랐다. 실제 그러했는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척은 해 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고마움과는 별개로 양전은 칼 같았다. 어찌나 칼 같던지 공과 사는 확실하게 나누어졌다.
“기각.” “왜?!” “여기 그런 사람 많아서.”
농담 같으면서 기가 막히게도 옳은 말이었다. 신계와 봉래를 통틀어 태공망이 적이 제일 많았다. 왕천군도 적이 더럽게 많았다. 하필 둘이 그랬다. 다 지난 일에 큰일 하느라 그랬다지만. 아 진짜 도움 안 된다. 이 웬수같은 작자. 양전이 상대인 이상 논리로는 못 이겼다. 별수 있나. 황천화는 드러누웠다.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보내줘. 보내줘. 애초에 그는 떼를 쓰려 작정하고 왔다고 했다. 평소에 안 그러던 놈마저 이 지경으로 구니 교주도 참 못 할 짓이다. 결국엔 허가를 거의 강탈하듯이 했다. 황천화가 이긴 셈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애써 인간계에 왔지만, 복희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다. 사불상이 오랫동안 인간계 모래알 죄 헤집고 다녔어도 못 찾은 게 복희다. 마음먹고 숨었다면 찾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황천화가 굳이 인간계에 온 건 일종의 과시였다. 복희가 신계를 피해봤자 저도 인간계에 올 수 있다는. 복희는 분명 황천화가 인간계의 온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 어디까지 무시할 수 있나 두고 보자. 다소 씩씩거리기도 했다. 그래봤자 복희 흔적 하나 느낄 수가 없었다. 대기가 그를 신랄하게 비웃었다. 인간들의 대기는 신의 편이 아니었다. 신으로서의 그의 고향은 봉신대였던 신계라고 할 만했다. 인간계는 그가 나고 자란 땅이었으나 딛고 살던 감각은 많이도 잃어버렸다. 망각은 그로 하여금 잊는 게 아니라 잃게 했다. 그래서 인간계 내려올 때마다 낯설어했다. 속세는 인간으로서 그의 고향이었던 시절과도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뽕밭이 바다가 되고 그 바다가 다시 뽕밭이 됐다. 그 땅이 그 땅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려오거든 으레 길치가 되곤 했다. 방향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가는 어디고, 서기는 어디란 말이냐. 방향도 찾을 수가 없을진대 어디 가야 할지는 더욱더 알 수가 없었다. 땅은 옛날보다 좁아졌다. 성도 마을들도 늘어났다. 저 멀리 겹겹 쌓인 지붕 보였다. 그 반대편에도. 가려고 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막막했다. 그래, 황천화는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마치 가출청소년처럼 되돌아왔다. 빈손으로 터덜터덜. 소득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했다. 다만 주워듣기로는 지금의 저 땅은 무슨 무슨 나라라고 하더라. 이름은 금방 잊어버렸다.
새 나라의 이름을 아예 잊어버릴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인간계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복희는 그간의 잠수가 거짓말이었던 양 코를 빼꼼 내밀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얘기도 없었다고 착각할 만한 등장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과거를 곧잘 빼먹었다. 과연 얄밉기론 그 영수의 그 주인. 주인의 코도 한 번쯤 세게 튕겨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대신 충동의 손가락 그대로 들고선 삿대질했다. 손가락 끝이 방정맞게 흔들렸다. 이때다 싶어서 혀도 신나게 찼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자기가 삿대질해 보겠어.
“저, 저, 저, 저, 저. 못돼먹은 사숙.”
뻔뻔하게 얼굴 들이미는 거 봐라. 으름장 비슷했던 시위가 효과가 있긴 있었나 보다. 이런 식으로 효과 있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반응만 있으면 되었으므로 성공적이라 할 만했다.
“인간계 갔다 왔다고? 이거 허탕 쳐서 어째.”
라고 생각하기엔 좀 빡쳤다. 저 반응이 황천화 성질을 다 돋웠다. 첫인사에서 능글맞음이 흠뻑 묻어났다. 저놈의 사숙은 놀려먹으려고 올 때 가장 신나게 왔다. 교주 앞에서 사지 던져 놓고 드러누웠다는 얘기가 벌써 돌았나 보다. 이게 다 누구 탓인데. 황천화는 혀만 끌끌끌 찼다. 이러나저러나 그것밖에는 안 나왔다. 전부 복희 탓이다.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그랬다. 투덜거렸다. 욕지거리하는 황천화 보면서 복희만 이상하게 함빡 웃었다. 암만 놀려먹으러 왔다 해도 이 정도 웃을 일은 아닌데 유난히도 즐거워했다. 오래오래 곱씹으려는 듯 입꼬리에 걸렸다. 도는 몸짓이 경쾌했다. 스텝이 기묘하게 꼬였다. 황천화가 묻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정도로.
“내가 인간계 가서 허탕 치고 온 게 그렇게 웃긴다고?” “뭐…” “내가 사숙 찾으러 간 게?”
황천화는 좀 더 직접적으로 물었다. 일부러 유치하게 꼬집었다. 그제야 복희가 황천화 놀리는 걸 멈췄다. 마치 그렇게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는 모든 몸짓을 멈추고 손을 축 내린 채로 돌아보았다. 딴청 피우지 않았다. 뭐라도 대단한 말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들은 건 그보다도 훨씬 변변찮았다. 변변찮고도 충분했다.
“뭐…”
긍정과 부정 사이의 애매한 얼버무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답이었고 어떠한 한 조각이었다. 그것도 긍정에 치우친. 진심 한 조각, 거짓 아홉 조각. 막다른 길이 있고 벽이 있었다면 바로 이 순간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림없이.
해는 반 바퀴를 돌아 밤으로부터 가장 먼 정오였다. 그랬다. 황천화가 내내 기다린 언젠가의 그때는 바로 한낮에, 인간계도 아닌 신계에서 왔다. 그의 예상과는 죄 정반대였다. 하지만 지금이었다. 그날 밤으로부터 시작해서 몇백 년 하고도 반 바퀴를 더 기다려와 지금이고 앞으로는 결코 없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감과 찰나가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귓가에서 속삭이던 속삭임보다도 강렬하게, 온몸이 들었다.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이럴 때면 감을 따르는 것이 옳았다. 왜, 그의 삶이란 늘 그래왔지 않았는가. 그의 감대로 끝까지 살아봤으니 이번엔 그 감대로 손 하나 잡는 게 뭐가 대수랴. 실컷 감대로만 산 황천화는 한 번쯤은 태공망을 위해 손을 내밀어 봐도 되었다. 비록 어쩌다가 피차 이렇게 되긴 했어도 말이다.
그날 새벽은 아름다웠다. 한낮의 신계 또한 그랬다. 빛은 새하얗게 번졌다가 노랗게 흩어졌다. 늘 날씨가 좋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운치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던가. 날씨만 좋은 채로 수백 년이었다. 언제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것처럼 그래왔었다. 때고 풍경이고 다 완벽했으니 그들만 준비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황천화에게는 지금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고 당신이 아니면 안 되겠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처럼 연애의 운을 떼는 방법은 잘 몰랐지만 다른 방법이라면 황천화가 알고 있었다. 이 완벽한 순간에 어울릴 가장 완벽한 파장을 찾을 때까지 연습했었다. 연습의 언어들이 시간만큼 쌓여 있었다. 오랜 시간 다져 놓은 그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재고하면서 쌓아왔는데 그럴 수밖에. 그리하여 이번엔 전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아닌, 실제 그의 의지를 갖추고 말했다. 연습한 이래 가장 완벽하거나, 제일 허술했다. 기다리던 때가 왔음에도 그의 준비보다 한 발 일러 무심결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반은 충동으로,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 그다음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뱉어버린 말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사숙 나랑 도망갈래?”
그 말에 복희가, 아니 태공망이, 아니 누구라도 상관없다. 뭐라고 답했느냐면.
“그래.”
라고 했다. 그 어느 밤의 ‘그래’와도 같았다. 원래 모든 말을 특별하지도 않게 받아주던 사람처럼. 그리고 그때와는 확실하게 달랐다. 이번만 특별히 받아주는 것처럼. 혹은 내내 기다렸던 것처럼.
13.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의무감이라곤 없다. 전쟁도 없고, 복수해야 할 대상도 없으며, 책임져야 할 일이나 지위, 사명조차 없다. 그것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어디에서든,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버릴 것 하나 남지 않았으므로. 인제 와서야.
어찌 보면 우리는 비겁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사랑 앞에서야 얼마든지 비겁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 감정을 질질 끌게 했다. 기꺼이 외면하고 고개를 숙여왔었다. 그래도 괜찮았었다. 당시의 상황이 그를 허락게 했다. 비겁함에 대해서라면 충분히 용서받아왔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했음이다. 용서할 때는 지났다. 비겁할 때도 지났다. 설령 이제 와서라도 말이다. 숨이 멈춰 다 죽었던 이에게도, 그가 그이되 더는 그가 아닌 이에게도 도피의 때는 왔다.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줄곧 외면해오던 감정이 허락하는 도망이라니.
복희가 ‘그래’라고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망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의 긍정이며 허락이었다. 그 말 듣고 나니 어쩐지 후련해졌다. 몇백 년 어치의 감정에 겨우 온점을 찍었다. 비로소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었다. 아주 끝일 수는 없겠지만 황천화는 일단은 무언가가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뭘 할까. 쎄쎄쎄라도 해야 할까?
어정쩡하게 마주본 채로 웃었다. 허허실실했다. 뻥 뚫려버렸다. 그도 그럴 게 황천화는 이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상정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일단 온점부터 찍어버린 가장 큰 이유다. 그는 오랜 시간 오직 그 순간만을 생각했었다. 혹은 새벽의 지평선을 생각했었다. 지평선 너머로 어른거리던 인영들은 일출과 함께 어물어물 사라졌었다. 마치 촛불같이.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명확해지는 순간 스러져서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는 그조차도 몰랐다. 그 외에는 없었다. 그는 그간 그의 연습만으로도 급급했었고 관심은 늘 과거에 쏠려있었다. 봉신 된 신들이 대개 그랬듯이 말이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생 안에 고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뭘까. 뭘 해야 할까. 고였던 시간은 어디로 삐그덕 움직이고 흘러가는 걸까. 후의 시간을 움직인 건 황천화가 아닌 태공망이었다. 복희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올라왔다. 뭐라도 달라는 듯, 서슴없는 손짓이었다. 손가락을 살짝 까닥이기까지 했다. 황천화를 빤히 봤다. 줄 게 뭐가 있겠어. 황천화는 제 손을 내줬다. 저도 모르게 맞잡았다. 왜, 딱 그럴 분위기이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 꽉 쥐면 복희의 손바닥이 버겁게 들어왔다. 꽉 찼다. 손바닥 안쪽이 홧홧해졌다. 비록 혼백체라도 잡을 수가 있구나. 다행인지 뿌듯함인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원하던 게 맞긴 맞았는지 복희가 손잡은 채로 씩 웃었다. 입이 비대칭으로 비뚤어져 올라갔다. 입술 한 쪽이 벌어져 송곳니가 살짝 보였다. 뾰족하다. 잠깐 한눈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태공망이 그렇게 웃는 건 참 오랜만에 봤다. 그가 저 옛날, 서기의 군사일 적 끝내주게 치사한 짓을 획책할 때나 지었던 웃음이다. 팔짱 끼고선 삐딱하게 웃고 있는 걸 보면 이번엔 또 뭔 일인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더랬다. 그리고 여지없이 일이 벌어졌었다. 아주 해괴한 방향으로. 오랜만에 봐도 똑같이 덜컥했다. 이 덜컥이 분명 연애하는 쪽의 덜컥은 절대 아닐 게다. 이거, 혹시, 설마. 불안한 예감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목덜미 털이 쭈뼛 섰다. 복희는 손잡고선 황천화를 쑥 잡아당겼다. 딱 그럴 분위기만 만만 잡고 있던 탓에 황천화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 기울어졌다. 그리고 세상 또한 기울어졌다. 앞으로 기울어진 중심을 잡기 위해 한 발 크게 내디뎠다. 그게 첫발이고 시작이었다. 두 번째 발은 끌려갔다. 세 번째 발은 꾸욱 디뎠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발은 달렸다. 그가 직접 뛰고 나니 세상이 도로 제자리에 섰다. 늘 정적이었던 신계가 처음으로 속도를 가졌다. 한 폭 수묵화였던 공간은 쨍쨍한 색채를 입고선 되살아났다. 파란 것은 파랗고 노란 것은 노랗다가 모두 한데 뒤섞였다. 멀어졌다. 새 바람이 이마에 닿았다. 눈을 크게 떴다. 어지러워서였다.
정말로 우리는 도망가는 것이다. 그 깊은 밤의 농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더는 농담이 아니었다. 앞서 뛰던 복희가 웃었다. 그거 소리 참 기괴했다. 뇨호호호호. 덕분에 분위기는 와장창 깨졌다. 영감탱이 같으니. 황천화는 분명 그럴 분위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나 보다. 그럴 분위기란 이보단 좀 더 얼레꼴레 한 쪽을 말한다. 온점의 여운을 곱씹으며 얼굴도 붉히고 목구멍도 좀 간질간질하고 말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튀는 게 아니라. 황천화도 이러니저러니 해서 평생을 연애 못 할 성격이었다지만 이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저러니 연애를 못 했지. 황천화나 복희나 전쟁터에서는 온갖 연애 흉내 잘만 내어놓고선. 정작 진짜 연애하려니 이런다. 그럼에도 황천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복희더러 삿대질도 하지 않았고 다리를 멈추지도 않았다. 뛰는 일에는 자신 있었다.
그렇게 도망쳤다. 우습게도 손은 계속 잡고 있었다. 이 와중 유일한 로맨스란 그랬다. 그게 우스워서 자꾸 웃었다. 옆에서 웃으면 웃겨서 따라 웃고 그럼 웃음은 옆으로 건너뛰어 되돌아왔다. 숫제 뛰는 발에 맞춰 웃었다. 턱이 자꾸만 치켜 올라갔다. 황천화는 신계의 중력보다도 인력에 붙들려 뛰었다. 인력이 중력보다 훨씬 단단했다. 손아귀의 감촉이 잊었던 생을 불러일으켰다. 신계의 신이 허가도 없이 빠져나가도 되나? 나갈 수나 있나? 하는 생각이 일순 들었지만 금세 지워버렸다. 뛰고 나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같았다. 자질구레한 현실들은 죄 하찮아졌다. 풍경과 함께 남기고 가도 될 성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내기 장기 빚을 약간 졌다는 사실조차 버렸다. 빨리 안 갚길 잘했다. 전부 사소한 일들뿐이었다. 뛰었다. 신계는 크지 않다. 작은 세계의 지름을 가로질렀다. 이전 날 복희가 차 버린 돌멩이처럼 구르듯 했다. 신계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지면은 완만해졌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건데?”
뛰다가 황천화가 물었다. 외치듯 말했다. 신계 한복판의 산자락에 닿았다가 흩어졌다. 메아리는 전혀 남지 않았다. 복희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흩어졌다.
“글쎄다, 일단 바깥으로?”
바깥이란 건 참 애매했다. 그때야 황천화는 복희에게도 별반 대단한 계획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애초에 도망가자고 얘기했던 것부터가 황천화였다.
“그럼 왜 뛰는데?” “천화, 멀리뛰기 해 본 적 있는가?”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보폭은 적잖이 짧아졌다. 복희의 말도 보폭 따라서 짧게 끊어졌다. 톡, 톡, 톡. 이 와중에 멀리뛰기는 꽤 동떨어진 별에서 떨어졌다. 이 와중에 나올만한 건 확실히 아니었다.
“멀리뛰기가 왜?” “멀리뛰기를 하려거든 말이야.”
영원을 떠다니는 섬인 신계에는 지평선이 없다. 내리막길을 달리다 보면 결국에 나오는 건 낭떠러지다. 슬슬 가까워져 왔다. 떨어지면 영원이요, 건너간다면? 가정은 영원을 손쉽게 건너뛰었다. 복희가 멀리뛰기의 얘기를 꺼낸 탓이다. 그다지 동떨어진 별까진 아니었던 양 불쑥 끌어왔다. 그러니까 아직도 멀리뛰기의 얘기였다.
“…도움닫기를 충분히 해야 하는 법이라네.” “…미쳤구만?”
다시금 외쳤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바보 같은 말에도 설득된 건지 뭔지. 어느 순간 황천화가 복희를 앞섰다. 복희를 끌고 갔다. 원래 뛰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뛰었지만 이 단순한 탈출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몸서리쳤다. 바보 같아 보이는 짓거리는 질색이었다.
“아! 진짜 멍청해 보여서 같이 하기 싫어!!!” “하하하!”
복희가 웃었다. 그라고 해야 할까? 누구라고 해야 할까? 그는 곤륜 최고의 모사꾼이자 금오의 지략가였으며 동시에 봉신계획의 입안자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모략과 지략에 관해서는 결정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이 낸다는 수가 지나치게 간단했다. 변명은 더 단순했다. 애초에 신계란 가장 폐쇄적이고 간결하게 만들어진 세계다. 이 세계에는 소통이나 이동, 연결 따위의 기능들이 필요 없었으므로. 빚어 만들었다 치면 뚜껑이나 구멍이 전혀 없는 데다 무언가를 담기 위한 용기조차도 못됐다. 단순한 이음매조차 없이 제대로 용접시켰다. 이런 공간인 경우 우회하거나 괜한 수 쓰기보다는 오히려 일점돌파가 쉽다고 했다. 복희는 간단하게 말했다. 뛰고, 뛰고, 구멍을 만들고, 튄다. 오케이? 황천화는 안 오케이라고 말했다. 두 번 말했다.
“이 양반 쫌 지나치게 자신 있게 말하네.” “어차피 내가 계획한 세곈걸. 문제없다네. 없을걸?” “만든 사람이 룰을 깨도 되는 거냐고.”
자신감은 반복되다가 어째 의문문으로 끝났다. 뒤처리할 생각이 없음이 분명했다. 사소한 일 따위야 어찌 되든 좋다는 태도였다. 황천화가 황비호와의 내기 빚 따위 훌훌 털어 버린 것처럼.
아마도 지금쯤 원시천존은 눈치챘을 것이다. 원시천존이 보기 좋다고 웃으며 넘어가 줄지 말지는 모를 일이다. 이미 이리 요란하게 뛰고 외치고 있는데 이 판국에 모를 사람이 더 적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쫓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꼭대기 저 위에서 원시빔이 번쩍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시끌벅적하게 도망쳐야만 하나. 이마를 짚고 싶은데 손잡고 뛰느라 그것도 못 하겠다. 황천화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복희를 위해서라도 화려하게 도망쳐야만 했다. 복희는 쑈 좋아해서 벌써 한바탕 즐기고 있었다. 지금이 몇백 년 만에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신나서 눈물까지 고였다. 한 손으로는 태극도 들고 있었다. 그거 들어서 뭐 하려고. 그랬더니 무책임하게 말했다.
“괜찮지 않을까?” “얼씨구!”
놀랍게도 그 무책임한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책임하게 도망을 치고, 무책임하게 사랑을 한다. 황천화의 ‘얼씨구’가 추임새인지 탄식인지는 그조차도 아마 모를 것이다.
낭떠러지 아래로 돌멩이부터 떨어졌다. 무게조차 없는 것처럼 붕 떠오르다 영원 아래로 가라앉았다. 달리는 사람들은 돌멩이와 달랐다. 그들은 떨어지지 않았고, 잠기지 않았고, 건너뛰었다. 최대한 멀리. 눈앞에서 워프존 같은 것이 일렁였다. 황천화는 기어이 욕했다. 이게 그가 신계에 남긴 마지막 전언이었다. 빌어 처먹을 사숙, 날 속였구만! 멀리뛰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황천화가 뒤늦게 알게 된 복희의 특기란 공간을 다루는 것이다. 황천화는 가끔 그 안에 왕천군의 영혼이 함께 있으며 그가 이런 일들이 쉬이 가능했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게 황천화에게 그다지 중요한 일들은 아니었어서.
사람 하나, 영혼 하나 신계에서 사라졌다. 신계 한구석에 구멍이 뚫렸다가 천천히 메꿔졌다. 몇 달쯤 걸렸다.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들이 죽을 적 별처럼 올라갔으니 떨어지는 것 또한 별똥별처럼 떨어졌다. 포물선을 그렸다. 발밑으로 까마득한 수의 민가와, 큰 성들과, 벌판과 산이 펼쳐져 있었다. 속도는 완만하게 느려졌다. 중력이 발밑에 닿았다. 디뎌 밟았다. 그가 첫 번째 돌아왔을 적 바로 이랬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손은 여전히 잡고 있었다. 그들이 떨어졌을 때는 아직도 한낮으로써 지평선에는 경계 대신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14.
떨어지니 봄이다. 봄이 그들을 맞았다. 온화한 계절이었다. 멀리서 땅이 뒤집어지는 내음이 났다. 깊이 잠자고 있던 땅을 깨우고 긁어냈다. 언 땅은 깨부숴졌다. 축축한 흑은 문드러지고 마른 땅은 흐트러졌다. 모두가 검은 흙이다. 쟁기질로 일구는 그것이 진짜 봄이었다. 봄은 땅속으로부터 줄줄이 딸려 나왔다. 흔히들 봄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꽃이니 녹은 시내니 하는 것들은 그보다도 늦게 찾아왔다. 봄이 오면 황천화는 자주 코를 킁킁거리고 땅 울음을 찾아 귀를 기울였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그랬다. 신계에는 사계가 없어서 봄을 맡는 건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봄은 그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어서 알고 있는 작은 사실들이었다. 이 온화한 변조에 관해서는 어머니 가씨가 가르쳐주었다. 아주 어릴 적이었다. 무릎에 올려놓고 가볍게 흔들어주며 속삭였었다. 그 목소리에도 봄 내음 어려 있었다. 황천화는 배운 걸 오래고 기억했다. 죽은 지 한참을 지난 지금까지도. 봄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고 어머니 무릎에 앉아 정원 보던 그 순간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억은 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태공망과 다니던 몇 년간의 세월 속에서도 봄은 있었고 봄이 오거든 말해 봤었다. 어쩌면 매해 봄마다 말했었는지도 몰랐다. 왜 그때만 해도 그들은 겉으로나마 훨씬 다정했지 않았던가. 태공망도 흙 뒤집어지는 내음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도 인간이었던 나날들이 있었으므로. 대신 그가 말하는 건 어쩐지 희미했다. 양 떼 울음과 섞여 있었다. 누그러지는 양 웃음소리로 봄 오는 소리를 짚어보려 했지만 쉽진 않았다. 그래 그런 기억도 있었지. 이 또한 아름다웠던 순간이었으므로 황천화는 기억했다.
봄인 걸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봄이라서 다행이었다. 특별한 이유로 봄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왜, 봄인 쪽이 아닌 쪽보다는 기분이 훨씬 낫지 않은가. 그들이 순전히 기분 하나로만 움직였기 때문에 기분은 중요했다. 적어도 황천화에게는 그랬다.
“봄이구만.”
별 의식 없이 뱉었다. 환기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봄을 말할 때 그의 목소리도 어머니처럼 나긋나긋해졌다. 복희가 그의 말을 받았다. 절로 나지막해져 있었다. 그런 계절이라고 했다. 그런 계절이 어떤 계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할 기분일 거라고 짐작했다. 아니면 아예 그 역시 별 뜻 없이 받은 말이었거나. 그래서 황천화는 대충 알아들은 척 넘어갔다. 그랬더니 조용해졌다.
그들은 잠시 떨어졌던 그 자리에 그대로 붙잡혀 있었다. 어쩐지 할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황천화는 봄을 찾았고 복희는 아무것도 안 했다. 뛰고 날고 떨어지고 별짓 다 한 사람들이었다. 의미는 없었지만 그랬었다는 걸 상기하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각자 차분해졌다. 나름의 봄을 즐기는 방식이었으면 좋았겠으나 아마도 그건 아니었을 게다.
이 넓은 세상 미아가 둘이다. 그저 갈 곳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길은 많았다. 길은 모든 방향으로 천 갈래 만 갈래 있었다. 그중 단 하나가 없어서, 아득해졌다. 인간계에서 정처 없기론 복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서 있었다. 그는 가야 할 길을 가늠하는 걸지도 몰랐고 황천화처럼 헤매고 있는지도 몰랐다. 단지 멍 때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표정이 하도 멍청해 보여서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황천화는 도로 자기 생각으로 돌아갔다. 저번에도 이런 적 있었다. 무작정 내려와서 하늘 보고, 산을 보고, 마을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붙잡혀 있다가 신계로 돌아갔었다. 이제는 돌아도 못 간다. 그러다가.
와.
슬그머니 입이 벌어졌다. 입으로 봄바람 들어왔다. 그게 도움이 되었다. 목구멍에 흐르던 별들을 상기시켜 주었으므로. 황천화는 그때와는 정 딴판으로 홀가분해졌다. 더는 막막하지 않았다. 어차피 갈 곳도 없는데 그렇다면 어디든 어떠하랴 싶어졌다. 게다가 봄인데. 둘인데. 갈 곳 없다고 놀릴 사람 또한 바로 옆에서 같이 헤매고 있어서 놀림 받지도 않을 텐데. 미아는 단수지 복수가 아니다. 둘이라면 어디로든 가도 괜찮았고 어디로든 가도 상관없었다. 온 방향에 지평선이 있었다. 아지랑이 일렁거리는. 멍 때리던 복희 손을 잡아끌었다. 언젠가 그 풍읍에서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가자.”
복희는 잠자다가 깬 것처럼 황천화를 봤다. 다소 놀랍다는 얼굴이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확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간 후에는 멀끔해졌다.
“그래.”
웃음소리가 아니라 온 숨 뱉어내는 소리였다. 한숨치고는 짧았고 탄성이기엔 가냘팠다. 웃음이라기엔 복잡했다. 그리고는 기꺼이 황천화를 따라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황천화도 몰랐다. 그가 늘 머릿속에 그려왔던 지평선으로 갔다. 온 방향이 지평선이라 천 갈래 만 갈래 중에 아무거나 하나 디뎠다. 이대로 바다로 가도 좋겠다. 세상으로부터도 멀리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지평선이 먼 것이 그저 좋았다. 오래 걸을 수 있어서. 혹은 그 너머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걸음이 각별해졌다.
고인 영원 위에 신들은 기억하는 신이다. 황천화는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해서라면 오래 기억한다. 봄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의 목소리, 어떠한 내음, 들꽃 한 다발, 막사 앞의 모닥불, 무수한 별들과 새벽. 오늘에 대해서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일들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웃기게도 사불상이 종종 내려왔다. 도망이 다 무색하다. 어차피 도망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황천화도 나 몰라라 했다. 사불상은 라인인지, 편진지, 텔레파신지, 봉화인지, 하여튼 호출하면 빠르게도 왔다. 그리고 한참을 한탄하다 돌아갔다. 선인계 소식일랑 줄줄 불었다.
의외로 신계에는 별일 없었다. 신계 터진 상흔을 복구할 때까지만 잠시 소란스러웠다. 원시천존은 수염만 쓰다듬었다. 요즘 눈이 침침해서…. 너무 되지도 않아서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신계는 하 적적하였기에 재미있는 일이 너무 빨리 끝났다고 불평하는 소리는 있었다. 황천화의 장기 내기 빚에 대해서는 황비호도 잊어버려서 없던 일이 됐다. 사족이지만 이 일로 백감의 휴가가 끝나버렸다. 거북이 선인은 느릿느릿하게 신계로 돌아와, 어딘지도 모르는 신계의 입구를 지켰다. 지키는 척만 했다. 신계에서도 일광욕은 퍽 할 만했나 보다. 복희가 유일하게 반가워한 소식이었다. 봉래 쪽에는 보고가 다소 늦게 들어갔다. 일 터진 신계보다는 반응이 있었으니 튄 보람이 있을 일이다. 주로 위에서 한숨 쉬었다. 예외라는 건 언제나 골치 아프기 마련이라. 대처는 미흡했다. 사불상에게 경고장 들려 보낸 게 다였다. 제 일 아니라고 좋아하는 선인이 몇 있었는데 그저 윗선이 이마 짚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심보 고약하기론 한결같았다.
면전에 대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불상은 다소 한심해했다. 바보는 옮는 병이었군요. 하고 말했다. 바로 본인들 앞에서 말했다. 황천화는 한 대 때려주기로 했다. 때려도 복희가 저의 편들어 줄 거 같아서였다. 사불상이 그보다 빨리 비명 질러서 이건 시도로만 돌아갔다. 사불상은 맞을세라 코를 감싸 쥐고선 갔다. 둘도 자리 털고 갔다. 남은 자리엔 할미꽃 한 포기 웃었다.
보통 이렇게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여름 되자 땅 내음 사라지고 온통 풀 내음만 남았다. 길 따라가다 가끔 복숭아를 털었다. 같이 다니면서 복숭아 하나는 아주 신물이 나게 먹었다. 혼백체인 신 주제에 뭘 먹느냐 하는데 뭘 먹긴 먹었다. 매번 먹으면서도 이상하다 했다. 복희는 그럴 시간에 하나 더 넣고 튀라고 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복숭아밭에서도 더 멀리 떨어져 도망쳤다. 서로 갔다가 동으로 갔다. 그다음엔 북으로 갔다. 북쪽은 추워서 뒷걸음질 쳤다. 남동쪽으로 틀었다. 가는 길에 복숭아씨를 하나씩 툭툭 뿌렸다. 싹이 날는지 안 날는지는 몇 년 후에나 알 것이다. 양 떼 한복판을 지나갔다. 복희는 능숙하게 새끼 양 한 마리 안았다. 양은 버둥거리다 놓아주니 통통 튀어갔다. 멀리서 양 치던 사람이 손 흔들어줬다. 황천화도 손 흔들어줬다. 그들은 이따금 황천화를 봤고, 또 이따금은 못 봤다. 그러다가 복희가 불쑥 말하는 날도 왔다.
“이 자리에 은나라 왕가 무덤이 있었다네.”
무덤은 없었다. 무덤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평범한 민가였는데, 잘 닦인 큰길 따라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큰길 한복판에서 말했다. 땅 밑에 은의 무덤이 있노라고. 그의 몸뚱이의 동족들과 옛 가족들. 봄보다도 더 아래에. 은의 말미에 살았으니만큼 황천화도 은 왕가의 무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거대한 게 이미 흔적도 없이 묻혔으니 세월도 무상하다. 그래서 우리가 갈 곳이 없었나 보다. 다들 땅 밑에 묻혀 있어서. 향수가 발을 저 밑으로 잡아끌었다. “헤에.” “그때도 여길 지나간 적이 있었거든.” 그때란 태공망으로서 처음 봉신계획을 일임했던 때를 말한다. 아직 봉신계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무덤 보며 했던 다짐들. 되살아나는 기억치고는 조금 먼. 복희가 과거 얘기를 한 적은 잘 없어 놔서 몹시 생소했다. 목소리가 그리운가? 회한에 젖었나?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담담했다. 잊힌 무덤처럼 세상에서 사라진 자들의 말로 같았다.
그러고 보면 황천화에게는 무덤이 없었다. 어쩌면 천상이 무언가라도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천상도 금방 인간계를 떠 버렸으므로 뭔가 제대로 챙겼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태공망 사정이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태공망이 죽은 건 봉래도에서였다. 그 이후 일이야 알만도 하고. 죽은 것인지 산 건지도 애매해 무덤은 사치였다.
아니다. 우리에게도 작은 무덤이 하나 있었다. 영혼의 반푼이의 무덤으로는 적당하게도, 팔 한 짝 묻어놓았던 게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남은 태공망이라고 할만도 했다.
은 왕조의 무덤마저 묻혔으니 그 작은 묘가 온전히 남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표식조차 남기지 않은 맨땅이었다. 함께 만들었던 다른 이들의 무덤이라면 꽂았던 검은 스러지고 봉분은 무너지고 땅은 마모되거나 전혀 다른 지형이 되었을 것이다. 그 위에서 다른 전쟁 일어나 시체 더욱 쌓였을 수도 있다. 이곳처럼 그 위에 사람들 들어섰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황천화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무덤을 찾으러 가자고 했다. 이곳이 은 왕조 무덤 자리고 조가 근방이니 서기로 가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옛날엔 서기로부터 조가로 갔으니 거꾸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괜찮았다. 시간은 많았다. 황천화가 가자 하면 복희는 쉬이 그러자고 했다. 서기가 어느 쪽인가 하니 태극도가 한 방향 가리켰다. 어수선하게 묻어놓은 묘지에 누군가 찾아가긴 했을까. 복희는 그 때 무덤 만들면서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했었지만 그게 지금 와서 자신이 될지는 몰랐다고 했다. 그건 그저 살아있는 군병들을 위한 위로였었다.
“난 왠지 그럴 거 같더라.”
일종의 예지처럼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소리라서 흉내 내기는 쉬웠다.
“이거, 구라만 늘었어.” “아니 진짜라니까?”
막상 가게 돼서야 하는 말 같지만 진짜로 그랬었다. 얼마나 유난히도 밟혔어야지. 왼손을 잡았다. 그 손은 의수도 아니고 생생히 살아있다. 꾹 누르면 장갑 안으로 살덩이와 뼈가 느껴진다. 끼고선 갔다. 황천화 혼이 떠오르지 않게 묶어주는 유일한 인력이었다. 이것과 똑같은 것을 찾아서 간다. 발이 가벼워졌다. 엇박자로 뛰듯이 했다. 겨우 알 것도 같았다. 그때의 그건 지금의 우리를 위해 묻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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