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가키 슌지는 이미 어릴 적 어떤 사실들을 빠르게 깨달았고 그래서 거짓말의 세계로 뒷걸음질 쳤다. 거짓말이 그를 평안하게 했다.
평안하다고? 그것도 거짓말.
그는 어쩌면 정말로 평안할 수도 있었다. 손끝을 탄산수에 담그고 사는 나날이었다. 말초적인 자극들로 인해 심지는 곧 뭉툭해졌다. 그러면 알량한 거짓말 따위는 곧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리고 그 꼴을 못 보는 사람이 있었다. 카이온지 카즈키가 발목을 잡았다. 카도와키 슈고도 아니고, 카이온지 카즈키가.
애초에 카도와키 슈고라는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오랜 시간, 가족간의 교류, 같은 동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얼기설기 여러 겹 매듭지어진 관계는 쉬이 끊이지 않는다. 카이온지 카즈키가 미즈가키 슌지와의 가느다란 실 하나라도 붙잡고 있으려면 말이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반대편 한 사람이 언제든지 끈을 놓을 마음을 먹고 있다면 더더욱. 그것이 카이온지로 하여금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누르게 했다. 카이온지 카즈키는 그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기로 미즈가키 슌지에게는 그것들을 불사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그런 걸 구질구질하게 매달린다고 하는 거야. 미즈가키 슌지가 코웃음 친다. 공기 흐트러지는 소리만 크다. 당장이라도 통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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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온지 카즈키의 현실 속에서 미즈가키 슌지의 실재는 옅어져만 간다. 그와는 오직 전화 통화 뿐이다. 그는 카이온지 카즈키의 현실에서 몸을 옹송그리고, 옹송그리고, 옹송그리다 못해 전화기 안에 작은 굴을 판 것만 같다. 카이온지 카즈키는 굴 안의 메아리를 귀담아 듣는다. 그는 전화기를 뒤집어 실재를 확인하고 싶어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전화기를 들 때 간혹 듣게 되는 여자의 음성메세지와 비슷하다. 들리지만 실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냥함에 있어서는 음성메세지가 훨씬 나았다. 카이온지 카즈키는 전화기 너머의 미즈가키 슌지에게서 자꾸 과거를 찾는다. 미즈가키 슌지의 실재가 분명하지 않기에, 불분명한 실재에게 그는 계속 묻는다. 미즈가키. 미즈가키. 미즈가키. 그 날이 있었어. 카이온지가 말하는 그 날은 기억의 덩어리가 되어 미즈가키의 실재와 함께 침몰해간다. 미즈가키가 전화상의 목소리로만 남는 만큼 카이온지의 그날도 점점 옅어져만 간다. 그는 이제 그날을 온 몸의 잔떨림으로 기억한다. 고양감, 흥분 같은 것이 그것들이다. 이후로도 야구를 했지만 그런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즈가키 슌지의 실재 또한. 여기에서 카이온지는 생각을 멈춘다.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는, 스쳐가는 기억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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