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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도와키의 집 뒷마당에는 벚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카도와키가 태어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손수 심은 거라고 했다. 카도와키가 태어난 것과 같은 해에 심어진 나무였지만 수령은 조금 되었다. 성미의 문제다. 카도와키의 부모님에게 느긋한 기다림이라는 건 없었고 당장에 꽃을 보기를 원했었기에 나무는 뒷마당에 심길 때부터 이미 한가득 꽃무리를 지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해마다 벚꽃이 필 적이면 어린 카도와키는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것, 자라는 아이를 해마다 비교하는 것, 모두 부모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에 비례해 해를 넘길수록 벚나무 앞의 카도와키의 얼굴은 쑥스러움을 띄었다. 나란히 나란히 앨범에 고이 정리된 사진들을 보면서 미즈가키는 한숨을 흘렸다. 미즈가키의 엄마가 한번 놀러가더니 그 사진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우리도 진작 그런 것 좀 할걸. 괜히 부러워지잖니. 아니 우리가 몇 년 아는 사이도 아닌데 그동안 왜 몰랐을까. 부러움을 산 속사포같은 말들에 쑥쓰러움을 아는 큰아들과 작은 아들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도망을 갔었다. 그리고 지금 미즈가키는 카도와키의 집에 놀러온 김에 그 칭찬이 자자한 앨범을 보는 중이다. 이렇게 낯간지러운 사진들을 잘도 찍었네. 가볍게 빈정거리면 카도와키는 멋쩍게 코만 훔쳤다. 우리도 한 장 찍을까. 문득 미즈가키가 툭 하고 충동인 양 말을 내뱉었기 때문에 사진은 그렇게 찍혀졌다. 카도와키는 미즈가키의 충동에 적잖이 놀랬다. 왜? 왜긴 왜야. 그냥이잖아. 한번 마음을 먹은 미즈가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제집도 아닌 카도와키의 집에서 쉽게 카메라를 찾아냈고 셀프타이머를 확인해 카도와키의 팔을 끌고 뒷마당으로 이끌었다. 아직 철이 덜 되어 겨울을 지내는 벚나무에는 단단한 망울들만이 옹송그려 있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적당히 담벼락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아 꽤 위태로웠다. 떨어지겠다. 카도와키가 우려를 표하자 미즈가키는 카도와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십초야. 금방이야. 어색하게 웃는 사이로 어색한 셔터음이 울렸다. 입꼬리가 달달 떨렸다. 그 흔한 브이도 그리지 않았고 어깨동무조차 하지 않았다. 나란히 서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미즈가키와 찍은 사진으로는 아마 이것이 마지막 사진일 것이다. 둘을 찍은 카메라는 잊혀진 채 방치되다가 카도와키의 어머니 손에 발굴되어서 그간의 사진과 함께 한꺼번에 현상되었다. 어머어머. 슈고, 이 사진 언제 찍었니? 그의 어머니가 호들갑을 떨면서 보여준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게 흔들려 있었다. 담벼락의 지지대가 영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설프게 차려 자세를 취한 둘이 애매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윤곽선이 잘게 번져 있었다. 이래서 꽃이 필 때 사진을 찍는 거구나. 카도와키가 중얼거렸다. 사진 속 미즈가키의 얼굴위로 둥근 지문이 뭍어났다.
그 해 꽃이 필 무렵, 카도와키는 부모님의 호들갑에 못 이겨 벚나무 앞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카도와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질 연례행사였다. 카도와키는 이제 슬슬 체념하고 있었다. 키가 많이 자랐구나. 카도와키의 어머니는 상투적인 감상을 앨범 사이사이 켜켜이 포개놓았다. 앨범의 얇은 필름을 벗기고 사진 위에 지문이 묻지 않도록 조심해서 놓은 후에 필름을 다시 덮는다. 핑크빛 배경 아래 년도별로 카도와키가 커 가는 모습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그건 추억이라기보다는 한 생명체를 관찰하면서 정리한 차트같은 거라고 카도와키는 생각한다. 어릴 때 쓰던 봉숭아 관찰일기 비슷한. 배경이 모두 한결같아서인지 새로 낑긴 사진 옆에 그 사진은 유독 눈에 띄었다. 카도와키가 사진을 보는 걸 알아챈 어머니가 후후 웃었다. 기념이고 해서, 같이 넣었지. 꽃만 피었어도 정말 예뻤을 텐데 아쉽네. 꽃잎이 날리는 봄날 속에서 혼자 삭막한 사진이었다. 어깨와 어깨 사이의 한뼘간의 거리. 흔들리는 손가락의 잔상. 경직된 눈가. 그래도 미즈가키는 웃고 있었고 자신의 성장 그래프 어딘가에 이렇게 끼어 있었다. 그랬었다. 그랬었다고. 카도와키는 눈을 감았다. 이제서야 알겠다.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들 유년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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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인정의 시간은 겨울잠처럼 고되었다. 온갖 쓰레기들로 채워놓은 배는 곯으면서 많이도 울었다. 그는 배를 감싸쥔 채 웅크리고 누웠다. 그러면 손가락 아래서는 고픈 배가 쿵쿵 울었다. 귀 기울이지 않았다. 혹여 발구름소리와도 닮았을까봐. 공 굴러가는 소리가 그것보다 더 컸을까봐서. 글러브위로 착륙하던 공의 거셈이 그랬을까봐서. 몸을 좀 더 웅크렸다. 등이 굽었다. 애들 공놀이따위. 일부러 소리를 내어 말했다. 하지만 말에는 언제고 형태가 없었다. 부정의 시간이 길다. 길지만 영원하지는 못했다. 언젠가 몸을 일으키고 꺼진 전화기에 전원을 넣고 익숙한 번호를 눌러 좋아해, 라고 말할 날이 올까봐 두려웠다. 그냥 공놀이잖아. 형태 없는 말을 다시 소리내 말한다. 말은 메아리조차 없이 사라졌다. 형태가 없는데 단지 좋아해, 라는 말만은 형태를 가진것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그것만이 특별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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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온지 카즈키는 향수병을 앓았다. 그는 향수병을 앓을 때면 고향에서 가져온 베개에 코를 박고 오래도록 킁킁거리며 유년기의 정수리 냄새를 찾았다. 닛타에 가고 싶다. 카이온지가 말하는 닛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닛타도 그동안 많이 변해서 새로운 길이 뚫리고 자신이 알던 공터가 몇 개 사라지고 산이 움푹 패이는 등 변화가 많아 카이온지가 찾는 닛타에 가려면 십여년을 도로 되돌아가야 했다. 구멍가게가 아직 남아있고 공터에 잡초가 자라고 있고 산이 깎인 자리에 세워진 건물 뒤로 석양이 지지 않았던 시절. 그래서 카이온지 카즈기가 그리워하는 닛타가 시간인지 공간인지 미즈가키는 가끔 헷갈려했다. 그는 카이온지의 배게에 묻어있다는 닛타의 햇빛냄새 또한 모르니까 당연한 일이다. 배게커버는 한달에 한번 빨래를 해서 베란다에 말리고 있다. 닛타의 냄새가 있다손 치더라도 백 번은 세탁기 안에서 빨려나갔을 것이 뻔했다. 미즈가키 슌지는 향수병을 앓지 않았다. 하지만 미즈가키는 카이온지가 고개를 쳐박은 닛타의 배게 옆에 누워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닛타의 이야기는 아니었고 요코테에서의 미즈가키 어린시절 이야기였다. 샘이 솟는 우물처럼 미즈가키는 요코테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퍼올려 카이온지가 향수병을 앓을 때마다 듣는 요코테의 이야기는 매번 달랐다. 닛타와 요코테의 거리가 멀지 않았고 어린애들 기억과 경험이 다들 그게 그거라서 미즈가키가 하는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카이온지의 닛타를 닮아있었다. 그래서 카이온지는 배게에 코를 묻은 채 미즈가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세발자전거가 아스팔트가 깔린 골목을 도로로로로록 지나간다. 쓰레기통위에서 하품을 하던 고양이가 그 위세에 눌려 느릿느릿 몸을 피하고 바퀴아래로 자갈이 튀었다. 미즈가키는 대략 다섯살 때의 세밀화를 그리고 있었다. 세밀화라고 할 법한 것이 미즈가키의 묘사는 작은 사물부터를 말해 그걸 쌓아서 얼추의 큰 풍경을 그려내는 타입이었다. 지나치게 자세해서 카이온지는 미즈가키의 기억력을 의심했었지만 미즈가키는 콧방귀만 끼었다. 그건 네가 지나치게 향수병을 많이 앓아서야. 난 그렇게 감상적인 병은 앓지 않아요. 그리워하지도 않고 그때가 좋았다, 하고 필터를 끼우지도 않아. 미화될 것도 꼬아볼 것도 상상으로 부풀릴 것도 없어. 넌 그게 문제야. 마냥 호시절이었다고 생각하지? 카이온지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다름아닌 향수병 기간이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때가 좋았어... 근데 말이야 너. 그거 아니잖아. 카이온지 카즈키가 향수병을 앓고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향수병이었기 때문에 삼킨 말이다. 미즈가키가 이렇게나 세세한 디테일에 집착하는 이유. 그것만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이유. 가장 커다란 것을 피하고 있어서다. 미즈가키가 무덤덤하게 말하는 과거의 요코테에는 카도와키 슈고가 있어야 했고 그걸 애써 외면하기 위해서 미즈가키는 혓바닥 위로 얄팍한 잡동사니만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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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왜냐하면 쇼트의 날을 그냥 넘겼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사람을 웹공개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일단 참는다
4월 1일이 일요일이었던 어느 해였고, 3월 31일에서 4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3분 12초의 짧은 통화를 했다. 통화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졸음을 타고선 비몽사몽간에 스러졌다. 6시간 정도가 지난 오전 6시 30분에는 집을 나서고 있었고 봄의 동이 그제야 흥건하게 돋았다. 시야 한 구석이 발그스름했다. 역에서 카이온지 카즈키를 만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기차를 타 둘 다 전혀 모르는 이름의 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가끔 소리가 났는데 미즈가키 슌지가 입으로 흥얼거리는 가사 없는 노래들이었다. 순 모르는 음뿐이라 카이온지 카즈키는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휴일의 거리에는 가족 친구 연인 하여간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거기에서 꺾어 조금 더 큰 도로변으로 나가니 사람 없이 자동차들만이 이정표 아래를 쌩쌩 지나다녔다. 아래는 논이었고 비탈길을 내려가 논길사이로 접어들었다. 뒤집어 놓은 논밭에서는 거름 냄새가 나서 미즈가키는 연신 코를 찡긋찡긋 거렸다. 카이온지는 거름 냄새 사이사이 둔덕에 나 있는 어린 쑥의 냄새를 맡았다. 쑥 냄새가 난다고 말했지만 미즈가키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어깨만 으쓱하고는 말아버렸다. 발에 민들레 홀씨가 채였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걸었다. 미즈가키는 마치 길이나 목적지를 아는 사람처럼 앞장을 섰다. 그 어떤 갈림길에서도 망설이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카이온지는 그저 뒤따라갔다. 나란히 가거나 반 보 뒤처지거나 했다. 논길 끝에서 알 수 없는 동네로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논들의 주인인 듯 농기구를 기대놓았다. 어느 담장 위에선 고양이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카이온지가 곁눈질로 훔쳐보는 것도 아랑곳을 않고 앞발을 핥았다. 카이온지의 시야 끝으로 물러날 때까지. 그러다 보니 미즈가키가 몇 발자국을 앞서 있어 카이온지는 황급하게 걸음 걸었다. 중간에 아무 밥집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동네에 하나쯤 있을 법한 그저 그런 밥집이었다. 가정집과 비슷한 건물에 홍보는 먼 세계의 일인 듯 관심도 없이 간판 하나가 다였다. 그런 집을 단골인 것처럼 서슴없이 들어갔다. 미즈가키는 앉자마자 벽에 걸린 메뉴판을 슥 보더니 카이온지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가장 값이 싼 메뉴 둘을 시켰다. 어머니뻘의 주인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려다가 미즈가키의 빠른 주문에 도로 행주에 손만 닦으며 들어갔고 시킨 음식은 5분이나 기다렸을까, 가히 패스트푸드점의 속도를 자랑했다. 맛은 고만고만했다. 동네 단골이 많은 집인지 낯선 학생들의 천연덕스런 방문에 주인아주머니는 둘을 계속 흘끔거렸다. 오랜 걸음에 목이 타서 카이온지는 물을 두 잔이나 벌컥벌컥 마셨다. 아 시원하다. 카이온지가 물 마시는 동안 미즈가키는 커다랗게 밥을 떠서 빠르게 씹고 급하게 목으로 넘겼다. 밥 먹는 속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카이온지가 밥 먹는 속도도 덩달아서 빨라졌다. 빨라졌다기보다는 급해졌다는 게 맞았다. 중간에 물을 두 컵 더 마셨다. 사정없이 밥 밀어 넣기에 바쁜 미즈가키는 목이 메는 티도 안 냈다. 그러면서 밥 한 톨을 남기지도 않았으니 그걸 카이온지가 신기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구경하는 사이 미즈가키가 잽싸게 두 사람 몫의 계산을 끝냈다. 동전 몇 개를 떨궜다. 나갈 때 카이온지는 가게 벽에 갈려있는 달력을 보았다. 근처 큰 상점에서 배포하는 듯한 홍보용 달력이었다. 달력 아래 상점 주소가 조그맣게 쓰여 있어서 유심히 읽었다. 읽어보아도 그로서는 알아먹을 수가 없는 동네였다. 그저 저들의 동네에서 동떨어져 왔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미즈가키에 등에 대고 물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미즈가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미처 듣지 못한 건지를 몰라서 카이온지는 한 번 더 묻기로 했다. 굳이 또 물어서 확인하는 것이 카이온지 성미 상 그랬다.
“미즈가키! 우리 지금…!” “시끄러워. 나도 몰라.”
기어이 짜증을 얻어들었다. 미즈가키는 앞서 뭐라뭐라 한참을 툴툴거리더니 담배를 빼어 물었다. 신경질적으로 라이터를 깔짝거렸다. 담배연기가 죄 뒤로 날아와 카이온지의 코와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미즈가키다운 고약한 심보였다. 손사레를 쳤다. 연기는 잘 흩어지지 않았다. 담배연기를 피해 결국 카이온지는 미즈가키 옆으로 달라붙었다. 미즈가키가 씩 웃으며 담배를 빨았다. 사소한 괴롭힘에도 즐거워했다. 평소에도 저만큼만 인생을 즐거이 여겼으면 좋겠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니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워. 안 그래? 좀 평화롭게 가자고.” “미즈가키가 조용하니까 내가 어색해서 그래.” “하이고, 언제부터.”
미즈가키는 혀를 찼고 혀끝에 고인 담배 맛을 그렇게 튕겨 냈다. 뱉는 연기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했다. 혀를 털고 봄 공기에 씻어내더니 몇 모금 빨지도 않은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껐다. 구부러지고 뭉그러졌다. 휴대용 재떨이까지 가지고 다니는 준비성이 카이온지는 징그러웠다. 일회성 충동이 아니라 습관 같아서 그랬다.
“원래 처음부터 미즈가키는 말 많았잖아. 전에 내가 그랬지? 나는 너랑 얘기하는 거 재미있다고.” “그거 욕으로 들린다.” “칭찬이야.” “카이온지군한테 그런 칭찬 받고 싶지 않은걸. 불명예야.”
그렇게 말하고선 미즈가키는 한 번 허리를 뒤로 제쳤다. 구부정한 것을 쭉 늘리고 스트레칭을 했다. 카이온지는 미즈가키를 따라서 했다. 고개를 돌릴 때 햇빛이 시야를 저미며 스며들 듯 들어왔다. 눈이 부셨다. 어깨를 돌리고 발을 털었다. 야구하던 애들이 다들 그게 그거라 익숙하게들 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멀리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마을이 산을 빙 두르고 있었고 그걸 같이 돌아 걸었다. 작은 마을인 줄 알았는데 걷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카이온지가 잠깐만 하더니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물을 사서 들고 나왔다. 번갈아서 마셨다. 이번에는 미즈가키도 물을 마셨다. 거의 목구멍에 들이 붓는 꼴이었다. 꼴꼴꼴 떨어지는 물통 안의 물을 카이온지는 가만 보았다. 우리 둘이 걷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가까스로 자각했다.
“지금 되게 이상한걸.”
생각했던 것은 바로 입으로 튀어나왔다. 우리는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즈가키가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카이온지를 보았고 역시나 영 모르겠다는 얼굴의 카이온지는 서 있었다. 물병은 반이 사라져 있었다. 서로 멀뚱히 보았다. 모르겠다는 얼굴뿐이었지만 서로 모르는 것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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